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상쾌한아침"의 태국여행기 - 베트남의 독립운동
에. 안녕하세요. "상쾌한아침"입니다.^^
베트남여행기에 올리기는 했습니다만... 사실 이 글은 제가 사내 독후감용으로 제출된 28page 분량의 글중 일부 입니다. ^^
뭐~~! 독후감이라고는 하지만 나름 여행기로써의 형식도 일부 띄고 있습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댓글 팍팍 아시죠? 퍼퍽!!!)
● 왜 백범일지 & 삼국지인가?
●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베트남여행…
1. 베트남으로 떠나다…
2. 베트남에는 춘향이가 실존했다???
3. 삼국지 – 베트남 – 한국의 연결점 “등패”
4. 압제자 중국, 프랑스, 일본, 미국 그리고 한국…
5. 한국인… 그 죄 많은 이름…
6. 우리는 정말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 참고자료
왜 백범일지 & 삼국지인가?
1998년…
난 그해 겨울에 본 한편의 CF를 아직 잊지 못하고 있다.
평상시와 같이 가족들과 함께 마루에 둘러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곧 세계로 진출하는 KT 라는 컨셉으로 찍은 한편의 CF가 방영되었다.
내용은 이렇다. 한 한국인 남성이 베트남에 방문했는데, 한 아름다운 여성의 ‘농(베트남 삿갓)’이 바람에 의해 벗겨져 날아가자 그 ‘농’을 잡아서 아름다운 아가씨에게 다시 건내주면서 베트남과 함께 하는 KT라는 것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CF에 나오는 베트남 아가씨도 상당한 미인이었지만, 그 아름다움이 묻혀 버릴 정도로 그 아가씨가 입고 나온 베트남 전통의상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여자에 비해 옷이 관심이 없다는 남자… 그 중에서도 유독 옷에는 눈꼽만치도 관심이 없던 나조차 눈을 떼지 못할 정도의 아름다움에 한동안 나는 그 CF가 방영되는 시간대에는 꼭 TV 앞에 앉아 그 CF를 감상하곤 했다.
나의 혼을 쏙 빼놓은 그 옷의 이름은 “아오자이”.
언젠가 꼭 베트남에 방문해 아오자이를 꼭 보리라는 다짐을 한지 12년이 지난 2010년…
난 올해 꼭 베트남에 방문해서 아오자이를 직접 보기로 결심을 했다.
“그래… 이제 방문할 때도 되었지. 그간 베트남 관련서적만 한 80권 정도 읽은거 같은데… 이정도면 방문하는데 있어 큰 문제는 없겠지?”
이렇게 베트남에 방문하는 김에 회사 내부 업무 중 하나인 독후감도 겸사겸사 처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베트남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베트남의 독립투쟁이 아닐까 한다. 다행히도 회사 독후감 도서로 독립투쟁과 관련된 “백범 김구”가 선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내 직급보다 한단계 위의 직급을 위한 독후감용 도서에 랭크되어 있는 문제점이 있었다.
“크으…”
대체 어떤 책을 선택하여 독후감을 써야 이번에 여행하는 베트남과 엮어야 내 취미도 살리면서 재미나고 유익한 독후감을 쓸 수 있을지 고민할 때… 내 직급용 독후감용 도서목록 중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문열의 삼국지
“으흠. 이거 좋은데? 베트남은 오랜 기간 중국의 지배와 독립투쟁의 반복인데다, 베트남은 삼국지와도 어느정도 연관성이 있으니 독립운동과 관련된 백범일지와 삼국지를 묶어 쓰면 좋겠는데! 기다려라 베트남! 곧 내가 간다!”
“흐흐흐흐….”
어두운 밤, 밤공기를 울리는 음습한 웃음을 흘리며… 나는 베트남으로 떠날 채비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베트남여행…
1. 베트남으로 떠나다…
2년간 거의 쉬지 못하고 힘들게 일했던 프로젝트가 드디어 끝났다.
그 동안 수고했다는 보상으로 회사로부터 10일간의 연속된 휴가를 어렵사리 받을 수 있었다.
“만세!!!”
하지만 기쁨도 잠시…
본부장님: 음. 아침아! 미안한데, 휴가를 가기 전에 꼭 처리하고 가줬음하는 일이 하나 있거든. 하루짜리이고 어렵지 않아. 그거 하나만 처리해 주고 가주라.
상쾌한아침: 아. 옙!
하늘 같으신 본부장님의 분부인데 그 누가 안 따를 수 있으랴… 처리해야할 업무를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해당 업무 추진일이 계속 미뤄지는 바람에 비행기 티켓예매가 늦어져 베트남행 이코노미석이 전부 매진되는 불상사가 생겨 버렸다.
“아악!!! 어쩌다 이런 일이…”
이코노미석은 전부 마감되었고, 베트남은 반드시 가야 하겠고… 게다가 운이 나쁘게도 한국 구정과 베트남 최고 명절인 “뗏( Tet: 베트남 구정 )”이 겹쳐버려 남아 있는 비즈니스석도 가격이 엄청나게 상승해버린 최악의 상황이었으나 어떻게든 가야하겠기에 어쩔 수 없이 비싼 돈을 주고 비즈니스석을 구입할 수 밖에 없었다.
비즈니스석을 타고 베트남 남부의 중심지인 호치민에 무사히 당도했고, 다음날 낚시를 해보고 싶은 욕심에 직경 6km에 이른다는 ‘쓰언흐엉 호수’가 있다는 고원도시 ‘달랏’으로 버스를 타고 달려갔다.
2. 베트남에는 춘향이가 실존했다???
“부릉. 부릉. 브르릉~!”
내가 탄 버스는 경쾌한 엔진음를 내며 달랏으로 내달린다.
