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자유여행기 (방콕 뒷골목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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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자유여행기 (방콕 뒷골목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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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나품 국제공항<?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창 가리개를 조금 열고 밖을 바라보았다. 고도가 낮아졌는지 지상의 불빛들이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인천국제공항을 이륙한지 다섯 시간이 지났다.  예정대로라면 35 분 후에 도착이다. 모니터에는 비행기가 이미 방콕 상공에 들어선 것으로 나타나 있었다.

 

의자 등받이를 바로 하고 독서등을 켰다. 테이블 위에 놓아두었던 책을 읽으려고 reading glasses를 꺼내려다 그만 두었다. 독서등을 다시 끄고 눈을 감았다.

 

피곤했다. 시차가 바뀐데다가 에드먼턴에서부터 통틀어서 무려 19 시간 가까운 비행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서울에서 하룻밤 스탑오버를 한 것은 아무래도 잘 한 일 같았다.

 

에드먼턴을 출발한 게 어젠지 그젠지 기억마저 가물거린다. 갑자기 에드먼턴 공항 에어캐나다 카운터에서 본 뚱뚱한 중국계 아줌마 직원이 생각났다. 내 여권과 e-ticket를 번갈아 보던 그가 생글생글 웃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가방이 아주 가볍네요

 

두 주일 일정으로 한국과 태국을 다녀올 장거리 여행자의 가방 치고는 너무 가벼운 것 아니냐는 표정이었다.

 

빈 가방이니 가벼울 밖에. 아무 말 없이 미소로 답해 주며 여권과 e-ticket을 돌려 받아 어깨에 매고 있던 숄더 백 안에 집어 넣었다. 카메라 가방 크기의 숄더 백 안에는 책 두 권, 카메라, Travel Pack, 휴대전화, 필기도구, 여행에 관련된 바우쳐 쿠폰 지도 등 종이조각 몇 장이 들어 있었다.

 

여행 다닐 때 짐을 많이 가지고 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기도 하지만, 여행을 빈 손으로 출발한 데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캐나다에 비해 물가가 저렴한 태국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구입해 쓸어 담아 올 요량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

 

가난한 나라에 사는 부자들이 부자나라에 가서 비싼 물건을 사 들고 오는 건 잘하는 짓이 아니지만, 부유한 나라에 살면서 그보다 덜 부유한 나라의 평범한 물건을 사 들고 오는 거야 전혀 죄책감 느낄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홀가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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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밴쿠버에서 인천까지 모셔다 준 우리 뱅기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겨있는데 실내등이 켜지면서 쥐죽은듯이 고요했던 기내가 갑자기 기상시간을 맞은 군대 내무반처럼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곧 수완나폼 국제공항에 착륙할 예정이니 테이블을 의자에 붙이고 의자 등받이를 바로 해 달라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어폰을 뽑아 iPod에 돌돌 만 뒤 숄더 백 안에 집어 넣었다. 두 좌석씩 배열된 창가 좌석에 앉아 있는 승객들 중에는 신혼여행객으로 보이는 커플들이 많았다.      

 

밤 아홉 시 정각, 대한항공 보잉 777 비행기는 그 육중한 기체를 수안나품 공항 활주로에 내려 놓았다. 착륙하고서도 10 여 분 가까이나 굴러가서야 비행기는 그 앞 대가리를 보딩브리지에 갖다 붙였다. 그러자 승객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일제히 일어나 저마다 overhead bin 에서 짐들을 꺼내느라 북새통을 이루었다.

 

나는 그런 모습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꺼내야 할 짐도 없었지만, 미리부터 복도에 선 채로 비행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어야 할 이유 또한 전혀 없었다. 복도에 늘어서 있던 승객들이 거의 사라질 때쯤 이야 일어서서 탑승구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수안나품 공항은 지은 지 얼마 안됐는데도 뭔가 우중충하고 오래된 느낌이었다. 어두운 조명과 warehouse처럼 천정을 마감하지 않은 디자인이 그런 분위기를 자아내는지도 몰랐다. 에어컨이 가동되고 있는데도 실내에는 습하면서 후덥지근한 기운이 돌았다.   

