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아지매의 여행기-6,7일째-프놈펜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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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아지매의 여행기-6,7일째-프놈펜으로

조용히 1 3350

씨엠립에서 프놈펜으로

씨엠립에서 마지막날이다. 김양은 새벽에 떠났고, 장군은 올드마켓으로, 나는 앙코르박물관으로 갔다. 이번 1월에 문을 열었다는데 엄청 크고 깨끗하고 최신식이다. 입장료는 엄청 비쌌지만(12$) 볼만했다. 각 전시실마다 동영상으로 간단하게 소개를 해주는데 캄보디아어,중국어,영어,한국어,프랑스어,일본어를 선택할 수 있다. 아쉽게도 앙코르와트 소개는 영어뿐이다. 조각상들에 대한 설명, 시대에 따른 특징... 영어가 딸려서 설명문을 다 이해는 못했으나 2시간 넘게 보는데 지루한 줄을 모르겠다(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고 딴 사람들은 가격대비 아깝단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11시 40분에 픽업차가 오기로 했는데 시계는 11시 20분. 근처에 모또고 뚝뚝이고 하나도 안보인다. 허겁지겁 큰길로 나와 겨우 모또를 탔다. 장군은 2년뒤 결혼해서 아내랑 오겠다고 하고 나는 언젠가 아들과 오겠다는 약속을 하며 숙소를 나섰다. 며칠 있지 않았지만 숙소 주인(타올달라니 “노타올, 수건”이라는 아저씨^^)이랑 종업원(미스터 파 - 농담을 진담처럼 해서 당황도 많이 했으나 장난기많고 재밌는 청년이다)들이 친절해서 기억에 많이 남을 거 같다.


여행사 맞은편 건물에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학굔가 뭔가 하는데 다른 한국인아저씨 왈, 일본이 지어준 소아과병원이란다(스위스인 의사의 콘서트에 못간게 아쉽다). 일본이 지원을 엄청 많이 해서 이곳 사람들은 일제를 최고로 친단다. 세금이 거의 없는 덕분에 차도 거의 다 일제(물론 중고 트럭같은 건 한국산이지만)고 전자제품도 소니란다. 동남아시아는 일본, 아프리카는 중국, 한국은? 예전 제국주의 시대는 민간인이 먼저 들어가고(선교사,탐험대) 그 뒤에 군대가 따라 갔는데 요즘은 정부가 앞서고, 그뒤 민간인이 들어가는 식이다.


버스가 워낙(?) 천천히 달려 저녁에야 도착했다. 숙소 찾는다고 탄 뚝뚝이기사는 끊임없이 영어로 떠든다. 영어잘하는 장군은 방본다고 5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안 영어 못하는 날 붙잡고 떠든 들 내가 다 알아듣나^^ 낼 하루 세를 내라, 12$까지 깎아주겠다, 어린애가 둘이다, 가솔린 사고나면 5$밖에 안남아서 더 못깎는다... 심지어는 주머니에 넣어둔 어린이용 칫솔까지 보여준다. 하도 그래서 낼 하루 타볼까 했으나 여행 경험이 많은 우리의 장군, 냉정하게 자른다.


프놈펜에서 본 캄보디아의 현대사


하루종일 프놈펜을 헤맸다. 국립박물관 문여는 시각이 8시라서 일찍 출발했다. 최신식으로 지어진 앙코르박물관도 좋았지만 이곳 국립박물관도 마음에 든다. 오래된 건물인데다 제대로 보수를 하지 않아 벽도 군데군데 얼룩졌지만 그대로 자연스럽다. 대부분이 앙코르와트 일대의 유물들-돌인지라(나무나 쇠로 된 일부 유물들만 유리로 된 전시관에 모셔져 있다) 온도, 빛, 습도 조절에 별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탓인지 넓은 창문들을 열어놓아 확 트인 느낌이 좋다. □자 건물에 문과 창문은 가운데에 있는 정원을 향해 열려있다.


박물관 바로 옆이 왕궁이다. 회랑에는 라마나야가 그려져 있는데 훼손된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라마나야 이야기는 파괴 뒤 새로운 건설을 상징하는 상징하는 이야기라 나라 건국두에 많이 그려진단다(집에 와서 책을 보니 동남아에서 라마나야 이야기는 아주 일반적이란다). 옆엔 실버파고다. 정말 바닥이 은으로 되어있다. 진짠가 싶어 살짝 만져봤다^^ 황금 불상은 금 90kg에 2천몇백개의 다이아몬드로 장식했다는데 당시 이 나라의 국력으로 볼 때 어떻게 이런 호화로운 불상을 만들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뒤에는 녹색의 에메랄드불상이 있다. 근데 불상들을 가만 보니 재미있다. 태국서도 우리네랑 절하는 방법이 달랐는데 여기 불상들도 자세가 조금 다르다. 우리네 불상은 보통 결가부좌 자세인데 여기는 그냥 오른쪽 발을 왼쪽 다리위에 올리기만 했다. 주변의 작은 법당에는 검은소를 모셔둔 것도 있고(절에서 소를 숭상하나?) 어떤 불상은 뒤 광배가 최신식이다. 네온사인처럼 돌아간다.


