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루하지 않은 치앙마이 하루, 시장 배회 아침부터 흥 돋는 밤 풍경까지
그야말로 뭐든지 다 존재하고 즐길 수 있는 방콕, 그리고 해양 액티비티와 이국적 분위기의 리조트로 바캉스 감흥 펑펑 어필하는 남부 해변과 섬들에 비해, 치앙마이는... 좋아하는 분들은 아주 좋아하는데 더불어 다소 지루하고 따분하다는 평도 있어요. 이건 아마 각자의 취향과 감수성에 따라 평이 여러 갈래 인 것 같은데요...
저는 지루함 적적함 보다 알맞게 나른하고 적당히 예쁘다 뭐 이런 느낌입니다.
치앙마이를 거쳐 가는 수많은 여행자들의 셀 수 없는 날들 중 저의 하루 풍경이에요.^^
12월 치앙마이는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을 여니 바깥의 기온이 제법 쌀쌀하기까지 합니다. 현지인들은 살짝 도톰한 긴 옷을 입고 다니기도 하는 날씨였어요.
침대에서 눈만 뜬 채 오늘 아침에 뭘 할까... 생각해보니 만만한 게 시장구경! 아침에 사원을 가보는 것도 나름 괜찮긴 하지만 이날은 왠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둥지를 틀고 있는 숙소 위치에 따라 가까이 있는 시장이 각각 다른데, 제가 머문 곳에서는 와로롯 시장이 제일 가깝네요. 터벅터벅 걸어 가봅니다.
창모이ChangMoi 길을 따라 와로롯 쪽으로 걷다보면, 여기가 중국인들의 구역이구나~를 시각적으로 확 느끼게 해주는 붉은 패루가 정면에 보여요.
이날 오전 8시 즈음에는 조깅을 하는 서양인들, 쫄바지에 헬멧 제대로 갖춰 쓰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몇몇 보이는데요, 사실 태국의 번잡한 길들이 조깅이나 자전거 타기에는 마땅치 않은데 이 시간대 교통흐름에는 그나마 괜찮은 편인가 봐요. 볕도 내려 쪼이기 전이니까 기온도 선선하고요.
나중에 보니 구시가 해자 안에서도 서양인들이 조깅을 하더라고요. 어쨌든 대단한 의지의 분들이구만요. 뭔일을 해도 잘하겠어요.
드디어 시장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이 크고 복잡다단한 장터에는 먹을 것, 입을 것, 포목주단, 각종 소품 등등 오만가지 것들을 다 팔고 있는데, 여행기간이 많이 남은 저 같은 여행자 입장에선 살 수 있는 게 없고 그냥 달콤한 과자나 한 봉 삽니다. ‘카놈 텅무안’이라는 건데, 별건 아니고 검은깨와 코코넛밀크 넣은 반죽을 얇게 구워낸 달콤한 전병이에요. 이렇게 생긴 판에서 구워서는 노곤노곤 할 때 봉으로 모양 잡아 돌돌 말아 굳혀주면 바사삭한 달콤이가 되는데 충분히 상상가능한 맛일거에요. 맛도 맛이지만 입안에서 산산히 부서지는 식감이 더 좋네요. 부스러기가 많이 떨어지니 뭔가를 받치고 먹어야 해요.
누런 황토색 물이 느릿하게 흐르는 삥강변에 맞닿은 시장은 와로롯 바로 옆에 있는 ‘똔 람야이 시장’이에요. 시장의 강변길을 면한 쪽에는 꽃집들이 줄지어서 있어요. 여행 중에 기분을 좀 내보고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사는것도 괜찮을듯요. 한 다발에 몇 십 밧 정도로 저렴합니다.
이 강변길은 치앙마이 근교로 가는 교통편이 출발하는 포인트이기도 한데 아침부터 표 예약하러 오는 사람 그리고 출발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좀 있구만요. 역시 부지런한 여행자들 ^^
차이나타운을 알리는 패루
삥강
근교로 가는 버스 타는 곳
매깜뻥, 먼쨈, 람푼, 싼깜팽온천 등으로 가는 차가 있습니다.
카놈 텅무안 만드는 곳
바삭바삭한 코코넛-참깨 과자 '카놈 텅무안'
가벼운 시장산책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서 간단히 차려주는 아침을 먹는데 오오... 기대했던 것보다 좋은 식사였어요. 요리 가짓수는 적고 자금자금 차려졌지만 꽤나 정갈하고 맛있습니다. 샐러드나 과일 위로 작은 날파리가 왱왱거리는 건 태국인 걸 감안하고 아무렇지 않게 먹었어요.
