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구석구석 엿보기-3(훼)
8월28일(금)
왕릉 투어에 나섰다.
또 다국적군이다.
영국.미국.스페인.네덜란드.뉴질랜드.호주.베트남.버마인에 섞여
한국인은 나 혼자다.
서양애들은 혼자 여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두 부류다.
정말 혼자 여행하는 녀석들은 말을 붙이면 퉁명스럽다.
다른 부류는 어딘가 움직이면 눈을 번뜩거리며 일행을 찾는다.
그리고 원래 친했다는 듯 무지 시끄러워진다.
이런 넘들은 피해준다.
<민속 마을에서>
<주인냥반 낮잠 자는 곳인가 보다..남의 집 도촬>
뜨떡 왕릉에 갔다.
왕릉을 들어가는 대신 왕릉 주위 담을 따라 혼자 산책하는 것을 택했다.
나무와 그늘이 많은 조용한 숲길.
공기도 시원하고
담 하나 사이로 안에서는 관광객의 북적거림이
담밖으로는 아무도 없는 오솔길.
그깟 담하나 사이에
우리의 마음속에도 그렇게 허무한 담이 많을 것이다.
<갖다 붙일 문구가 따로 있지..버스도 대리 하냐..뭣도 모르고 보디 글로브 티 입고 다닌 것들이나..>
민망 왕릉으로 향한다.
우와하고 클래식하다.
베트남 왕 중 가장 태평성대를 누렸던 왕이란다.
정문은 왕이 승하해 이곳에 들어온 이후 한번도 열리지 않았단다.
후궁은 500명, 152명의 자식을 뒀다 한다. 그러니 50세에 죽지..
자식과 후궁이름을 몰라 번호로 불렀단다.
호수와 건물배치가 정중동. 편안하고 안정적인 구조다.
이 놈은 중국 문화에 매료돼 지가 직접 왕릉을 설계했단다.
다음은 카이딘 왕릉.
웅장하고 독특하다. 좀 좁지만
경사진 사면에 있어 멀리 탁 트여있다.
꼼꼼하고 섬세하게 조형물을 배치했다.
이 녀석은 1920년쯤 왕이었는데
프랑스 문화에 도취됐단다.
그래서 당시 프랑스 성당 건축 비슷한 양식을 구사했다고.
그 멋진 왕릉들은 결국 사대주의에 빠진 왕들이 만든 어쭙잖은 신식 건물인 셈이다.
정신이 확 든다.
우리가 말하는 '신식'이라는 것도
서방의 그것을 뒤늦게 베끼고
그것을 세련됐다고 하지는 않는지.....
과연 우리 것은 무엇이고 정통성은 뭘까..
<나는 저런 병마용 말고 젊은 언니들 산채로 몇 명 넣어줬으면..>
점심을 먹고 여행팀이 구엔 왕릉 투어를 하는 동안
나는 주변 뒷골목을 배회했다.
그냥 서민들의 생활.
손님없는 이발소에서 낮잠자는 아저씨.
더운 날씨에 같이 잠든 견공.
벌써 맥주 빈병 2~3박스 깔고 앉아버린 동네 건달들.
길바닥에서 카드하는 10대 소년들.
무언가 흥정하느라 목소리 높이는 아주머니
날보고 수줍어하는 10대 소녀.
아이에게 젖빨리는 젊은 엄마.
화려한 종로 거리 바로 뒷편에
서민의 애환이 서린 피맛골이 있듯
왕궁앞 고풍스런 거리와 은행.기관이 즐비한 대로변 사이 뒷골목 풍경이다.
<사진 찍는데 아저씨 자다깸..서로 화들짝 놀람 ㅋㅋ>
<10인분은 나올 것으로 사료됨>
티엔무 사원에서 108배를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부족해 10번쯤 하고 물러섰다.
조카들과 부모님의 건강..형.형수의 성공..나의 빠른 회복을 빌었다.
버마 녀석이 "야..한국 절하는 방식이 다르네..
너희는 절하고 왜 손바닥을 하늘로 올리냐"
흠..알았는데..걍 코리안 웨이라고 뭉겠다.
부처를 믿느냐길래 나 자신만 믿는다고 답했다.
불교는 자기 수행이고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든 예수를 믿든
나는 너 나은 나 자신을 만들고 싶을 뿐이라고 말했다.
녀석이 웃으면서
"어..공부 좀 했네.."..그러고 보니 불교국가 출신이다.
태국으로 유학가서 박사 학위를 하고 있단다.
언제 돌아가냐 물었더니 웃기만 한다.
花無十日紅이란 말을 갈쳐줬다.
군사정권이고 지랄이고
걔들은 너보다 더 유한한 녀석들이니
조국을 잊지 말라고 했더니..
웃는데 눈빛이 슬프다.