나를 태운 버스는 “풍짱 버스”라는 회사의 버스인데 한국산 중고차량이다. 최근 한국에서 중고차량을 많이 수입하는 탓에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수 많은 차량에 전부 한국 기아, 현대의 마크와 한글을 단채 내달리고 있다.
그간 태국, 캄보디아 등지를 내달리는지 수 많은 일제 자동차를 보면서 수 없이 좌절감을 맛봐야만 했는데, 베트남 전역을 내달리는 한국산 자동차를 보면서 자랑스런 내 조국 대한민국의 위상에 감동을 맛 볼 수 있었다.
근 8시간을 달리니 밤늦게 달랏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지금 낚시를 하기 위해 내가 버스 정류장에서 가고 있는 곳의 이름은 “호 쑤언 흐엉”이라는 곳이다. ‘호’는 한자의 ‘호수 湖’’로 우리와 같은 호수를 의미하며, 쓰언흐엉은 ‘춘향(春香)’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도 익숙한 ‘춘향(春香)’이라는 이름을 들으니 베트남에 대한 동질감마저 느끼게 된다.
한국에서의 춘향이는 소설 춘향뎐에 나오는 가공의 인물인데 반해, 베트남의 춘향이는 실존 인물로 많은 문학작품을 베트남에 남겼다고 한다.
베트남 최고의 시인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춘향이의 본명은 Hồ Xuân Hương (호 쑤언 흐엉, 胡春香, 호춘향)으로 Chữ-nôm (추놈, 字喃, 자남) 이라고 우리 이두나 일본 가타가나, 히라가나와 비슷한 한문에 기초를 둔 베트남 문자로 시를 썼다. 이 베트남 문자 추놈은 알파벳을 기반으로한 현 베트남 문자를 사용함에 따라 이제는 그 명맥이 거의 끊겨 베트남 현지인들 조차 읽을 수 없는 문자가 되어 버렸다.
1700년대 후반에 태어나 1800년대 초반에 죽었다는 베트남판 춘향이 ‘쑤언 흐엉’은 베트남 최고의 시인으로 추앙받는 동시에 열녀 춘향이와 달리 한국의 어우동 저리가라 할 정도의 화려한 남성편력을 지닌 인물이로도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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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이제 곧 낚시를 할 수 있다는 부푼 꿈에 내달리는데… 이럴 수가… 호수에… 물이 없다… 물이 빠진지가 좀 되었는지 호수 밑바닥이 쩍쩍 갈라져 있다.
너무 놀라 베트남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아쉽게도 도착하기 2주전에 새로운 다리건설을 위해 호수물 전부를 빼버렸다고 한다.
기대했던 것과 다른 모습에 한숨을 내시는 가운데, 이러한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구정인 “뗏”을 맞이한 달랏은 연신 화려한 불꽃놀이를 쏘아 올리고 있었다
3. 삼국지 – 베트남 – 한국의 연결점 “등패”
낚시를 해야한다는 마음에 ‘나짱’이라는 도시를 추가로 방문했지만 “뗏”인 관계로 모든 낚시 선박이 쉬기 때문에 낚시를 할 수 없다고 코멘트를 들었기에 낚시에 대한 미련을 접고, 다음날 바퀴벌레가 득시글 거리는 침대버스에서 바퀴벌레에 놀라 비명을 지르는 여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역사와 품격이 느껴지는 도시 ‘호이안’으로 이동을 했다.
호이안은 과거 중국과의 핵심교역 도시로서 유지보수가 잘되어 기원전에 지어진 중국풍 건축물이 아직까지 존재할 정도로 잘 보존된 곳으로, 도시 일대가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과거 중국과의 핵심교역 도시답게 아직도 많은 화교들이 이곳에 살며, 자신의 조상들이 지어놓은 건축물을 관광상품화시켜 살아가고 있다. 바로 나는 이러한 고대 중국문화의 단편을 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바로 삼국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여러 중국풍 고가(오래된 집)에서 사당을 만들어 삼국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관우’를 모시고 있다. 자! 이렇게 베트남과 삼국지의 가교가 연결되었으니 삼국지,베트남 그리고 한국과 연관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삼국지 후반부에 ‘관우’가 소속되어 있는 촉(蜀)나라가 독립을 위해 거병한 ‘남만왕 맹획’을 찍어 누르기 위한 ‘남만정벌’을 기억할 것이다. 이 남만정벌 이야기 중 상황이 불리해진 맹획이 오과국의 올돌골에게 도움을 요청해 등갑군을 동원한 이야기가 나온다.
삼국지에 보면 제갈공명을 비롯한 촉군은 등나무에 기름칠을 한 가벼운 등갑군이 강을 이동해 공격해 오는 통에 예상하지 못하는 습격을 받으며, 나무로 만들었음에도 쇠로 만든 창과 칼 같은 병장기가 전부 튕겨버릴 정도의 말도 안되게 강력한 방어력에 제대로 대응 한번 못하고 계속 퇴폐한 끝에 기름칠한 나무갑옷이라는 약점을 이용해 제갈공명이 화공으로 박살낸다는 내용이 나온다.
고등학교 당시 해당 내용을 이문열의 삼국지를 통해 읽으면서 나무로 만든 갑옷 따위에 쇠로 만든 병장기를 이용한 공격을 모저리 튕겨내 버리며, 상처 조차 내기 어렵다는 대목에서 역시 중국은 뻥이 너무 심하다며 무시해 버렸고, 시간은 흘러 어느덧 나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대학에서 지내던 어느날, 심심해서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놀다가 읽게된 한권의 책으로인해 너무 놀란 나머지 눈이 다 튀어 나오는 줄 알았다.
그 한권의 책이름은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
조선시대 후반의 군사무예였던 ‘이십사반무예(二十四般武藝)’를 집대성한 군무예 서적이다.
