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차 23박24일간의 인도네시아 투어(자바섬,발리,롬복)7일차 프람바난(Prambanan)사원과 Klaton, Taman s…
2013.11.06.(수) 7일차 프람바난(Prambanan)사원과 Klaton, Taman sari
아침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별 시원찮은 조식일 거라 생각하고 내려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가지 수가 많았다. selera 호텔에 비교하면 천지차이였다. 우선 오믈렛과 계란후라이를 구어 준다는 점. 과일이 나오고 쥬스의 질이 다르다. 4성급이었던 마벨라 스위트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먹을 만하였다.
그래서 오전에 먼저 프람바난사원을 가기로 한 것이었다. 이 것이 나의 불찰이었다.
이 때는 몰랐다. 클라톤은 2시에 타만사리는 3시에 문을 닫는다는 사실을.
하여튼 말리오보로 거리에서 프람바난사원가는 트랜스족자를 타고 50분을 가면 된다. 차비는 1인당 3,000루피. 프람바난사원이 종점이므로 끝까지 가서 내리면 되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10분정도 걸어가면 되었다. 가는 버스에서 인도네시아 현지 연인이 우리와 같은 일정이었다. 그래서 프람바난가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그래서 같이 가자니 그러자고 한다. 우리에게 너무 고마운 친구가 이 친구인 줄 이 때는 눈치 채지 못했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그들을 따라가니 이들이 물을 산다. 우리도 물 한 병을 샀다. 5,000루피.
음.. 현지인은 30,000루피 외국인은 171,000루피.
거기다 투어하라면서 난리다. 얼마면 무슨 투어가 가능하다는 둥... 우리는 패스
뭐야! 이런 된장. 입장료가 여기도 차별이군..
외국인차별대우를 말레이시아 페낭에서도 경험한 적이 있은 지라 받아들이기로 했다.
말레이시아 페낭힐에서도 외국인인 우리는 한사람의 가격이 현지인 가족의 전부 가격보다 비쌌다.
그들과 헤어져 사원을 관광했다. 마치 작은 앙코르왓 사원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돌들과 쌓다가 만 듯 무너진 탑들. 우리는 사원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프란바난 사원은 힌두사원이다. 프람바난 사원에 있는 사원 중 존그란 사원은 10세기경 지었다. 그리고 시바 당의 회랑은 높이 47미터이며, 인도 서사시 중 하나인 라마야나가 새겨져 있다. 그 외 약 30개의 사원이 있으며, 카리산 사원이 유명하다.
프람바난 사원에서 중앙에 위치한 시바 사원은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데 헬멧을 써야만 입장이 가능하고 일정한 수의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줄을 서서 앞 팀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헬멧을 쓰고 입장한다.
프람바난 사원은 현재 18개 사원이 복원되었는데 이 것을 복원하는데도 70년이나 걸렸다고 한다. 현재도 복원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으나 자바섬이 지진과 화산분출등 자연재해로 인해 쉽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사원은 힌두사원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었는데 사원의 탑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지는데 기단, 탑신, 첨탑, 가장 밑의 기단은 인간계를, 중간의 탑신은 인간과 신이 공존하는 세계를, 꼭대기 첨탑 부분은 신들이 사는 천상계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힌두교의 3대 신을 모시는 곳인 시바 신전을 중심으로 그 양 옆에 브라마 신전과 비슈누 신전이 화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프람바난 사원의 원래 이름은 여윈 소녀의 탑이라는 뜻의 '찬띠 로로 종그랑'인데 이에는 얽힌 전설이 있어요. 옛날에 반둥이라고 불리는 한 왕자가 있었는데 그는 적국의 아름다운 라라 종그랑 공주에게 반해서 그녀와 결혼하려 했어요. 하지만 공주는 반둥 왕자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자였기 때문에 그와 결혼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공주는 왕자가 하룻밤 만에 천 개의 신전을 쌓는다면 결혼하겠다는 불가능한 조건을 내걸었어요.
반둥 왕자는 마력으로 많은 악마들을 불러들여 순식간에 신전들을 쌓아 올렸어요. 새벽이 다가와 이 모습을 보고 걱정이 된 공주는 마을사람들에게 신호를 보내 동쪽에 불을 피워서 마치 해가 뜨고 있는 것처럼 속였어요. 밝아오는 하늘을 보고 악마들은 땅으로 돌아갔고 천 개의 신전을 다 짓지 못했어요.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 반둥은 화가 나서 공주를 돌로 만들어 버렸고 그녀가 아름다운 1000번째 신전이 되었어요. 이러한 전설로 인해 사람들은 시바 신전 북쪽 석실의 두르가 상이 바로 라라 종그랑의 석상이라고 여기고 있어요.
실제 9세기 무렵 처음 지어졌을 때 라라 종그랑의 전설에는 미치지 못하는 240개의 신전이 있었지만 지금은 총 18개의 신전들만이 복원되어 있어요. 프람바난 힌두 사원은 아름다운 불교 사원인 보로부두르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아름다운 불상조각이 띠를 두르고 있는 모습이 앙코르왓을 떠올린다. 여기저기 둘러보고 나오는데 인도네시아 커플이 우리 앞에 있다. 반갑다. 헤어졌다 다시 만나 인사를 하고 이것이 인연인가? 그들과 함께 세우사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세우사원(Candi Sewu)은 불교사원이다.
