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에 아픈 기억 하나는 안고 살아간다.
이제 훼에 도착했다.
훼의 옛 지명은 한문으로 순화(順化)라고 한다.
이곳은 모든 사람을 순수하게 만드는 곳일까?
이 도시도 호이안과 마찬가지로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도시다.
그리고 베트남의 마지막 왕조가 있었던 역사의 도시다.
버스에서 내리자 또 20여명의 많은 삐끼들....
그래도 낯선 땅에 발을 디딘 외국인에게 웃음과 말을 걸어주는 귀여운 악마들이다.
우선 신 카페 사무실에서 내일 밤에 하노이로 출발하는 좌석표를 확인하고 삐끼들과 협상한다.
대여섯명이 둘러 싼다.
佳人 : "얼마?"
삐끼들 : "@#$&% (대체로 10에서 15불 정도로 들린다.)
佳人 : 나는 한 사람하고만 이야기 한다~ 그러니 하나씩 물어본다. "텐 달라 이하만 붙어라~~"
다시 하나씩 절충한다.
최종 6불에 낙찰....
이제 이곳에 내린 모든 여행객들은 삐끼들과 짝짓기를 끝내고 삼삼오오 흩어진다.
佳人 : "자네 집이 어딘감~ 얼마나 걸려~ 앞장 서 보셔~~"
삐끼 : #$@%& "원 미닛"
佳人 : "지금부터 카운트 한다~ 만약 1분이 경과하면 옐로우 카드다. 원 투~~"하며 따라간다.
이런~ 佳人은 10까지는 자신있게 센다. 그러나 그 이후는......
어~ 그런데 이녀석 보게?
정말로 1분만에 도착한다.
훼에서도 숙소를 구하는 일은 다른 곳처럼 무척 쉽다.
신 카페 주위가 모두 미니호텔이고 가격 또한 착한 가격들이다.
방에다 짐 풀고 바로 신 카페로 다시 나온다.
이곳 왕릉과 시타델이라는 왕궁 1일 투어를 예약하기 위해서다.
이곳에는 보트로 하는 것과 버스로 하는 왕릉투어가 있다.
보트는 무척 저렴하고(2불 정도) 버스는 150.000동으로 우리돈 13.000원정도다.
그러나 보트를 타면 점심식사가 부실하고 배에서 내려 조금 먼 곳은 오토바이 삐끼들과 가격 절충을
하고 타고 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오히려 보트로 가는게 더 비싸게 먹힐 수도 있고 불편할 수도 있다.
울 마눌님은 죽어도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다.
버스는 바로 유적 입구에 정차를 하기에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
흐엉강에서 배를 타 보는 것?
그것도 문제 없다. 버스 투어도 제일 마지막 코스에 배타고 수상 마을도 간단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점심 식사다.
신 카페 버스 투어의 점심식사는 55가지 식단으로 짜여 있는데 이번 여행중 가장 맛있었고 훌륭했다.
점심값만 우리 돈으로 충분히 몇 만원의 가치가 있는 식사다.
그런데 달라보다는 베트남 동으로 티켓을 사는게 조금 유리하다.
일단 근처에 있는 은행 위치를 물어보고 가서 50불만 환전을 했다.1불에 16.940동으로 847.000동.
다시 신 카페로 와 두 사람분 300.000동을 내고 계약을 했다.
아침에 투어 버스가 무료 픽업을 한다는데 우리 숙소가 코 앞이다.
안남국에서의 용(龍)은 임금을 상징한다.
하롱베이의 하롱은 용이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下龍이고 하노이의 옛지명 탕롱은 용이 승천하는 上龍이다.
그래서 이름을 임금을 상징하는 龍의 베트남 표기인 LONG이라고 알려주었다.
푸~ 하하하하~~ 그래야 이곳 왕들과 당당히 맞짱 뜰게 아닌가?
여기서 1일 투어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해도 되고 오후 1시 30분 부터 다음날 오전까지 나누어 해도
누가 뭐라하지 않는다.
만약 따지면 LONG인 佳人에게 일러준다고 하면 된다.
오전 오후 투어의 방향이 시내를 중심으로 서로 달라 식사를 하러 시내로 다시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은행에 다녀오고 여유를 부리다 그만 오후 출발 시간을 놓쳐 오후는 갑자기 아무 할 일이 없다.
투어는 내일 아침부터 저녁까지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칭얼거리지도 않고 잘도 돌아다니며 논다.