심심풀이로 읽게된 이 한권의 책이 내 기존 상식을 깡그리 바꾸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바로 이 한권의 책에 남만정벌편에 나오는 등갑군의 장비가 나왔으니, 그 장비의 이름은 ‘등패(藤牌)’.
조선시대 군무예 ‘이십사반무예(二十四般武藝)’ 중 하나인 ‘등패(藤牌)’
수원산성에서 볼 수 있는 ‘이십사반무예(二十四般武藝)’ 중 ‘등패’ 시연 1
출처: [무예24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http://cafe.naver.com/muye24ki
수원산성에서 볼 수 있는 ‘이십사반무예(二十四般武藝)’ 중 ‘등패’ 시연 2
출처: [무예24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http://cafe.naver.com/muye24ki
수원산성에서 볼 수 있는 ‘이십사반무예(二十四般武藝)’ 중 ‘등패’ 시연 3
출처: [무예24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 http://cafe.naver.com/muye24ki
역사학자에 따르면 등갑군의 방어구는 관우의 청룡도와 함께 해당 시대에 존재하지 않던 시대를 초월한 장비라고 한다.(후대의 장비라 함.) 그리고 남만왕 맹획이 실존인물인지도 명확하지 않은데다, 실존했더라도 지금의 미얀마나 라오스인일 것이라 추정되는데 반해, 등갑군에서 사용하는 장비의 기원은 지금의 베트남 지역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에서의 등패 출현은 임진왜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총과 함께 왜군의 강력한 무기‘카타나(刀)’는 강력한 절삭력으로 인해 어지간한 고수가 아닌 이상 카타나를 받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잦은 왜나라 해적의 공격에 넌더리가 나던 명나라 푸젠성의 한 장수는 고수가 아니더라도 방어가 용이하면서 빠르게 대등하게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을 짜내기 위해 골머리를 싸매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무렵 지금의 베트남 일대에서 사용되던 등나무로 이용해 만들어 가벼운데다 나무라는 소재로 만들었다는게 믿어지지 않을정도의 경이적인 방어력을 자랑하는 장비를 알게 되었고 이 장비를 실전 배치해 효과를 봤고, 임진왜란 때 조선땅에 가져와 싸우기도 했다.
조선의 장수들은 강력한 카타나를 들고 공격 해오는 왜군들과 대등하게 싸우는 명나라의 등패수에게 큰 감명을 받고 이를 조선 병장기로 받아 들이게 되었고, 이 병장기는 이십사반무예 중 하나인 등패로 등재되어 군사적인 훈련방법 및 전략, 전술운용을 하게 되었다.
등패는 칼과 창을 막는데다 화살도 막을 수 있으며, 총도 경우에 따라 방어가 가능한 것으로 전해진다.
‘어떻게 총을 막을 수 있지?’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으나 임진왜란 당시의 조총의 위력은 지금의 총과는 비교가 될 수 없는 위력을 지녔다. 지금의 총들이 일렬로 서 있는 사람을 10~20명 정도 관통할 수 있는 점에 비해(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이 생포한 베트공을 처형할 때 일렬로 세워 실험해 봤다고 함.), 당시 총의 위력은 생각 밖으로 약해 관통보다는 몸을 일부 뚷고 들어간 납탄으로 인해 납중독 및 상처악화로 죽는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운이 좋으면 납탄도 튕겨버리는 것도 가능했으리라 본다.
현재 조선시대 등패의 원본 유물은 전해지지 않으며, 1934년 출간된 영국 왕리아시아학회 한국분과 논문집에 실물 사진이 남아 있는 상태로, 해당 사진과 문헌에 기록된 자료를 기반으로 등패를 복원해 사용하고 있다.
등패를 비롯한 이십사반무예는 수원산성에서 주기적으로 시연하고 있으므로, 관심이 있다면 한번 구경해 보며 삼국지와 조선시대의 향취를 느껴보는 좋은 경험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4. 압제자 중국, 프랑스, 일본, 미국 그리고 한국…
베트남에는 관우 사당이 존재할 정도로 삼국지의 인기는 우리들 못지않게 굉장히 높은 편이지만 삼국지의 높은 인기와 달리 중국에 대한 감정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인데, 이유는 천년이 넘는 기간동안 중국의 침략, 수탈, 강압 식민통치를 받아 왔기 때문이다.
중국의 식민통치를 받는 동안 계속적인 독립투쟁으로 인해 간신히 중국의 지배를 벗어났으나 얼마안가 우리들에게 있어 낭만과 아름다움, 세련됨과 전세계에 자유, 평등, 박애정신 전파한 아름답고 정의로운 나라로 비치는 프랑스의 잔인한 식민지배를 받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2차 세계대전을 말하면 일본, 독일 정도가 세계정복을 위해 온갖 살육과 인간말종이나 할 법은 인체실험 등을 하는 악의세력으로 그려지고, 영국, 프랑스 등은 자국의 독립 및 자유, 세계평화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매우 인도적인 국가로 그려질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악의 세력으로 그려지는 일본, 독일 못지않게 영국이나 프랑스도 살육과 인체실험들을 자행해 왔다. 프랑스 식민지배 당시 알제리 독립운동가였던 “프란츠 파농”이 저술한 책 “알제리 혁명 5년”에서 쓰여진 글들에는 이러한 대목이 있다. 일본이나 독일같이 사람들이 다 알정도로 드러내놓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프랑스계 병원에 입원한 병자를 대상으로 입원 환자 및 그 주변인들에게 특정 치료에 대한 정확한 지식전달없이 여러 실험이 자행되며, 그 치료를 빙자한 실험으로 너무 많은 이들이 죽어나가 정말 죽을 병에 걸려 언제 죽을지 모를 정도로 다급한 환자가 아닌 경우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자행되는 인체실험의 두려움 때문에 병원에 가는 것을 무척이나 무서워한다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전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평가받고 있는 베트남 호치민은 연설문에서 한 실화를 말하며 잔혹한 독재자 프랑스를 알리면서 베트남의 독립을 주장하기도 했다. 해당 연설문에 실린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한 기차선로 베트남인 관리자가 있었다. 평상시와 같이 기차가 지나갈 때가 되어 안전을 위해 자동차가 지나가지 못하도록 자동차 정지막대를 내렸다. 자신이 지나가는 방해했다는 이유로 자동차를 운전하던 프랑스이 격분한체 총을 들고 내려서 그 관리자를 쫓았고, 그 기차선로 베트남인 관리자는 이 말도 안되는 이유로 총을 들고 자신을 향해 미친듯이 뛰쳐오는 프랑스인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망을 치기 시작했으나 곧 몇군데 총을 맞은 후, 도망갈 수 없게되자 뒤쫒아 온 그 프랑스인으로부터 전신을 잔혹하게 짓이겨져 죽어야만 했다. 왜 우리가 그런 말도 안되는 이유로 총에 맞고 잔혹하게 짓이겨져 죽어야만 하는가?
