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멧, 심심하고 배고픈 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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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멧, 심심하고 배고픈 천국....

고구마 4 4001
로비나에서 싱가라자 서부 터미널까지 베모, 서부 터미널에서 싱가라자 동부 터미널 까지 다시 베모를 타고 동부 터미널에 내리니, 뻥~ 차면 와장창 하고 부서질 것 같은 낡은 장거리 베모가 몇 대 서있다.
“너희들 아멧 가냐?”
“그렇다”
“그럼 우리 차에 타”
싱가라자에서 발리 동부를 순회해 암라푸라까지 가는 이 베모 안에는 다른 현지인들도 몇 명 타고 있다. 차가 한 5분 정도 굴러갔을까... 차가 서고 베모 안내군(다 타봤자 12명도 못타는 이 좁은 봉고 안에 운전 기사랑 베모 안내군이 2인 1조로 일한다.)이 우리한테 다가온다.
“너희 둘. 아멧 가지? how much do you want?"
이 무슨 삽질하는 소린가... 내가 얼마를 원하는지를 왜 물어? 요금은 자기가 잘 알지 내가 잘 아냐? 저 말은 곧 우리에게 바가지를 씌우겠다는 징조다.
“왜 나한테 얼마를 원하냐고 묻냐? 너가 이미 얼마인지 알고 있잖아. 다른 발리인은 얼마를 내는데?”
“두 사람에 십만 루피 줘”
커커커... 이 아저씨가 우리를 왜 이렇게 띄엄띄엄 하게 보나.
며칠 전 우붓에서 화이트 리버 래프팅을 마치고, 우리를 숙소인 우붓으로 데려다 주던 봉고 기사 가 자신의 차를 하루 대여 하는데 부른 가격이(가솔린 포함에 그는 영어도 잘 되는 사람이었다.) 이십만 루피였다.
“한사람에 만 루피” 요왕이 말하자 어림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들이 원하는 가격이 조금씩 낮아지고 우리가 부르는 가격도 조금씩 올라간다. 차안은 우리와 베모 기사와의 요금 흥정으로 갑자기 와글와글 해지고, 다른 로컬들도 다들 자기네 말로 한마디씩 거드는 통에 그야말로 북새통 이 됐다.
“그럼 아멧까지 안가고 근처 출릭까지 두 사람에 5만이다. 더는 안 깎아줘...”
뜨거운 낮의 열기는 베모 안의 철이란 철은 다 뜨겁게 달구고, 나는 꾸벅꾸벅 졸다가 뜨거운 철판에 손가락이 닿을 때 마다 깜짝 놀래며 실눈을 뜬다.
출릭에 도착하니 우리를 아멧 해변까지 가는 차 기사와 인수인계한다. 또 다시 흥정 시작...아~~ 정말 뚜껑 열리네...
바가지를 씌우는 기사들에게 화가 나는 게 아니다(고양이가 쥐새끼를 잡아먹는다고 탓 할 수야 있나...) 내가 정말 화가 나는 건, 편안하고 가격 차이도 얼마 안 나는 여행자 버스를 마다하고 별 가치도 없어 보이는 이 힘든 길을 선택한 요왕 때문이었다.
베모를 탈 때마다 낮은 천정에 머리를 쿵쿵 처박히는 것도, 그 무거운 배낭을 현지인들의 짐 속에서 끌고 내리는 것도, 지겹게 물어보는 how much do you want 도 다 싫어!!!!
인내심이 한계를 드러내고, 어디서 왔냐는 기사의 물음에 모자를 눌러쓰며 퉁명스레 “몰라” 라고 대답한다. 그는 내가 ‘몰라’ 라는 곳에서 왔다고 생각하겠지...

이곳 아멧에서 첫날 숙소를 잘못 선택한 우리는, 화장실 이용을 거의 하지 못했다. 모양새는 그럭저럭 양변기 모양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 위에 올라 앉기는 커녕 그 모양새를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울 만큼 더러웠다. 아침에 치러야할 생리 현상을 위해서라도 우리는 숙소를 옮겨야만 했다.
그리하여 옮기게 된 이곳 ‘와와위위2 빌라(세금과 아침식사 포함 150,000루피)’... 아멧이 천국이라던 그녀가 묵었던 숙소 묘사와 대충 맞아 떨어진다.

<깨끗한 아멧의 숙소. 150,000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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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의 맨 동쪽 끝에 자리 잡은 이 해안은 아멧을 시작으로 해서 여러 개의 가난한 어촌 마을이 차례차례 각자의 해변을 가지고 늘어서 있다. 그 길이는 무려 거의 10킬로미터에 달한다.
해안선이 울퉁불퉁 바위인 곳, 동글동글 조약돌인 곳, 또는 고운 모래사장인 곳... 가지각색인 이곳은 맑은 물과 검고 고운 모래를 자랑한다. 물론 이곳도 각종 삐끼님들(마사지, 세일링. 피싱. 스노클링. 트랜스포트)의 극성이 있긴 하지만, 멋들어지고 평화로운 바다의 전경으로 어느 정도 상쇄되는 듯하다.
“한국은 여기서 얼마나 멀어?”
각종 투어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호객꾼도 이내 포기하고 나무 그늘 아래 쉬며 내게 묻는다.
“비행기로 여섯 일곱 시간쯤...”
“발리 보다 커?”
“많이 커”
“음... 발리 보다 더 잘 살아?”
“(헉..) 그냥 조금 더 잘 살아..”
“한국에선 마사지 한 시간에 얼마야?”
“(글쎄다. 카오산 마사지 가격은 아는데 한국은...) 한 시간에 20달러쯤...”
“ 휴우~~” 낮게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절래절래... 그나저나 내가 제대로 말하긴 한 건가...?

