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안 그곳에는 우리의 역사도 있다.
11월 16일 여행 17일째....
야간에 이동을 하는 중 버스는 몇차례 정차를 하며 화장실도 가고 식사를 할 시간을 제공한다.
그 후에는 잠에 떨어져 아침에나 깨어나 모르겠다.
우리는 예정 시각인 새벽 6시경에 호이안에 도착했다.
11시간 30분간 슬리핑 버스를 타고 550km를 이동했으니 평균 시속 50km가 되지 않는 셈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버스에서 잔다는게 불편할 수 있겠다.
하지만 佳人은 숙소 침대보다 더 잘 잤다.
우리가 도착한 장소는 신카페 호이안 사무실 앞이다.
이곳에서 나짱에서 미리 예약한 좌석 번호를 다시 한 번 확인을 하고 삐끼들 몇 명과 숙소 가격 절충을
하고 인터넷 무료에 핫 샤워 그리고 팬 방으로 8불에 하기로 하고 늙은 삐끼를 따라 나섰다.
이 친구는 호이안 바닥이 얼마나 좁은지 몇 번을 만났다.
일단 방을 보고 바로 결정했다.
하루만 묵어 갈 우리가 까다롭게 할 이유가 없다.
같은 버스를 타고 함께 온 일본 젊은이는 더 싼 방을 찾기 위해 우리 호텔에 왔다가 다른 곳으로 간다.
일단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무조건 니왔다.
이곳에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새벽부터 투숙을 해도 호텔의 추가 요금은 없다.
어짜피 우리도 내일 아침에 떠날테니까...
호이안....
이곳은 옛 지명이 회안(會安)이다.
편안히 모여서 사는 곳이라는 의미일게다.
그 이유는 이곳이 이미 오래전 부터 국제무역이 활발한 곳이었다.
그래서 아직 일본과 중국의 옛 거리가 남아있고 과거에는 아랍상인들도 빈번히 무역을 위하여 드나들던
국제적인 무역도시였다.
그래서 서로 편안히 모여 산다는 會安이라는 지명을 사용했고 베트남식 발음이 호이안이다.
우리가 호이안과 훼를 가는 이유는 이번 여행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우리와의 역사의 한 페이지가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제일 먼저 호이안에서 佳人이 걸어서 찾아 가는 길....
그곳에는 우리의 역사가 있다.
이곳 호이안의 해안가 꾸어 다이 비치....
비록 섬에는 갈 수 없지만 바라 볼 수 있는 곳....
꾸 라오 짬이라는 섬을 보기 위해서다.
숙소에서 6.000동을 주고 물 1.5L 한 병을 사고 간식거리를 배낭에 챙기고 간단한 이곳 지도를 숙소에서
얻어 길을 나선다.
이곳에서도 미국을 반대하는 반미가게에서 할머니가 우리를 손짓한다.
할머니 인상이 좋아 반미 하나를 5.000동에 샀다.
아이가 너무 귀여워 가지고 있던 과자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꾸어다이 비치로 향한다.
이곳은 옷으로 유명한 곳이다.
아주 저렴한 가격에 맞춤옷을 지을 수 있다.
손재주가 좋아 사진만 보여주고 아침에 맞추면 저녁에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곳곳에 가게와 옷을 만드는 공장이 있다.
우리는 걸어서 가는데 외국인들이 단체로 자전거를 타고 피크닉이라고 가나?
가다 보면 이런 사당도 보인다.
해변으로 가는 길의 풍경이다.
이 길을 걷다보니 걸어서 가는 사람은 우리 부부 밖에 없다.
현지인들은 모두 오토바이를 타고 가고 외국 관광객들은 택시나 버스로 이동을 한다.
지나 다니는 사람들도 없고....
날씨는 덥고....
그래도 가야한다.
이른 아침이라 그리 덥지는 않다.
아~~ 드디어 바다가 보인다.