 

입국수속은 간단했다. 입국 심사관은 이지적으로 생긴 20 대 후반 여자였다. 철테 안경 너머로 빛나는 눈이 제법 날카로웠는데, 여권에 붙은 사진과 나를 한 번씩 번갈아 쳐다보고는 여권을 스캔한 뒤 입국스탬프를 꽝하고 찍었다. 한마디 물어보는 법도 없었다.

 

컨베이어에서 내 빈 가방을 찾아 녹색출구(세관에 신고할 소지품이 없는 사람들이 나가는 문)를 통해 밖으로 나왔다. 가장 먼저 ‘TAXI’라고 쓰여진 팻말을 들고 있는 삐끼들이 눈에 들어왔다. 팻말을 들고 서 있을 뿐 호객행위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TAT 부스는 왼쪽 구석에 처 박혀 있어서 찾기가 쉽지는 않았다. 카운터에는 40 대 여자 두 명이 졸린 눈을 하고 앉아 있다가 나를 보자 뭐가 반가운지 활짝 웃는다. 원래 미소가 자연스러운 성격들인지 누가 오면 미소를 지으라고 교육을 받은 건지는 잘 분간이 안 갔다.

 

<?xml:namespace prefix = st1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smarttags" />Bangkok city map please”

(시내 지도 한 장 얻을 수 있을까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A4 용지를 반으로 접은 크기의 영어로 된 지도 책자를 하나 건네준다.

 

컵쿤 캅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태국어로 인사하자 또 한 번 활짝 미소를 지으며 두 손을 모아 인사한다. 아마 태국 식 예의인 모양이다. 

 

공항환전소에서는 2000 바트 ( CN 60 $) 만 환전했다. 전광판을 보니 캐나다화는 살 때와 팔 때의 차이가 별로 없었다. 환율이 안정적이라는 이야기다.

 

호기심이 일어나 한국 원화를 보았다. 살 때 21 팔 때 40, 무려 두 배 가까이나 차이가 났다. 100 바트를 구하려면 4000 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반해 거꾸로 100 바트를 한화로 다시 바꾸면 2100 원 밖에 주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예상과는 달리 한국 원화가 태국에서는 휴지조각 취급을 받고 있었다. 흥미로운 건 미화의 경우에는 100 불 권과 소액권의 환율이 각각 조금씩 다르다는 점이었다.

 

빠이 롱램 방콕 차다 캅

 

출국장에 올라가서 택시를 탈까 하다가 그냥 입국장에서 타기로 했다. 입국장에서 택시를 타면 택시정류소에서 50 바트를 수수료로 내야 한다. 그러나 안내원이 택시번호를 적어놓기 때문에 승객만 좀 똑똑하게 처신하면 바가지를 쓴 다거나 할 확률이 적었다.

 

입국장 바깥에는 노란색 녹색 빨간색 등 각양각색의 택시들이 사선으로 정차한 채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서 있는 택시들이 몽땅 한 가지 브랜드 (토요타  코롤라)라는 것 이었다. 방콕에 머무는 4 일 간 토요타 코롤라가 아닌 차종의 택시는 한 번도 본 기억이 없다. 공항안내원이 소개해 준 택시기사를 따라 빨간색 코롤라에 올랐다. 일본처럼 운전석이 오른쪽에 붙어 있었다.

 

빠이 롱램 방콕 차다 캅

(Bangkok Cha-Da 호텔로 갑시다)

 

가방을 싣고 뒷자리에 앉자마자 젊잖게 태국 말로 한마디 했다. 마치 방콕 지리를 잘 아는 것처럼.

 

택시기사는 머리를 짧게 깎은 순박하게 생긴 30 대 사내였다. 미터를 누르고는 하이웨이?” 하고 물어왔다. 이 시간에는 하이웨이로 가지 않아도 길이 막히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통행료 25 바트 (75 센트) 때문에 시간을 조금이라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It’s up to you” (맘대로 하세요)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못 알아듣고는 다시 하이웨이?”라고 물어왔다. 아차 싶어 나도 예스, 고 하이웨이하며 탱글리쉬(?)를 구사하자 그제서야 고개를 크게 끄떡이며 만족한 표정을 지었다.