자유자본주의를 주창하는 프랑스에게 이런 비인륜적인 일들을 계속 당하다보니 인간을 그저 소모품이나 자본재와 같이 그저 쓰고 버리는 부품취급하는 그들의 자유자본주의에 분노하며, 공산주의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독립운동 자금 및 자원을 당시 공산권에서 대폭 지원해준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봄.)
2차 세계대전 중반… 베트남에 진주한 일본군은 프랑스군을 몰아내고 베트남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오랜 프랑스군의 지배 끝에 스스로의 독립은 아니나 프랑스의 압제로부터 해방시켜준 일본에 대해 베트남 국민들은 고마움을 느꼈다. 하지만 얼마 안가 일본은 한국에서와 같이 그들의 본색을 들어내며 베트남에 압재를 가하게 된다. 흔히 우리들에게는 한국에서만 둔 것으로 알려진 위안부 등을 두었으며(일본 식민지에는 거의 위안부 같은 것이 있었으며 인도네시아 같은 곳은 포로로 잡은 네덜란드 여성들도 위안부에서 일하게 하기도 했다. 몇 년 전 월드 뉴스를 통해 해당 네덜란드 여성의 일본 위안부건이 알려지면서 전세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함.), 2차 세계대전 말기 수세에 몰린 일본은 부족한 식량을 메우기 위해 극심한 흉년에 몰려 자체 식량도 부족한 베트남들에게 강제 식량착취를 하면서 약 200만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베트남인을 아사(굶어 죽음.) 시키기도 했다.
처참하게 200 만명의 베트남인들을 굶겨 죽였음에도 결국 일본은 패퇴하고 잠시나마 베트남은 주변 식민세력으로부터 벗어나 안도의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 기간도 잠시 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써 승기를 잡은 프랑스는 다시 베트남을 침공했고, 프랑스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베트남은 필사적으로 싸우게 되었다. 전쟁이 장기화 양상을 보이자 프랑스는 전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치는 프랑스 외인부대 산하의 공수부대를 대량 침두 시킨다. 하지만 지휘관을 잘못 만난 외인부대원들은 지금의 베트남 하노이 서북쪽 디엔비엔푸 구릉지대에 몰려 도망도 갈 수 없는 지형에 갇혀 간단히 몰살 당하기도 한다.
잃는 것은 많은데 얻는 것은 없는 영양가 없는 전쟁이 계속 길어지면서 프랑스 국내 국민지지도나 정치세력은 위험에 직면하게 되어 프랑스는 베트남전에서 슬며시 빠져 나가길 원하게 된다. 이에 프랑스는 전쟁 바통을 미국에게 넘기고, 미국은 공해상에서 베트남의 공격을 받아 자국의 구축함 매독스호가 격침되었다는 '통킹만 사건'이라는 것을 구실로 대미국전의 양상을 띄기 시작한다.
이 때부터 베트남은 전세계 최고의 군사력을 지닌 미국과의 전면전에 접어들게 된다. 인류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최악, 잔인한 전쟁으로 기록되는 “베트남전(Vietnam War)”의 시작이다.
구축함 한척이 침몰 되어서 참전하게 되었다는 전쟁치고 미국은 엄청난 군사력을 동원해 베트남을 치기 시작했고, 베트남인들은 자신의 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게릴라전으로 장기화하면서 미군을 지치게 만들기 시작했다.
미국 역시 이전 프랑스와의 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장기화로 허덕이기 시작했고, 각 국에 지원요청을 시작했으나 고작 구축함 한척의 침몰 이유로 베트남 전체를 학살하다시피하는 그들의 별 볼일 없는 명분에 대부분의 국가는 지원을 하지 않았으며, 영국의 경우 공항 영빈을 위한 의장대 단 6명만을 지원했으며, 참전국 중 상당수가 몇십명 단위로 인원을 지원했다. 흔히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매스컴 조작으로 다국적군들이 대폭 지원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아래의 표와 같다.
