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기]하노이에서 한해의 마지막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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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여행기]하노이에서 한해의 마지막날을..

해롱이 3 6449

 

[베트남 여행기]하노이

잠자리가 바뀌어선지 좀 편치 않고 찌뿌둥한 기분이다. 날씨도 흐리고....

호치민 묘역은 월요일과 금요일이 휴무이기 때문에, 오늘 그 지역과 서호 부근을 돌아 다니기로 하고,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했다. 
싸파나 하롱베이 등의 일정을 고려하여 하노이의 계획을 잘 짜야 될 것 같다.

버호 버스터미널에서 호치민묘나 기차역으로 가는 버스를 물으니 아무도 모른다. 
모르는지 아는지 짧은 영어가 안 통하고 내가 하는 몇 마디 베트남어를 그들이 알아 듣질 못한다. 
아침부터 왜 이러지?
정류장에서 우리를 보고 있던 베트남 아가씨?가 어딜 갈거냐고 묻더니, 마침 지나가는 방콕에서나 보던 뚝뚝(세발 오토바이)을 잡아, 호치민묘라고 목적지를 기사에게 알리고 가격까지 흥정해 베트남 돈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고는 타고 가라고 한다. 고마운 사람^^

오토바이는 예지가 걱정이 되어 아직은 타질 못 하겠는데 낡긴 했지만 셋이 타기 딱이다. 거의 기어서 간다. 그래봐야 하노이 시가는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어디든 금방 간다.(근데 아무도 없다던 9번 버스가 호치민묘 옆을 막 지난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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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오전에만 개방하기 때문에 방문 시간을 잘 조절해야 한다. 
참배객이 끝도 없이 줄지어 서 있다. 
보관소에 가방과 카메라를 맡기고 묘소로 들어서니 입구와 안쪽 모두 사방에서 정복 군인이 경호를 선다. 중앙에 누워 있는 호치민의 시신이 조명 아래 하얗게 빛나고 있다. 차가와 보이긴 하지만 수축도 없이 그대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부패하지 않도록 시신을 미라로 만들어 보관하려니 꽤나 신경 쓸 일도 많을게다. 

안으로 들어서자 냉장고 안에 들어온 듯 써늘한 한기가 살갗에 와 닿는다. 이 시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1년에 한번은 먼 나라로 가서 방부제 주사를 맞고 와야 한다나? 엄숙한 분위기에다 경비원이 한마디 말도 못 하게 한다.

우스운 건 어느 나라나 사회주의 국가는 그 지도자를 이런 모양으로 모시고 있다. 그 나라 인민과 가장 똑같아야 할 사람이 신화가 되어 저렇게 누워 있다. 그들이 지녔던 이상과 본의와는 다르게, 어떤 목적에 의해서 후세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이겠지.

검은색 현대 그랜저에서 한 노인이 부축과 경호를 받으며 묘소로 들어온다. 
호치민의 시신을 바라보며 무언가 회한 어린 눈빛으로 한참을 바라본다. 거의 몸을 움직이지도 못하는 이 노인은 과거 호치민의 동지였을까, 추앙자였을까...

묘소에서 나와 광장을 어정대는데 한국인 아줌마 일행이 바쁘게 버스로 돌아간다. 반갑게 인사하고 건강한 여행을 빌고 헤어지는데, 우리 셋이서만 다니는게 좀 신기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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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역 뒤로 돌아 호치민 박물관으로 가니, 현대식 건물에 호치민의 족적과 사진, 기념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2층은 매우 현대적인 느낌의 각종 기념 작품과 조형적인 구조물, 전쟁과 관련된 현대 회화 작품들(피카소의 게르니카), 전쟁과 미군에 대한 승리를 노래하는 많은 기념품들이 설치미술처럼 전시되어 있다. 
현대 미술 전시관 같은 난해함도 간혹 보인다. 
역시 이들에게 호아저씨는 대단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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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의 호치민 관저를 지나 일주사로 들어선다. 
아주 자그마한 절이지만, 연못 속의 커다란 기둥 하나에 의지한 사원 건물이 인상적이고, 진지하게 꽃과 향을 바치고 정성을 드리는 시민들이 또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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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바딘 광장으로 돌아 나와 어정거리다가, 마치 소년병처럼 앳되어 보이는 경비병에게 양해를 구하고 호치민묘를 배경으로 예지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잔디 깔린 광장에 길들이 있는데도 경비원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한다. 잠깐동안 사진을 찍으면서도 관광객 관리에 신경이 가는 눈치다.

