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박 17일 베트남 배낭 여행] #1 호안끼엠
지난 겨울 인도차이나 배낭 여행을 하면서
베트남에서 16박을 보냈습니다.
제 홈페이지에 기록한 여행기 중에 몇 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더 많은 여행기는 아래 주소로 오세요~~
http://youmin.rokkorclub.com/indochina.html
===================
어제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겨우 호안끼엠 근처에 내려서 조금 걷다가 오토바이를 잡아 탔다.
론리에 나와 있는 프린스 호텔은 18달러씩이나 했지만 지친 몸을 위해 기꺼이 지불했다.
밤새 뒤척였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잘 쉰 탓인지 차차 몸이 회복되었다.
이럴 때 보면 새삼 사람의 몸에 나의 몸에 감사한다.
결국은 사라져갈 이 생명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거저거 먹어도 단백질 주머니 위가 위액과 섞어서 소화를 시키고
장에서 그것을 흡수하고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배탈이 나면 푹 쉬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몸에 온기가 돌고 기운이 돈다.
감사한 일이다.
어제 아팠던 일이 아득할 정도로 오늘 나는 많이 걸었으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오전에는 라오까이 행 기차표와 하롱베이 투어 예약 때문에 많은 신경을 썼다.
하노이에 도착하자마자 사파행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배낭여행자는 모름지기 그러하다.
베트남에 보름을 있는다고는 하지만 동선자체가 긴데다
이번 여행은 사실 철저히 준비하지 못하고 왔기 때문에
당장 내일의 일정이 신경쓰였다.
호치민 묘역에 갔던 일은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곳에서 호치민의 모습을 직접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무료입장이고 호치민 관련 기념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xray를 통과하고 삼엄한 경비의 인도를 받는 걸로 보아서 분위기가 엄중해져만 갔다.
길을 갈 때에도 정해진 길로만 가야하며 조금만 벗어나도 경비가 제지를 했다.
사람들은 여럿이 무리를 지어서 가서도 안되며 영접실에는 두사람씩 짝을 지어서 들어가야만 했다.
하얗게 빛을 받은 호치민의 얼굴은 평안히 잠 들어 있으며
조국을 향한 굳은 의지가 굳게 다문 입술처럼 느껴졌다.
프랑스로부터 조국을 독립시키고
또한 공산화를 이끌어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인물이다.
공산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베트남 사람들에게 애국의 상징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공산주의도 이상적으로는 나쁜 것이 아니니까...
그 이념이 지금의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라오까이 행 기차는 좌석seat로 끊었다.
태사랑을 통해 급행을 의미하는 sp로 끊은 것을 확인해서 그나마 위로가 되지만
그래도 9시간을 좌석에서 앉아가는 것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추억이 될 것이라 생각하자. ㅠ
하롱베이는 어쩔 수 없이 저렴하게 17$에 끊었지만 사파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지만 돈도 아깝고 배낭여행까지 와서 패키지에 휘둘리고 싶지는 않다.
기차표를 사재기 하고 대행사에서 지나치게 커미션을 많이 챙기며
외국인을 위한 안내시스템이 거의 없다는 점은 파키스탄과 일견 비슷한 점이 있어 보인다.
파키스탄은 안내시스템의 부재외에는 금전적인 문제는 없었다. 관광객자체가 적어서 그럴지도...ㅎㅎ
호안낌 호수 근처에서 보내는 지난해와 맞이하는 새해는 특별한 느낌이었다.
우연히 들른 호수 근처에서는 송년 행사가 준비중이었다.
cityview 인가? 화룡관이 있는 건물 3층 커피숍에서는 점심으로 먹은 25000동 쌀국수보다 비싼 42000동의 라떼를 마셨지만
송년 행사도 보고 싱가폴에서 법을 전공한다는 mok도 만나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하노이 사람들은 하늘로 등을 날려보내며 새해를 맞이했고 나도 열심히 그들과 함께 했다.
하노이에 있는 모든 사람이 호안낌에 모인 것 같았다.
또한 모든 오토바이까지도 한 번은 길 가운데 같혀서 한참을 못 나오기도 했다.
길을 갈 때에는 한 방향으로 휩쓸려 한참을 가기도 했다.
서울의 명동과도 같았다.
차이점이라면 하노이의 사람들은 모두 오토바이를 탄다는 것.
그들은 오토바이에서 자라고 오토바이에서 사랑을 만들며 또한 오토바이에서 아이들을 키운다
오토바이는 그들에게 생계를 위한 교통수단이며 가족들의 이동수단이다.
그들은 절대 과속을 하지 않으며 30-40km 정도로 차례로 이동한다.
절대 추월하는 법이 없는 여유로움을 지녔다.
정말 무질서해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흐름을 갖고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사람들을 배려하며 자동차는 일방적으로 오토바이를 압도하지 않는다.
매연에 목이 아직도 싸하지만 쎄움을 타며 마셨던 매연의 느낌
복잡하고도 활기찬 하노이의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먼지속에서도 아이들을 키워내는 생명력을 지닌 하노이의 사람들 젊은이들.
가족과 늘 함께하기를 좋아하는 농경문화에 바탕을 둔 문화.
우리 나라가 30년 전에 가지고 있었던 문화가 베트남의 산업화와 함께 어떻게 변할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땅이 넓고 곡창지대가 넉넉해서 농촌 문화가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도시에서 힘겹게 행상을 하는 농촌 아낙네들이 종종 보일 때면 안스러움과 걱정을 동시에 느끼기도 한다.
베트남에서 16박을 보냈습니다.
