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과 파타야를 다녀와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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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과 파타야를 다녀와서(상)

이재남 2 2104
전 직업이 고등학교 교사입니다. 그래서 내용을 학생들을 위한 기행문을 씁니다. 일반적으로 다 알만한 내용도 기록했으며 태국을 많이 다녀오시는 태국귀신들께서 읽으실 때 너무나 큰 실망을 안겨드릴지도 모릅니다.
또한 현대감각이 둔해져서 글솜씨가 읽는 분들께 "읽는 재미"를 줄 수 없을 것으로 사려됩니다. 그래서 이 글을 올릴까 말까 망설이다가 올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으셨다면 독후감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ㅎㅎㅎ


7월 19일 아침부터 내 마음이 설레는 까닭은 오늘 태국으로 떠나는 여행 때문이리라. "인천국제공항에 6시까지 도착하려면 오후 3시경 집에서 출발하면 되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에 필요한 옷과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일에 대비하는 상비약 그리고 태국이 우기 절이기 때문에 필요한 우산과 우비, 그리고 그 곳을 잘 담아와야 할 카메라에 넣을 필름 등을 준비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무비카메라로 촬영하는 방법을 일러주고, 연습하는 시간도 충분히 가졌다. 사실 이번 여행은 1994년 2월 봄방학을 맞이하여 방콕과 파타야를 여행했던 곳을 다시 찾아가는 여행이다. 우리부부를 위한 여행이기보다는 장모님을 위한 여행이라고 해야 옳다. 평생동안 외국을 한번도 여행을 해보지 못하셨기 때문에 우리부부가 마련한 여행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불교국가이자 농업국가인 태국은 인도와 중국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수세기 동안 외국인들에게는 사이암(Siam)으로 잘 알려져 왔다. 태국은 동남아시아의 지리적, 문화적, 종교적 교차로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51만㎢(한반도의 2.3배, 프랑스의 크기와 거의 비슷함)의 국토와 6100만 정도의 인구를 가지고 있다. 서쪽과 북쪽으로는 미얀마, 북동쪽으로는 라오스, 동쪽으로는 캄보디아 그리고 남쪽으로는 말레이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이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여행준비를 마무리했다. 그리하여 오후 3시에는 택시를 타고 리무진공항버스 노원정류장에서 내려 그 곳에서 3시39분에 출발하는 리무진공항버스에 짐을 싣고 출발하였다. 토요일이라서 차들이 많아 김포공항을 거쳐 인천공항에 내린 시간은 5시 40분 경이다.
공항3층 B와 C카운터 사이 10번째 테이블 "모두투어"푯말이 있는 곳을 찾아갔는데 그곳에는 태국을 여행 할 우리일행뿐만이 아닌 "모두투어"를 이용하는 여행객들이 여행수속을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행일정과 입, 출국서류를 작성하고 길게 늘어서서 대기하고 있던 여행객들 틈에 끼어 짐을 부치고 비행기 티켓을 받는 데는 1시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런데 출국심사 전 몸수색을 할 때, 아내의 열쇠꾸러미 중에 매달린 쪼그만 손톱 깎기 용 가위가 말썽이었다. 가지고 들어갈 수 없으니 포기하던가 아니면 항공사에 부친 짐 가방을 찾아 그 곳에 넣어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했다. 그 순간은 짜증났지만 그 곳에서 옥신각신하느니 여행을 다녀와 다시 사서 사용하기로 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몸수색을 받는 시간이 흘러 면세점과 우리가 타고 출발하려는 비행기를 탈 장소에 들어서니 마음이 진정된다. 롯데면세점에서는 며칠 전 아내의 생일을 맞아 딸과 며느리가 시내 롯데면세점에서 사준 핸드백을 찾을 수 있었다. 핸드백을 찾고 나니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17번 게이트의 옆 휴게소에 앉아 T.V를 시청하다가 KE 653편에 탑승하여 좌석 38-A,B,C에 앉고 나니 안심이 되었다. 우리일행이 탑승하고 잠깐 후, 곧 이륙하겠다는 안내방송이 있었다.
