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차 23박24일간의 인도네시아 투어(자바섬,발리,롬복)10일차 브로모화산을 보고 이젠으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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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차 23박24일간의 인도네시아 투어(자바섬,발리,롬복)10일차 브로모화산을 보고 이젠으로 이동

하늘진 0 1935
2013.11.09.() 10일차 브로모화산을 보고 이젠으로 이동
 
새벽이었다. 4시에 기상을 하고 짚차에 올라탔다. 우리 차는 시커먼 짚차였는데 제길 여섯명이나 태우는 것이다. 4인석인 자리에 6명을 앉히니 얼마나 힘든지 모르겠다. 서양보이 2명과 서양걸 2명 그리고 우리 부부가 탔는데 여기 인도네시아에서 우리는 늘 찬밥이다. 덩치 큰 놈을 먼저 배려하는 것인지 항상 좋은 자리에 배치하고 덩치 작은 여자와 우리 동양인은 좁은 자리에 끼어 타라고 한다. 이거 안 탄다고 할 수도 없고 하여튼 끼어 탔다. 앞에 서양보이 2 그 옆에 걸 1명 여기는 3인이 앉게 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쪽은 2인석인데 서양걸 1명 우리 집 사람 나 이렇게 앉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우리 쪽은 의자가 2인석이라 서양걸은 엉덩이가 반만 걸친 상태에서 40분을 달린 것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쨌든 우리는 뷰포인트에 도착했다. 아직 사물이 분간이 가지 않는 캄캄한 상태라 한국에서 챙겨간 손전등에 의지해서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보면 브로모화산일대가 한 눈에 보인다고 한다. 추위가 가시지 않은 상태라 현지인들이 피운 모닥불의 온기를 느끼며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마치 석양처럼 붉은 기운들이 산을 가득 메우는데 산의 윤곽이 점점 선명해진다.
여기저기 카메라 후레시가 터지고 사람들이 환성을 지른다. 한참을 밝아오는 일출을 감상하고 있는데 이제 온전히 사람들의 얼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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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호주친구와 한국여성분, 그리고 한국남성분, 프랑스 여인, 덴마크 여성 두 분의 얼굴이 이제 보인다. 우리는 같이 단체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진 몇 장을 찍고 나니 갑자기 소란스럽다.
 
인도네시아 현지 관광객들의 퍼포먼스가 있었다. 젊은 혈기에 웃통을 벗어 제낀 것이다. 추운데 웃통을 벗고 사진을 찍으면서 크게 웃는다. 그들의 파이팅과 약간의 소란이 많은 사람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웃음을 제공했다. 전망대에서 보면 세메루산(3676m)이 멀리 보이고 그리고 브로모화산(2393m)이 연기를 뿜고 있고 그 앞에 바툭화산(2440m)이 보인다. 처음에는 바툭화산이 브로모화산인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었다. 브로모화산은 바툭화산 너머 회색빛의 그 산이다. 별로 멋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멀리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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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짚차를 타고 브로모 화산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내가 작은 의자에 앉고 집사람과 엉덩이 반만 걸쳤던 여성만 2인석에 앉게 했다. 내 자리가 불편했지만 그래도 세 명이 끼어 앉아가는 것 보다는 나았다.
 
브로모 화산의 주차장에 내려 차 위치를 확인하고 화산을 향해 걸었다. 멀리 사원이 하나 보였다. 힌두사원이었다. 너무나 놀라웠다. 화산 바로 아래 사원이 있을 거라고는 정말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다.
사원 앞에는 많은 상인들이 먹을 것과 각종 물품들을 팔고 있었다. 이 곳에서는 꽃들을 파는데 많은 현지인들이 꽃을 사서 화산에 던지면서 소원을 빈다고 한다.
텡거족(Tengger) 사람들은 이 분화구에 신들이 산다고 믿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 조코 세거(Joko Seger)왕과 로로 안텡(Roro Anteng)왕비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자식이 없었는데 브로모신에게 자식을 점지해 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그러자 산신은 막내아들을 제물로 바치겠다면 자식을 낳도록 해주겠다고 했고 왕과 왕비는 그렇게 하겠노라고 약속하고 여러 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런데 막내인 케수마(Kesuma)를 너무나 사랑한 국왕은 산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는데 노한 브로모신은 왕에게 약속을 어긴 죄로 나라에 큰 재앙을 내리겠다고 위협을 했다.
그 사실을 안 케수마는 스스로 브로모산 분화구에 몸을 던져서 신의 노여움을 풀고 백성들을 구했다고 한다. 신은 노여움을 풀고 그 증거로 분화구에서 흰 연기를 보여주었다 한다. 이때부터 텡거족들은 마지막 달 보름에 쌀과 과일과 꽃을 브로모 산신에게 바치는 야드냐 카사다(Yadnya Kasada) 의식을 거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꽃다발을 화구에 던지면서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생긴 것이다. 텡거족(Tengger)이라는 이름도 왕비의 이름Anteng과 왕의 이름 Seger가 합쳐져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사실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 현지인에게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고 하니까 사원 안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그래서 사원 안을 둘러보게 되었는데 텡거족의 신에 대한 존경심을 잘 알 수 있었다.
브로모화산의 잿빛의 화산재가 사방을 회색빛으로 채색하고 있는데 그 곳에서 만난 신의 공간에서 내가 함께 해서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타고 화산을 오르는데 우리는 걸어서 오르기로 했다. 산에 오르는데 말을 타고 오른 적이 있었는데 필리핀의 따알 화산에서였다. 말을 탄 경험도 있었고 다시 말을 타는 것에 대한 별 감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내 발로 오르고 싶었다. 물론 정상에 이르기 위해서는 284개의 좁은 계단을 올라가야 분화구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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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어제 너무 추위에 떨어서 인지 몸이 너무 좋지 않다고 했다. 결국 나만 정상에 오르기로 하고 아내는 아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숨을 헐떡이며 올라가는데 모래바람이 하얗게 몰려온다. 모래바람 속을 뚫고 걸어 올라가는 것은 정말 힘들다. 숨은 차고 숨을 쉬면 연신 모래가 코로 입으로 들어온다. 마스크를 하고 스카프로 온 얼굴을 가리고 가도 너무 벅차다. 마지막 284개의 계단은 겨우 발을 디딜 만큼 좁다. 화산재가 계단에 가득해서 계단을 밟고 오르는 것이 아니라 화산재를 밟고 오르는 것 같다. 자칫하면 미끄러질 수도 있을 만큼.