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에 와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해안 마을이라서 해산물은 맘껏 먹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실상은 전혀 달랐다는 거다. 우리 주제에 랍스터를 뜯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지 도미나 참치, 오징어 같은 것만이라도 풍성하리라 생각했는데, 웬걸, 다소 비싼 가격을 지불해 봤자 나오는 건 그냥 고등어 한조각 정도?
이 멋진 마을의 대부분의 빌라와 규모 있는 식당들은 거의 외지인의 소유란다. 현지인들이 가진 것은 좁고 특이한 모양의 작은 배와 마사지 실력, 그리고 가난뿐이다.
그나마 그물도 아니고 가는 낚시 줄로 잡아대는 통에 낚을 수 있는 고기도 몇 마리 되지 않는다는.....현지인의 설명~
근데 , 내가 스노클링할 때 본 팔뚝만한 스내퍼들은 그럼 다 뭐지? 개네들은 관광자원이라서 안잡아먹나....

뒤로는 산을 등지고 정면으로 동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이 한적한 해안에서 나이트 라이프를 기대 한다는 건, 와룽(인도네시아 간이식당)에서 설렁탕 기대하는 것 마냥 뜬금없는 일이다. 해안을 따라 한 개씩 한 개씩 띄엄띄엄 줄 서 있는 숙소와 식당...
가장 가까운 다음 숙소까지 거의 300미터를 걸어야 할 때도 있다.
높은 지대에서 한눈에 내려다본 발리 최동부의 이 해변은, 반짝이는 푸른바다위에 돛을 크게 세운 뒤 세일링 하는 수많은 배들로 인해 , 티비에서 본 지중해 어느 연안마을에 와 있는거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그녀에게 천국은 ‘즐거움과 쾌락, 맛있는 음식들로 넘쳐나는 흥겨운 곳’이 아니라, 잔잔한 바다와 평화 그리고 고요함 이었던 게 분명하다. 하긴 내 생각에도 파라다이스는 평화로운게 제격이다.

멋들어진 우리 숙소의 ‘Open Air 욕실’(천장이 없는)은 때에 따라 그 감흥을 달리했다. 까만 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며 세수를 하는 건 무척 로맨틱한 일이지만,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변기 위에 걸터앉는 건 대략 난감하다. 하지만 꽤 이국적이고 독특한 체험이었기에 불만은 전혀..,,,,
무척이나 곱고 검디 검은 모래... 석탄가루랑 진배없는 이 신기한 모래 덕분에 마치 발은 연탄공장을 걷는거 같다. 사람들로 북적이지도 않고 때로는 한 해변에 겨우 두세명의 사람들만이 수영과 스노클링을 즐길 뿐일 이 해변의 전경은, 엽서의 한 장면을 그대로 끄집어낸듯 했다.

<해변의 모래..... 마치 탄가루가 묻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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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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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에 잠들고, 파도 소리에 일어나는 이 고요한 해변을 렌터카로(운전에 자신 있다면 오토바이 라도...) 자유로이 누빌 수만 있다면 훨씬 더 많은 것을 만끽 할 수 있었을 텐데...
이번이 첫 방문인데다(길이 눈에 익지 않았다.) 오토바이 면허증도 가지고 있지 않은 우리는 띄엄띄엄 대중교통에 의지해 다소 제한적으로 이곳을 느낀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멧이 우리에게 안겨준 느낌은 ‘합격점 그 이상’ 이다.
다시 올 때 까지 너무 많이 변하지 않기만을...

<일몰 때 돛단배를 타고 나가 보았다. 멀리 보이는 아궁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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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나비 2004.07.27 18:19  
  흠냐 고구마언니 글을 읽다보니 9월에 발리 가려구 했었는데 자꾸 망설여지네여 저또한 흥정이나 이런거 잘못하구 그래서....자꾸 삐끼들이 저러면 더운데다 짜증두 무지 날듯해여....
전진홍 2004.11.07 22:57  
  아 삐끼없는 동남아는 정녕 없단말인가..  ㅜ.ㅜ
발리가서도 조용히 다닐수는 없는듯하네여.  ;;
babkong 2005.10.05 17:05  
  2005년 9월 와와위위2 가격 - 일반객실 200,000루피, 방두개있는 해변보이는 특실 250,000루피 입니다. 요왕님갈때보다 조금 올랐네요~^^ 5000원 정도 더주고 바다보이는 빌라 묵으면 너무 좋습니다^^
효진이 2014.06.14 13:01  
2013년 1월에 아멧 다녀왔는데, 비수기여서 그런지 아주 고요한 마을로 기억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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