안내방송에 따라 탑승객들은 안전벨트를 했는데 비행기는 조금씩 움직이더니 활주로를 벗어나 날기 시작했다. 항공사들은 거의 같은 순서에 따라 손을 닦도록 하고, 땅콩이 나오고 다음에는 쥬스 종류의 음료수가 나온다.
연이어 나오는 순서는 식사였다. 그리고는 쥬스나 와인, 커피나 차를 권한다. 필자는 식사를 하면서 red wine 한 잔을 마셨더니 적당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식사가 끝나자 스튜어디스가 태국의 입국 및 출국 신고서와 세관 신고서를 작성하도록 용지를 나누어주었다.
패키지여행을 할 경우 지금까지는 여행사로부터 동반하는 인솔자가 알아서 작성해 사용했던 관계로 신경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이번 여행은 달랐다. 우선 인천공항에서 출국할 때 출국수속을 개개인이 알아서 해야했으며 또한 태국의 입, 출국신고서와 세관신고서를 각자 작성하여 제출해야하는 또 다른 경험을 하게됐다.
세 사람의 신고서를 작성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필요한 신고서 작성을 마친 후에는 항공사측에서 나누어준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다가 역시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영화 한 편을 감상하면서 지루함을 달랬다.
오후 8시15분에 인천공항을 이륙한 대한항공 KE 653편이 방콕의 돈무앙 비행장에 착륙한 시간은 현지시간으로는 오후 11시 40분쯤이었으니 시차 2시간을 계산에 넣는다면 비행시간은 5시간 25분을 비행한 셈이다.
돈무앙공항에 내린 일행은 입국신고를 하고 인천공항에서 부친 짐 가방을 찾아 세관신고까지 마치고 밖으로 나왔을 때 승객들을 기다리고 있던 태국인이 "모두투어" 푯말을 들고 기다리고 서있었다.
곧이어 우리일행은 현지가이드인 이희철씨와 잘 생긴 남자 태국인가이드 랙을 만나게 되었다. 함께 모인 일행들은 관광전용버스에 짐 가방을 싣고 우리가 하룻밤을 보낼 HOLIDAY INN SILMON HOTEL로 향하였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남국의 열기가 확 밀려든다.
태국은 지리적으로 여섯 개의 주요지역으로 나뉘어지는데, 코끼리들이 숲에서 일을 하고 겨울철 기온이 딸기나 복숭아와 같은 과일을 재배하기에 알맞은 북부산악지대, 5600년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청동기 문명이 번성했으며 주로 메콩강에 접하고 있는 북동부지 역의 고원지대가 있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기름진 쌀과 좋은 과일을 재배하는 중앙평원, 아름다운 해변을 지니고 있으며 여름휴양지로 유명한 동쪽의 해안평원, 수력발전을 하기에 알맞은 서쪽의 산악지역과 계곡, 주석채굴, 고무경작, 어업의 중심지인 아름다운 남부지역 등으로 나뉜다.
불교국가이자 농업국인 태국은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입헌 군주국으로 국가의 존립이래 외세에게 독립을 잃은 적이 없는 국가로 알려져 있다. 국가 존립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태국인들은 왕을 중심으로 지혜를 다하여 극복하였으며 일찍부터 들어온 서양의 문명과 문화에 대하여도 결코 배척하지 않고 수용하였다. 그리고 이 이질적인 외래 문화를 태국인들은 자신들의 고유하고 독특한 정신문화로 만들어 발전시켜 오고 있다.
호텔에 도착하여 가이드인 이희철씨가 check in 하는 동안 호텔로비에 서서 일행들은 인사를 나누면서 간단하게 자기가족소개를 했다. 경원대학교 한의과대학 부속 서울한방병원의 한의학 김기현교수 부부와 초등학교 2학년인 그의 귀여운 외동딸 김지화양, 안동에서 건설업에 종사하시는 이종석사장님부부와 대학생인 그의 예쁜 두 딸, 정읍에서 살고있으며 중학생과 고등학교 학생인 두 아들을 데리고 여행오신 이희자여사, 고등학교 동창으로 친구인 황문선양과 길현아양, 그리고 필자부부와 장모님을 합해 우리일행은 15명이었다.