천천히 광장을 벗어나 대통령궁을 끼고 흥브엉거리를 따라 북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도교 사원인 진무관이 보인다. 오래된 도교사원으로 무언가 우리의 절과는 다른 느낌을 주지만, 곳곳을 거치며 치성을 드리는 모습은 모두가 같아 보인다. 
엄청난 크기의 현천진무신의 동상이 육중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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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무관을 나와 서호(호 떠이)를 끼고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역시 하노이 제일의 호수답게 드넓은 호수다. 
놀이배가 가득하고 신정 휴무라서 그런지 서호로 놀러 나온 인파가 엄청나다. 역시 물가 자리에는 젊은 연인들의 차지다. 껴 안고 애정표현하는 모습이 여전하다. 일상적인 모습인가 보다. 역시 옆에는 오토바이 아니면 자전거 한대씩...

호수로 놀러 나온 시민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어 주는 영업이 성행이다. 
약간은 유치해 보이는 소품으로 주욱 늘어놓은 기린이며 산타, 말, 마차, 인형 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아기 안은 가족에게나 어울릴 듯 했지만, 젊은 연인들도 많이 찍고 바로 나온 사진을 보고 무척 기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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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걸어서 좀 피곤하다. 호숫가 쩐꾸억 사원을 둘러보고 나와, 근처의 꽤 커보이는 반똠 호따이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많이 알려진 식당인지 큰 홀이 손님으로 가득하다. 거의가 현지인들이다. 제법 비싼 식당 같아 보이는데, 역시 베트남도 잘 먹고 살만한 사람들은 따로 있나보다. 

메뉴를 봐도 무얼 시켜 먹어야 할지 모르겠다. 옆 식탁에서 맛있게 먹는 찌개?(Hot Pot)를 시켜 본다. 양념된 국물에 쇠고기와 야채, 국수를 끓여 먹는데 제법 맛이 좋다. 서호 특산물이라는 새우 튀김과 옆 식탁에 보이는 우렁을 먹어보려 했지만 별로 당기지 않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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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스크림 하나 사 먹으며 근처 버스 정류장의 행선지와 지도를 비교해 보니, 여기서 33번 버스를 타면 군사 박물관으로 바로 갈 것 같다. 역시나 레닌 동상 바로 옆에 하차하니, 바로 길 건너가 군사 박물관이다. 

전쟁 중에 사용하던 비행기와 대포, 탱크 등의 무기류를 전시하고, 디엔비엔푸 전투의 모형과 전쟁 진행 상황을 다큐 영화로 설명을 한다. 뒷마당 깃발탑 아래로 미군이 사용했던 무기들의 잔해로 설치 작품을 해 놓았다. 전쟁의 참상과 미군의 무기력?함을 보여 주는데 초점이 있는 듯 하다. 이 전시물을 보는 서양인의 심정은 어떨까 싶다.

예지가 미국이나 베트남이나 참 이해 못 할 사람들이라면서 투덜투덜 거린다.
베트남 전쟁과 역사, 북한과 우리, 그리고 미국, 베트남전과 6.25를빗대어 얘기는 해 주지만, 
4학년 아이에게 적당히 이해 시키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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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층 고대 유물 전시물 앞에서 한 무리의 베트남인들이 떠날 줄을 모른다. 
거의 기도하는 듯한 자세로 울 듯한 표정들이다. 한동안 무거운 정적이 흐르고 어떤 이는 유물 앞에서 고개를 떨구고 묵념을 한다. 
아마도 고향을 등지고 떠났다 다시 고국을 찾은 베트남인들이리라.