왜 佳人은 이 더위에 밤새 버스를 타고 새벽에 도착하자 마자 미친듯 이곳부터 왔을까?
지금 시각 9시 30분....
8시에 출발을 하였으니 천천히 걸어 이곳 저곳 기웃거리며 구경하며 오다보니 1시간 30분이나 걸렸다.
이런....
佳人의 실 수~~~
이곳에서 호이안 시내 입구까지 5km
그러니 6km 이상을 뙤약볕에 걸었단 말이냐? 미쳤어~ 정말 미쳤어~~
받아든 손바닥 크기의 지도에는 마을 끝이 해안가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이렇게 먼 길이라면 자전거라도 빌려서 타고 오는건데...
그래도 우리 부부는 걷는게 좋다. 그래야 더 많이 보고 더 많이 느낀다.
나짱보다 더 좋은 푸른 바다 그리고 파란 하늘....
이곳은 나짱에 비하여 다듬어지지 않은 그런 자연의 해변이다.
모래 사장에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조금은 어설퍼 보이지만 이런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더 친근하다.
아래 사진..... 佳人이 보고 싶었던 희미하게 보이는 저 섬....
바로 꾸 라오 짬이라는 섬이다.
희미하게 보이는 저 섬을 바라보고 그리고 이곳 해변에 두발로 서 보기 위하여 뙤약볕을 1시간 30분이나
걸려서 오직 두 발로 걸어서 왔다.
그럼 지금부터 이야기를 풀어보자.
조선 후기 학자였던 정동유라는 분이 계셨다.
그분이 주영편이라는 책을 쓰셨다.
그 책에 기록된 내용을 보자.
<조선 숙종때인 1.687년 24명의 제주도 어부들이 추자도 부근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중 심한 풍랑을 만나
표류를 하게 된다. 그들은 35일 만에 安南國(지금의 베트남) 會安(지금의 호이안)이라는 곳에 도착한다.>
지금 佳人이 서 있는 바로 이 해변이다.
<해안에 이르르자 순라선들이 이들을 에워싸고 회안군 명덕부(관청)라는 곳으로 대려 간다.
이곳에서 이들은 주민들이 건네준 차가운 물을 급히 마시다 3명은 죽고 나머지 21명은 꾸라오 짬이라는
섬에 수용된다.>
지금 佳人이 서 있는 이곳 앞바다에서 체포되었으며 방금 걸어온 그 길을 따라 압송이 되었다.
호이안에 있는 명덕부라는 관청에 끌려 갔으며 그곳에서 주민들이 건네준 찬물을 마시다 3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아마 풍랑으로 오랫동안 물을 마시지 못해 이미 심한 탈수로 사경을 해멨으리라....
그 후 나머지 21명은 바로 지금 앞에 희미하게 보이는 저 섬에 격리 수용되어 버렸다.
우리의 선조들이 풍랑에 표류를 하다가 낯선 땅 이 해변에 도착을 하고 이들에게 붙잡혔을 때 얼마나
놀라고 두려움과 공포에 사로잡혔을까?????
그들의 말이 주영편에 이렇게 기록되어 남아있다.
<"1년에 3모작을 하니 입고 먹는 것이 풍부하여 굶어 죽는 일은 없겠다. 민가에 쌀을 구하니 응하여 줌에
싫어하는 기색이 없다">
이 얼마나 고맙고 신기한 일인가?
당시에는 우리 민족은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의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3모작이라니? 우리나라에서는 감히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쌀을 달라고 하니 흔쾌히 내어주며 싫은 내색조차 하지 않았단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우리 옛말이 있다.
이들은 이미 먹고사는 문제는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이곳에서 당시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인 훼로 6일에 걸쳐 이송이 되고 그곳 왕을 만나게
된다.> 사실 훼는 1802년에 응우웬 왕조가 생겼으므로 기록에는 왕이라고 했으나 지방정권의 왕이리라.