니들은 일본과 맞먹는 아시아 강국 아니냐
너희들이 모르는 아픔이 있다고 한다.
우리도 니들한테 안밀리는 역사가 있다고 말해주려다 눌러담았다.
프로그래머 답게 모바일 세상이 오면 더 좋아질 거라 하길래
모바일 덕분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형태로든
상사한테 전화받고 일한다.
한 밤중에도 술 쳐먹다가도 전화오면
그때부터 일 시작한다.
그윽한 밤 업소에서 술쳐먹다 마누라가 화상통화 하자고 하면
술먹다 말고 미친놈처럼 거리로 뛰어나간다고 했더니..낄낄댄다.
<승복 색깔이 우리보다 밝다. 더운 나라니까..>
<흐언강 일몰>
<팔자에 없는 궁중요리를..그것도 코스로..>
얼른 샤워하고 나와
트로피컬 가든이란 요리집에 갔다.
마지막밤이라 호사 좀 한다.
전통음악도 같이 연주해주는데..
코스 궁중요리 시켜먹는데 우리 돈 1만5천원이나 한다..ㅋㅋ
참 매력적인 나라다.
배운게 도적질 마지막 밤이란 핑계로
노변 까페에서 말기 시작한다.
베트남 생맥주에 베트남 보드카 션하게 몇잔 말아 먹고
알딸딸해져 숙소로 돌아왔다.
<분 보 훼>
*8월29일(토)
짐을 대충 챙기고 자전거를 빌렸다.
이넘들이 좋아한다는 Bun Bo Hue란 국수집에 가서
Bun Bo Hue를 시켜먹었다.
두툼하고 탄력있는 면발이
푸짐한 소고기 육수에 담겨 있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깊은 맛이 있다.
간이 짜면 넣어먹으라고 준 뜨거운 국물을 숟가락으로 떠 먹다
아주머니 한테 혼났다.
원조집 욕쟁이 할머니 버전.
옆테이블 있던 베트남 처녀들 거의 쓰러지게 웃는다.
이것들을 콱 그냥..
히죽 웃어줬다..못 생긴 것들이면 함 줘 박아줬을텐데..
<욕쟁이 할머니>
자전거를 타고 다시 주택가 구석구석으로 파고 들어본다..
이렇게 더운 날인데 이넘들 좀체로 늘어지지 않는다.
틈만나면 늘어지는 인도네시아 놈들과 달리
땡볕아래서 뭔가 일하는 놈들이 많다.
사회주의 국가인 탓도 있겠지만 거지도 없다.
어떻게든 삶을 영위하고 있다.
집에 자기나라 국기를 걸어놓은 집도 많다.
교외 주택가에서 길을 잃었다.
어른 키 넓이도 안되는 비포장 도로를 1시간 이상 헤맸나.
외국인을 어찌나 신기하게 보는지..
지도.나침반.동네 아저씨의 도움을 받아 길을 찾아 나왔다.
<평범한 주택가>
<요놈들도 구슬치기 삼매경>
<훼 사범대학..돌아가 맘대로 휘졌고 다녔는데 알고 보니 여대라 시껍>
<교외에서 길을 잃고..>
<외국인을 보면 일케..웃어준다>
호치민 박물관을 들어섰다.
공짜인데 1만동 달라한다. 승강이가 귀찮아 줬더니 아니나 다를까
지 지갑에 넣는다.
인민위원회 으리으리한 청사엔 모두 유리창이 닫혀 있다.
인민들과 함께 검소한 삶을 살던 호치민의 정신은 어디로 갔는지.
인민들은 비위생적이고 더운 곳에서 하루를 영위하는데..
호치만 박물관엘 갔다.
Revolutionary morality can be explained as below.
To be able to decide right or wrong and be firm.
Be royal with country and faithful with the people.
이란 글귀가 눈에 늘어온다.
명문이다.
*여행을 마치며
결국은 사람 아니었나 싶다.
대학교 때부터 그토록 베트남을 오고 싶었던 이유.
베트남 사람들을 접하는 것은 한 없는 즐거움이었다.
소박하고 순진한 사람들.
친절하고 다정다감한 사람들.
이면에 있는 스마트하고 공격적인 근성.
결국 그들과 우리는 비슷한 사람들 아닌가 싶다.
중국의 Sub-culure 국가 중 가장 말 안듣는 나라.
명민하고 강인하고 부지런한 국민성으로
중국 문화의 정수를 가장 깊이 깨우쳤지만
끝까지 말 안듣고 정체성 투쟁을 하는 나라.
고개 숙이는 듯 끝까지 개기는 口蜜腹劍의 나라다.
가시가 많은 나라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가시만 잘 발라내면
살은 물론
차분히 우려먹고 싶은 뼈까지 있는 게 베트남이란 나라다.
훼에서 비행기로 호치민까지
호치민에서 인천까지..무거운 발걸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