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개념 무계획 초보 베트남 여행기 2. 무이네에서 달랏까지 이지라이더 Mr. Binh과 6시간을 달리다.
전날 바에서 밤 1시까지 술을 마시고 길을 헤매다 한 2시쯤 들어간 것 같습니다.
오픈투어버스 예약 시간이 아침 7:30이었는데 딱 그 시간에 맞춰 일어났습니다.
대충 짐싸고 체크아웃까지 하니 10분이 지나더군요. 늦었습니다.
리멤버투어 리셉션에 있던 베트남 직원이 안내해줘서 다른 곳에 정차해 있는
버스까지 뛰어갔는데 다행히 출발하진 않았더군요. 베트남 직원분도 참 친절
했습니다. 한까페 슬리핑버스였구요. 차량 상태는 매우 양호했습니다.
정말 좋더군요.
무이네의 첫느낌은 뭐랄까요. 한적함, 황량함? 대충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호치민에 있다 와서 더욱 그랬겠지만 정말 한산하더군요.
우선 한까페에 내린 다음 배가 고파서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명함 하나 주더군요. 찾아갔는데 아 정말 식당이.... 바로 앞에 바다가 있어서
가까이서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 구경할 수 있는 식당이었는데
무슨 개미굴 위에 식당을 지었는지 바닥은 개미 천지에다 처음 갔을 땐
주문을 받더니만 그 담부턴 카운터에 사람이 없습니다. ;; 무슨 손님을
방목하는 것도 아니고 밥먹고 튀어도 전혀 문제 없겠더군요. 암튼 주문하려면
카운터에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럼 저 안쪽에서 사람 하나 느릿느릿
소보다 느린 속도로 걸어 나옵니다. 후....
갑자기 무이네를 뜨고 싶더군요. 대충 자전거를 타고 둘러보면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 어서 여길 뜨자'
언제나 그렇듯 참 즉흥적이죠. --;
참고로 전 물놀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무이네는 수상스포츠를 즐기기에
좋은 장소인 것 같더군요. 한적한 곳에서 수상스포츠를 즐기실 분은 무이네
적극 추천합니다.
결심을 하고 한까페에 다시 찾아가 물었습니다.
나 : "달랏가는 버스 시간이 어떻게 되냐?"
한까페 : "내일 오후 1시다."
나 : "헐 오전엔 없냐? 난 시간이 없다. 빨리 가야 한다"
한까페 : "없다. 지금 이용하는 승객이 별로 없어서 오전에는 운행 안한다."
나 : "그럼 걍 오늘 갈란다. 다른 교통 수단은 없냐?"
한까페 : "이지라이더가 있다."
오잉 이지라이더. 한국에서 여행준비할 땐 전혀 몰랐지만 베트남에서
시간날 때 틈틈히 론리플래닛(한글판) 읽다가 처음 그 존재를 알게된 이지라이더.
참고로 론리플래닛은 이지라이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달랏의 명물. 이지라이더는 터프하고 재기 넘치는 자유 계약제 오토바이
가이드를 말한다. 30여명의 회원 대부분은 구식 러시아제 또는 동독제
오토바이 뒷자리에 손님을 태우고 다니는데, 씬까페 스타일로 몰려다니는
데 식상한, 흥미진진한 대안을 찾는 여행객들 사이에 열혈 팬들이 형성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 중략 ....
하지만 굳이 찾아더닐 필요는 없다. 그들이 당신을 찾아낼 테니까. 대부분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며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할 줄 아는 사람도 많다.
많은 이지라이더들이 이전 손님들이 열렬한 추천의 글을 남긴 방명록을
가지고 다닌다.'
음 이지라이더라.... 그렇지 않아도 매우 흥미롭게 읽은 내용이었기 때문에
한까페 무이네 지점장의 제안이 매우 땡기더군요.
나 : "이지라이더 알고 있다. 달랏의 명물 아니냐. 그런데 이지라이더가
무이네에도 있냐?"
한까페 : "베테랑 이지라이더가 있다. 영어를 매우 잘하며 베스트 드라이버다.
버스보다 훨 빠르고 사진 찍고 싶을 때마다 사진 찍을 수도 있다."
오홍 조쿠나~ 듣고 보니 정말 좋은 것 같더군요.
나 : "알았다. 얼마냐?"
한까페 : "60불이다"
나 : "헉"
이 대목에서 앞서 "시간이 없다. 빨리 가야 한다"라고 말한 것이 심하게 후회
되더군요. 이 사람 얘기 좀 해봤더니 굉장히 눈치빠르고 센스도 있습니다.
