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수마트라 3일 1/2 사바약산 트레킹
http://blog.naver.com/sa0026/220484178383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3일 1/2, 2015년 2월 21일
시바약산(Mt. Sibayak)으로 이동
개운하게 샤워하고 아침으로 오믈렛 토스트를 먹었다. 자! 이제 화산을 향해 출발하자!
버스는 바로 게스트하우스 앞에서 타는데 친절한 주인 할머니께서 직접 버스를 잡아주셨다. Kama라고 쓰여 있는 버스를 타야하고, 이 버스만 시바약산 입구로 가기 때문에 다른 버스를 타면 안 된다며 손자 챙기듯이 꼼꼼하게 챙겨주셨다. 어제 이미 버스와 트레킹에 대하여 아주 자세하게 말씀해주셨는데 오늘 또 이렇게 일일이 챙겨주시는 것이다. 정말 고마운 분이다. 따뜻한 정을 느낄 수 있는 분이다. 오늘따라 버스가 늦는지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내가 혼자서 타고 갈 수 있다고 들어가셔도 된다고 해도 안 들어가시고 버스가 올 때까지 계셨다가 버스기사분에게 내가 시바약산입구로 간다고 말해주기까지 하셨다.
20분 정도를 달려 시바약산 입구에 내렸다. 버스 종점이다. 중간에 버스가 고장 나서 뒤에 오는 버스로 갈아타야했다.
사바약산(Mt. Sibayak) 트레킹
시바약산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입장료를 내고, 담배 하나 피우고, 9시에 드디어 화산을 향해 출발했다.
난 걷는 걸 좋아한다. 특히 숲을 걷는 걸 정말 좋아한다. 지난 3년간 여행사에서 일할 때도 곰배령을 스무 번도 넘게 다녀왔지만 매번 갈 때 마다 좋았다. 걸을 때 마다 새로운 꽃과 나무와 새와 사람과 흙과 공기와 바람과 향기와 만나게 된다. 자연의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곳에서 느끼는 신선함과 겸손함이 늘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그래서 언제나 여행을 가서 트레킹 코스가 있으면 가급적 가려고 한다. 그리고 지금 이곳 시바약산은 숲이고 산이고 거기에 그냥 산도 아닌 화산이어서 나를 더욱 들뜨게 만든다.
두근거리는 호기심과 설렘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오랜만의 트레킹이라 기분도 상쾌하고 몸도 가뿐하다. 하지만 역시 오랜만이라 초반에 몸이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설렘의 흥분이 조금 가라앉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괜찮다 조금만 지나면 몸도 걷는 즐거움을 다시 기억해낼 것이다. 그리고 얼마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몸이 가벼워졌다.
길 초입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다. 비수기여서 관광객이 없나보다 했다. 그런데 중반쯤 가니 현지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사람도 있고, 올라가는 길에 쉬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이 일찍 출발했나보다. 이 트레킹 길은 약 2/3 가량이 포장길인데 초반에는 완만했던 경사가 조금씩 높아져 포장길이 끝날 때쯤에는 꽤 높은 언덕을 올라가기도 한다. 그 높은 경사길에서 쉬고 있는 현지 젊은이들을 만났다. 모두 반갑게 인사를 건넨다. “헬로 썰!”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의 관광지를 여행하다보면 아주 많은 현지인들이 외국인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걸 볼 수 있는데, 그 인사가 또 대부분 비슷하다. 바로 “헬로 썰!” 나도 반갑게 인사했다. “헬로, 슬라맛 빠기(인도네시아 아침인사)”
1시간 반가량 걸으면 왼쪽은 산정상으로, 직진은 온천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산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이정표도 세워져 있으며, 여기서부터 흙길이다. 하지만 왠지 이 이정표도 정상으로 가는 좁은 길도 못 미덥다. 이정표는 마치 진짜는 아직 안 만들었고 이건 간이로 잠깐 만들어 놓은 거야라는 느낌이고, 그 서있는 위치도 정말 저기에 길이 있나 싶게 생뚱맞은 곳이며, 설사 이 이정표를 믿고 간다 하더라도 길은 사람들이 이 길로 다니나 싶게 좁고 유명관광지라고 하기엔 다닌 흔적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나도 고민돼서 매점에 계신 분에게 여쭤봤는데, 맞다고 하신다. 저 길로 가면 산 정상이란다.
