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ronaized 2022 - 29. 그림자가 빛을 먹는 밤까지 from 다낭 to 빡세
한 달만에 다낭에서 보이 국경을 넘어 라오스로 향한다.
매달 1번 이상을 국경을 넘다 보니 이제는 딱딱함이 주는 긴장마저 사라졌다.
어떤 국경에서는 어느 곳으로 가서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익숙해졌다.
이런 편안함과 익숙함에도 새롭게 만나는 것이 있어서 다시 길 위에 설 수 있나 보다.
비록 그 새로움이 혐오스럽거나 공포스럽거나 고통스럽더라도 살아있음을 자각하게 해 주니 고마운 일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만이 주는 미세하고 정밀한 새로움마저 간혹 느끼게 된다.
국경에서 사이세타에 이르는 100여 킬로미터의 길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사방이 온통 빽빽한 밀림이며, 드문드문 있는 마을의 규모도 형태도 거의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새롭게 만나는 것이 있고 새롭게 생겨나는 마음이 있다.
방치되어 사라져가는 나름 현대식으로 지은 아타프 공항이 그렇고
사이세타 시장 앞에서 만나는 세타티랏 대왕도 그렇다.
해양제국을 꿈꿨던 젊은 왕은 외진 이곳에서 억울하게 야망을 접어야 했다.
그의 담대한 꿈과 원통한 한이 비엔티안의 탓루앙에서 느꼈던 마음보다 더 진하게 와닿는다.
아타프에서 볼라벤 고원의 동쪽 사면을 따라 뱅푸캄 삼거리까지 가서 좌회전을 한다.
그러면 세콩과 따탱을 거쳐 가는 것보다 빠르게 고원을 횡으로 관통해서 빡송을 지나 빡세에 이른다.
길의 양옆에 산재한 폭포에는 눈길을 주지 않고 서늘한 고원 길을 달리며 선명한 고원 하늘을 담는다.
의례적으로 들르는 하이랜드 커피 농장에서 더욱 시들어진 단면을 확인하고
최근에 빡송 시장 뒷편에 생겨난, 어쩌다가 관광지가 되어버린 카페를 찾는다.
라오스 내전 당시에 생겨난 흔적을 포장하지 않고 커피와 어울리게 한 탓에
역사적인 아픔에 공감하거나
허물어 지는 것에 대한 매혹을 느끼거나
고원의 커피 맛에 빠지거나
소문을 따라 오거나 하는 이유로 점점 많은 이들이 찾는다.
그리고 한 달만에 찾은 새로울게 딱히 없는 고향 같은 빡세에서 고향 사람 같은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한 동안 그녀의 주치의 역할을 했던 친구에게 오랜 여정에서 생긴 특히 지난달 다낭 홍수 때 크게 다친
그녀의 뼈와 근육과 심장과 폐를 위한 이틀간의 대수술을 맡기며
그림자가 빛을 먹는 빡세의 밤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