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의 인도네시아 기행 9 디엥고원의 가듯까짜 사원
나는 50대 중반으로 중학교 1학년인 막내와 둘이 인도네시아를 다녀왔습니다. 일정은 2005년 1월 5일 출발하여 자카르타 - 족자카르타 - 발리 - 방콕 - 인천으로 1월 25일 귀국했습니다.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디엥고원의 가뜻까짜 사원
‘빤다와 사원(Pandawa Temple)’을 떠나면, 좁은 길이 언덕으로 향하여 나 있는데, 그 끝, 언덕 중간쯤에 집이 한 채 보인다. 중간 중간 풀 더미 속에 흩어져있는 사원의 돌무더기에 관심을 가지며 올라가면 ‘박물관’이란 이름이 나타난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왜 그런지 박물관을 열지 않아 구경하지 못하고 그 앞에 있는 ‘가뜻까짜 Candi Gatutkaca’사원만 보았다.
가뜻까짜사원 - 디엥고원 최고의 완벽한 균형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가뜻까짜 사원’은 박물관 주차장 한편 약간 움푹 들어간 대지위에 서 있다. 정보에 의하면 ‘가장 보존상태가 좋다.’라고 되어있다. ‘가뜻까짜 사원’의 모습이 완전한 형태라면 앞서본 ‘빤다와 사원’들도 나름대로 크게 멸실된 부분은 없는 것 같았다. 외관으로는 2층 형태로 되었으나 내부는 한 개의 공간이며 신성소로 통하는 문은 한쪽에만 있다. 나머지 세 방향에는 신상을 모셨던 장소만이 있고 신상은 없다. 외벽에 벽화는 없으나 돌을 다듬어 부드러운 선으로 추녀의 곡선을 살리고 있는 점이나, 한 군데의 군더더기도 없이 완벽한 균형을 자랑하고 있는 점 등은 ‘쟈바의 다보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쁘람바난이 크기와 웅장함으로 힌두사원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다면, ‘가뜻까짜 사원’은 섬세한 아름다움과 완벽한 균형미로 힌두사원의 또 한 축을 차지할 수 있다고 하겠다.
내가 감상에 젖어서 인지, 아니면 힌두사원의 모든 것을 보지 못하고 아까워하는 것인지, ‘가뜻까짜 사원’이 놓여있는 처지는 참 보물을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아 섭섭하였다. 옹색한 터 위에 겨우 자리 잡고, 분명 신성소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계단과 난간이 있었을 것인데, 복원되지 않은 돌무더기가 그 옆에 쌓여있다. 저것들이 언제 자기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는지….
가뜻까짜사원 2층부분-완벽한 균형과 조형미를 볼 수 있다.
‘가뜻까짜 사원’을 떠난 미니버스는 바로 '비마 사원 Candi Bima'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잠시 내려 비마사원을 보고 싶었는데 운전기사가 난색을 표한다. ‘여기까지 오기에 이미 예정시간을 많이 넘겼다. 오늘 일정을 끝내기 힘들다.’ 뭐 이런 이유였다. 옛말에 ‘운전대 잡은 ♂이 왕이다!’ 말도 안 통하는 우리는 잠자코 비마사원을 통과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의 생각이지만 운전수는 계약된 관광행사를 모두 마쳐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계약위반이 되니까. 앞으로 관광해야 할 곳을 모두 알고 있었다면 우리는 마지막 호수지대를 생략하고 ‘비마 사원’을 선택했을 것이다.
정보에 의하면 ‘비마 사원’ ‘많은 얼굴상 장식을 가지고 있는, 쟈바에서는 유래가 없는 사원이다. - 세계를 간다. 발리 인도네시아 - 라고 되어있다. 확인을 하지 못했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앞에서 본 사원들과 연관하여 특이한 사원인 것은 틀림없다.