우리가족은 1744호와 1745호의 방 배정을 받고 그곳에 여정을 풀었다. 몹시 피곤했다. 이곳 시간으로 밤 12시가 지났으며 우리시간으로는 새벽 2시가 지났으므로 하루의 일과가 너무 길게 연장되었던 때문이다.
호텔 룸에서 짐 가방을 받아서 챙기고 샤워를 하는 등 더 시간을 보내고 나서 잠자리에 들었으나 쉽사리 잠이 오질 않는다.

2003년 7월 20일 아침은 일찍 일어나던 습관 때문에 잠은 일찍 깨었지만 피곤했으므로 침대에 누워 더 시간을 보냈다. 7시 30분에 morning call이 있었고, 우리 가족은 식사를 위하여 호텔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레스토랑 입구에서는 우리가족의 호텔의 룸 번호를 묻기에 확인시켜주었다. 유럽에서는 레스토랑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좌석배치를 받았었는데 이곳에서는 본인이 앉고 싶은 곳에 앉으면 그만이었다.
또한 이곳의 음식메뉴는 서양 것과는 조금 달랐다. 김치도 있었으며 계란 후라이 대신 계란에 야채를 넣고 몇 가지의 양념과 함께 치즈를 듬뿍 넣어 만든 오무라이스는 그 맛이 일품이었다.
요리사들은 몹시 친절했다. 장모님이 오무라이스를 신청하고 다른 음식들을 접시에 담아 테이블에 앉으니 오무라이스를 완성한 그 요리사는 사람을 확인하고 직접 음식을 들고 테이블에 날라다 주었다. 그뿐이랴. "맛있게 드세요"라며 미소까지 짖는다.
여유 있는 아침식사를 마친 우리가족은 오늘 새벽에 풀었던 가방을 챙겨 호텔로비로 내려왔다. 곧이어 일행은 전용버스에 승차하여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새벽사원, 에메랄드사원, 수상가옥과 왕궁을 구경하기 위하여 차오프라야강을 오고가는 유람선을 탈 선착장이었다.
우리는 유람선을 타기 전에 또 하나의 태국인 여성가이드를 소개받았다. 특히 왕궁은 한국인 가이드가 동반할 수 없는 지역이라 혼자서 들어가거나 아니면 태국인 왕궁 가이드를 동반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희철씨와는 잠시 헤어져야했다.
유람선을 타고 맨 처음으로 찾아간 곳, 방콕의 차오프라야강을 따라 가다보면 랜드마크(Landmark)라고 할 수 있는 강 왼편에 위치한 새벽사원을 볼 수 있었다. 새벽사원에 있는 프라프랑이라 불리는 이 탑은 크메르 양식의 탑이다. 그 높이가 79m로 도시에서 중요한 지리적 표지물 중의 하나인 이 탑에 올라가 내려다보는 경치가 대단히 아름답다.
특히 새벽 동틀 무렵이면 장관을 이루고, 해질 무렵 첨탑에 박혀있는 자기가 반사되어 빛을 발할 때면 더욱 장관을 이룬다고 했다. 1994년에 이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탑에 올라갈 수 있도록 허용됐었는데 지금은 어쩐 일인지 올라가지 못하도록 로프로 막아놓고 『출입금지』라고 써놓아 올라갈 수 없었다.
새벽사원으로 이어지는 진한 흑 빛을 하고 있는 차오프라야강의 곳곳에는 오래된 나무로 지어진 주택들과 배를 타고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여기에서 판매되고있는 물품들은 매우 다양하여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 육류, 어패류, 수공예품 등 갖가지 물품들이 모두 있는 셈이다.
수상시장은 물과 함께 살아가는 태국인들의 생활상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으며 싱싱한 과일과 수공예품들을 즉석에서 구입할 수 있었다. 관광객들을 반기며 달려드는 잉어나 메기들의 모습, 탁하고 흐린 물도 아랑곳하지 않고 물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는 어린아이와 빨래를 하는 아낙들은 우리의 60∼70년대에 낯익은 광경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찾아오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 1000원을 외치며 한국말을 제법 잘하는 장사꾼들과 가격을 흥정하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었다. 언제나 황토 빛 색깔을 띠고 있는 차오프라야강은 강물이 상류로부터 반입되어 메기나 잉어들이 살기에는 적절한 환경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나라의 한강처럼 방콕의 젓 줄이라고 할 수 있다.