그랬다. 이정표도 길도 모두 맞았다. 약 30분정도 좁고 울창한 숲길을 지나면 갑자기 황량한 세상이 열린다. 나무와 풀들이 사라지고 짙은 회색의 땅이 거칠게 펼쳐진다. 그리고 군데군데에서 그 아래 부글부글 땅 속에서 끓고 있는 지구의 속이 허연 연기를 뿜고 있다.
오른쪽 길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분화구다. 왼쪽에서는 땅속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다.
아마도 용암이 흘러 만들어졌을 넓은 U자형 길을 걸어 분화구로 올라갔다. 분화구 안에는 뭐가 있을까? 강한 햇볕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바람에 실려 오는 화산재를 맞으며 걸어 드디어 분화구에 섰다. 그런데 조금 당황했다. 커다란 둥근 분화구 안에는 연인 혹은 가족들이 돌로 쓴 사랑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하트와 누구누구 사랑해 등등...
분화구 옆으로 시바약산의 정상이 있다. 그곳으로 갔다. 거친 바위를 올라야 도착할 수 있다. 마침내 정상. 먹의 농담을 조절하여 땅을 그리고 그 위에 파란색으로 하늘을 칠한 것 같다.
짙은 회색의 탁 트인 풍경을 보며 미리 숙소에 주문해서 준비해간 치즈토마토 샌드위치로 점심을 먹었다. 정상에서 내가 걸어온 길을 내려다 봤다. 뿌듯함, 이 기분을 지금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 강한 햇살의 따가움, 바람의 시원함, 자연이 만든 풍경의 놀라움...
오른쪽 봉우리 정상으로 올라 갈 수 있다.
거친 바윗길을 올라가야한다.
정상에서 바라본 올라온 길
마음껏 누리고 다시 내려왔다. 설날연휴여서 그런지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온 현지인들이 많았다. 정상 부근에서 텐트를 치고 있는 현지인들도 있었다. 이곳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이 아주 멋질 것 같다. 다 내려와서 입구에서 버스를 기다릴 때 보니 오후 2시가 넘었는데도 친구들끼리 여러 명이서 올라가는 걸 볼 수 있었는데 아마도 텐트를 치고 잘 생각인가 보다.
아침에 산에 오를 때는 많이 설렜다. 화산이라는 정도만 알고 간 곳이어서 미지의 풍경에 대한 기대가 있었고, 오랜만의 트레킹이라는 점도 날 설레게 했다. 하지만 내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화산이 만들어낸 짙은 무채색의 거칠고 황량한 보기 드문 독특한 풍경이긴 하지만 내가 기대했던 것만큼의 경이로움까지는 아니었다. 그리고 숲을 걸으며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려고 했는데 그게 전혀 불가능했다. 작년에 분화한 화산 때문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화산재가 많이 날렸다. 산길을 걷다가 바람이 불면 나뭇잎 위의 화산재가 날려 입을 막아야 한다. 거기다 가끔씩 오토바이라도 지나가면 윽! 그러고 보니 처음 브라스따기로 들어올 때 마을의 집들이 온통 회색지붕이어서 이곳의 전통인가 했었는데 지금 알고 보니 그게 모두 화산재였다. 내가 머물고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바닥, 의자, 탁자 등 쌓일 수 있는 곳이라면 거의 모든 곳에 화산재가 내려 앉아 있다. 바닥에 타일이 깔려 있는 곳은 미끄러울 정도다. 하지만 치우면 또 금방 쌓이곤 한다. 정말 화산의 나라 인도네시아에 있는 기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올라갈 때는 2시간 반 정도, 내려올 때는 1시간 50분 정도 걸렸다. 버스정류장에서 내려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지도를 봤다. 아직 시간이 있고 많이 힘들지 않으니 ‘군다링힐(Gundaling Hill)에 들렀다 가야겠다.’ 잠시 후 버스가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