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에 근무하는 안나라는 아가씨가 2.010년이 하노이 천도 1.000년 째 되는 해라고
꼭 다시 오라고 합니다.
그러면 무료로 재워주고 먹여줄 것인가요? 그건 아니지요?
2010년은 베트남� 입장에서는 대단히 영광스러운 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세상의 1등국가라고 하는 나라의 역사가 하노이 천도 1.000년에 비하면 깜도 되지 않죠.
하노이는 베트남이 수도로 정한지 올해로 정확히 1.000년이 된답니다.
아마도 올해는 하노이에서 많은 축제가 있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이 조선시대인 1.405년 11월 6일 천도를 하였으니 올해로 605년입니다.
우리에게는 수도뿐만이 아니라 1.000년 이상을 이어온 신라가 있습니다.
세상에 1.000년 이상을 이온 온 나라가 지구 상에 몇 나라나 될까요?
한국 관광객이 하노이 관광을 할 때 대부분 들리는 땀꼭이라는 곳이 있다.
양철 배를 타고 두 시간 정도 수로를 따라 세 개의 동굴을 통과했다가 돌아오는 뱃놀이 하는 곳이다.
그런데 그곳을 가다 보면 먼저 들리는 곳이 호아루라는 곳이다.
호아루(Hoa Lu)는 한자로 화려(花閭)를 말한다.
이곳이 바로 1.000여 년 전, 비엣족의 첫 통일 국가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는 천여 년간 중국의 지배하에서 지냈다.
호아루라는 곳은 베트남인들에게는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당시만 해도 베트남은 중남부 지방에 강력한 참족의 참파 왕국이 있을 때라 비엣족은 북부지방에 근거를
둔 그 세력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이 시대는 우리나라는 고려가 건국되었을 시기다.
월족은 중국 광동, 광서지역과 베트남 북부지역에 뿌리를 두고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결국 중국에 영향 아래
있다가 한 무제가 한사군을 설치할 때 중국에 복속되었다.
한 무제는 광동, 광서에 4군을 설치하고 기원전 111년에 홍강 델타지역에 3군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월남 지배는 당나라가 멸망할 때인 938년까지 1천 여년을 지속한다.
그래서 베트남이 중국과의 1.000년 전쟁을 하며 지킨 나라라고 자부심을 갖고 있다.
예전 왕궁터였음을 떠올리게 하는 이런 유적만 남아있다.
호아루의 중요성은 최초로 중국으로부터 독립한 베트남 왕조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그 후 李太祖라는 리 따이 또가 탕롱(昇龍)이라는 하노이에 1.010년 수도를 정하며 강력한 리왕조를 연다.
올해가 2.010년이니 지금으로부터 딱 1.000년 전의 일이다.
호아루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리면 물소 탄 노인이 있다.
이곳에서는 물소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곳 호아루 출신인 딘보린(丁部領)은 어렸을 때 물소 돌보는 일을 하며 자랐으며 아이들과 전쟁놀이를
할 때 늘 물소를 탄 골목대장이었단다.
딘보린은 베트남인들에게 딘 띠엔 호앙(丁先皇)이라는 이름으로 추앙을 받는 중국으로부터 최초의 독립
왕조를 세워 베트남을 독립시킨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곳의 지리적 이점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방어에 쉽다는 점이다.
당시의 규모는 알 수 없고 지금 이곳에는 두 왕을 섬기는 사당만 있을 뿐이지 별로 볼만한 것은 없으나
땀꼭 가는 길목에 있어 끼워 팔기 하는 관광지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딱 하루 코스가 되니까....
사당 입구를 들어서니 타이빈(太平)이라는 글자가 있는 커다란 깃발이 걸려 있다.
태평이라는 말은 970년 처음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건국을 선포하고 베트남 역사상 처음으로 정한 연호다,
사당이 두 개 있다.
아마도 오래도록 태평성대를 기원하며 연호를 정했을 게야.
하나는 최초 이곳에 터를 잡은 딘(丁) 왕조의 딘 띠엔 황(丁先皇, 정씨 왕조의 선왕이라는 의미)이라는
왕을 모신 사당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부하장수로 있던 레 호안(黎桓 : 후에 레 다이 한(黎大行)이라고 불리며 추앙을받는다)
을 위한 사당이다.
딘왕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딘왕은 셋째 아들인 딘 항랑을 황태자로 삼자 통일에 중추 역할을 한 큰아들인 딘 리엔은 이에 불만을
품고 사람을 시켜 딘 항랑을 살해한다.
그러나 1년 후 또띡(杜釋)이라는 신하에게 딘 리엔은 아버지와 함께 살해를 당한다.
한마디로 줄초상이 난 거다.
일이 이렇게 전개되자 유일하게 살아남은 둘째 아들 딘 또안이 6살의 어린 나이로 왕의 자리에 오르게
되고 아버지에 의해 십도장군(十道將軍)에 지명된 레 호안(黎桓)이 자연스럽게 섭정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역사의 스토리는 뻔하다.
레 호안은 부왕이라고 칭하며 서서히 권력을 장악하지....