콩글리쉬는 어찌나 잘 알아듣는지 제가 버벅이며 콩글리쉬로 얘기해도
의도하는 바를 굉장히 빨리 알아채더군요.
나 : "좀 깍아줘라. 너무 비싸다."
한까페 : "55불 밑으론 안된다. 더 싼 가격으로 갈거면 영어도 못하고 운전도
불안한 사람이랑 갈 수 밖에 없고 시간도 더 걸릴 것이다. 어떡할거냐?"
나 : "알았다. 이지라이더랑 가겠다. ㅜ.ㅜ"
아.... 전 정말 흥정을 못합니다 ㅠ.ㅠ
가격 흥정을 마친 시간이 대략 오후 3:10 쯤. 3:30까지 이지라이더가 오기로
했습니다. 돈을 건내주고 거스름돈을 받는데 한까페 무이네 지점장이 달러 좀
두툼하게 갖고 있길래 "와우, 유 아 리치"했더니 껄껄껄 웃습니다.
한동안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아 정말 한대 쥐어박을 수도 없고 ㅠ.ㅠ
약속 시간에서 5분 정도 늦게 이지라이더가 도착했습니다. 이지라이더 오토바이
는 시내에서 보던 세움용 오토바이완 다르더군요. 생김새가 다릅니다. 그리고
뒤쪽에 칭칭 끈을 감으니 꽤 큰 가방도 문제없이 가져갈 수 있더군요.
(Mr. Binh은 아니고 냐짱에서 만난 이지라이더 Lam 사진입니다.
이지라이더들 오토바이는 다 저렇게 생겼더군요.)
도착한 이지라이더의 이름은 Mr. Binh. 빨간 티셔츠 가운데 별이 있고 그 밑에
자기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나중에 물어본건데 항상 그 티셔츠만 입고
다닌다고 합니다. (달랏 도착한 후 빈과 그의 오토바이를 찍을 생각이었는데
밤 9시 반에 도착해서 뻗어 버리는 바람에 못찍었습니다. 아쉽습니다!!!!)
출발했습니다. 후.... 살짝 불안해 집니다. 중학교때 같은 반이이서 알?지내던
친구가 고등학교때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적도 있고 아는 형도 오토바이사고로
몇달을 고생한 적이 있어서 한국에서도 오토바이는 절대 타서는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를 타보니 불안해 집니다.
나 : "얼마나 걸리냐?"
Mr. Binh : "모르겠다. 매우 오래 걸릴 것이다."
헉.... 한까페 나쁜 넘 무지 빨리 갈거라더니 베스트 드라이버랑 갈거라더니
Mr. Binh 말하는게 영 불안합니다 ㅠ.ㅠ
가다 잠깐 빈(Mr. Binh, 이하 통칭) 집에 들렀는데 점퍼와 생수 큰거 하나
챙기더군요. 좀 더 가서 기름도 넣고 본격적인 달랏으로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출발할 때의 기분은 불안, 초조 ㅠ.ㅠ 호치민에서 보낸 첫날과 같은 감정으로
다시 되돌아 갔습니다. 사고가 났는지 도로에 유리 파편 조각도 널부러져 있고
ㅠ.ㅜ
좀 가다보니 유명한 모래 언덕이 보입니다. 빈이 알려주면서 사진찍겠냐고
묻더군요. 안찍겠다고 말하고 걍 지나쳤습니다. 좀 더 가다보니 조그만 어촌이
보이고 해변가를 따라 도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해변가 도로를 오토바이로
달리는 기분 꽤 괜찮더군요.
(무이네 지나서 해변도로 달리다 지나온 길 바라 보고 찰칵. 베트남은
소를 방목하더군요. 조그만 농촌 많이 지나왔는데 아이들이 도로로
소떼 몰고 다니는 장면 많이 봤습니다.)
길을 가다가 궁금한게 있어 물어봤더니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가다 사진찍기
좋은 곳 있으면 알아서 먼저 알려주더군요. 흠 처음에 불안했던 마음이 슬슬
가시기 시작합니다.
(빈이 화이트샌드라고 알려줘서 내려서 찍었습니다. 실물은 정말 이뻤는데
디카로 구도도 안나오는 데다가 제가 사진을 못찍습니다 ㅠ.ㅠ)
그리고 가다가 클랙숀 소리가 계속 들려서 "아.... 역시 베트남" 이러면서
지나쳤는데 알고보니 빈이 계속 클랙숀을 누른거였더군요. 소리가 그리 크지는
않아서 몰랐습니다.