 

이 순박하게 생긴 사내의 운전 솜씨는 그야말로 명인의 경지였다. 서울의 번개택시를 방콕에서 전수 받은 기술로 운영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 실력이 탁월했다. 태국 자체가 난생 처음이지만 공항에서 호텔까지의 길은 대충 알았다. 왼쪽에 까르푸와 로빈슨 백화점 간판이 보이자 거의 다 온 것을 알았다.

 

기사에게 앞에 보이는 에메랄드 호텔 네온사인을 가리키며 그 맞은 편에 있는 호텔이라고 알려주었다. 210 바트가 나왔다. 100 바트 짜리 지폐 두 장과 50 바트 짜리 한 장을 주며 “Keep the change” 하자 두 손을 모아 인사하고는 뛰어내려 가방을 내려주고는 또 합장을 한다. 이번에는 나도 합장을 했다.

 

택시가 채 떠나기도 전에 빨간색 상의를 걸쳐 입은 웬 20대 사내가 뛰어나오더니 다짜고짜 내 트렁크를 번쩍 들고는 로비를 향해 부리나케 올라갔다. 빈 가방이라 가볍긴 하겠지만 바퀴가 달려있어 굳이 들고 갈 필요가 없는데도 프런트데스크 앞에 가서야 트렁크를 내려 놓는다.

 

호텔은 보수공사를 하는지 어수선했다. 프런트데스크도 한 쪽에 임시로 마련한 것인 듯 했다. 프런트데스크에는 키가 작고 까무잡잡하면서도 아주 예쁘게 생긴 여직원이 손님을 맞고 있었다.

 

싸왓디 캅

 

내가 태국어로 인사를 하며 예약 바우처를 내밀자 자기도 미소를 지으며 태국어로 뭐라고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는 코리안? 하고 물어온다. 이 요정같이 생긴 여자는 얼굴만 보고도 손님의 모국을 알아 맞추는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패스포트를 달라기에 주니까 이번에는 , 캐나다하며 “I am wrong” 한다. 내가 손을 저으며 말해줬다.

 

“No, no. You were not wrong. I have Canadian passport, but I am originally from Korea. You must be a mind reader”

(아뇨. 바로 맞추셨어요. 국적은 캐나다지만 한국 사람 맞아요. 점쟁이가 따로 없군요.)

 

사실 게스트하우스도 아닌 호텔의 프런트데스크 직원이 초면에 손님의 국적을 농담 삼아 지레 짐작해 말하는 건 실례에 속했다. 그러나 나는 이 예쁘고 수다스런 아가씨의 실례(?)가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눈을 찡긋하며 이런 부탁을 했다.

 

“I guess your hotel is under renovation. Can I get a room the renovation already done? Non-smoking, highest floor as possible.”

(이 호텔 리모델링 중인 것 같은데 기왕이면 새로 단장한 방으로 부탁합니다. 금연실로 층은 높을수록 좋아요.)  

 

결국 체크인 현장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딜럭스룸의 카드키를 받아 들고는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 1403 호실. 이 호텔의 가장 꼭대기 층이었다. 아까 내 트렁크를 들고 뛴 도어맨 에게는 20 바트짜리 한 장을 쥐어 주었다.

 

초록색 카피트가 깔린 내 방은 넓지는 않았지만 아주 깔끔하고 쾌적했다. 더블베드 매트리스의 탄력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넓은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탁 트인 전망이었다. 야경이랄 것 까진 없었지만 거리적 거리는 것 없이 스카이라인과 먼 하늘을 볼 수 있다는 건 도시호텔에 묵을 때는 행운에 속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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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일 간 묵었던 호텔 객실(14 층)에서 바라본 방콕 변두리  

 

태국의 한 영어사이트(hotels2thailand.com)에서 박당 999 바트( 30 )에 구입한 방이었다. 혼자 다니면서 고급호텔에 묵을 필요는 없었다. 숙소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리조트라면 몰라도 매일 꼭두새벽에 나가 오밤중에 들어오는 도시관광을 하면서 숙소에 많은 비용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깔끔하고 프라이버시와 함께 기본적인 안락함만 보장되면 충분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하이네켄과 태국맥주 싱하, 그리고 음료수와 생수 두 병이 들어 있었다. 하이네켄을 하나 집어 들고 소파에 가서 앉았다. 