보로부두르사원과 견줄 만큼 뛰어난 사원인데 아직 복원중이다. 양 옆으로 배불뚝이 석상이 시위하는 사이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늘어선 불상들의 머리가 없다.
둥근 돌 지붕이 이 사원이 힌두사원이 아니고 불교사원임을 나타내는 것 같다. 본존불이 있어야 할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여기저기 복원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 그 결실은 요원해 보인다. 참 훌륭한 문화유산임에도 복원이 지연되는 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재정상 문제가 크다고 한다. 인도네시아의 문화유산이 이렇게 찬란하였다는 것이 너무 놀랍고 대단해 보였다.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부 조크자카르타의 동북동 17km에 있고 남북 185m, 동서 165m의 광대한 구역을 점하는 불교사원 유구. 세우는 ‘천(千)’을 의미. 그 이름대로 중심의 주당을 둘러싸고 소사당을 규칙적으로 배치했는데, 그 수는 240이며 무너진 잔해도 많다. 큰 사당도 지붕과 여러 곳이 크게 파손되어 있으나 중심당의 사방에 한개의 소실과 계단을 불인 십자형 플랜에 의한 것임. 인도의 파하루불(800년 전후)과 유사함이 주목된다. 주실과 소사당에는 원래 제존의 상을 만다라 풍으로 정연히 배치하였던 것 같으나 지금은 모두 소실되었다. 벽면 일부에 존상과 귀면(鬼面) 등의 부조가 있고, 그 양식과 카비 어명(語銘)의 글씨로 보아 9세기 전후의 조영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찬디 세우 [Candi Sewu]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인도네시아 커플과 함께 타고 말리오보로로 돌아왔다. 우리가 클라톤을 간다고 하니까 일부러 우리가 내리는 정류장에 내리는 친절함을 그는 베풀어 주었다. 그들과 헤어진 우리는 Klaton으로 갔다.
클라톤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다들 문은 닫았다고 한다. 오후2시면 문을 닫는다고 한다. 3시에 문은 닫는 따만사리를 서둘러 가면 볼 수 있단다. 여기서 많은 삐끼들이 달라 붙었다. 전통옷을 제작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면서 길 안내를 자청한다. 우리는 과감하게 거절하고 걸어갔다.
따만사리 가는 길엔 옷가게가 늘어서 있었다.
더운 날 걷는다는 것이 무척 힘이 든다는 사실을 걸으면서 생각이 들었다.
따만사리는 꽃의 궁전이라는 뜻인데 궁녀들이 목욕을 하던 곳이라서 물의 궁전이라고도 한다. 술탄이 목욕하는 궁녀들으 지켜보았다는 2층은 작은 공간이었다. 왕의 침대가 있었다는 곳도 협소하였다. 따만사리는 지금도 현지인이 살아가는 공간이었다. 유적지라기보다는 유적지에 사람들이 살아간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많은 곳은 궁전의 일부가 현재 거주지로 있는 모습이었다.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 힘들었다. 결국 아내가 더위를 먹은 듯하여 베짝을 타고 호텔로 왔다. 할아버지였는데 하루 일을 마친 듯 했지만 우리를 20,000루피에 호텔까지 데려다 주셨다. 가격절충을 하려고 했는데 호텔에 도착해 내려 보니 돈이 50,000루피 짜리가 가장 작은 돈이어서 또 그 할머니네 가게에서 콜라를 샀다. 이번에는 병이 아닌 페트병을 샀다. 그런데 또 1,000루피를 더 받는다. 그래서 내가 따졌다, 어제는 병이라서 그렇다고 치고 오늘은 왜 더 받느냐고 하니까 아이스된 것이라서 그렇단다. 말이 안 된다고 했다. 할머니 그렇게 해서 부자되시겠어요? 그랬더니 막 화를 내면서 나른 내 친다. 일단 베짝할아버지에게 가서 돈을 주니 감사하단다. 후에 들으니 아내에게 내가 잔돈을 만들러 가게에 들어간 사이 20,000루피를 꼭 받게 해 달라고 부탁을 하더란다. 참 안쓰럽다. 이 더운 나라에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 뭔가 짜하다.
저녁을 먹고 Ari Tour에 갔다. 우리의 호텔로 픽업을 해달라고 했다. 처음에 예약할 당시에는 다팜호텔에서 하루를 더 묵을지 아니면 소소르위자얀 거리에서 싼 숙소에서 잘지 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라서 픽업을 하지 않고 아리투어로 오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아내가 중년인 우리가 묵기에는 정말 힘들다고 판단해서 다팜에서 하루 연장했었다. 그래서 이날 픽업서비스를 요청한 것이다. 신신당부했다. 꼭 와 달라고 .그래서 8일 오전 8시 15분에 호텔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돈이 모자랄 것 같아 환전을 하기로 했다. 환전을 하고 슬러시를 먹었는데
8,000루피를 주었다. 바가지다. 아보카도를 시켰는데 이거 우리 입맛에는 영 아니올시다다.
먹지도 못하는 슬러시는 호텔 방에서 물로 녹았다.
오늘의 하루도 이렇게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