살펴봤더니 앞에 대충 한 50미터 정도?에 무언가 보이면 여지없이 클랙숀
울리더군요. 그리고 커브길에서 한 100미터 정도?까지 가시거리가 확보가
안되면 계속 클랙숀을 울려 줍니다. 상당히 안정감있게 운전을 하더군요.
그러면서 슬슬 처음 가졌던 불안과 초조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베트남 묘지.)
(한장 더.)
빈이랑 이것 저것 얘기도 하게 되고 조그만 농촌을 많이 지나쳤는데 빈이
좀 쉬다 가자며 오토바이를 세우면 아이들과 눈 마주치며 인사하고 안통하는
말이지만 몇마디 말도 나눠보고 바디랭기지도 하다보니 재밌습니다. ^^;
(베트남 뉴타운?)
(똑같이 생긴 집이 정말 많았습니다. 빈에 따르면 이 집들은 산위에 사는
소수민족을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살기 힘들어서 산 아래에 집을 만들어
준거라고 하더군요. 이주정책인가 봅니다.)
빈과 슬슬 말을 주고 받게 되자 빈이 드디어 정체를 밝히더군요. 사진첩과
말로만 들었던 바로 그 방명록을 꺼내 보입니다. 사진 속의 빈은 정말 한결
같은 빨간 티셔츠입니다. ^^ 전 저만 무식하게 무이네-달랏 달리는 건줄
알았는데 방명록보니 무이네-달랏 오토바이로 달린 사람 꽤 보이더군요.
(말로만 듣던 이지라이더의 방명록.)
(방명록에 한글이 보여서 찰칵. 장거리 여행은 아니고 빈과 시티투어해서
좋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빈과 계속 길을 가다 보니 사진 찍는게 재밌어 집니다. 집에 카메라는
있었지만 제 소유의 카메라는 이번 여행을 위해 장만한 것이 처음입니다.
DSRL로 살까 하다 내가 사진 찍어봐야 얼마나 찍을까 하는 마음에 디카
하나 샀구요. 찍을 때도 오토, 야간스냅촬영 요거 두개 밖에 이용 못합니다.
그런데 사진찍는게 재밌어 집니다. 왜 사진, 사진기에 관심 갖는 사람들이
많은지 이해가 되더라구요. 암튼 이런 저런 풍경, 사람들 구경하면서 계속
달리다 보니 정말 좋았습니다.
(무이네에서 달랏가는 길 이름모를 산골짜기에서. 대관령처럼 꾸불꾸불한
길을 꽤 오래 달립니다. 저 불빛의 정체는?)
나 : "마땅한 이동수단이 없어서 당신과 함께 가게 된건데 지금 생각해보니
잘한 것 같다. 오픈투어버스를 타고 다녔으면 보지 못했을 많은 것들을
봤다. 그리고 버스보다 더 가까이서 베트남을 볼 수 있어서 좋다."
요런 말을 빈에게 해줬습니다. 미스터 빈 맞다며 좋아하더군요. 진심으로 말한
거구요. 빈과 함께 달리면서 전 여행 계획을 바꾸었습니다. 첨엔 오픈투어버스로
후에(훼)까지 가는 거였는데 가능하면 이지라이더랑 다니는 걸루요. 나중엔 비싼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았습니다.
(아 정말 이뻤습니다. 내려서 담배 한대 피고 한동안 앉아서 천천히 구경했지요.
물의 정체는 인공적으로 만든 담수지입니다. 산 너머에 고산족이 사는데 물이
필요해서 이렇게 인공적으로 만들어서 끌어다 쓴다고 하더군요. 불빛의 정체는
물을 끄는 관 양쪽 사이드로 다닥 다닥 붙어 있는 라이트입니다.)
쉬면서 가격 얘기도 하게 되었는데 빈이 먼저 꺼냈습니다.
빈 : "얼마 줬냐? 50불 주지 않았냐?"
나 : "55불 줬다."
빈 : "난 겨우 40불만 받는다."
나 : "ㅠ.ㅠ 내가 꼭 당신을 소개할 거다. 직접 찾아가게 하겠다!"