드디어 화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은 좁은 난간으로 둘러져 있었다. 모든 것을 다 삼켜버릴 것만 같은 분화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구름 같은 흰 연기가 몽실몽실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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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에 마지막 분출이 있었다는 브로모 화산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활화산인 것이다. 인간의 존재가 자연 앞에서는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을 여기서 다시 느낀다.
모래바람을 맞으면서 내려오는 길은 올라갈 때 보다는 좀 수월하다. 말을 타고 오르는 관광객과 말의 헐떡거림이 내 귀를 때린다. 승자의 여유랄까? 조금 더 여유로워진 내 마음은 정상을 밟고 내려오는 자의 겸손이 있다. 양보하고 기다리고 웃고 그래 세상이란 게 뭐 다 그런 건데 각박할 필요는 없는 거지.

산을 내려와 아내를 찾았다. 내가 가장 늦은 것은 아니었지만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고맙다.

짚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식빵과 쨈을 주었다. 계란 후라이 하나 추가하면 500루피란다. 그래서 우리는 계란 후라이를 시켰다. 아침을 간단히 먹고 출발시간이 9시간인 줄 알았으나 느즈막히 출발한다. 그 동안 우리는 숙소에서 화산지대를 감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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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출발이란다. 미니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버스는 달려 어제 늦은 밤에 도착했던 그 사무실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버스로 갈아타고 간단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운 일행으로 재분배 되는 듯했다. 여기서 루마니아 친구와 스페인 친구등이 합류하고 일본친구는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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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버스를 타고 7시간을 달려야 한다. 어제의 힘겨운 버스여정을 생각할 때 걱정되는 것이 화장실이었다. 그래서 가는 중에 toilet을 얘기했더니 중간에 기름을 넣는 주유소에서 내려주었다. 그 곳은 옷가게를 겸하고 있었다. 화장실 볼일을 보기에는 깨끗하고 괜찮은 건물이었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그리 빠르게 움직이지도 않고 여유 있게 가는 것이 좀 편하다. 다시 우리는 예정된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점심인 것이다. 우리는 나시고랭과 아이스티1잔을 시켰다. 오늘은 아내가 영 맥을 못 춘다. 어제 너무 추위에 떨어 영 몸이 좋지 않다. 마침내 이젠화산의 베이스캠프인 catimor homestay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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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풀고 아내는 바로 숙소에서 누웠다. 열이 장난이 아니게 높다. 그래서 우리 일행중에서 최군에게서 해열제를 얻어 먹였다. 그래도 영 열이 잡히지 않는다. 일단 멀 먹여야 해서 가져간 햇반으로 죽을 숴서 주었다. 열이 조금 잡힌 상태라서 그런지 힘들어 하면서 먹어주는 아내가 고맙다.
아내가 나도 식사를 하고 오라고 해서 식당으로 갔더니 뷔페란다. 말이 뷔페이지 세트메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맛은 영 아니다. 먹을 것도 없는 것이 가격은 비싸다. 50,000루피란다.
역시 여기도 입산료를 받았다. 1인당 55,000루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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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오니 아내는 역시 설사와 고열로 힘들어 하고 있었다. 일단 열을 잡아야 했기에 수건을 적셔 두 개를 아내의 목과 머리를 감쌌다. 밤새 그 과정을 반복하고 나서야 아내의 열이 조금 잡혔다.

아내가 아플 줄은 몰랐다. 긴 여행을 하면 분명 누군가 아플 것을 예상했지만 아내가 아프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캄보디아에서 내가 아주 혼줄이 난 경험이 있언 내가 그럴 줄 알았는데

내일 우리는 바로 체크아웃을 하고 이젠화산을 보고 발리로 간다고 한다. 아내가 숙소에서 쉴 수 있는 스케줄이 아니다.
이렇게 오늘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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