 

시계를 보았다. 아직 밤 11 시가 채 안됐다. 예정대로라면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니니까, 근처에 있는 훼이꽝 야시장을 둘러 보아야 했다. 나갈까? 만사가 귀찮았다.

 

나가는 대신 TV를 켰다. 영어방송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대머리 사내가 쇳소리를 내며 뭐라고 열변을 토하고 있었다. 러쉬 림보였다. 그와 함께 등장한 패널들이 미국 대선을 둘러 싸고 난상토론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패널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들어보니 하나같이 해골이 잘못 끼워진 저능아들 같았다. 토론이 아니라 한 목소리로 오바마쪽으로 기울어진 미국의 표심이 마치 저주 받을 일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들을 떨고 있었다. 오바마가 당선되면 미국의 전통과 가치가 당장이라도 무너져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악을 써댔다.

 

그들이 생각하는 미국의 전통과 가치를 기준으로 하면 공화당원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만 미국시민의 자격이 있다는 식이었다. 하필이면 처음 와보는 나라에서 처음 틀은 TV채널이 FOX 라니. 채널을 바꾸었다. 이번에는 홍콩에서 보내는 영어방송이었는데 뉴스였다. 여기서는 폐사해 가는 세계금융자본주의 숨 넘어가는 소리가 요란했다.

 

닭 우는 소리에 잠을 깨다

 

어디선가 꼬끼오하고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잠결에 들려 꿈인가 했는데 깨어보니 실제로 닭 우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창 밖은 아직 깜깜했다. 스탠드를 켜고 시계를 보았다. 새벽 3 시 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염병할소리가 입에서 절로 나왔다. 태국 닭은 오밤중에 우나 하는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리고 대도시 한복판에서 웬 닭 우는 소리가 들리나 싶어 창문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깜깜한 밤에 그것도 14 층 꼭대기에서, 닭이 보일 리 만무했다.              

 

그 시간에 한 번 깨면 좀처럼 다시 잠들기 어려운 성미라 아예 다시 자는 것을 포기하고 침대 위에 일어나 앉았다. 숄더 백에서 책들을 꺼냈다.

 

에드먼턴에서 올 때 부피가 작은 책 두 권을 가지고 왔다. 그 중 하나는 Cynthia M. Campbell 이 쓴 ‘A Multitude of Blessings’’였다. 종교다원주의에 관한 책이었는데, 몇 달 전 아마존에서 구입한 후 한 줄도 읽은 적이 없었다.

 

또 한 권은 트래블 게릴라천소현이 지은 금요일에 떠나는 방콕이라는 소책자였다. 지난 여름 한국을 다녀온 조카가 사다 준 책이다. 이미 방콕에 대한 기본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수집해 놓았지만, 현장에서 동선을 다시 점검하는 데 유용하게 써 먹을 수 있게 편집을 잘 해 놓은 책이라 가지고 왔다. 어차피 다시 잠들기는 틀렸고, 침대 위에서 두 책을 번갈아 뒤적이며 시간을 보냈다.