빈둥거리시려면 이 호텔을 이용하시라.
우리는 빈둥호텔 앞에 있는 응옥빈에서 빈둥거렸다.
카운터에 근무하는 처자의 오빠가 우리나라 부산에서 일을 한다고 친밀감을 표시한다.
또 우리 부부에게 아들이 있느냐고 물어본다.
다음부터는 여자들만 만나면 미리 이야기 할까 보다.....
베트남은 가난한 빈민들을 위한 호텔도 있더라....
사회주의 국가라 뭐가 달라도 다르단 말이야~~
돈 없는 사람들은 이리로 오세요~~
돈이 없어 호텔에서 못 잔다는것은 있을 수 없는 나라....
빈민의, 빈민에 의한. 빈민을 위한 위대한 나라.... 빈민호텔...
우리 부부는 시간만 있으면 걷는다.
오후에는 갑자기 할 일이 없다. 그래서 왕궁으로 걸어간다.
흐엉강....
향(香)이란 한자 표현을 흐엉이라고 한단다.
흐엉강에는 자동차나 사람이 건너 다닐 수 있는 두개의 다리가 있다.
그리고 강을 중심으로 남쪽은 신 시가지고 북쪽은 왕궁과 옛 주거지로 나뉘어져 있다.
아래 위성사진을 보면 남쪽으로 강을 바라보고 해자를 낀 왕궁이 있고 그 외곽으로 3면이 다시 외성을
2중으로 해자로 둘러싸고 있다.
내성과 외성 사이에는 민초들이 사는 주거지다.
그러니 외부의 공격에 남쪽으로 흐엉강이 막아주고 나머지 3면은 민초들이 몸으로 때우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왕궁과 성을 건설할 때 민초들의 땀을 요구 했으며 전쟁이 나면 목숨을 걸고 막으라는 말이다.
그런데 날씨가?
어차피 날씨는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기대도 하지 않는다.
저 앞에 다리가 보인다.
비가 오던지 말던지....
그 중에 유명한 다리가 짱띠엔 다리다.
우리는 그 다리를 건너 왕궁쪽으로 걷는다.
우리 부부의 특기는 무조건 걷는다.
지도 한 장만 있으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정말 걷는 사람은 우리 부부외에는 아무도 없다.
베트남의 모든 숙소나 여행사에서는 무료로 지도를 준다.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가면 그들이 시타델이라고 하는 베트남 마지막 왕조의 왕궁이 있다.
다리를 지나며 왼쪽 편.... 지금 바라다 보이는 국기대가 있는 곳이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은 여행이 지니고 있는 모든 문제점을 잊어버린다.
시간, 경비, 육체적인 고생 등등등....
여행이 끝나면 육체는 파김치가 되지만 다음에 어디로 떠날 것인가를 생각하면 다시 힘이 솟는다.
여행이란 마약보다도 더 끊기 어려운 병이다.
짱띠엔 다리를 막 건너 오른편으로 보면 큰 현대식 시장이 있다.
이제 다리를 건너 왼편으로 방향을 돌려 왕궁을 향하여 걷는다.
조금 가다보면 강쪽으로 절처럼 보이는 건물이 보인다.
이제 이곳에서 반대편으로 길을 따라 북쪽 방향으로 들어가면 시타델이라는 왕궁이 나온다.
걸어 다닌다는게 힘든 일이라고요?
전혀 그렇지 않다.
세상 구경을 떠난 사람에게는 보이는건 모두 신기할 뿐이고 새로운 경험인데....
그리고 마음이 맞는 사람과 함께 걷는다는게 얼마나 즐거운 일인데 힘이 든단 말인가?
우리 부부는 이렇게 걸어 다니며 하얀 종이 위에 알록 달록한 글씨로 우정을 써내려 간다.
아직 걸어 다닐 수 있어 행복하고.....
아직 함께 할 수 있어 고마운 일이고....
서로 쳐다보며 말을 할 수 있고 웃음 지을 수 있어 즐거운 일이고....
함께 바라보고 같은 목표를 향하여 걸어갈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더군다나 佳人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함께 걷는다면.....
누구나 가슴에 아픈 기억 하나는 안고 살아간다.
울 마눌님은 10여년 전 뇌종양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른 큰 수술을 받았다.
그때가 의약분업이 막 시행되며 의료계가 파업을 할 때로 수술은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초조함과 긴장속에 수술을 받지 못하고 2달 가량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가?