게다가 초미니 풀장 옆에 식당이 마련되어 있어서 이것도 나름 풀뷰잖아요. ㅎㅎ
따뜻한 음식을 데우는 것도 전기 디지털식으로 온도조절 되게 해놓고, 이 숙소 주인장이 이런 면으로 좀 세심하게 신경을 쓴 게 느껴집니다.
나는 커피를 그다지 즐기지 않지만 여기 커피메이커가 뜨거운 우유도 같이 뿜어내는 게 신기해서 매일 카푸치노를 마셨어요.
그러고 보니 인테리어 내장재들도 객실 수가 그다지 많지 않은 이 숙소의 규모에 비해 꽤 값나가는 것들로 해놨고, 연말특수인걸 감안하면 조식포함 2인 1,000밧 인 방값은 꽤 매력적입니다.
Thapae Twins Hotel
https://goo.gl/maps/bucnpMdww5hNeSJt6
아침밥 먹고 나서 수영장 옆 그네의자에서 볕 좀 쪼이고 물멍 좀 하다 방에서 나와 해자 쪽으로 살살 걸어가 봅니다.
구시가의 여러 사원 중 몇 군데 돌며 탑 구경하는 것도 좋지만 이번에 우리가 간 곳은 조용하고 고즈넉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데다 무료입장 할 수 있는 곳이에요.
한 곳은 삼왕상 맞은편 란나 박물관 오른쪽 뒤편에 있는 하늘색 목조건물의 사진전시관, 다른 한 곳은 삼왕상 뒤편 치앙마이 예술문화센터 뒤쪽 맨 끝에 있는 작은 도서관입니다.
사진전시관에서는 지금 한시적으로 메콩강 사진 전시회를 하고 있는데요, 1월말까지 한다니 관심 있는 분들은 구경 한번 해보세요.
치앙마이 예술문화센터 뒤편에 자리 잡은 히스토리컬 센타는 현재 리노베이션 중이라 운영중단이지만, 그 옆의 도서관은 잠시 들러 도서관 특유의 고요한 분위기 속에 있으니 좋네요.
허 팝타이 란나 - 사진전시관(Chiang Mai House of Photography)
https://goo.gl/maps/txg65bzDkWxHFRkA8
픈 반 얀 위앙 치앙마이 도서관
https://goo.gl/maps/8U8S4nSd8o5Woi347
이 두 곳에서 충분히 쉬었으니 다시금 살살 걸어봅니다. 걷는 도중에 당 충전을 위해 ‘말린 바나나튀김(끄루어이 딱 텃)’집도 들러서 20밧 어치 한 봉 사고요...
쨈 아줌마 바나나튀김집
https://goo.gl/maps/WeRZACvrLkPLHu926
말린 고구마 '끄루어이 딱 텃'
저는 삼왕상 근처 인타와로롯 길의 노포거리를 좋아하는데, 여기는 정말 맛있는 것 옆에 맛있는 것 그 옆에 또 맛있는 것이 있는 거리에요. 장사한 역사도 다들 오래되었습니다.
싸앗 어묵국수로 시작해서 끼앗오차 카우만까이(닭고기덮밥)-싸떼집, 돼지고기구이 덮밥집, 각종 스위트 파는 가게, 또 어묵국수 등등이요. 하지만 오늘은 숙소에서 아침을 거대하게 먹었으므로 점심식사는 건너 뛸 수 밖에 없어 아쉽게도 샤라락 스쳐서 타패문 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가요.
한창 신년행사를 준비 중인 타패문 앞 광장에는 비둘기 모이를 주는 장사꾼들이 손님들을 호객하느라 비둘기들이 이전보다 더 살찌고 개체 수도 많이 늘어난거 같아요. 나는 비둘기들이 좀 무서운데...
날아오르는 비둘기를 배경으로 사진 찍는 사람들을 위해 장사꾼들이 먹이를 가열차게 뿌려주는걸 잠깐 구경했는데요, 아~ 이게 뭐야 요왕이 비둘기 똥을 맞아버렸어요. 으으~ 다행히 머리가 아닌 가방이니 얼마나 다행이게요.^^
꽤 많이 걸은데다가 새똥까지 맞으니 일순간 모든 의욕 상실되고 숙소로 가고 싶어졌어요.