 

방콕 차다 호텔의 가장 큰 장점은 레스토랑이 일찍 문을 연다는 것이다. 아침식사 buffet를 새벽 5 30 분에 시작한다. 6 시쯤 엘리베이터를 타고 3 층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자색계통의 전통의상을 입은 여직원이 “Good morning, sir” 하며 정중하게 식당 안으로 안내했다. 큰 길이 바라보이는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동이 트기 시작한 아침 여명 속에 차들이 제법 많이 다니고 있었다. 승용차는 주로 일제 소형차들 이었다. 모터사이클이 특히 많았는데 요란한 소음의 주범인 듯 했다. 픽업트럭의 짐 칸에 사람들이 가득 타고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 중에는 넥타이를 맨 샐러리맨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픽업트럭의 짐 칸에 앉아 출근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10 분쯤 창 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길거리 풍경을 구경하다가 음식이 차려진 테이블을 둘러 보았다. 각종 샐러드, 플레인 요구르트, 수박, 파인애플, 구운 토마토, 토스트, 소시지, 오믈릿, 해쉬 브라운(구운 감자), 시리얼, 볶음밥, 흰 밥, 중국식 고기 야채요리, 닭죽, 돼지고기 죽, 커피, , 우유, 세가지 과일주스 등이 차려져 있었다.       

 

접시와 공기에 각각 야채볶음과 닭죽, 다른 접시에는 수박과 패인애플을 가져와 한꺼번에 테이블에 늘어놓고 닭죽, 야채볶음, 과일 순으로 수저와 포크를 놀리기 시작했다. 좋지 않은 습관이지만 나는 식사하면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식사를 하면서도 머리 속은 오늘 일정에 대해 디테일한 정리를 하느라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이 호텔에는 방 안에 안전금고(safety box)가 없는 것이 흠이었다. 할 수 없이 어제 공항에서 환전한 약간의 태국 바트화, 시내에 나가 환전할 캐나다화 300 , 비자카드 한 개, 여권카피 한 장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지갑과 여권은 프런트 금고에 보관했다. 프런트 금고는 은행금고처럼 매니저와 손님이 각각 보관하고 있는 두 개의 키를 동시에 넣고 돌려야만 열리게끔 되어 있었다.  

 

지하철(MRT)을 타기 위해 호텔 밖으로 나왔다. 이른 아침인데도 습하고 더운 느낌이었다. 공기까지 매캐했다. 호텔 옆에 버스 정류장이 있었는데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베이지 바탕에 빨간 줄이 그려진 버스 두 대가 연달아 매연을 뿜으며 정류장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창문을 위 아래로 여닫는 구식 미쯔비시 버스였다. 어디서 저런 버스를 봤더라. 아마 1970 년 대 초에 굴러 다니던 서울 시내버스가 저렇게 생겼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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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내리닫이 창문 시내버스. 163 번 구파발가는 버스 아닌가요

 

 

그러고 보니 인도의 보도블록 또한 아주 낮 익은 것 이었다. 30cm X 30cm 정사각형 시멘트 보도블록. 이건 서울 1980 년대 모드였다. 그 시절 DDD 정권과 7 년 전쟁을 하면서 숫하게 깨뜨려 써먹었던 주 무기였으니 내가 잊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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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보도블럭 기억나시나요?

 

지하철 훼이쾅 역은 호텔에서 도보로 5 분 거리에 있었다. 그 짧은 시간을 천천히 걸어왔는데도 벌써부터 목덜미에 땀이 번지고 있었다. 지하철 역 입구에서는 경비가 버티고 서서 들어가려는 사람들의 가방을 일일이 조사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경비의 복장이 아주 가관이었다. 작달막한 키에 약간 퍼진 몸매의 20 대 청년이었는데 공수부대원들이 쓰는 검은색 베레모에 헌병처럼 하얀 꽈배기 밧줄을 어깨에 매달고 있었다. 내 차례가 와서 숄더 백을 열어 보여주자 형식적으로 한 번 힐끗 쳐다본 뒤 거수경례를 하며 가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짜오프라야 강

 

짜오프라야 강 르아두언(수상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사판탁신 역으로 가야했다. 사판탁신으로 가려면 지하철로 다운타운 실롬 역까지 간 뒤, 같이 붙어있는 지상철(BTS) 살라댕 역에서 지상철로 갈아타야 했다. 자동매표기에 실롬 역의 요금구간을 누르고10 바트 짜리 동전 네 개를 투입하자 동그란 검은 색 자석 토큰과 거스름돈이 나왔다. 자석토큰을 개찰구의 스캐너가까이 대자 삐 소리와 함께 녹색 불이 켜지며 앞을 가로막고 있던 개찰구 블록이 사라졌다.