수상시장에 이어 찾아간 곳은 신비로움을 고이 간직한 불교사원인 에메랄드사원이었다. 온통 에메랄드와 같은 보석으로 치장했다고 해서 간단히 줄여서 에메랄드사원이라고 부른다.
그 사원은 태국의 2만9천여 개의 사원 가운데 단연 최고로 꼽히며 1782년에 건축된 에메랄드사원에는 15세기에 조각되어 라오스에서 들여와 18세기 말에 여기에 안치된 태국인들이 국보 1호로 꼽는 75㎝ 높이의 신비스러운 에메랄드불상을 만날 수 있었다.
원래 이 불상은 라오스에서 가져와 새벽사원에 모셔져 있다가 이곳으로 오게되었다는데 계절이 바뀔 때마다 태국의 라마 9세인 푸미폰 국왕(Bhumibol Adulyadej)이 직접 불상의 옷을 갈아 입히는 의식을 거행한다고 했다.
에메랄드사원에 이어 태국역사의 장엄한 서사시로 표현되는 왕궁을 찾아갔다. 태국인들의 심장부와도 같은 곳으로서 1782년 라마 1세에 의하여 세워졌으며 이때 방콕으로 수도가 옮겨졌다.
이곳은 장엄하면서 환상적인 장식으로 전통 타이 양식이 물씬 풍겨난다. 이곳에서는 태국의 많은 왕들의 대관식이 거행되었으며 내부로 들어가 보면 금박이 입혀진 거대한 불상이 있었는데 보는 이들로 하여금 숙연한 마음을 가지게 했다. 또한 높이 솟은 궁전과 누각, 사원들은 모두 금박, 잎새, 자기, 유리로 찬란하게 장식되어 눈이 부셨다.
한국인 다른 여행사 단체 관광객들도 눈에 상당히 많이 띄었다. 입구로 들어선 순간부터 모든 조형물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어느 곳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든 상관없을 정도로 너무 화려하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그러나 관광객이 너무 많아 사진 한번 멋지게 찍으려면 여러 사람의 눈치를 봐야했다.
이 궁전 주변에는 유럽풍의 건축물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는 태국이 근대화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현재 이 왕궁에 실제로 왕은 살고있지는 않지만, 현 태국의 국왕은 살아있는 사람으로 가장 고액권 화폐에 실릴 정도로 「민중의 아버지」로서「살아있는 신」으로 태국인들의 존경을 독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왕궁에서 짧은 치마나 반바지, 슬리퍼 차림은 피해야 하고 왕의 사진이나 왕을 모욕하는 행위를 하면 안 된다. 만약 반바지를 입었을 경우 왕궁 앞에서 치마처럼 둘러서 가릴 수 있는 천 조각을 빌려서 입장할 수 있다. 특히 이곳은 한국인 가이드가 동반할 수 없는 지역이라 혼자서 들어가거나 아니면 태국인 왕궁 가이드를 동반해야 했다.
그런데 태국여성인 왕궁가이드는 여러 곳에서 가방과 소지품을 조심하라고 일행들에게 몇 번이나 강조하여 주의를 환기시켰다.
♧ 쇼핑 중 지갑이나 가방을 소매치기 당하는 일이 오늘 어제의 일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부쩍 그 정도가 심해진 것 같다. 지키는 사람 열 명이 도둑 하나를 당하지 못한다고 했던가? 두 사람이 꼭 붙어 다녀도 어느새 당해 황망한 경우가 너무 많아 졌다.
오늘 전화를 한 친구의 경우, 이곳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방콕으로 가서 귀국을 앞두고 젠 백화점을 갔었단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갑이 없어 졌다는데... 신고를 하려고 공중전화 박스로 갔더니, 한국인 여자 여행객들이 항공권마저 잃어버리고 전화를 하려고 기다리는 중이더란다.