이때 훼와 호이안은 이미 서양과 중국, 일본을 잇는 무역의 허브도시로 발전되어 있었다.
<왕은 이들에게 쌀 한 섬과 돈 300전을 하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후 왕과 대면할 기회가 있어 기회를 보며 울며 글을 올려 살아 돌아가기를 청하여 허락을 받는다.>
당시에는 이곳 베트남도 한자를 사용했으니 필담으로 서로의 뜻 전달이 충분했으리라.
佳人도 필담에 손으로 하는 手談에 그림인 畵談까지 나누며 지금까지 다니는데 문제가 없었다.
<왕은 개방된 사고를 갖고 있었으며 우리 어부들에게 최대한의 호의를 베푼다.>
<호이안에 상륙한지 10개월 만에 배편을 마련해 주고 쌀 등 식량을 충분히 배에 실어주며 조선의 국왕인
숙종에게 친서를 보내> 지금으로 말하면 양국이 FTA를 체결 하기를 청하였다.
5개월의 항해 끝에 이들은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숙종은 그들이 보낸 친서에 답을 하지 않았다.
만약 이때 숙종이 열린 사고로 개방을 하고 무역을 했더라면 조선의 역사 아니 우리의 역사는 아주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 친서가 숙종 임금에게 까지 전달 되지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울 마눌님도 생각에 잠겨 한참동안 앉아 섬을 바라다 본다.
우리는 이곳에서 1시간 가량을 머물면서 321년전 우리 선조들이 보았던 이곳의 낯선 모습을 함께
느껴본다.
지금 佳人이 바라보고 있는 바로 이 해변, 그리고 야자수와 우리와는 다른 풍물을 신기한 눈으로 우리들의
선조들은 바라 보았으리라...
시간만 다를 뿐 아마도 그때의 모습이 지금 우리 부부가 바라보고 있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아니라고?
사경을 헤메고 있었고 또 이상한 나라에서 붙잡혔으니까 두려움 때문애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고?
그럴 수도 있었겠다.
그래도 살아있던 21명 중 몇 사람은 곁눈질로 이곳의 풍물을 눈여겨 보았고 귀국 후 가족들이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안남국에 대하여 설명을 했으리라.....
대부분 믿지는 못했겠지만...
간혹 외국인 관광객들이 일광욕을 즐기는 해변 저 멀리 꾸 라오 짬이라는 섬이 보인다.
시간이 점차 지나자 해변에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여행이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이곳을 오게 된다.
이들에게 무슨 죄가 적용이 되었을까?
그때는 비자가 15일간 면제되는 나라가 아니었고....
무단 칩입죄?
불가항력으로 풍랑에 표류하다가 체포되었으니 아무 죄 없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돌에 채이면 누구는 걸림돌이라고 하고 누구는 디딤돌이라고도 한다.
비록 풍랑에 이곳까지 왔지만 풍랑이 걸림돌이 아니고 디딤돌이 되어 우리와 이들과의 역사는 한층 시간을
앞당겼다.
세상을 살아가며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 가는 일이 우리들이 헤쳐나가야 할 일들이 아닌가?
이상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장소에서 佳人이 서 있었다.
이곳에 오면 이런 선조들이 처음 신기하게 느꼈을 장소에서 조상들의 생각을 300년의 시공을 뛰어 넘어
대화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會安이라는 호이안....
그곳에는 우리가 즐길 곳 말고도 우리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이다.
오늘 타임머신을 타고 321년전으로 우리부부는 잠시 과거로의 여행을 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영화도 만들고 소설도 써보면 어떨까?
조선의 총각 어부와 이곳의 처자와의 아름답고도 지고지순한 사랑의 이야기도 함께 가미하여.....
글쓴이 : 佳人
사진도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곳.... 그런 곳에도 우리 선조들의 발자취가 있다.
이런 곳에 가면 우리 선조들이 보았던 곳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자.
그러면 더 뜻 깊은 여행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