혹시 이용하실 분 계시면 가격 참고하시구요. 아 한가지 더, 빈이랑 저는 밤에
달랏에 도착했기 때문에 빈은 하루밤 달랏에서 잔 다음 아침 5시에 다시 무이네
로 돌아간다고 했습니다. 40불에 그 가격이 포함된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자 이쯤에서 빈 소개를 아는 데로 해보겠습니다.
빈은 평소에는 무이네에서 시티투어를 합니다. 빈 집이 바로 투어 오피스인
것이죠. 그러다 가끔 장거리 일거리가 있으면 뛰는 거구요. 이지라이더일은
2001년부터 시작했다고 합니다. 베테랑이죠. 영어는 그리 잘 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저에겐 그 점이 더 좋더군요. 전 영어 잘하는 사람 말 빨라서 잘 못알아
듣거든요. 빈 말은 못알아듣는게 거의 없었습니다.
어휘도 저보다 많이 알고 있더군요. 생각해보면 8년 동안 여행객을 상대했으니
무슨 질문을 하는지 이젠 훤히 꿰고 있겠죠. 제 생각엔 여행과 관련된 질문에
대해선 100% 답변할 준비가 되어 있는 걸로 보였구요. 무엇보다 친절합니다.
무엇을 질문하든지 성심 성의껏 대답해 줍니다. 항상 미소짓구요. 정말 맘에
들었습니다.
빈네 집 안내하겠습니다. 제가 무이네에서 한까페랑 이름 모를 식당, 빈네
집밖에 안들러봐서 한까페 기준으로 설명드릴께요. 한까페에서 계속 모래언덕
쪽으로 가다보면 길 왼편에 빈네 집이 보입니다. Mr. Binh 어쩌구 저쩌구 집이요.
거리는 아주 가깝지는 않습니다. 걸어서 한 10분 걸릴려나? 제가 오토바이로만
이동해서 정확히 거리는 감이 안옵니다만 어쨌든 찾기는 쉽습니다. 모래언덕쪽
바라보고 가다보면 길 가다보면 왼쪽에 있으니까요.
이지라이더에 관해서도 물었는데 빈에 따르면 달랏엔 아주 많고 냐짱엔 많이
있고 호이안과 후에에 아주 조금 있고 하노이, 호치민엔 없다고 하더군요.
특히 사진 찍기 좋아하시는 분께 이지라이더는 찰떡 궁합인 것 같네요.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오토바이 렌트해서 자신이 직접 몰고 나니는 것이지만
길을 잘 모르면 살짝 불안하겠죠? 암튼 사진 찍기 좋아하시면서 베트남
초행이신분께 이지라이더 강추합니다.
(베트남 장례식. 사진이 어두워서 더 찍으려 했으나 왠지 장례식에
정신 사납게 하면 안될 것 같아서 안찍었습니다. 잘 안보이는데 징과
북이 매달려 있구요. 옆에 있는 사람이 틈틈히 징과 북을 치더군요.
베트남 장례식 특징인가 봅니다. 징과 북을 묻히기 전까지 계속 친다고 하네요.)
(빈과 함께 가지 않았다면 못봤을 겁니다. 나중에 달랏가서 들은 얘기인데
베트남에서는 길가다 우연히 장례식을 보면 운 좋은 거라고 합니다. 반대로
결혼식을 보면 운 없는 거구요. 흐흐 재밌죠. 달랏에서 운 좋은 일이 있었
는데 정말 장례식을 우연히 봐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단점이라면 피곤합니다. 9시반에 달랏 도착했는데 달랏 도착 직전 빈과 맛있게
껌 슈응(슈응은 돼지갈비)을 먹었거든요. 4시간 넘어서부터 슬슬 피로가 몰려
오더니 밥먹고 나서 대충 5시간 넘어서부터는 엉덩이에 마비 증상이 오더군요.
그리고 제 경우 안타까웠던 것은 너무 늦게 출발해서 6시 반 이후로는 아무것도
못봤다는 것입니다. 불빛만 보였죠. 완전히 어두워진 이후로 소수민족(고산족)
마을도 지나왔는데 불빛만 봤습니다. 너무 안타깝더군요. 멋진 장면 많이 놓쳤을것 같네요.
무이네에서 하루 묶고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무이네 시티투어 돌고 바로 달랏으로
달렸으면 정말 좋았을 것 같습니다. 다음에 베트남 오게 되면 반드시 이렇게 한번
다니고 싶네요.
다음 편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내 사랑 달랏 여행기입니다.
아 베트남에서 여행기 올리기 정말 힘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