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라~모르겠다 하고 무작정 떠난 부부여행(1편- 카오산.2014년6월1일~9월30일)
'뽀~옹'
옆에서 자고있던 아내가 모닝방귀를 뀐다.
결혼7년차...우리는 태국에와서 비로소 방귀를 트는 사이가 되었다.
태국은 뭔가 사람의 나사를 한두개 정도 빼버리는 묘한 분위기가 있다.
처가식구들과 1주일간의 파타야여행을 마치고 무척이나 피곤했던 나는(7명의 식구들을 데리고 가이드노릇을 하는건
정말 힘든일이었다...새삼 가이드분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겼다) 새우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본다.
어제도착한 카오산의 밤거리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편의점을 제외한 모든 상점은 문을 닫았고,술에 취한 콘파랑(서양인) 몇명이서 보도블럭 위에 걸터앉아서
떠들고 있을 뿐이었다.
사실 파타야는 쿠테타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듯 했다(다만 편의점에서 술을 파는 시간은 오후5시 이후라는것 빼고)
밤거리에는 밤새 파랑들과 푸잉타이(태국여성)들로 넘쳐났었다.
하지만 수완나품 공항에서 놀러온 후배와 조우하여 밤12시쯤 도착한 카오산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밤 12시가 조금 넘은 시간의 카오산거리.편의점 두곳과 노점 두세곳만 영업을 하고 있었다)
미리 예약해둔 겟하우(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고 길거리 노점에서 팟타이(볶은 쌀국수)와 카우팟(볶은밥)으로
요기를 한 우리는 겟하우 냉장고에 들어있던 맥주를 싹~다 비우고 나서야 잠이 들었었다.
"마누라,오늘은 뭐하고 보낼까?" 눈꼽을 비비며 옆에 누워있는 아내에게 넌지시 물어본다.
"낮에는 더우니까 밥먹을때만 나갔다가 해지면 근사한데서 저녁먹어요" 아내가 대답한다.
사실 우리부부야 장기여행인지라 시간이 많아서 이것저것 바쁘게 할필요는 없었지만 멀리 한국에서 놀러온 후배녀석이
있는지라 나는 이런저런 계획을 세워두고는 있었다.
'왓아룬(새벽사원)을 둘러보고 파쑤만요새를 가볼까나...'
하지만 늦은 아침식사를 하러 밖에 나간순간 우리의 계획은 머릿속에서 하얀재가 되어 날라가버렸다.
두피가 타들어가는 뜨거운 햇살....머리카락이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는듯한 느낌을 받으며 카오산거리에서 300미터정도
떨어져있는 어묵쌀국수집을 찾아갔다.
'찌라'라는 이름의 이 국수집은 많은 블로거들 사이에서 맛집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곳이었다.
역시나 현지인들로 북적이고 있는 이 자그마한 국수집에서 겨우 자리를 잡고 앉았다.
(국수의 종류는 면의 굵기에 따라 굵은면,얇은면,넙적한면 등 몇가지중 선택을 하면된다.어묵은 따로 3인분을 시켰다)
점심을 먹고 숙소까지 걸어가던 우리는 엄청나게 뜨거운 방콕의 햇살에 미처 숙소까지 다다르지 못하고 결국 낙오하고
만다.
때마침 오아시스처럼 빚이 나는 스타벅스를 발견하고 좀비처럼 안으로 들어선다.
'사왓디 캅~(안녕하세요)' 종업원이 반갑게 맞이한다.
'카훼 아메리까노 옌 능, 카훼 모카 옌 능 마이싸이 휘핑 래 카훼 카푸치노 옌 능,커 탕못 싸이 남캥캅'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잔, 차가운 모카커피 휘핑없이 한잔, 차가운 카푸치노 한잔요, 전부 얼음좀 넣어주시고요'
주문을 마치고 우리는 마치 시체처럼 쇼파에 널부러진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같은 산송장같은 여행자들이 제법 있다.
"야,이 더운데 무슨 구경은 구경이고,고마 숙소 수영장에서 놀다가 해떨어지면 밥이나 무러가자"
"오케이 오케이 쪄죽것슴다 행님.쉬엄쉬엄 놉시다"
나의 제안에 후배도 맞장구를 친다.
우리는 해가질때까지 게스트하우스 옥상에 있는 자그마한 풀장에서 책을 읽거나 수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쿠테타의 영향인지 숙소에 단한명의 한국사람도 볼수가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스트하우스의 모든 방은 서양인들로 '헝 마이 왕'(빈방없음) 상태였다.
나는 선베드에 누워있다가 살짝 잠이 들었다.
꿈을 꾸었는데 맑은 하늘에서 폭우가 갑자기 쏟아지는 꿈이었다.
"앗 차차차차차 차거워~~" 깜짝 놀라서 허우적거리며 잠에서 깨어난 나는 수영장에서 태국꼬마가 물을 튀기며 노는모습을
보고 혼자서 멋적은 웃음을 지었다.
"아, 행님도 물맞고 잠 깼능교, 자다가 물벼락 맞는 꿈을 꾸고 깻다 아입니까"
신기하게도 후배녀석도 나랑 비슷한 꿈을 꾸고 잠에서 깼나보다.
"배 안고프나? 밥무러가자. 마누라도 배고프제?"
아내도 배가 고픈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니 온다고 경치 직이는 식당 알아놨다이가.나가서 툭툭이(태국 교통수단,삼륜차처럼 생겼다)타고 일단 나가자."
"빠이 타논 쌈쎈,쏘이 쌈 캅" (쌈쎈거리 쏘이3으로 가주세요)"
기사에게 목적지를 말하고 우리는 강변 식당으로 향했다.
짜오프라야 강변에 위치한 식당은 가족단위의 현지인들과 t.m.b은행 직원들이 회식을 하고 있었다.
각종 요리를 시킨 우리는 배가 터지도록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온다.
(짜오프라야 강변에 위치한 낀롬촘싸판:바람이 부는 집 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내일은 후아힌으로 가기로 예정되어있다.
후배의 아는 선배가 태국에서 15년동안 살고있는데,자기 와이프의 아는 동생을 마침 소개시켜주기로 했다.
(사실 후배녀석은 나를 보기위해 태국에 왔다기 보다는 소개팅하러 태국까지 온듯한 느낌을 받았다ㅋㅋ)
"짜샤,내일 후아힌가는 차안에서 자고 오늘은 밤새 술이나 푸자."
"오빠야,그럼 나는 노트북으로 영화한편 볼게.둘이서 마시라" 아내는 옆 침대에 누워서 영화에 빠져있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방 냉장고에 들어있던 맥주를 싹 비우고,후배가 가져온 소주를 4병이나 마시고 나서야
각자 잠자리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