박물관을 나와 다시 레닌 동상을 지나 조금만 걸으면 미술박물관이다. 
어떤 여행자는 박물관이 무슨 볼거리냐고도 하지만, 그 나라의 대표적이라고 하는 것을 한 번 쯤은 꼭 봐야만 할 것 같다. 봐야 좋은지 나쁜지를 알 게 아닌가.

역사박물관에서 가지고 나온 뭔가 무거운 마음에, 다시 미술박물관에 들르니 좀 더 가슴 아픈 부분이 보인다. 베트남의 미술작품이 폭 넓게 전시되어 있지만, 모든 사회주의 체제가 보여주는 참여적이고 선동적인 주제와, 검붉은 색조의 컴컴한 작품들이 다양성을 배제하고 있다. 입체파나 튜비즘을 모방한 노동화나, 달리와 샤갈을 모방한 초현실주의적 작품 등이 보이기도 하지만, 미술가의 자유로운 창의성을 볼 수 없는데서 또 한번 마음이 안 좋아진다. 나무판을 깎아 자개와 옻칠을 한 작품들이 꽤 섬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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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바로 앞에 문묘가 보이지만, 정문으로 가기 위해서는 넓은 정원 담을 따라 반대편으로 걸어가야 한다. 길거리 여기저기에서 아이들이 플라스틱 공으로 열심히 축구를 한다. 베트남도 축구가 엄청 인기이다. 작년 씨컵때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아직도 거리 곳곳에 대회 안내판이 붙어 있다.

공자를 모시기 위해 지은 천년이나 되는 역사를 가진 공자묘이다. 
조용하고 차분한 곳으로 연못에는 아직은 덜 핀 연꽃이 가득하다. 양편으로 비석이 열 지어 서 있지만, 글씨는 많이 훼손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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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많이 걸어다니기로 하긴 했지만, 역시 시내를 돌아 보는게 가장 힘든 일 중 하나이다. 나는 그런대로 다닐만 하지만, 경과 예지가 몹시 피곤해 한다. 그래도 지도를 보니 걸어서 갈 만한 거리 같아, 걸어서 하노이역까지 왔다. 
뒷편의 역사로 들어가니 B역이다. 돌아서 앞 건물로 가라 한다. 역을 돌아가는데도 한참 걸린다. 라오까이 왕복 기차표를 사려 했지만 편도 밖에 팔지 않는다. 호안끼엠 여행사(15$) 보다는 싸지만, 소프트베드는 매진이고 하드베드 밖에 좌석이 없다. 
아무래도 쌀쌀한 밤이 될 것 같다.

환전 창구에서 100$을 환전하려 하니 시간이 늦어선지 창구의 직원 아줌마가 짜증을 내며 안 바꿔 주길래, 약간 화를 내는 표정을 지으니 결국 바꿔준다. 
6일 뒤에 출발하는 후에 행 열차를 예매해 놓으려는데도 소프트베드는 벌써 매진이다. 
닌빈 출발하는 열차는 여기서 예매가 안 된다고 한다.(전산 시스템이 뭐 이래...) 아무래도 세명 좌석을 한꺼번에 끊으려니 자리가 잘 안 나는 것 같다. 할 수 없이 좀더 시간이 소요되는 S7 열차 침대칸으로 예매를 해 놓았다. 애초 계획대로 닌빈으로 가서 땀꼭 투어를 하고 표를 구하려 했다면, 15시간 쯤 고생좀 하거나 버스를 이용해야 했을터다. 

