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cky의 인도네시아 여행기 6 쁘람바난 사원 관광 3
나는 50대 중반으로 중학교 1학년인 막내와 둘이 인도네시아를 다녀왔습니다. 일정은 2005년 1월 5일 출발하여 자카르타 - 족자카르타 - 발리 - 방콕 - 인천으로 1월 25일 귀국했습니다.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쁘람바난 관광 3
사원의 외부에는 한군데도 빠진 곳이 없이 수많은 장식물과 성물(聖物)을 두었던 감실(監室)들이 있고, 그 속에 성물들이 남아있는 곳도 있고, 세월 속에 잃어버려 빈 채로 있는 곳도 있다. 또한 힌두의 신화를 표현한 수많은 부조의 조각들이 사원 전체를 뒤덥고 있다. 정말 열(熱)과 성(誠)과 신앙(信仰)이 없으면 이루지 못할 건축물 이다. 그런데 이 위대한 ‘쁘람바난 사원’을 지은 ‘마따람 왕국’은 원인도 모른 채 점차 쇠퇴하고, 왕국이 망하자 사원은 그 기능을 잃게 되었다. 버려진 사원은 서구의 열강들이 침입하여 식민지쟁탈을 벌리던 19세기에 더욱더 많이 파괴되었고, 문화유적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보호 작업이 시작된 것이 1900년대 중반기, 복원작업은 그 뒤에도 많은 시간이 흐른 뒤라고 하니, 이만큼의 유적을 볼 수 있는 것에도 감사해야 할지 모른다.
쁘람바난 무너진채 있는 사원유적 - 이 무너진 사원이 모두 건재해 있었다면 그 규모는 지금 유적의 몇배가 되었을 것이다.
부서진 사원의 잔해 속에서 그 시대를 회고해 보는 것도 쁘람바난을 보는 한 방법중의 하나
세 개의 중심사원이 있는 곳에서 한단 내려선 위치에는 수많은 폐허(廢墟)가 질서정연하게 정방형의 중심사원을 돌아가며 놓여져 있다. 어느 것은 완전한 돌무더기로 변해서, 어느 것은 그래도 한층은 남은 채로, 찾아보아 주는 사람도 없이 뜨거운 태양아래 녹아가고 있다. 종민이와 둘이 폐허의 한 사원 돌계단에 앉아 잠시 상념에 젖어 보았다.
쁘람바난의 폐허속에서 찾아낸 문양석 - 그렇게 낮설지가 않다
쁘람바난 사원만 돌아보는 데는 1시간 30분이면 알맞은 시간이다. 그런데 쁘람바난 사원을 흔히 ‘쁘람바난 사원군’으로도 부르는데 그것은 쁘람바난 사원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사원들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인 것이지만 우리는 ‘쁘람바난과 선셋투어’를 신청했기 때문에 사실 족자에서 쁘람바난 투어는 모두 이것 한가지다. - 여기에서 머무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만 주어졌다. 여행사의 설명을 듣지 않고 투어를 신청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곳 쁘람바난에서 ‘선셋Sunset-일몰’을 구경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선셋은 이곳이 아니라 차를 타고 약 15분가량 간 ‘보꼬 언덕’이라는 곳에서 보는 것이었다. 정보에도 ‘보꼬 언덕의 일몰은 황홀했다.’라고 되어 있어 일몰을 보기위해 이동하는 것에 다른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보꼬 언덕에 도착하니 사원 입장권을 사야한다고 한다. 입장료는 10달러, 학생할인도 없다. - 이미 정보에서 알고 간 것이다. - 외국인 여자와 동시에 비싸다고 소리치니 루피아로 쓰여진 75,000Rp의 입장권을 사라고 한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사원은 구경하지 않고 잠시 머물다 가겠다고 하니, 이제는 그게 안 된다고 한다. 사원과 함께 일몰구경을 하는 곳으로 이곳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무조건 입장권을 사야한다고 했다. 일몰을 보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금액으로는 참 큰 액수였다. 외국인 여자도 비싸다고 흥미 없어하고, 우리도 그 돈을 지불할 의사(意思)가 없어서 차를 돌려서 족자카르타로 왔다. 우리가 족자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고 다시 시장에 나갈 때까지 해는 떨어진 기미를 보이지 않고 뜨겁게 내리쬐었다.