왕궁에서 매일 밤늦게까지 정무를 보다가 선왕의 부인과 흉흉한(?) 러브스토리가 새어 나온다.
신하들이 왕권과 부인까지 탐한다고 군사를 모아 레왕을 습격하나 오히려 반격을 받고 모두 죽고 만다.
그러면 게임은 끝났다.
준비하고 대비한 자는 이렇게 나라를 손에 움켜쥘 수 있다.
습격을 했는지 습격했다고 핑게삼아 반대로 습격했는지.....
선왕에 의하여 십도장군이라고 병권을 부여받았지, 선왕의 첫째 아들이 막내를 죽여 주었지,
신하 중에 한 사람이 선왕과 첫째 아들을 한꺼번에 죽여 주었지, 그리고 둘째는 코흘리개 6살짜리....
푸 하하하하하~~
그래서 레 호안은 연호를 띠엔 푹(天福)이라고 정하고 두 번째 왕조를 연다.
天福이라는 띠엔 폭이 무슨 말이냐?
그러니 하늘에서 복이 넝쿨째 굴러왔다는 이야기다.
왕권도 자연스럽게 쥐었고 덤으로 선왕의 왕후까지......
그러면 왕후와 모종의 로맨스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소문만이 아니었구먼!
장군과 왕후마마 사이가 당장 여보, 당신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天福이라고 연호를 정했나?
사찰이라기보다 마치 우리 눈에는 무당집 같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그건 우리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베트남 사람의 눈으로 보아야 제대로 보일 것이다.
띠엔 푹(天福)이라고 연호를 연 레 호안은 셋째 아들을 후계자로 삼았지만 다섯째 아들인 레롱딘(黎龍鋌)이
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른다.
도대체 질서가 없다. 보고 배운 게 죽이고 빼앗는 일이다.
그는 요즈음 말로 하면 사이코 패스다.
매우 잔혹하여 걸핏하면 사람을 죽이고 죄인에게 잔혹한 형벌을 가하여 고통받으며 죽어가는 것을 즐겼다.
기름을 바른 짚을 죄인 몸에 감고는 불을 붙이거나, 나무에 올라가게 하고 나무를 베고, 죄인의 손발을
하나씩 잘라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즐기고, 강가에 우리를 만들어 죄인을 가두고 밀물 때 물이 들어와
빠져 죽는 모습을 보며 즐겼다고 한다.
그런데 그는 치질이 매우 심해 이런 모습들을 앉아서 제대로 보지 못하고 누워서 낄낄거리며 구경했고
정무도 누워서 보았기에 자빠져 왕 노릇을 했다고 하여 와조(臥朝)라고 불렸단다.
레롱딘은 책을 너무 많이 읽었나 보다.
주지육림에 빠져 은나라 마지막 왕이었던 주왕이 달기에게 보여주기 위헤 불에 달군 구리 기둥에 죄인을
걸어가게 하며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즐긴 것과 같이 어느 시대나 사이코 패스는 있었나 보다.
참 성질 한 번 더럽다....
그런 더러운 성질을 지녀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즉위한 지 4년 만에 사망했으며 그때 그의 아들은 겨우
열 살이었기 때문에 모든 신하는 궁중의 근위대장이었던 리꽁우언(李公蘊)을 추대하여 재위에 오르게
함으로 레왕조는 3대, 29년 만에 막을 내리고 베트남의 새로운 국가형태의 기틀을 다진 리(李)왕조가
탄생하게 된다.
리 꽁 우언이 바로 리왕조의 시조이며 베트남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리 따이 또(李太祖)다.
이듬해인 1010년 수도를 탕롱(昇龍)으로 옮기는데 이곳이 지금의 하노이로 이제 1.000년이 되었다.
베트남에서는 모든 신하의 추대에 따라 왕위에 올랐다고 하였으나 중국의 기록에는 리꽁우언이 겨우
열 살밖에 안 되는 어린 왕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고 기록되었단다.
화려(花閭)라는 아름다운 이름을 지닌 호아루에서 佳人이 들은 이야기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그래도 역사는 승자의 역사다.
이곳은 후대에 세워진 사당으로 역사 속에만 남아있는 그런 곳으로 유적이라고는 별로 없는 곳이다.
보여줄 것도 볼 곳도 없는 그런 곳인 듯하다.
호아루.... 花閭라는 곳... 그냥 이름만 아름다운 그런 곳이다.
그럼 왜 갔느냐고?
차를 타고 가다가 내리라고 해서 그냥 얼떨결에 내렸다.
그러나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껴야만 한다는 욕심을 버리고 마음으로 느끼고 영혼으로 즐기는 여행이
진정한 여행일진데.....
내가 귀가 멀면 멀쩡한 세상 모든 사람이 벙어리가 되는 게 세상 이치다.
아~~ 그래서 佳人은 아직도 초보 여행 중이다.
글쓴이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 내 손이 빈손이라고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오히려 빈손이라야 상대의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상대의 손을 잡아야 비로소 상대의 체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상대의 체온을 느껴야만 그들의 情을 느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