씽이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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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간의 동남아시아 여행> 씽이를 떠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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씽이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보았지만, 저는 씽이 사람들에게 살짝 빈정이 상했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 하나도 친절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딴 생각을 하다가 내릴 곳을 놓쳤을 때, 정류장은 지났지만 걸어갈 수 있다고 해서 길을 물어물어 걸어갔지만, 거리에서 길을 물을 때마다 마주치는 반응은 '귀찮아 죽겠는데' 싶은 싸늘한 반응 뿐이었고, '어쩜 거기도 못 찾아가니'라는 표정도 있었습니다. 맡겨둔 가방을 가지고 오기 위해 여관에 되돌아 갔을 때에는, 여관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었고, 아랫집에 물어보니 '윗집 사정은 나도 모르겠는데' 하는 표정. 사실 여관 문은 잠겨 있지 않았고, 그저 여주인이 자물쇠를 걸어만 둔 채 자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지만, 자는 여주인을 깨우고 미안하다고 했을 때에도 그녀는 표정없는 얼굴로 얼른 가져가라는 듯 내 가방을 건네 주고 다시 잠을 청할 뿐이었습니다.

사실 도착한 당일도 "외국인이라 널 받아줄 수 없어, 좀 더 고급 호텔에 가 봐"라고 말하는 나름 宾馆 주인에게 타박을 맞고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 여관에 한번 들어와 봤던 것인데, "외국인도 묵을 수 있어?"하는 질문에 "외국인 아니라 뭐래도 잘 수 있지. 외국인이라고 왜 못자?"하는 반응을 보였었습니다. 물론 싼 가격에 묵을 수 있어 기뻤지만, 그녀들은 제가 방에 들어간 후에도 "뭐니, 외국인이라고 못 묵고 쫓겨났대."하며 호호 웃어서 왠지 웃음거리가 된 것도 같고,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마링허 협곡을 보고 하루 더 머물다 떠날 수도 있었지만, 저는 얼른 씽이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뒤늦게 제가 샀던 치우베이행 버스 표가 침대 버스 표라는 걸 알고, 그것도 새벽 한 시에나 도착하는 표라는 걸 알고 이 표를 바꾸기 위해 하루를 더 묵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았는데, 그래도 씽이는 떠나고 싶어서 표를 무르고 두시간 거리에 있는 뤄핑으로 가는 표를 샀습니다. 표를 무르는데 20%의 수수료를 물어야 했지만, 그래도 뤄핑으로 가는 표를 사니 홀가분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씽이 사람들이 그리 불친절한 듯 보였던 것은, 그 동네가 그다지 개발되지 않은 관광지라 관광객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마인드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저를 관광객으로 보지 않았던 것도 같고, 사실 열한시의 완펑린 그 넓은 곳에 한 명의 관광객이 있었는데, 현성이라고 해서 나을 리 없었겠지요. 아마 이상한 옷차림에 카메라를 목에 건 여자애가 귀찮게 군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씽이의 독특한 말투까지 섞여서 더 했던 것 같기도 한 것이 산골이라 그런지 말투가 억셌습니다. 사실 강원도 사투리도 처음 들으면 굉장히 불친절하게 들리니까요. 아무튼 당시엔 씽이를 떠난다는 게 기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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뤄핑은 유채꽃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2월말이 되면 이 들판이 온통 노란 유채로 뒤덮인다고 했는데, 제가 지나갔을 때에는 아직 1월 초라 군데군데 이른 꽃봉우리를 피웠을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시린 바람을 이기고 얼굴을 드러낸 노란 유채꽃은 여전히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주책맞게 가보지도 못한 알프스를 떠올렸습니다. 하이디가 어쨌다고 했는지 내용은 다 잊어버렸지만.


구이양에서 씽이에 올 때에는 꼬박 여섯 시간이 걸렸고, 길도 구불구불 멀미나는 산길이었는데, 오히려 윈난성에 있는 뤄핑으로 갈 때에는 두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고 윈난에 가까워 갈수록 길도 곧고 좋아졌습니다. 나중에 윈난의 길들을 보며, 관광산업의 공로인지, 지형적으로 길을 놓기가 좀 나아서인지는 몰라도 구이저우 성의 길보다 훨씬 낫다는 걸 알았습니다.

씽이에서 뤄핑으로 미니버스를 몰고 가던 운전사 아저씨는 마이페이스의 대가로, 두 시간밖에 안 걸리는 길을 가면서 한 시간 반 쯤 왔을 때 우릴 어딘가에 내리게 하고는 "나는 일이 있어서 여기까지만 데려다주고 돌아갈 테니, 너넨 앞에 있는 저 버스를 타고 뤄핑까지 가."라고 하고 정말 가버렸습니다. 물론 돈을 더 내거나 하는 억울한 일은 없었지만, 처음엔 정말 황당 그 자체였지요.


뤄핑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 여섯시 반. 펄펄 끓는 더운 물이 그리워 호텔을 찾았습니다. 허름한 호텔은 50위안. 물은 기쁘게도 펄펄 끓었고, 호텔 앞의 가게의 미시엔은 눈물나게 맛있었으며, 알아듣기 어려운 사투리를 구사하는 주인 아줌마는 맛있으면 내일 아침에도 또 오라고 웃어 주었습니다. 호텔 프론트 총각은 잠 잘때 문 안쪽 걸쇠를 꼭 채우고 자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리고 호텔 침대에는 전기요가 있었습니다! 난 속물인지, 나를 기쁘게 맞아주는 사람들이 좋았습니다. 얼른 윈난성에 오길 잘했다 생각하며, 이제 난 욕실이 밖에 있는 여관에서 자기엔 나이를 너무 먹은 거라고 자위했습니다.

그리고 구이저우는 아마 계속 아름답겠지만, 당분간 나는 구이저우에 여행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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