보꼬 언덕은 옛날 이곳을 지배했던 ‘보꼬’왕의 궁전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언덕 위에 있는 궁전 유적에 입장료를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지 않고 그 아래서 일몰을 구경한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작은 주차장과, 언덕에 면하여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 시설을 하여놓고 입장료를 받고 있다. 여기에 서면 발아래로 쁘람바난의 모든 사원들의 모습과, 쁘람바난이 있는 '보꼬 평야'가 한눈에 펼쳐져 보인다. 멀리 인도양도 보인다고 하는데 옅은 안개가 끼어서 그런지 바다는 볼 수 없었다. 경치는 좋지만 경치 대비 입장료는 비싼 것 같았다. - 순전히 내 생각 -
쁘람바난의 해치상 -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인가 귀중한 것을 지키는데는 해치가 나타나는데, 힌두교 전설속에 신이 기르던 짐승이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같은 미니버스에 탄 사람들과 의견을 모아 일몰 시간까지 ‘쁘람바난’에서 보냈을 것이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쁘람바난의 그윽한 폐허에서 휴식도 취하고, 쁘람바난 사원군 속에 있는 럼벙사원(Lumbung Temple), 부부라사원(Bubrah Temple) 세우사원(Sewu Temple)을 마저 보면 좋았을 듯 했다. 이 세 개의 사원은 쁘람바난 사원의 나가는 길에서 주차장 가는 길인 오른쪽으로 가지 말고 그대로 곧장 가면 있는 사원으로, 가장 가까운 럼벙사원까지는 약 200미터도 채 안되는 거리고, 가장 멀리 떨어진 세우사원까지도 1키로미터가 채 안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원들 이다. 이들 사원을 돌아보면서 일몰을 기다린다면 충분한 시간에 멋진 저녁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이 사원들을 보지 못한 것을 몹시 후회하였고, 훗날 다시 올 것을 기약하였다. 더군다나 세우사원은 쁘람바난 사원에 얽힌 ‘로로 종그랑(Loro Jonggrang)'이란 처녀와의 약속에 의해 ’보고왕의 아들‘이 하룻밤 만에 지었다는 사원이었다.
계획보다 일찍 족자에 도착한 우리는 재래시장을 구경하고, 몇 가지 과일도 사고하며 시간을 보냈다. 과일값은 자카르타에 비하여 저렴하였으며 종류도 다양하였다. - 단 여기에는 정보의 미약함이 있는데, 우리가 자카르타에서 과일을 산 것은 사리나 백화점의 지하 슈퍼에서 였으니, 자카르타의 과일시장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 백화점도 큰 것이 몇 개 있었으며 무엇 보다 의류가 무척 싼 것 같았다. (의류 전문 백화점에 걸려있는 가격 : 청바지 59,900Rp 정도의 가격, 티셔츠 39,000Rp 정도의 가격 ) 슈퍼에서 세탁용 가루비누를 한 봉지 샀는데 제일 작은 것이 1Kg 13,000Rp 정도 했다. 다른 상품에 비하여 비싼 값이었다. 그러나 이 가루비누는 여행을 마치는 날까지 티셔츠와 속옷 등을 간단하게 빨아서 널어 놓았다가, 다음날 입는데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덥고 땀이 나서 그런지 모든 티셔츠가 하루만 입고 빨아도 검거나 누런 물이 나왔다.
쁘람바난에서 발견한 특이한 모양의 부조상, 내 생각으로는 서사시 '라마야냐'중의 한 대목 '시바'의 화살을 맞은 '라바나' 같았다.
자카르타에서도 경험을 하기는 했지만, 이슬람과의 만남은 족자가 진짜였다. 앞선 사람들의 정보에서‘이슬람 사원에서 나오는 경전 읽는 소리에 미칠 지경이다.’라는 것을 읽었기 때문에 각오는 했다. 또한 창문 밖 멀리 사원의 지붕이 보였기 때문에 조금 안심도 했다. 그러나 독경(讀經)소리는 골목골목에 있는 작은 이슬람사원 모두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것도 음질 나쁜 확성기로 틀어대는 소리는 최악이었다. 여기에 한 수 더 떠서 6시 15분이면 모든 TV방송이 예배방송으로 편성되어있어 재미있게 보던 ‘서커스’도 - 사실 인도네시아어를 모르니 서커스밖에 볼 것이 없었다. - 잠시 중단되었다. 그러나 작은 체구로 부지런히 뛰어다니던 카운터의 미스터 트리(TRY)도 이 시간이면 모든 것을 접고, 작은 돋자리를 깔아놓고 경견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이들의 신앙을 이해하기로 했다.