땀꼭은 투어로 내일 다녀 오는게 낫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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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역을 나오니 날이 어둑해진다. 
이젠 더 이상 못 걸을 태세다. (나도 이젠 그만 걸을려고 하던 참이다.) 
처음으로 오토바이를 타기로 했다. 예지는 나와 같이 타고 두 대로 항베거리로 향했다. 
정말 대단한 기교들이다. 아주 빠른 속도로 달리는건 아니지만, 요리조리 빠져 나갈 때마다 내 무릎이 옆 오토바이나 차에 부딪힐 것만 같아 불안해진다. 그래도 오토바이 숲을 헤치고 길을 건너는 것보다는 타고 있는 것이 더 편하다.

두 대에 만동으로 얘기 했는데, 익히 들어 짐작은 했지만, 이넘들 도착해서는 한 대당 만동씩이란다. 만 동이면 800원 쯤 하는 작은 돈이지만 기분은 썩 안 좋다. 미리 확실하게 해 두는 수밖에 없다. 웃으면서 장난치지 말라고 한마디 하고 만동씩 주고는 수상인형극장으로 갔다. 오늘 저녁 프로 보고 들어가려 했는데 웬걸,,, 셋이 티켓을 사려니 이삼일치 자리가 없다. 아예 하롱베이와 싸파를 다녀 온 뒤에 보기로 하고, 2만동짜리 2class로 6일날 저녁 표를 예매해 두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여기저기 둘러 봐도 비싼 집 외에는 별 신통치 않다. 
엊저녁 먹었던 껌비아에서 밥과 쌀국수로 식사를 한다. 예지는 여전히 쌀국수만 찾는다. 
지난번 방콕과 라오스에서 먹었던 쉐이크에 목말라 하던 예지가 길거리 어느 가게에서 믹서기가 놓여 있는 조그마한 신떠집을 잽싸게 찾아낸다. 망고 쉐이크에 맛이 갔다. 
매일 또 와서 먹겠다고 벼르고 벼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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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과 빵을 좀 사서 먼저 숙소로 들여 보내고, 거리를 좀 어정대다가 킴까페에서 땀꼭과 하롱베이 투어를 신청했다. 웬 신까페와 여행사가 그리도 많은지.... 그 중 여기가 좀 싼 것 같다. 

저녁 7시 쯤 되니 오늘도 여전히 시장은 파장하고 쓰레기차가 어김없이 엄청난 쓰레기를 치우고 있다. 내일 밤 싸파로 들어가면 환전이 좀 안 좋을텐데, 비엔동을 너무 써 버렸나? 내일 저녁 미리 환전을 좀 해 두어야겠다.

들어와 보니 방 청소를 깨끗이 해 놓았다. 시내를 많이 걸어서 피곤하기도 하다. 
씻고 좀더 나가 볼까 하다가, 커피 한잔 끓여 마시고 오늘은 좀 쉬어야겠다.
몇 년 전에 인도에서 500원 주고 산 코일히터가 정말 유용하게도 오래 써 먹는다. 
CD를 듣다가 예지와 경이 곯아 떨어진다. 
오늘 종일 쓴 경비와 일정을 정리하려니 장난이 아니다. 대략 정리하고 나도 좀 쉬어야겠다.

이렇게 올 한해의 첫날이 간다.
언제나 그랬지만, 그냥 하루 가는 기분이다. 
하는 일 없이 나이만 한 살 늘었을 뿐인 이 기분......... 


 

3 Comments
나니 2004.04.09 09:14  
  베트남에 대한 자료를 찾아도 찾기 힘들었는데 이렇게 보니...좋네요....
해롱이 2007.05.26 15:57  
  이제 글, 사진 수정이 되네요... 감사.
앨리즈맘 2007.09.13 16:28  
  아이가 참이쁘내여 힘든대도 잘따라주고 이젠 처녀 다되엇겟죠,, 담백하니 글읽으면서 기분이 편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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