 

지하철은 쾌적하고 시원했다. 요금은 지하철과 지상철을 합쳐 50 바트가 넘었다. 현지 물가를 고려하면 무척 비싼 편이었다. 지하철과 지상철이 환승이 되지 않고 각각 따로 요금을 내야 한다는 점도 이상했다.

 

한 번 갈아타기는 했지만 지하철 훼이쾅 역에서 지상철 사판탁신 역까지의 거리는 아무리 멀게 봐줘도 서울 지하철의 2 구간 정도였다. 내가 알기로 서울 지하철 2 구간 요금은 1200 원 정도였다. 그런데 방콕 지하철-지상철은 당시 환율로 2000 원 가까운 요금이었으니 서울보다도 훨씬 비싼 셈이었다.

 

사판탁신 역에서 수상버스를 타는 타 사톤은 바로 지척이었다. 부두는 배를 타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강물은 탁한 갈색이었는데 잔잔하지가 않고 몹시 심하게 출렁이고 있었다. 아마 배들이 하도 많이 왕래하다 보니 별로 폭이 넓지 않은 강이 이렇게 심하게 출렁이는 것 같았다.

 

배가 도착했다. 선착장에서 배의 밧줄을 묶고 푸는 일을 하는 사람에게 타 창하고 소리치자 타라고 손짓한다. 20 m 정도 길이의 천막을 씌운 길쭉한 모터보트였는데 두 명씩 앉는 플라스틱의자 가 두 열로 배치돼 있었다. 선착장 인부가 밧줄을 풀자마자 수상버스는 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출렁이는 강물을 양 옆으로 가르며 앞으로 전진했다. 마주 오는 수상버스와 비껴갈 때는 배가 양 옆으로 요동쳤다.

 

가만 보니 강 위에는 수상버스만이 아니라 온갖 종류의 배들이 떠 다니고 있었다. 작은 모터보트는 물론이고 뗏목도 보였다. 엄청나게 큰 군함간이 생긴 거선이 거적 데기를 덮어쓴 채 내가 탄 배 옆으로 지나갔다. 강가에는 현대식 고층 건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 호텔들이었는데 이미 사진으로 검색을 마친 것들이어서 눈에 익었다. 저건 샹그릴라, 저건 오리엔탈, 강 건너 저건 페닌슐라. 보는 족족 이름을 댈 수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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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의 부촌 2 층 판자집

 

그 고층 건물들 아래로 펼쳐지는 광경은 완전히 딴 세상이었다. 1960 년대 미아리 판자촌을 연상케 하는 다 쓰러져 가는 수상가옥들이 강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런 목조 판자집들이 나무기둥 몇 개의 의지한 채 출렁이는 강물 위에 버티고 있는 게 신기했다. 때가 덕지덕지 붙은 창문 밖으로는 누더기 같은 빨래들이 널려 있었다.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인기척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 사는 집인 것 만은 분명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상하수도 시설이 되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러웠다. 이 강으로 연간 수 천 만 명의 해외관광객들이 지나 다닐 것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아이들은 저녁마다 상다리가 부러져라 산해진미를 차려놓고 요란을 떨며 지나다니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디너크루즈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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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의 빈촌 단층 판자집

 

타 창에서 왕궁을 가려면 선착장에 이어져 있는 시장통을 통과하여 10 분 정도 걸어야 했다. 강바람을 맞으며 배를 타고 올 땐 잠시 잊었던 찌는듯한 더위가 다시 몰려왔다. 거리에는 긴 소매 저고리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덥지도 않은 모양이다. 내리닫이 창문을 모두 연 채 다니는 고물 시내버스, 모터싸이클을 삼륜차로 개조해 만든 툭툭, 그 외에도 온갖 종류의 고물 차들이 소음과 매연을 내뿜고 있는

1 Comments
타쿠웅 2008.12.04 12:19  
여행기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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