--- 다음은 디엥고원 --
기행문을 올립니다. 그러나 여행정보보다 관심사와 감상을 많이 적은 개인적인 기행문입니다. 여행의 목적과 관심사가 나와 다른 분들은 재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내가 직접 체험하고 확인한 것만 썼습니다.
쁘람바난 관광 3
사원의 외부에는 한군데도 빠진 곳이 없이 수많은 장식물과 성물(聖物)을 두었던 감실(監室)들이 있고, 그 속에 성물들이 남아있는 곳도 있고, 세월 속에 잃어버려 빈 채로 있는 곳도 있다. 또한 힌두의 신화를 표현한 수많은 부조의 조각들이 사원 전체를 뒤덥고 있다. 정말 열(熱)과 성(誠)과 신앙(信仰)이 없으면 이루지 못할 건축물 이다. 그런데 이 위대한 ‘쁘람바난 사원’을 지은 ‘마따람 왕국’은 원인도 모른 채 점차 쇠퇴하고, 왕국이 망하자 사원은 그 기능을 잃게 되었다. 버려진 사원은 서구의 열강들이 침입하여 식민지쟁탈을 벌리던 19세기에 더욱더 많이 파괴되었고, 문화유적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보호 작업이 시작된 것이 1900년대 중반기, 복원작업은 그 뒤에도 많은 시간이 흐른 뒤라고 하니, 이만큼의 유적을 볼 수 있는 것에도 감사해야 할지 모른다.
쁘람바난 무너진채 있는 사원유적 - 이 무너진 사원이 모두 건재해 있었다면 그 규모는 지금 유적의 몇배가 되었을 것이다.
부서진 사원의 잔해 속에서 그 시대를 회고해 보는 것도 쁘람바난을 보는 한 방법중의 하나
세 개의 중심사원이 있는 곳에서 한단 내려선 위치에는 수많은 폐허(廢墟)가 질서정연하게 정방형의 중심사원을 돌아가며 놓여져 있다. 어느 것은 완전한 돌무더기로 변해서, 어느 것은 그래도 한층은 남은 채로, 찾아보아 주는 사람도 없이 뜨거운 태양아래 녹아가고 있다. 종민이와 둘이 폐허의 한 사원 돌계단에 앉아 잠시 상념에 젖어 보았다.
쁘람바난의 폐허속에서 찾아낸 문양석 - 그렇게 낮설지가 않다
쁘람바난 사원만 돌아보는 데는 1시간 30분이면 알맞은 시간이다. 그런데 쁘람바난 사원을 흔히 ‘쁘람바난 사원군’으로도 부르는데 그것은 쁘람바난 사원을 중심으로 크고 작은 사원들이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인 것이지만 우리는 ‘쁘람바난과 선셋투어’를 신청했기 때문에 사실 족자에서 쁘람바난 투어는 모두 이것 한가지다. - 여기에서 머무는 시간은 1시간 30분 정도만 주어졌다. 여행사의 설명을 듣지 않고 투어를 신청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곳 쁘람바난에서 ‘선셋Sunset-일몰’을 구경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선셋은 이곳이 아니라 차를 타고 약 15분가량 간 ‘보꼬 언덕’이라는 곳에서 보는 것이었다. 정보에도 ‘보꼬 언덕의 일몰은 황홀했다.’라고 되어 있어 일몰을 보기위해 이동하는 것에 다른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그러나 보꼬 언덕에 도착하니 사원 입장권을 사야한다고 한다. 입장료는 10달러, 학생할인도 없다. - 이미 정보에서 알고 간 것이다. - 외국인 여자와 동시에 비싸다고 소리치니 루피아로 쓰여진 75,000Rp의 입장권을 사라고 한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사원은 구경하지 않고 잠시 머물다 가겠다고 하니, 이제는 그게 안 된다고 한다. 사원과 함께 일몰구경을 하는 곳으로 이곳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무조건 입장권을 사야한다고 했다. 일몰을 보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금액으로는 참 큰 액수였다. 외국인 여자도 비싸다고 흥미 없어하고, 우리도 그 돈을 지불할 의사(意思)가 없어서 차를 돌려서 족자카르타로 왔다. 우리가 족자에 도착하여 샤워를 하고 다시 시장에 나갈 때까지 해는 떨어진 기미를 보이지 않고 뜨겁게 내리쬐었다.