국가 |
지원병력 |
호주 | 200명(차후 린든 존순의 압력으로 7000명 지원) |
뉴질랜드 | 30명(차후 미국의 압력으로 500명 지원) |
대만 | 30명 |
필리핀 | 17명(차후 미국의 압력으로 마르코스가 2000명 지원) |
태국 | 11,000명 |
영국 | 6명(의장대) |
한국 | 약 50,000명의 전투병 상주 (연인원 350,000명) |
미국 | 연인원 350만명 |
다소 의외로는 우리 한국과 태국이 1만명 이상의 인원을 지원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태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일본 진영 승리할 것으로 여겨 그들 진영에 붙었던 전례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끝난지 얼마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승전국이었던 프랑스와 미국의 전쟁참여 압박은 상당한 편으로, 이에 태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전례에 대한 책임과 당시 태국 내부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공산권 인원들의 도덕성들을 낮추면서 인지도를 깎기 위한 전략으로 당시 공산권과 자유자본주의을 대립의 장이었던 베트남을 이용해 공산권을 악행을 선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1만명에 이르는 인원을 파병하게 된다.(6.25전쟁 역시 비슷한 이유로 한국에 약 6300명 파병)
흔히 우리는 공산권으로부터 세계평화를 위해 베트남전에 파병한 것으로 아는데 이 역시 잘못된 것이다. 미국이 박정희에게 지원병 요청을 할 당시 미국을 대상으로한 박정희의 입장은 그다지 좋지 않은 편이었다. 이유는 몇가지가 있는데 박정희는 정식 출범한 정부의 수장이 아닌 군사 쿠데타 주동세력의 수장이기에 당시 미국정부에서는 박정희를 공식적인 국가 수장으로 보고 있지 않았다. 게다가 박정희는 공산당 세력인 “남로당”의 핵심인원 중의 한명이었던 전적이 있기에 자유자본주의로 대변되는 미국의 입장에서 박정희이라는 사람이 사상적으로 무척 위험한 인물로 비쳐지고 있을 때다.(이승만 시절 이승만이 공산당 탄압을 단행하자 박정희는 남로당의 정보를 팔아 자신만 살고 남로당을 거의 몰살시킴.)
안타깝게도 예나 지금이나 국가의 수장임을 인정받기 위해 미국 대통령을 찾아가는게 현실이다. 하지만 당시 박정희는 쿠테타 수장인데다 과거 공산당 전력이 있어 미국입장에서는 박정희를 한국의 공식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았다. 그런던 차 베트남전에서 피로에 몰린 미국은 가장 위험한 지역의 대리전을 위해 한국을 지목했고, 한국 공식 대통령이라는 인정과 함께 어느 정도의 국가 운영자금을 확보를 할 수 있는 베트남전 참전을 지지하며, 많은 이들을 베트남전에 참전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이에 한국군은 연간 미국군의 1/10에 해당하는 약 35만명에 이르는 군인들을 베트남 호이안 일대에 주배치하여 활동하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좋게 말하면 엄청난 승리이고, 나쁘게 말하면 미국으로부터 돈을 받기 위해 사람을 대량으로 죽였다고 볼 수도 있다.(안타깝게도 일본이 6.25를 발판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경제부상을 한 것에 대해 치를 떠는 우리지만, 우리 역시 베트남전을 반판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경제부상을 이루게 되었다. 역사는 정말 반복되는 것인가?) 또한 주요 활동무대가 밀림이 가장 무성한 지역인 관계로 미국에서는 차후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한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 코드명)”를 가장 많이 뿌린 지역이기도 했다. (한국군은 엄청난 전투력을 선보였는데… 어느 정도냐하면 한국군 1인 사망시 베트남군 세자리수의 사망자를 냈다고 여러 책에서 기록할 정도.<백단위>. 이 정도면 거의 학살이라 말할 수 있는 수준이다.)
베트남전의 장기화로 피로감이 극대화될 무렵, 미국방성인 펜타곤에서 한 문서를 작성하던 "대니얼 엑스버그(Daniel Ellsberg)" 수석 연구원은 자신이 작성하던 문서를 뉴옥타임스(New York Times)의 아는 기자를 통해 세상에 폭로하게 된다.
해당 문서의 이름은 통칭 펜타곤 페이퍼(Pentagon Papers)이라 불리는 문서로 공식명칭 "미-베트남 관계: 1945-1967(United States–Vietnam Relations, 1945–1967)"으로 총 47권(약 3000page의 설명과 4000page의 부속 서류로 구성)으로된 미국 국방성 1급 비밀문서였다.
이 문서에는 미국의 베트남 참전 구실이었던 "통킹만 사건"이 베트남 공산군이 아닌 미국 군대가 조작한 사건임 동시에 미국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벌인 내용이 담겨져 있어 미국과 세계 전체에 심각한 도덕성 책임 문제로 여론이 악화되자 전쟁을 계속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어 전쟁에서 빠져 나가게 되었고, 한국군 역시 철군하는 미군과 함께 자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5. 한국인… 그 죄 많은 이름…
나는 해외에 나갈 때 나는 더 이상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아 죽어가는 한국의 것들을 세계에 널리 알려 명맥을 이어 가고자 한복을 입은체 막걸리, 매실주, 떡, 한과, 엿 등을 챙겨서 여행을 한다.(나 때문에 엿(?) 먹은 외국인들이 꽤 된다.)
내가 그런 행색과 그런 물건들을 들고 여행하노라면 주변에서 미친놈으로 취급할 때가 꽤 있다. 때가 어느 때인데 한복 같은 것을 입고 다니냐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트랜드를 봤을 때 서양식을 입는게 당연한게 아니냐고 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그네들과 식사를 할 때면 해외임에도 늘상 한식만을 먹고, 김치를 못 먹게 빼앗아 갈라치면 김치가 없으면 너무 힘들다면서 너무하는게 아니냐며 도로 채가며 세계적인 트랜드에 맞춰 하루 세계 3끼 서양식으로 먹지 못하는 그네들의 앞뒤 안 맞는 언행을 보면 무척이나 우습다.(나는 하루 3끼 서양식으로 1년 내내 먹고도 버틸 수 있다.)
뭐… 한국인들이 김치를 못 먹으면 힘든데에 나름대로 이유가 있기는 하다.
때는 바야흐로 84 LA 올림픽 때로, 한국인 선수단이 가져온 김치로 인해 각국의 선수단이 고약한(?) 냄새 때문에 도저히 못 참겠다며 한국 선수가 가져온 의문의 음식을 제발 가져오지 못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이에 올림픽측은 한국 선수단 측에 김치를 반입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곧 한국 선수단은 시름시름 앓으면서 기력이 나빠져 제대로된 경기를 치룰 수 없게 되었고, 이 사실을 알게된 올림픽 측은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김치 반입을 허락했다.