수술실로 들어가면서까지 수술을 받지 않겠다고 버티는 마눌님을 얼마나 달래가며 밀어넣었는지....
마눌님~ 그때 많이 무서웠지? 佳人도 많이 슬펐어..... 그게 당신과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수술실 앞에서 6시간을 꼬박 기도를 했다. 다시 함께 살아갈 수만 있다면... 하고......
이제부터는 佳人을 슬프게 하지마.... 내 눈에 다시는 눈물 고이지 않게 할 수 있지?
그때 기도 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배낭 하나 둘러메고 둘이서 함께 여행을 하게 해달라는 거였어....
수술후 약 2년간 거동을 잘 하지 못하였다.
수술 후유증을 막기 위한 약을 2년간 먹었고 얼마나 강한지 매일 구토를 반복했다.
이제 제 2의 인생을 살며 이렇게 함께 걸어 다닐 수 있고 여행을 할 수 있다는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사람이 생명을 건 위급한 상황에서야 배우자의 소중함과 중요함을 깨닳는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걷는다.
걸어다니며 가쁜 숨을 몰아 쉴 때 살아있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마눌님~ 佳人 이제 약속 하나 지켰수~ 나 이뽀?
울 마눌님은 佳人에게 말한다.
이미 뚜껑을 한 번 열었으니 다시는 뚜껑 열리지 않게 해 달라고......
다시 열리지 않게 하기 위하여 佳人은 돌쇠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제 어느정도 움직이기 시작한지 불과 5-6년...
머리의 수술 부위가 수박을 살 때 미리 속을 도려내 보 듯 삼각형으로 자욱이 선명히 남아있다.
날 궂은 날... 욱신거리고 아프단다.
마눌님~ 佳人이 언제까지나 옆에서 호~~ 해줄께..... 아프지 마~~
그리고 언제나 당신을 향해 늘 손을 흔들어 줄께.....
그러나 지금도 손에 힘을 줄 수 없어 아직도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한다.
설겆이도 할 수 없다. 자꾸 놓치고 깨뜨리니까....
수술실 앞에서 기도하고 약속한대로 이번에 난생 처음 24일간의 배낭여행을 계획하고 무작정 출발했다.
10여년전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며 한 여러가지 기도중 이제 하나를 이루었다.
우리 부부는 지금 새로 태어난 제 2의 신혼부부며 오래된 친구로 살아간다.
佳人의 영원한 동반자이며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30년 된 친구다.
지금 佳人이 살아가는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울 마눌님이 佳人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마눌님~~ 佳人이 필요한 이유가 꼭 설겆이 때문만은 아니지? 그건 너무 슬포~~
삶이란 녀석은 내게 늘 그랬다.
내게 퍼즐 맞추기처럼 내 삶을 어렵게 흐트러뜨려 놓고는 맞추어 보라고 한다.
간신히 맞추어 놓으면 다시 흐트려뜨린다.
그리고 또 맞추라고 한다.
그래도 佳人은 오늘도 그런 짓궂은 나의 삶을 짝사랑 한다.
삶이란 녀석은 내게 늘 그랬다.
가끔 우리 부부의 건강을 시험하고 시련도 안겼다.
우리 부부가 가고 싶은 길에 장애물을 놓아 두었고 원하는 것을 훼방만 했다.
지름길을 가르쳐 주지 않고 늘 먼 길을 돌아가게만 했다.
늘 알 수 없는 목마름으로 우리 부부를 방황하게 하였다.
우리가 사랑한 만큼 우리를 토닥거려 주지도 않았고 늘 우리에게 눈길도 보내지 않았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면 언제나 더 멀리 도망가 버렸다.
그래도 佳人은 우리의 얄미운 삶을 아직도 짝사랑한다.
돌쇠가 마님을 짝사랑 하 듯....
언젠가는 佳人을 향해 미소를 지을 때 까지....
글쓴이 : 佳人
사진도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 사람이 큰 병에 걸렸을 때 처음에는 경악한다.
그리고 다음에는 의심을 한다. 잘못된 진단이라고.....
다음 단계는 분노한다. 왜 수많은 사람중에 하필이면 나였느나고.....
그리고 분노의 시간이 지나면 체념을 하고 조용히 받아들인다.
마지막으로는 한가닥 불빛을 갈망한다. 프리즈... 프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