인타와로롯 거리의 카페
랏차담넌 거리의 란나 건축학 센터
똥 맞은 가방도 빨고 늦은 오후 열기를 피해 숙소에서 쉬다가 해 지고 저녁시간에 딱 맞춰 고기구이 먹으려 했는데, 아침에 먹은 밥들은 그새 다 어디로 간 건지 배가 너무 고파져서 오후 4시가 넘어서 다시금 밖으로 출발 합니다. 히우 막~~ 하네요. 역시 배고픔 앞에선 장사 없구먼...
그런데 볼트는 차량수배가 안되고 그랩은 요금은 볼트의 두 배여서 잠깐 망설이게 되지 뭐에요. 볼트 요금을 안 봤으면 시원하게 그랩을 잡을 텐데 요금차이가 나니 왠지 손해 보는 느낌... 그리하야 도보 20분 거리 그냥 걸어서가기로 했어요.^^
이 고기구이집은 해자의 북동쪽 모서리인 쨍 씨품과 찡짜이 시장 딱 중간에 위치한 곳인데 우리가 도착 했을 때는 아직 5시도 안되었는데도 테이블이 꽤나 차있어요.
이글거리는 숯이 열기를 뿜뿜 내뱉는 항아리 안에서, 또 꼬챙이에 매달려 나란히 대롱거리는 고기고기들~
무껍과 까이양을 옹기 안에서 다시 구운거니까 기름이 쪽 빠지고 더 바스락 거리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이 식당에 관한 위치와 메뉴등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요왕이...^^
넹 무옵옹
https://goo.gl/maps/DGuFjtF2ma9kXPmNA
식사가 끝나고 난 뒤 볼트 잡으려니 역시 안 되어서 고기랑 밥 맥주로 양껏 부풀어 오른 배를 안고 숙소로 다시 걸어오느라 뒤뚱뒤뚱 걷게 되는데요, 아이고 힘들어~ 하면서도 다리를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숙소 앞이구만요.^^
근데 치앙마이에서의 일정을 이걸로 마감하기엔 오늘 남은 저녁시간이 다소 길고 적적합니다. 그래서 저녁밥 소화 좀 시키고 다시금 밤에 나와서 나이트 바자 구역 순찰을 해요.
플런루디 야시장은 연말특수 때문인지 아니면 여행자 수가 꽤나 회복된건지 사람들로 바글바글합니다. 매일 이런 분위기인지는 알 수 없는데 우리가 간 날은 밴드 공연과 가수가 손님들의 흥을 엄청 돋우더라고요. 거기에 맞춰 여행자들이 기차놀이하듯 앞뒤로 줄서서는 두둠칫둠칫합니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것처럼...을 태국에서 자연스레 실천하는 여행자들.
근데 이곳이 음식가격은 저렴하지 않은 편이고(분위기 값이라고 봐야하겠죠) 먹는 테이블도 여느 야시장이 다 그러하듯 약간은 불편한데 그건 이곳만의 특징은 아니니까 다 이해가 되는거죠.^^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저는 정말 오래간만에 공연 비슷한걸 보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이 야시장을 떠나서 드랙퀸들이 캬바레 쇼를 한다는 ‘Ram Bar’라는 곳을 향해 다시금 걸어갔어요. 깔래 나이트바자에서 삥 강 쪽으로 가다 보면 길 끝 모퉁이에 위치한 곳인데 9시 즈음 도착했더니 이게 왠일?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는 거에요. 우리처럼 늦게 와서 자리를 못 잡은 손님들은 벽에 기대어 서서 어깨를 들썩이며 서있고... 아직 본격적인 드랙퀸 쇼 시작을 안했는지 무대에서는 예쁜 아가씨가 디제잉을 하는데 도저히 저 북적한 곳에 들어가 앉을 자리도 없이 서있는 상태에서 쇼를 즐길 자신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 키 큰 서양인들 사이에 서있으면 아무것도 안보일 각 -_-;; 왠지 나는 그 상황을 생각 만해도 피곤해져서 쪼그라들 것만 같아요.^^
그리하여 많고 많은 바들의 불빛을 뒤로 한 채 우리는 그냥 숙소로 사부작사부작 돌아오게 됩니다.
플런루디 야시장에서도 나른한 열대의 밤을 즐길 수는 있는데 거기도 역시 사람이 많고 뭔가를 먹기에는 우리의 위장이 너무 불렀고, 다른 바에서 시간을 더 보내기에는... 목표로 정하고 찾아온 곳이 이렇게 되어버리니 김이 빠지면서 흥이 사라졌어요.
언젠가는 볼 수 있으려나 몰라요.^^
그냥 이런 하루였습니다.
플런루디 야시장
타패 거리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