훼 왕궁의 현임각과 세조묘
이제 태화전과 왕궁 내부를 돌아보고 왼편에 있는 세조묘와 현임각으로 간다.
마눌님~ 佳人을 따르시지요....
짐이 앞장을 서리라....
짐과 함께 회랑을 걸어 봅시다.
명성을 구하며 달리는 자는 명성을 따라 갈 수 없다.
그러나 명성에서 도망쳐 달리는 자는 명성에 붙잡힌단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민초들에게는 명성이란 의미가 없는 이야기다.
사실 태화전 뒤는 몇 개의 전각을 제외하고는 완전히 폐허가 되어 아무것도 없는 그런 곳이다.
왕궁안의 반듯 반듯한 도로의 모습
왕궁 안에는 많은 문들이 있다.
우리가 보기에는 썩 좋아 보이지는 않으나 이런 것들도 이들에게 아름다운 문화재이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 아무리 영원히 빛나는 보석일지라도 그것을 지켜주고 관리하지 않으면 영원히 빛나는
보석을 없을 것이다.
그나마 상태가 좋은 출입문이다.
이곳도 도자기로 자개모양으로 붙여 멋을 내어 장식을 하였다.
아마 최근에 복원을 하여 놓은 듯 아주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또 문이다.
그러나 문의 모양은 문패만 다를 뿐 모습은 모두 비슷하다는 생각이다.
문 옆으로는 대부분 꽃 그림으로 채워져 있다.
어떤 꽃 그림은 마치 할머니의 노리개인 오래된 화투패로도 보인다.
처음에는 화려하게 만들었겠지만 관리가 소홀하면 흉물스럽게 변해버린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도 그렇다.
자신은 물론 가족이나 사회생활도 이와 같을진데......
너는 누구냐?
비오는데 기둥위에 왜 올라가 앉아 있느냐?
성스러운 유니콘이다.
그런데 뿔도 없다....
성질 다 죽이고 산다는 말이다.
이곳은 응우웬 왕조의 13명 왕의 위패가 모셔진 세조묘(世祖廟)로 우리의 종묘와 같은 곳이다.
베트남도 우리처럼 많은 외침 속에서 시달리며 살아왔다.
반도 국가의 지형적인 문제인가?
그런데 같은 반도 국가인 로마는 세계를 호령했다.
외침을 당했지언정 한번도 외국으로 침략전쟁을 하지 않은 우리민족과 매우 흡사하다.
얼마전에는 캄보디아 폴 포트 정권을 손 보기 위해 잠시 다녀 오기는 했지만.....
강한 민족이 질긴게 아니라 질긴 민족이 강한 것이다.
1.000여년간이나 중국의 지배속에서 마침내 독립국가를 이루었고 하노이를 중심으로 여러 왕조가
명멸하였으나 마지막으로 이곳 중부지방 훼에서 응우웬 왕조가 사라짐으로 왕조시대는 마침표를
찍게되며 새로운 사회주의가 탄생한다.
13명의 왕의 초상화와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간다.
이들의 문화도 유교의 영향으로 우리와 매우 흡사하다.
그래서 이곳을 돌아보며 느끼는 점은 건물 양식만 다를 뿐 낯설다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
응우웬 왕조를 연 설립자로 제일 가운데 위치하고 있고 오른쪽 왼쪽 순으로 나머지 12명의 왕의 위패가
서열 순서대로 모셔져 있다.
그러니 가운데가 짱이고 그 오른편이 넘버 2, 왼편이 넘버 3의 순서로 좌우로 번갈아......
이곳에 모셔진 응우웬 왕조의 조상들이 바로 321년전 풍랑을 만나 호이안까지 표류하여 온 우리의
선조들인 조선의 어부들에게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배편과 식량들을 마련해준 고마운 분들이다.
그래서 이곳에 오니 감회가 새롭다.
감사한 마음으로 이들을 대해야 하겠다.
"깜언~~"
위패를 모신 세조묘를 나오면 바로 앞에는 현임각(顯臨閣)이라는 전각이 있다..
열반경에 이르기를 집착하는 까닭에 탐욕이 생기고 탐욕이 생기는 까닭에 얽매이게 되며 얽매이는
까닭에 생로병사와 근심, 슬픔, 괴로움과 같은 갖가지 번뇌가 뒤따르는 것이다"라고 했다.
이제 열반에 드신 이곳 제왕들도 과연 집착을 버렸을까?
넘버 1은 세상을 품기 위해 집착을 했을 것이고 넘버 2는 왕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 집착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넘버13은 속절없이 퇴색되어 가는 왕조의 마지막 가느다란 끈을 부여잡고 한없이 눈믈을
흘리며 번민 속에 집착을 했으리라....
어찌보면 풍류를 즐기고 호화로운 일생을 보낸 뜨득왕이나 화장과 장신구에 탐닉을 하며 한 세상을 보낸
카이딘왕이 행복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이제 남은 건 위패 하나 뿐이니 모든 집착은 그대들의 가슴에만 묻어버리시게나......
인생?
까이꺼..... 그냥 편도표 한 장 들고 왔다가 떠나는 여행길이라네....
현임각 앞에는 청동솥이 모두 9개가 놓여져 있다.
현임각 입구에서 바라본 위패를 모신 세조묘 건물의 모습이다.
우리는 태화전을 돌아 뒤로 들어왔기에 순서가 약간 헷갈린다.
비가 내리는 고궁......
그런 고즈녁한 곳을 걷는다는 것도 또 다른 운치가 있다.
특히 평생을 함께 걸어가야 하는 동반자와 함께라면......
현임각의 오른 쪽에는 종루가 자리잡고....
왼쪽으로는 고루가 자리잡고 있다.
아마도 조상을 모시는 의식을 행할 때 사용되어진게 아닐까?
이곳에도 우리의 종묘제례악과 같은 음악이 남아 있을까?
우리나라에서는 종묘제례악이 중요 무형 문화제 제 1호로 보존되고 있는데....
제일 가운데는 고정(高鼎)이라는 제일 키가 큰 솥이 자리잡고 있다.
마님~
된장 준비할까요?
이제 세조묘와 현임각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출입문인 묘문(廟門)이라는 문을 나선다.
이 문을 나서면 다시 오문을 통하여 밖으로 나오게 된다.
결국 문으로 들어가 문으로 나온다.
출입문 영쪽의 花鳥圖가 마치 흑싸리 껍데기처럼 보인다.
묘문을 나서며 시계를 흘깃 쳐다본다.
흐미~~ 벌써 4시가 다 되어간다.
이곳의 입장료도 55.000동이다.
자국민은 물론 30.000동으로 들어갈 때 오른편 문으로 따로 들어간다.
우리가 돌아 본 길...
지금 돌아본 곳 뒤로는 아직 복원이 되지 않은 폐허 그 자체다.
그러나 우리 부부는 어제 이미 내성의 성벽을 끼고 한 바퀴 모두 돌아 보았다.
왕궁으로 들어가는 문은 남쪽에 있는 오문 말고도 세 곳에 모두 하나씩 있으나 규모도 오문 만큼 크지도
않고 별로 멋지게 만들어 놓지도 않았다.
그러나 입구에는 모두 문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글쓴이 : 佳人
사진도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 행운은 자주 문을 두드린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 들이지 않는다.
행운이란 마음에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에게만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