왜 한국인들은 김치를 못 먹으면 시름시름 앓을까라는 궁금증을 느낀 한 올림픽 관계자는 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사해본 결과 한국인들의 장에는 타국인들에 비해 소화를 도울 수 있는 미생물이나 효소가 상당히 낮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리고 김치에서는 그러한 적은 소화능력을 보충해 줄 수 있는 미생물과 효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한국인들의 정상적인 소화대사를 위해서는 김치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김치의 소화관련 보충 능력이 너무 뛰어난 나머지 한국인 자체 소화능력이 어느정도 퇴화한 결과…)
겉은 세계적인 트랜드를 따라가면서 입은 세계적인 트랜드를 따라가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그리고 선진국의 것이라면 우리네 것들보다 다 좋다라고 생각하는 강박강념 역시 한 몫 한다.
얼마 전까지 하더라도 사교적인 술자리에서 꺼낼라치면 술맛 떨어지게 한다는 소리마저 들었던 막걸리… 선진국으로부터 극찬과 함께 인정을 받자 어느순간부터 우리의 막걸리는 소중한 것이야라고 말하며 갑자기 즐기기 시작했다. 얼마전까지 내가 해외에서 만난 한국인에게 한국을 알리기 위해 막걸리를 가져왔다며 꺼내 보여주면 미친놈 쳐다보듯이 했는데… 작년부터는 외국인들에게 좋은 것 소개하러 가져 왔다며 미소를 지어주는데…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변하고 간사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막걸리가 그러했든 한복 역시 그렇게 되리라 믿고 나는 한복을 입고 베트남 후에의 일반 여행객들이 사실상 안 다니는 시골 주택가를 슬슬 걸어다니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이 다니지 않는 지역이기에 많은 이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나를 쳐다본다.
‘잘 생긴건 알아 가지고 나만 쳐다보네…>ㅁ<;;;(갑자기 사람들이 돌을 던지네? 퍼퍽)’
혼자 온갖 망상(?)을 하며 걷고 있으메… 저쪽에서 핏대를 세운 꼬마아이가 달려와 가운데 손가락을 세운체 나를 향해 연신 같은 말로 분노를 담은체 악을 쓴다.
“응어이 한꾸억!!! Fuck You!!!”(한국인! 엿 먹어라!)
아! 우리 한국인들은 정말 많은 베트남인들을 죽였지! 어린 시절 한국에 놀러온 일본인 관광객을 봤을 때의 나의 불편했던 감정이 떠오르면서 마음이 무거워진다. 계속 떠들어대는 그 아이의 욕짓거리에 나는 한국인으로서의 자존심과 함께 나의 한복 상의를 벗어 천천히 옆에 메고 있던 가방에 구겨 넣어야만 했다.
우리를 지배했던 일제에 대한 분노와 당시 사항의 절망감을 잘 아는 우리들이다.
늘 다른 나라에 일본의 만행과 우리의 아픔을 이해해 주길 바라며, 알게 모르게 우리는 침략을 일삼지 않는 정의로운 민족이라는 자긍심 역시 없지 않아 가지고 있으리라 본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 나의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자부심은 깡그리 무너져 내려야만 했다.
이들에게 있어 우리 한국인들은 과거 한국을 수탈한 일본이나 다름없다. 비록 우리가 주 침략자가 아니었다고는 하나 정당성 없는 전쟁에 참여해 엄청난 베트남인들을 학살한 우리들이 이들에게 있어 곱게 비칠리 없다.
일본이 자행한 만행을 다른 국가에 알아주길 그렇게 바라건만, 우리는 그러한 만행을 그들에게 자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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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퓰리처 수상작: [소녀의 절규]
촬영: Huynh Gong Nich Ut
한 마을에 소이탄(맞으면 순식간에 불타버리게 만드는 탄. 맞으면 불타오르는 것으로 유명한 네이팜탄도 소이탄의 일종이다.)이 떨어졌다. “판틴킴 퍽”이라는 한 소녀의 옷에도 소이탄이 떨어졌고, 살기 위해 불타 오르는 옷을 벗고, 수치심도 잊은체 그저 뛰고 또 뛰었다. 이것이 전쟁이고, 우리 한국인들 역시 이러한 잔혹하고 무자비한 전쟁을 통해 많은 베트남인들을 유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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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전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노래 하나가 떠오른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이제서 돌아왔네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
너무나 기다렸네 굳게 닫힌 그 입술
무거운 그 철모 웃으며 돌아왔네
어린 동생 반기며 그 품에 안겼네 모두 다 안겼네
말썽 많은 김총각 모두 말을 했지만
의젖하게 훈장달고 돌아온 김상사
동네사람 모여서 얼굴을 보려고
모두 다 기웃기웃
우리 아들 왔다고 춤추는 어머니 온동네 잔치하네
폼을 내는 김상사 돌아온 김상사
내 맘에 들었어요
믿음직한 김사사 돌아온 김상사
내 맘에 들었어요
그 노래에 등장하는 김상사는 어쩌면 그네들이 너무나도 사랑했던 사람들을 영영 만나지못하게 만든 인물이었을지 모른다. 그들 역시 고향으로 돌아가 어린 동생을 반기고 그 품에 안고 싶었을지 모른다… 우리 아들 왔다고 춤추고 싶었을지 모른다…
한국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우다 일본군의 총탄에 쓰러진 안타까운 목숨에 우리 독립군의 가족들은 얼마나 많은 나날을 눈물로 지세웠을까? 베트남의 독립을 위해 목숨 걸고 싸운 그네들의 가족들은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눈물로 밤을 지세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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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조상을 괴롭힌 이들에 대해 우리는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그리고 우리의 조상들로부터 괴롭힘을 받은 이들은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나는 한 아이의 분노에 찬 욕짓거리에 여러가지 상념에 찬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6. 