왕궁사원이다 보니 왕실 관련 유물들이 많다. 베짜는 모습도 직접보고, 우리네 복돼지처럼 생긴 코끼리도 많이 놓여있다. 길거리서는 볼 수 없었던 새 국왕 사진도 전시실에 많이 있다(태국과 달리 길거리서 국왕사진을 한번도 못본 거 같다).


2시되어 뚜얼슬랭으로 출발. 당시 고문했던 현장들. 광주를 보는 듯하다. 고문하던 큰 방, 독방들, 물고문하던 항아리를 그대로 야외 잔디밭에 놔뒀다. 욕조, 손발에 채우던 쇠고리들.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크메르루즈로 가해자였던 사람들. 그들도 어린 나이에(열댓살의 판단력이 어린) 뭘 제대로 알았겠는가. 나는 절대 사람은 죽이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사람도 있고, 당시 먹고 살기 위해 할 수 없이 군에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도 다 희생자 아니겠는가. 동영상은 영어자막에 캄보디아어로 나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에어컨을 기대했는데 선풍기 몇 대가 환풍기처럼 돌아간다. 덥고 안보이고(맨 뒤라) 바로 나왔다. 현지인들도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이 외국인인데(앙코르와트와 달리 서양인이 대부분이다) 영어로도 했으면 좋았을 것을.


마지막 목적지. 킬링필드. 뚜얼슬랭서 고문하고 죽인 사람들을 묻은 곳이다. 가운데에 있는 탑에는 얼핏 보아도 몇 천개는 될 해골이 쌓여있다(그것도 일부에 불과하단다). 이 사람들은 왜 해골을 묻지 않을까. 뚜얼슬랭서도 찬장에 쌓아뒀던데. 웅덩이가 파져 있는 곳은 다 매장지란다. 심지어 어떤 구덩이서는 160여구의 몸뚱아리만 나왔단다. 영어가이드 설명을 장군이 군데군데 번역해주었다. 그 가이드 얘기가 학교서는 킬링필드를 가르치지 않는단다. 훈센정부가 평화를 중시해서란다. 그렇지만 자기네들은 절대 잊지 않았고, 절대 용서할 수도 없기 때문에 애들한테 늘 얘기해주고 가르치고 있단다(그래서 해골도 그렇게 쌓아놓은건가). 키우삼판, 폴포트... 다 프랑스 유학파 출신들의 엘리트들인데, 게다가 75년이면 중국 문화혁명이 대충 실패로 끝날 즈음이지 싶은데 왜 그리 모모한 학살을 자행했는지. 이념이 무섭다. 5년도 채 집권하지 못했으면서도 캄보디아를 수십년 후퇴시켰다. 지식인 학살, 모든 사회의 인프라의 파괴. 프놈펜 오는 내내 본 공장이라고는 벽돌 공장 두엇 뿐(오늘 처음 시멘트 공장인가를 봤다). 거의 모든 공산품은 태국제라 하고. 그들 몇몇의 무모한 실험으로 나라를 이 모양 이 꼴로 만들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혔는지(죽은 이는 죽은이대로, 산자는 산자대로).


캄보디아하면 앙코르와트만 떠올리는데 프놈펜 오길 정말 잘했다. 캄보디아의 현대사도 알아야 균형이 맞지 않겠나.


이날은 정말 하루종일을 걸었다. 다음 목적지까지 지도상으로 20여분이면 된대서 걷고 걷고 하다보니 킬링필드 왕복말고는 다 걸었다(왕궁→럭키마트 근처서 점심→뚜얼슬랭→러시안마켓→킬링필드). 낮에 봐둔 럭키마트 근처의 뷔페식당(음식종류는 많지 않았으나 2.5$라서 싼 맛에-6,7--------ㅡ;;)에서 세접시나 먹은 장군이 숙소까지 걷자는 바람에ㅠㅠ 정말 하루종일 걷고 7$ 아꼈다. 잘한건지 멍청한건지ㅡㅡ;;


그래도 걷는 동안에 우체국을 발견하여 약속했던 엽서를 보낼 수 있었다(열흘걸린다던 직원 말과 달리 2주쯤 뒤에 도착했는데 엽서받은 사람이 너무 좋아하며 주위에 온통 자랑을 했다고 한다).


1 Comments
앨리즈맘 2008.03.29 02:01  
  그런대도 프롬펜에 가기 싫은 이유는 넘 킬링필드 영화에 놀래서 인가봅니다, 글잘보고잇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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