모르는 사이에 당했기 망정이지 내 지갑을 노리는 줄 알았더라면 본능적으로 방어를 했을 것이다. 신문에 나지 않은 사건이 더 많겠지만, 5월엔 지갑을 노린 강도가 많아 일본인이 두 명이나 죽기까지 했고, NHK방송에선 태국을 해외여행 위험국가라고 까지 했다.
맹목적인 태국사랑 보단 보다 냉정하게 바라보자. 과연 태국이 우리의 생각처럼 그렇게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미소의 나라이고, 천사의 도시인지 말이다. 혹시 쇼핑을 하려는 사람들은 조심해 봤자 별수 없겠지만, 지갑에 큰돈을 넣어두지 않는 건 물론, 돈은 반드시 분산하여 보관토록 하자. 다소 덥겠지만, 되도록 복대를 하는 게 가장 안전할 것 같다. ♧
이 글은 태국으로 떠나오기 전 amazingthai (카페)에서 따온 내용이다. 여행하면서, 아니 쇼핑하면서 소지품을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유람선을 타고 금박, 자기, 유리로 장식한 장엄하고 환상적인 타일랜드양식이 풍겨나는 타일랜드 인들의 심장과도 같은 왕궁, 에메랄드사원, 방콕의 젖줄 차오프라야강 위에서 물과 함께 살아가는 태국인 들의 생활상을 접할 수 있는 가옥, 그리고 차오프라야강 왼편에 위치해 있는 방콕의 랜드마크 새벽 사원을 관광했다.
왕궁은 입장할 때에는 뒷금치가 드러나는 신발을 신고 들어갈 수 없으며 민 소매 복장은 입장이 불가능했으므로 준비를 해왔다. 그런데 왕궁에 들어가기 전에 반바지 차림의 여성들이 있어서 한 벌에 미화 2달러를 내고 월남치마로 빌려 입은 후에 입장하는 일행들이 있었다.
그토록 이곳 태국에서는 왕궁을 신성시했으며 소승불교인들답게 예절을 갖추고 있었다.
태국사회에서의 승려는 절대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국왕을 비롯한 왕실에 있는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절하는 사람은 승려밖에 없다. 승려는 국왕 앞에서도 절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밖에도 태국 사회에서 승려와 사원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불교국가인 까닭에 불교명절을 중심으로 한 태국의 축제나 큰 행사는 대개가 절에서 열려서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화합과 단결을 이루는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마을의 대소사를 의논하여 일을 처리하는 곳이기도 하다. 태국인들은 부모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은 이른바 모태신앙으로 불교가 태국인들에게 수천 년을 내려오는 동안 태국인들의 정신적, 물질적 불교문화가 다양하게 형성되었다.
태국에는 현재 2만9천여 개의 사원이 있으며 이 사원은 태국인들이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수시로 찾는 곳으로 정신적인 안식처로 또 하나의 집이라 할 수 있다. 태국인들은 태어날 때는 집에서 태어나지만 죽어서는 모두가 절로 간다. 태국의 절 안에는 화장터가 있어 업을 다한 사람의 육신을 화장하고 영혼을 받아들여 쉬게 한다. 왕궁을 구경할 때 왕궁안에서 마침 법회(?) 비슷한 것이 열리고 있었다.
왕궁을 구경하고 밖으로 나온 일행들은 그곳으로부터 전용버스로 타고 20분 정도를 달려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교포가 경영하는 레스토랑 영빈관에 들어갔다. 영빈관은 불고기를 상추에 싸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한식집이었다.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고 나온 일행을 버스에 싣고「남서쪽에서 북동쪽으로 부는 우기의 시작을 알리는 바람이다」라는 의미로 불리어지는 파타야를 향해 달렸다.
태국의 수도이자 관문이 되는 도시가 바로 방콕이다. 1782년 라마1세 국왕 때 세워진 이 도시는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태국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기도 하다. 현대식 발전을 힘차게 추구하면서 전통을 존중하는 태국국민들을 방콕보다 더 잘 보여주는 곳은 없다.
