북경견문록
두 번째 목적지는 쇼핑장소다. 북경오리, 과자, 차, 옥도장 등등 토산품을 파는 곳이다. 재미삼아 시식도 해보고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다시 버스에 올라 점심으로 싸 온 컵라면을 어떻게 먹나 걱정을 하는데 기사 아저씨는 검지와 장지를 붙여 입에다 갖다 대면서 점심을 먹으라고 한다.
못이기는 척 아저씨를 따라 갔다. 식당에는 사람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는 중이다. 원형 테이블에 빙 둘러앉아 먹을 만큼 접시에 떠 담는다. 가이드북에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을 막상 찾아가도 음식이 너무 기름져서 현지식에 아직 적응이 안 된 상태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곳의 음식은 맛이 순했다. 청경채 무침도, 생선찜 요리도 입에 잘 맞았고 ‘스팀 라이스’라며 커다란 그릇에 담긴 쌀밥도 맛있다. 반가운 마음에 밥을 떠서 상비용으로 갖고 다니는 김과 고추장을 꺼내 함께 먹으니 더 든든했다.
중국인들은 친절했다. 혹시나 손이 닿지 않을까봐 먼 곳에 있는 접시를 우리 앞으로 가져다 주며 눈짓으로 이것도 먹으라고 한다. 다 같은 투어객이지만 이 시간만은 남의 나라에 와서 손님대접을 받는 것처럼 황감하다.
코를 흘리던 아이 목에는 도금한 메달이 걸려 있다. 기념품인가보다. 이런 조잡한 기념품들은 집에 돌아가면 처치 곤란이라 어디서건 잘 사지 않는데, 왠지 그런 강퍅한 마음을 지닌 엄마를 따라다니며 동심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아이가 측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베이징 밤거리에 하늘을 향해 쏘던 레이저와 아이 눈을 홀리기 위해 날리던 플라스틱 새, 자동인형들..하나도 사주지 않고 넘어간 것도 마음에 걸린다.
돌아가면 아이보고 장난감 하나 사라고 말해줘야겠다.
세 번째 장소는 명 13릉이다. 유적지를 밟으며 사진을 찍으려 했지만 가이드는 사파리를 떠난 사람처럼 왕릉 수렵을 한다.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이곳은 어디고 이곳은 무어라고 설명만 한다. 내용을 알 수 없어 답답했다.
그러다가 박물관에 내려준다. 온갖 화려한 유물이 가득하다. 한편으론 밀랍인형으로 만든 서사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관탈민녀설화’가 중국이라고 예외는 아닌가보다. 민가의 여인을 탐내자 남편이 관리를 죽이려는 이야기다. 심지어 가마솥에 왕자를 넣고 죽이는 장면까지 사실적이다. 우리나라의 박물관은 역사를 찬양일색으로 만드는데 힘을 쓴다면 이곳은 좀 남다르다. 명나라, 청나라 왕조의 부패를 신랄하게 그려놓는다. 충격이었다.
친일파는 그대로 두고 조선총독부 건물만 폭파한다고 역사가 바로서는 것이 아니란 사실을 한국의 위정자들이 이곳에 와 배워야겠단 생각까지 든다. 어쩌면 구한말 세도정치와 고종의 무능, 더 거슬러 올라가 선조와 인조의 정치를 통렬히 비판하는 박물관이 있어야 다시는 백성을 함부로 대하는 지배자는 나타나지 않으리라...주섬주섬 드는 생각으로 버스에 올랐다.
베이징에 돌아오니 6시가 넘었다. 벌써 어둑어둑하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내린다. 코흘리개 가족도 내린다. 버스에 우리만 남자 기사는 천안문 쪽으로 가는 버스 노선을 알려준다. 캄캄해지는 도시외곽에서 길을 묻자니 걱정스럽다.
영어를 쓰는 젊은 여인을 만났다. 반가운 마음에 길을 물으니 그녀는 자신을 따라 내리라고 한다. 갈아 탈 버스가 오자, 우리가 타는 것까지 보고 자신의 길을 간다. 베풀어 준 깊은 호의와는 달리 요란하게 인사도 하지 않고 선선히 자신의 길을 간다.
중국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 일상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인배의 풍모가 있다. 용기를 내서 중국인을 따라 다녀 오길 잘했다. 설명도 놓치고, 편안한 자가용도 아니지만 그들을 가까이서 본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다.
연암 박지원이 거리에 굴러다니는 개똥마저도 자세히 관찰하여 중국을 알고 싶어 했던 그 마음을 조금이라도 흉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삼일간의 북경견문록...모쪼록 아이에게 대륙의 기상이 깃들길 바라며 북경에서의 마지막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