우리는 정말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을 당시 한국만이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은 것이 아니라 식민지배를 했던 국가의 극소수의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거의 모든 국가가 당시 식민지배국으로부터 우리 못지 않은 핍박과 억압 속에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고, 이를 벗어나고 조국과 자신의 민족의 안녕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던 독립투사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일본의 압제에 대항한 김구, 안창호, 함석헌 및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투사들이 있었다. 인도에는 식민지배자들이 자신의 육체를 지배할지언정 정신까지는 지배할 수 없다며, 지배자 영국인과 같은 폭력이 아닌 비폭력으로 저항해 지금까지 만인의 귀감이 되어준 마하트마 간디가 활동. 프랑스와 미국, 한국으로부터 베트남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 싸운 호치민. 미국의 압제와 핍박, 수탈에 시달리며 죽어가는 물라토의 삶에 충격을 받고 그들의 삶을 위해 투쟁한 체게바라.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자신의 모국에서 지금까지 기억되면서 계속 사랑을 받으며 자주 화자되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어떠한가? 그저 독립운동가란 초.중.고 사회, 역사 시험시간에 XX 독립운동 사건에 누가 폭탄을 던졌거나 총을 쏴서 누구를 죽였다 라는 오지선다형이나 괄호 속에 답을 채워넣기 위한 정도로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 오히려 한국의 독립운동가가 외국에서 더 존경을 받으면서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이유인즉 그저 3.1절이나 광복절이나 되어야 한번쯤 ‘아! 그런 사람이 있었었지!’ 정도로 기억되는데 반해 중국에서는 평상시에도 이토 히로부미을 사살해 중국의 독립운동에 불을 지핀 안중국 의사를 추모하거나 그 분의 독립운동정신을 기리기 위해 교과서에서 중요하게 다룬다. 그리고 그 사건이 있었던 하얼빈역의 바닥에 당시의 사건현장을 보존해 놓은 상태인데다가 1992년에 한국에서 열렸던 “오페라 안중근”이 한국인의 손으로 만든게 아닌 그를 추모하는 한 중국인 작가의 손에 의해 만들어져 중국에서 열렸던 오페라를 수입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중국에서의 안중근 의사에 대한 사랑은 대단해서 중국 내에서 옛날부터 자주 영화, 드라마화 되고 있으며, 실제로 안중근 의사를 존경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먼 타국땅에서 조차 인정 받으며 기억되고 있는 우리의 독립투사 안중근 의사인데, 정부에서 조차 의지가 약해 몇해 전부터야 그 유해를 중국에서 찾는 통해 아직 그 분의 유해를 한국땅에 가져 오지 못하는 상태이며, 이미 시간이 너무 많이 흐른데다 근래 중국 경제발전을 위해 중국 전역을 파헤치는 통에 안중근 의사의 유해를 찾을 가능성은 점점 낮아 지고 있는 형편이다.(현재 한국에 있는 안중근 의사 묘는 가묘임.)
중국의 하얼빈역(자료출처: 네이버)
삼각형이 안중근 의사가 저격한 위치이며, 위쪽 사각형 안이 당시 적격당안 이토 히로부미의 자리이다.
우리는 정말 목숨걸고 싸웠던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분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을 우리가 다른나라라는 이유로 빼앗고 있지는 아는가?
고 김구 선생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 소원은 무엇이냐?"하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치 않고,"내 소원은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오"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하는 셋째번 물음에도,
나는 더울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오"하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 가장 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지는 않는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 우리의 국방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우리의 경제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만하고, 우리의 국방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만하면 족하다.
어떠한 모략이나, 짐승같은 추악한 마음도 치열한 애국심 앞에서는 언젠가 그 정체가 탄로날 것임을 나는 확신한다.
인류가 불행해지는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며, 사랑이 부족한 까닭이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보람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들인 것이다.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들인 것이다.
과거 그 분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그 지켜야 했던 것이 우리만이 가지고 있었던 것인지 그 분들의 말씀과 역사를 통해 계속 기억하고 상기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알제리 혁명 5년
지은이: 프란츠 파농
출판사: 인간사랑
식민지배국 프랑스에 대항한 알제리 독립운동가 "프란츠 파농"이 쓴 책.
프랑스의 만행과 알제리 시민들을 상대로한 인체실험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간디 자서전
지은이: (간디) 역자: (함석헌)
출판사: 한길사
개신교계 한국 독립운동가인 고 함석헌 선생이 간디가 직접 쓴 자서전을 번역 및 추가 주석, 해석을 해 놓은 책…
굉장히 독특한 하나님 사상을 지닌 함석헌 선생의 해석으로 인해 힌두교 등에 나오는 모든 신을 하나님으로 지칭해 난위도가 비정상적으로 높다. (한글로 써있음에도 머리 속에서 해석하기 굉장히 어려움.)
자서전 초반부에 힌두교, 이슬람 국가 분열를 초래한 영국식민세력에 대해 무장독립운동이 아닌 평화적인 비폭력투쟁을 한 자신의 선택이 당시 용기가 없어 무장독립운동을 선택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짙은 후회를 술회하고 있다. 간디의 자서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최소 인도의 대서사시인 라마야나와 바가바드기타를 추가로 더 읽어야 한다.