보꼬 언덕은 옛날 이곳을 지배했던 ‘보꼬’왕의 궁전이 있던 곳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언덕 위에 있는 궁전 유적에 입장료를 받아서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지 않고 그 아래서 일몰을 구경한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작은 주차장과, 언덕에 면하여 차를 마시거나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 시설을 하여놓고 입장료를 받고 있다. 여기에 서면 발아래로 쁘람바난의 모든 사원들의 모습과, 쁘람바난이 있는 '보꼬 평야'가 한눈에 펼쳐져 보인다. 멀리 인도양도 보인다고 하는데 옅은 안개가 끼어서 그런지 바다는 볼 수 없었다. 경치는 좋지만 경치 대비 입장료는 비싼 것 같았다. - 순전히 내 생각 -
쁘람바난의 해치상 -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엇인가 귀중한 것을 지키는데는 해치가 나타나는데, 힌두교 전설속에 신이 기르던 짐승이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실을 미리 알았다면, 같은 미니버스에 탄 사람들과 의견을 모아 일몰 시간까지 ‘쁘람바난’에서 보냈을 것이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쁘람바난의 그윽한 폐허에서 휴식도 취하고, 쁘람바난 사원군 속에 있는 럼벙사원(Lumbung Temple), 부부라사원(Bubrah Temple) 세우사원(Sewu Temple)을 마저 보면 좋았을 듯 했다. 이 세 개의 사원은 쁘람바난 사원의 나가는 길에서 주차장 가는 길인 오른쪽으로 가지 말고 그대로 곧장 가면 있는 사원으로, 가장 가까운 럼벙사원까지는 약 200미터도 채 안되는 거리고, 가장 멀리 떨어진 세우사원까지도 1키로미터가 채 안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원들 이다. 이들 사원을 돌아보면서 일몰을 기다린다면 충분한 시간에 멋진 저녁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이 사원들을 보지 못한 것을 몹시 후회하였고, 훗날 다시 올 것을 기약하였다. 더군다나 세우사원은 쁘람바난 사원에 얽힌 ‘로로 종그랑(Loro Jonggrang)'이란 처녀와의 약속에 의해 ’보고왕의 아들‘이 하룻밤 만에 지었다는 사원이었다.
계획보다 일찍 족자에 도착한 우리는 재래시장을 구경하고, 몇 가지 과일도 사고하며 시간을 보냈다. 과일값은 자카르타에 비하여 저렴하였으며 종류도 다양하였다. - 단 여기에는 정보의 미약함이 있는데, 우리가 자카르타에서 과일을 산 것은 사리나 백화점의 지하 슈퍼에서 였으니, 자카르타의 과일시장이 어떤지는 알 수 없다. - 백화점도 큰 것이 몇 개 있었으며 무엇 보다 의류가 무척 싼 것 같았다. (의류 전문 백화점에 걸려있는 가격 : 청바지 59,900Rp 정도의 가격, 티셔츠 39,000Rp 정도의 가격 ) 슈퍼에서 세탁용 가루비누를 한 봉지 샀는데 제일 작은 것이 1Kg 13,000Rp 정도 했다. 다른 상품에 비하여 비싼 값이었다. 그러나 이 가루비누는 여행을 마치는 날까지 티셔츠와 속옷 등을 간단하게 빨아서 널어 놓았다가, 다음날 입는데 유용하게 사용하였다. 덥고 땀이 나서 그런지 모든 티셔츠가 하루만 입고 빨아도 검거나 누런 물이 나왔다.
쁘람바난에서 발견한 특이한 모양의 부조상, 내 생각으로는 서사시 '라마야냐'중의 한 대목 '시바'의 화살을 맞은 '라바나' 같았다.
자카르타에서도 경험을 하기는 했지만, 이슬람과의 만남은 족자가 진짜였다. 앞선 사람들의 정보에서‘이슬람 사원에서 나오는 경전 읽는 소리에 미칠 지경이다.’라는 것을 읽었기 때문에 각오는 했다. 또한 창문 밖 멀리 사원의 지붕이 보였기 때문에 조금 안심도 했다. 그러나 독경(讀經)소리는 골목골목에 있는 작은 이슬람사원 모두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것도 음질 나쁜 확성기로 틀어대는 소리는 최악이었다. 여기에 한 수 더 떠서 6시 15분이면 모든 TV방송이 예배방송으로 편성되어있어 재미있게 보던 ‘서커스’도 - 사실 인도네시아어를 모르니 서커스밖에 볼 것이 없었다. - 잠시 중단되었다. 그러나 작은 체구로 부지런히 뛰어다니던 카운터의 미스터 트리(TRY)도 이 시간이면 모든 것을 접고, 작은 돋자리를 깔아놓고 경견하게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이들의 신앙을 이해하기로 했다.
--- 다음은 디엥고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