앞에서 본 사원들의 외벽에는 ‘스리칸디 사원’의 외벽에만 신상(神像)의 부조가 새겨져 있고, 나머지 사원들은 아무런 부조가 없었다. 그렇다면 초기 힌두사원의 건축양식은 외벽에 조각을 새기지 않거나, 외벽에 무엇을 남기는 것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것이 ‘쁘남바난 사원’ 건축시기에 와서는 거의 빈틈을 남기지 않고 장식하는 분위기와 또 사원의 대형화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비마 사원’은 시기적으로 디엥고원의 ‘빤다와 사원’에서 ‘쁘남바난’사원으로 넘어가는 중간단계의 사원인 것 같다. 이래저래 또 하나의 숙제를 가지고 왔다.
우리는 작년에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을 방문하였다. 어마어마한 사원과 어마어마한 벽화 조각을 보았다. 그리고 어제 ‘쁘남바난 사원’을 보았다. ‘쁘남바난 사원’에도 벽화가 꽉 차 있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스토리 Story'이었다. ‘앙코르 왓’의 벽화에는 ’불교 신화(부처님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건 ‘힌두교 신화(가장 대표적인 건 서사시 라마야냐)’이건 스토리가 있다. 그러나 ’쁘남바난‘의 벽화조각에는 스토리가 없다.
- 스토리가 없는지 아니면 내가 지식이 모자라 수습하지 못했는지 들은이야기는 '로로종그랑의 처녀'이야기 인데 이것은 벽화조각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
정보에 있는 ’비마 사원‘에 ’얼굴상 장식‘이라는 것은 스토리를 배제한 장식이란 뜻일 것이고, 그렇다면 인도네시아 힌두교 사원의 벽화조각은, 힌두교의 '종교적 장식'인 것이다.
두리안 원두막? - 두리안 수확철이라서 길가에 좌판을 벌려놓고 두리안을 팔고있다. 멀리서 부터 두리안 냄새가 퍼져온다.
알맞게 익은 두리안을 찾아야 한다. 너무 익은 것은 냄새가 더 심하고, 덜 익은 것은 달지 않다고 한다. 혹시 인니 여행중에 두리안을 만나게 되면 모험을 해 보시라!
-- 다음은 디엥고원의 사끼당 지대와 호수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디엥고원의 가뜻까짜 사원
‘빤다와 사원(Pandawa Temple)’을 떠나면, 좁은 길이 언덕으로 향하여 나 있는데, 그 끝, 언덕 중간쯤에 집이 한 채 보인다. 중간 중간 풀 더미 속에 흩어져있는 사원의 돌무더기에 관심을 가지며 올라가면 ‘박물관’이란 이름이 나타난다. 우리가 방문한 날은 왜 그런지 박물관을 열지 않아 구경하지 못하고 그 앞에 있는 ‘가뜻까짜 Candi Gatutkaca’사원만 보았다.
가뜻까짜사원 - 디엥고원 최고의 완벽한 균형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가뜻까짜 사원’은 박물관 주차장 한편 약간 움푹 들어간 대지위에 서 있다. 정보에 의하면 ‘가장 보존상태가 좋다.’라고 되어있다. ‘가뜻까짜 사원’의 모습이 완전한 형태라면 앞서본 ‘빤다와 사원’들도 나름대로 크게 멸실된 부분은 없는 것 같았다. 외관으로는 2층 형태로 되었으나 내부는 한 개의 공간이며 신성소로 통하는 문은 한쪽에만 있다. 나머지 세 방향에는 신상을 모셨던 장소만이 있고 신상은 없다. 외벽에 벽화는 없으나 돌을 다듬어 부드러운 선으로 추녀의 곡선을 살리고 있는 점이나, 한 군데의 군더더기도 없이 완벽한 균형을 자랑하고 있는 점 등은 ‘쟈바의 다보탑’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쁘람바난이 크기와 웅장함으로 힌두사원의 정점을 차지하고 있다면, ‘가뜻까짜 사원’은 섬세한 아름다움과 완벽한 균형미로 힌두사원의 또 한 축을 차지할 수 있다고 하겠다.