씨알 함석헌 평전
지은이: 이치석
출판사: 시대의창
독립운동가 함석헌 선생에 대한 평전… 타 종교의 신들을 이교의 신이 아닌 하나님이 다른 모습으로 출현하신 것으로 해석하여 편가르기보다는 하나됨을 주창하고 있다. 계속 불화와 분열만 일삼고 있는 한국 기독계에 도움이 될만한 평전. 독특한 사상으로 인해 함석헌 선생이 직접 출간 또는 번역한 책들은 엄청난 난위도를 자랑한다…(직접 번역 및 해석한 바가바드기타 읽다가 죽는 줄 알았음…)
체게바라
지은이: 김용회
출판사: 대원씨아이
혁명아 체게바라의 일대기를 알기 쉽게 정리한 만화책
체게바라 평전
지은이: 장 코르미에
출판사: 실천문학사
혁명아 체게바라 평전
체게바라의 홀쭉한 배낭
지은이: 구광렬
출판사: 실천문학사
체게바라의 숨겨진 비화, 사망시 상황.
체게바라가 즐겨 읽은 시편과 직접 작성 시가 수록 되어져 있다.
지은이의 높은 문학성과 방대한 자료수집력에 혀가 내둘러진다.
호치민 평전
지은이: 정영목
출판사: 푸른슾
정치적 색깔을 뛰어남어 간디와 함께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독립운동가 중에 한명인 호치민에 대한 평전.
청렴의 본을 보이기 위해 국가 최고 주석임에도 다 헤어진 옷과 직접 자동차 타이어로 기어 만든 슬리퍼를 신고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도 했다. 공산주의자라기 보다는 독립을 위해 당시 상황상 어쩔 수 없이 공산주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인물.(공산권 내에서도 공산주의자가 아닌 민족주의자로 해석되어 정치적으로 공격받기도 했음.)
호치민 – 식민주의를 배격하라!
지은이: 호치민
출판사: 프레시안북
호치민이 생전 발표한 발표문과 편지, 담화문 등을 수집해 놓은 책. 서구언론에 의해 개조된 우리의 통념상 그저 착하고 아름다울 것만 같은 프랑스인들의 잔혹함과 살육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놓았다.
가로세로 세계사 – 동남아편
지은이: 이원복
출판사: 김영사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다.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내용도 많지만… 잘못된 내용도 많은 책…
베트남에서 보물찾기
지은이: 곰돌이 Co
출판사: 아이세움
한국에서 만들어 현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중의 하나인 “보물찾기” 시리즈 중 베트남편… 만화지만 다양하고 심도 깊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만화책 우습게 아는 사람이 읽으면 깊은 내용에 충격 받는 책.
베트남 – 큐리어스
지은이: 클레어 엘리스
출판사: 휘슬러
각 국가별 문화에 대해 잘 정리해 놓은 큐리어스 시리즈의 베트남판. 다양한 분야의 베트남 문화에 대해 잘 정리해 놓았다. 원작자가 단기간 베트남에 거주했던 사람이기에 내용의 깊이는 태국판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정선 목민심서
지은이: 정약용
출판사: 창비
유언비언에 따르면 호치민은 목민심서를 항시 끼고 읽었고, 자신이 죽으면 목민심서를 함께 태워줄 것을 원했다는데… 이는 유언비언가 돌기 시작할 당시 한국의 모 국회의원이 날조해서 지어낸 이야기라 한다.(연합뉴스 베트남 특파원인 김선한씨와 직접 전화 통화해 확인한 사실…) 아마도 호치민의 평상시 행동, 정치사상이 목민심서 내용과 너무 유사해서 그런 이야기가 나온게 아닌가 싶다. 실제로 목민심서 내용과 호치민 평상시 말과 행동이 유사하다.
버전업 가장 쉬운 베트남어 첫걸음
지은이: 정보라
출판사: 동양문고
베트남어 교육책자… 예전 태국어판이 너무 좋아 구입했는데… 책이 뭔가 조금 부족하다…
입에서 톡 베트남어
지은이: 이강우
출판사: 문예림
같이 끼어서 주는 교육용 mp3 CD의 사회진행이 친절하고 재미있게진행된다. 베트남어 처음 시작할 때 보는 책 중에서는 가장 좋지 않나 싶다. 베트남 여행당시 베트남 어르신에게 이쁜 말(?)을 많이하게 도와준 덕분에 베트남 어르신들부터 베트남엿을 신나게 얻어먹는 결과를 만들었다.(?)
베트남 실전투자 길라잡이
지은이: 권형태
출판사: 와이미디어
베트남인의 낮은 도덕성을 강조하며 비웃는 글을 쓰고 있으면서, 정작 투자 대신 투기를 하라고 강조하고 있는 저자의 넌센스가 상당히 가소롭다.
베트남 이코노믹스
지은이: 김영웅
출판사: 한국경제신문사
베트남의 밝은 면을 강조하며, 베트남의 경제발전과 투자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대사각하의 요리사
지은이: 미츠루 니시무라
출판사: 학산문학사
제목은 요리사… 실제 내용은 본격 국제 정치만화… 총 25권으로 그 중 절반가량이 주베트남 일본대사관 입장에서의 베트남-일본간의 역사, 문화, 안력, 전쟁, 식민지 지배 등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제법 자세히 접근한 것은 높이 평가하나… 일본측에 유리한 너무 노골적인 픽션은 상당히 눈에 거슬린다.
대화(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지은이: 리영희
출판사: 한길사
한겨례 신문 창립자 멤버 중 한명이자 과거 저널리스트로 활동한 리영희씨가 본 한국과 세계의 현대 역사 속에서의 사상과 정치적 대립에서의 중립적인 입장에서 설명을 풀어내고 있다. 베트남 참전 당시의 미국과 박정희의 입장, 미국의 베트남 침략을 증명하게된 페타곤 페이퍼 등에 대한 설명이 나와 있다.
동영상 자료들
자료는 책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각국의 독립을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시중에 많이 있다. 베트남 여행 당시 주요 목적 중의 하나의 독립과 관련된 것이었기에 수십편의 독립 다큐멘터리들을 MP3에 담아 이동하는 시간과 숙소에서 지내는 시간 내내 봤다.
그외…
기타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