샴만에서 조금 떨어진 차오프라야강 기슭에 위치한 방콕은 평원을 가로지르며 뻗어 있으며 이곳은 왕가가 거주하는 곳이며 행정의 중심이자 주요 항구도시로 약850만 명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태국의 관문도시로서의 모든 중요한 성격들이 이 도시에 꼭 맞는 끄룽 텝이라는 별칭 속에 그대로 나타나있으며 끄룽 텝은「천사들의 도시」라는 뜻으로 방콕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단어이다.
또한 끄룽 텝이라는 별칭은 기네스북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지명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여 태국국민들에게 방콕은 언제나 태국의 물리적인 중심지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 상징적 중심지인 셈이다.
서울 면적의 두 배반이나 되는 넓이를 가진 방콕을 출발한 관광전용버스는 시내를 벗어나면서 곧 고속도로로 진입하였다. 방콕시내는 서울거리 못지 않게 복잡하면서 길이 막히곤 했다.
방콕시내는 차오프라야강과 남북을 가로지르는 철도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되어지는데 강과 철도 사이에 위치한 구시가지에는 대부분의 오래된 사원이 있고 신시가지는 철도의 동쪽에 위치해 있으며 구시가지 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매력적인 곳이다.
예로부터 동양의 베니스로 불리던 방콕은 "강의 어머니"란 뜻의 차오프라야강이 남과 북 S자형으로 흐르고 있어 수상가옥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으며, 혼잡한 방콕 교통을 벗어날 수 있는 수상교통이 발달해 있다.
또한 배를 타고 이루어지는 수상시장은 매우 인상적이어서 방콕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방콕은 주요 상가와 관광지구, 광대한 주거 지역이 펼쳐져 있어 공해와 지독한 교통체증, 매년 거듭되는 홍수에 시달리는 도시다.
하지만 태국의 사람 들 만큼이나 느긋하게 거리의 소음에서 벗어나 도시에 위치한 400여 개의 사원을 찾아가거나 강을 오르내리는 택시를 타고 도시의 정경을 바라보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다행히 고속도로는 한가한 편이어서 약 한 시간 남짓 달려 고속도로 변에 있는 쉼터에서 내렸다. 태국의 고속도로변에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휴게소가 없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교포들이 고속도로변에 쉼터를 만들어 볼 일도 보고 음료수도 사 마실 수 있도록 해놓고 태국의 옷이나 말린 과일, 기념품, 무좀 약 등을 팔고 있었다.
우리가족은 그곳에서 공짜로 제공하는 꿀물 한 두 잔씩을 마신 후, 해수욕장에서 사용할 스리퍼와 수영복 대신 입을 수 있는 반바지를 샀다. 해수욕장에서 사용해야 할 수영복을 빠트리고 고국을 떠나왔기 때문에 수영복이 필요했었다.
일년 내내 따뜻한 나라, 그런데 지금은 우기란다. 우기이기 때문에 우리가족은 우산과 우의를 준비해왔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화창한 여름 날씨답게 무더운 날씨이긴 했지만 비는 내리지 않아 여행하는데 한결 편안했다.
이곳 가이드 이희철씨는 우리일행 개개인에게 시원한 물 한 병씩을 나누어주었다. 그만큼 태국의 날씨는 무척 더웠다. 물병을 전용버스에 싣고 달리면서 이곳이 방콕과 파타야의 중간지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가이드 이희철씨는 태국말 몇 마디를 가르쳐주었다.
「안녕하세요?」는 싸왇디-크랍(카), 「고맙습니다」는 커-ㅂ 쿤 크랍(카), 「물 좀 주세요」는 커 남 너이캅, 남자가 여자에게 「사랑한다」는 폼 락 쿤, 또 여자가 남자에게「사랑한다」는 찬 락 쿤 등을 배우게 되었고 태국인들을 만날 때는 그 말을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특히 싸와디-크랍, 커-ㅂ 쿤 크랍은 자주 사용해서 마치 우리말처럼 익숙해졌으며 친근감이 들었다.