제 홈페이지에 기록한 여행기 중에 몇 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더 많은 여행기는 아래 주소로 오세요~~
http://youmin.rokkorclub.com/indochina.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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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겨우 호안끼엠 근처에 내려서 조금 걷다가 오토바이를 잡아 탔다.
론리에 나와 있는 프린스 호텔은 18달러씩이나 했지만 지친 몸을 위해 기꺼이 지불했다.
밤새 뒤척였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잘 쉰 탓인지 차차 몸이 회복되었다.
이럴 때 보면 새삼 사람의 몸에 나의 몸에 감사한다.
결국은 사라져갈 이 생명이지만
살아 있는 동안에는 이거저거 먹어도 단백질 주머니 위가 위액과 섞어서 소화를 시키고
장에서 그것을 흡수하고 피가 되고 살이 된다.
배탈이 나면 푹 쉬어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몸에 온기가 돌고 기운이 돈다.
감사한 일이다.
어제 아팠던 일이 아득할 정도로 오늘 나는 많이 걸었으며 많은 사람을 만났다.
오전에는 라오까이 행 기차표와 하롱베이 투어 예약 때문에 많은 신경을 썼다.
하노이에 도착하자마자 사파행을 걱정해야 하는 것이 아이러니하지만
배낭여행자는 모름지기 그러하다.
베트남에 보름을 있는다고는 하지만 동선자체가 긴데다
이번 여행은 사실 철저히 준비하지 못하고 왔기 때문에
당장 내일의 일정이 신경쓰였다.
호치민 묘역에 갔던 일은 인상적이었다.
사실 그곳에서 호치민의 모습을 직접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무료입장이고 호치민 관련 기념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xray를 통과하고 삼엄한 경비의 인도를 받는 걸로 보아서 분위기가 엄중해져만 갔다.
길을 갈 때에도 정해진 길로만 가야하며 조금만 벗어나도 경비가 제지를 했다.
사람들은 여럿이 무리를 지어서 가서도 안되며 영접실에는 두사람씩 짝을 지어서 들어가야만 했다.
하얗게 빛을 받은 호치민의 얼굴은 평안히 잠 들어 있으며
조국을 향한 굳은 의지가 굳게 다문 입술처럼 느껴졌다.
프랑스로부터 조국을 독립시키고
또한 공산화를 이끌어 외세로부터 나라를 지켜낸 인물이다.
공산화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수도 있겠지만
대다수의 베트남 사람들에게 애국의 상징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공산주의도 이상적으로는 나쁜 것이 아니니까...
그 이념이 지금의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남아 있는지는 모르겠다.
결국 라오까이 행 기차는 좌석seat로 끊었다.
태사랑을 통해 급행을 의미하는 sp로 끊은 것을 확인해서 그나마 위로가 되지만
그래도 9시간을 좌석에서 앉아가는 것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추억이 될 것이라 생각하자. ㅠ
하롱베이는 어쩔 수 없이 저렴하게 17$에 끊었지만 사파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지만 돈도 아깝고 배낭여행까지 와서 패키지에 휘둘리고 싶지는 않다.
기차표를 사재기 하고 대행사에서 지나치게 커미션을 많이 챙기며
외국인을 위한 안내시스템이 거의 없다는 점은 파키스탄과 일견 비슷한 점이 있어 보인다.
파키스탄은 안내시스템의 부재외에는 금전적인 문제는 없었다. 관광객자체가 적어서 그럴지도...ㅎㅎ
호안낌 호수 근처에서 보내는 지난해와 맞이하는 새해는 특별한 느낌이었다.
우연히 들른 호수 근처에서는 송년 행사가 준비중이었다.
cityview 인가? 화룡관이 있는 건물 3층 커피숍에서는 점심으로 먹은 25000동 쌀국수보다 비싼 42000동의 라떼를 마셨지만
송년 행사도 보고 싱가폴에서 법을 전공한다는 mok도 만나서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하노이 사람들은 하늘로 등을 날려보내며 새해를 맞이했고 나도 열심히 그들과 함께 했다.
하노이에 있는 모든 사람이 호안낌에 모인 것 같았다.
또한 모든 오토바이까지도 한 번은 길 가운데 같혀서 한참을 못 나오기도 했다.
길을 갈 때에는 한 방향으로 휩쓸려 한참을 가기도 했다.
서울의 명동과도 같았다.
차이점이라면 하노이의 사람들은 모두 오토바이를 탄다는 것.
그들은 오토바이에서 자라고 오토바이에서 사랑을 만들며 또한 오토바이에서 아이들을 키운다
오토바이는 그들에게 생계를 위한 교통수단이며 가족들의 이동수단이다.
그들은 절대 과속을 하지 않으며 30-40km 정도로 차례로 이동한다.
절대 추월하는 법이 없는 여유로움을 지녔다.
정말 무질서해 보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흐름을 갖고 규칙적으로 움직인다.
사람들을 배려하며 자동차는 일방적으로 오토바이를 압도하지 않는다.
매연에 목이 아직도 싸하지만 쎄움을 타며 마셨던 매연의 느낌
복잡하고도 활기찬 하노이의 모습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다.
먼지속에서도 아이들을 키워내는 생명력을 지닌 하노이의 사람들 젊은이들.
가족과 늘 함께하기를 좋아하는 농경문화에 바탕을 둔 문화.
우리 나라가 30년 전에 가지고 있었던 문화가 베트남의 산업화와 함께 어떻게 변할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땅이 넓고 곡창지대가 넉넉해서 농촌 문화가 쉽사리 사라질 것 같지는 않지만
도시에서 힘겹게 행상을 하는 농촌 아낙네들이 종종 보일 때면 안스러움과 걱정을 동시에 느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