내가 감상에 젖어서 인지, 아니면 힌두사원의 모든 것을 보지 못하고 아까워하는 것인지, ‘가뜻까짜 사원’이 놓여있는 처지는 참 보물을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아 섭섭하였다. 옹색한 터 위에 겨우 자리 잡고, 분명 신성소로 올라가는 아름다운 계단과 난간이 있었을 것인데, 복원되지 않은 돌무더기가 그 옆에 쌓여있다. 저것들이 언제 자기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는지….
가뜻까짜사원 2층부분-완벽한 균형과 조형미를 볼 수 있다.
‘가뜻까짜 사원’을 떠난 미니버스는 바로 '비마 사원 Candi Bima'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하였다. 잠시 내려 비마사원을 보고 싶었는데 운전기사가 난색을 표한다. ‘여기까지 오기에 이미 예정시간을 많이 넘겼다. 오늘 일정을 끝내기 힘들다.’ 뭐 이런 이유였다. 옛말에 ‘운전대 잡은 ♂이 왕이다!’ 말도 안 통하는 우리는 잠자코 비마사원을 통과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의 생각이지만 운전수는 계약된 관광행사를 모두 마쳐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계약위반이 되니까. 앞으로 관광해야 할 곳을 모두 알고 있었다면 우리는 마지막 호수지대를 생략하고 ‘비마 사원’을 선택했을 것이다.
정보에 의하면 ‘비마 사원’ ‘많은 얼굴상 장식을 가지고 있는, 쟈바에서는 유래가 없는 사원이다. - 세계를 간다. 발리 인도네시아 - 라고 되어있다. 확인을 하지 못했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앞에서 본 사원들과 연관하여 특이한 사원인 것은 틀림없다.
앞에서 본 사원들의 외벽에는 ‘스리칸디 사원’의 외벽에만 신상(神像)의 부조가 새겨져 있고, 나머지 사원들은 아무런 부조가 없었다. 그렇다면 초기 힌두사원의 건축양식은 외벽에 조각을 새기지 않거나, 외벽에 무엇을 남기는 것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그것이 ‘쁘남바난 사원’ 건축시기에 와서는 거의 빈틈을 남기지 않고 장식하는 분위기와 또 사원의 대형화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비마 사원’은 시기적으로 디엥고원의 ‘빤다와 사원’에서 ‘쁘남바난’사원으로 넘어가는 중간단계의 사원인 것 같다. 이래저래 또 하나의 숙제를 가지고 왔다.
우리는 작년에 캄보디아의 ‘앙코르 왓’을 방문하였다. 어마어마한 사원과 어마어마한 벽화 조각을 보았다. 그리고 어제 ‘쁘남바난 사원’을 보았다. ‘쁘남바난 사원’에도 벽화가 꽉 차 있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스토리 Story'이었다. ‘앙코르 왓’의 벽화에는 ’불교 신화(부처님이 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건 ‘힌두교 신화(가장 대표적인 건 서사시 라마야냐)’이건 스토리가 있다. 그러나 ’쁘남바난‘의 벽화조각에는 스토리가 없다.
- 스토리가 없는지 아니면 내가 지식이 모자라 수습하지 못했는지 들은이야기는 '로로종그랑의 처녀'이야기 인데 이것은 벽화조각과는 관계없는 이야기다. -
정보에 있는 ’비마 사원‘에 ’얼굴상 장식‘이라는 것은 스토리를 배제한 장식이란 뜻일 것이고, 그렇다면 인도네시아 힌두교 사원의 벽화조각은, 힌두교의 '종교적 장식'인 것이다.
두리안 원두막? - 두리안 수확철이라서 길가에 좌판을 벌려놓고 두리안을 팔고있다. 멀리서 부터 두리안 냄새가 퍼져온다.
알맞게 익은 두리안을 찾아야 한다. 너무 익은 것은 냄새가 더 심하고, 덜 익은 것은 달지 않다고 한다. 혹시 인니 여행중에 두리안을 만나게 되면 모험을 해 보시라!
-- 다음은 디엥고원의 사끼당 지대와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