활기참이 느껴지는 열대 휴양지 파타야는 방콕에서 약 147km의 거리, 2시간 반정도 차로 달리면 갈 수 있는 「아시아 휴양지의 여왕」「동양의 하와이」라고 불리어질 정도로 잘 알려진 곳이다. 그곳은 20년 전 만해도 작고 한산한 어촌 마을에 불과했으나 베트남 전쟁이후부터 점차 휴양의 명소로 명성을 쌓기 시작했다고 했다.
파타야는 연간 100만 명 이상의 전 세계 관광객이 몰려드는 동남아시아 최고의 해변 휴양지로 타이만을 향해 전체 3km의 기다란 해안선이 펼쳐져 있으며 그 해안선을 따라서 남북으로 두 개의 큰 도로가 있다.
두 도로 사이에 호텔들과 나이트클럽 등이 북적거리고 있으며 밤에는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깔의 유흥도시로 불야성을 이루고, 여흥과 식사, 풍부한 과일과 다양한 쇼핑 등 천의 얼굴로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낮에는 수영객들과 낚시, 수상스키, 스쿠버다이빙, 윈드서핑 등과 같은 해양스포츠의 낙원으로 변모하는 파타야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위락시설과, 아름다운 경치, 방콕과 가까이 위치한 지리적 장점으로 인해 가족단위의 관광객들에게 최적의 장소를 제공한다고 했다.
달빛에 흠뻑 젖은 바닷가 해변을 산책하거나 해안선을 따라 늘어선 해산물 레스토랑에서 그 날 아침에 잡은 싱싱한 해산물을 곧바로 즐긴다든지 혹은 다양한 식단을 갖춘 레스토랑에서 촛불을 밝히고 식사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고운 모래의 백사장과 따뜻한 바닷물, 작렬하는 뜨거운 태양아래서 누구나 원하는 모든 것을 찾을 수 있는 파타야는 어린이를 위한 오락시설과 한가로운 휴식을 즐기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주변의 코란섬과 코삼멧섬, 라용 등의 아름다운 경치를 갖고 있는 곳이 있단다.
그밖에 보울링, 당구, 골프, 사격, 테니스, 승마 등 모든 여가 활동과 더불어 원하는 것을 모두 할 수 있다. 파타야로 이동하면서 파타야의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방콕에서 파타야로 들어서면서 맨 먼저 찾아간 곳은 미니 시암이었다.
그곳은 네덜란드, 대만에 이어 세계 세 번째로 만들어진 미니 건축물이 들어서 있는 곳이었다. 태국에서 중요한 문화유산인 에메랄드사원을 비롯하여 왓 아룬, 왕궁, 왓 시산폣, 아난타사막홈 왕좌언덕 등 유명 유물들이 제작 전시되어 있었다.
미니 월드 지역에는 2000년 겨울, 우리부부가 다녀온 호주 시드니항의 오페라하우스 그 해의 여름에 다녀온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이탈리아 로마의 트레비분수, 원형극장, 벨기에에 세워진 아토미늄과 작년 여름에 다녀온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성바실리사원 등 낯이 익은 축소 복제된 건축물들이 눈에 많이 띄어 반가웠다.
워낙 날씨가 무더운지라 그늘에서 쉬고싶었다. 그러나 미니시암을 한바퀴 돌면서 중요한 곳은 무비카메라로 촬영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한바퀴를 돌고 나오니 우리 일행이 가는 곳마다 따라다니면서 사진을 찍어대던 현지 사진사들은 기념품에 인화된 사진을 보여주면서 잘 나왔으니 사라고 졸라댄다.
2 Comments
Judy 2003.08.05 22:52  
  역시 선생님 다운 아주 교육적인 글이었습니다^^ <br>
마치 국어 교과서에 나온 기행문을 읽는 듯...학생들이 많이 배울 것 같네요. 저도 많이 배웠고요, 다음 편 기대 됩니다
윤호형제 2003.08.06 01:38  
  ㅋㅋ  정말  선생님 글이당.ㅋ <br>
교과서 책에 나오는 글 같아여...ㅎㅎ <br>
나두 이젠 1년만 있으면  고등학생인가.... ㅡㅡ;  ㅋㅋ <br>
세월~~~아~~~ 빠르다... ㅡㅡ;  ㅋㅋ <br>
담편기대할꼐여...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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