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유랑기 - 3. 라러이 국경 - 살라완 - 빡세 - 시판돈 - 수쿠마 - 빡세 2023 1.16 ~ 1.23
라러이 국경의 베트남과 라오스의 양국 심사소 거리가 무려 4km가 된다. 그 사이 라오스 영역 안에는 마을도 있고 학교도 있어서 대개의 국경이 가지는 특별한 긴장을 많이 완화해 준다. 누구에게나 그러했는지 누구의 강아지마저 국제버스편을 이용해서 국경을 넘어 베트남으로 간다.
더해서 자주 드나든 탓에 알게된 심사관까지 있으니 불가한 일마저 처리하며 편하게 오토바이와 함께 라오스로 들어온다.
국경을 넘으며 찬비는 그쳤고 강풍은 누그러졌다. 안남산맥이 나라를 나누는 것뿐 아니라 날씨도 구분 지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경에서 완만한 경사길을 65km 내려오면 따오이 사람들의 중심인 따오이 시장이 나오고
다시 더욱 완만해진 경사길을 80km 내려오면 살라완주의 주도인 살라완에 도착한다. 해가 졌으니 길을 멈추어야겠다.
살라완에서 땃로를 거쳐 빡세로 내려온다. 낭노이 게스트하우스 구관에 짐을 풀고 긴 길을 달려온 오토바이를 점검한다.
두 달 만에 온 만큼 아주 낯설지도 그렇다고 아주 반갑지도 않다. 두 달 만에 만나는 사람들도 그렇고 두 달 만에 바뀐 거리 풍경도 그렇다.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빡세를 떠나고 돌아 왔기 때문에 고향 같은 편안함을 받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나의 지난 두 달에 큰 흥미가 없고 나 역시 그들의 지난 두 달에 별다른 관심이 없다. 여행자 거리에는 이국의 여행객들이 많이 보이는 풍경으로 변했지만 특별한 의미로 여겨지진 않는다.
이틀을 머물고 예전에 지도화 해본 짬빠삭 메콩 루프를 돌아볼 요량으로 새롭게 포장된 13번 도로 남쪽을 따라 시판돈의 행정중심인 돈콩으로 내려간다.
다시 여행객이 붐비는 돈콘이나 돈뎃에 비해 조용하고 숙식비도 저렴하니 돈콩에 거점을 두고 주변의 섬과 폭포를 다녀오는 것이 요즘은 여러모로 유리할 것 같다. 물론 자가 이동수단이 있으니 이러할 수 있다.
그래서 돈콩의 메콩강 동안에 있는 숙소를 잡고 먼저 건기의 컨파팽 폭포에 들른다.
우기에 비하지면 보이지 않던 폭포의 골격이 보이고, 보이지 않던 관람객이 많아지고, 들리던 천둥소리만큼 우렁찼던 물소리가 낮아지고, 보이던 위험한 급류 속에서 대나무 다리에 지탱하며 물고기를 건지던 어부가 보이지 않는다.
메콩의 진주 '컨파팽 폭포'에서 라오스의 메콩은 끝이 나고 캄보디아의 메콩이 시작된다.
컨파팽에서 13번 도로를 타고 다시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돈콘과 돈뎃으로 가는 선착장이 있는 반나까상으로 간다.
라오스 낍의 가치 하락으로 인해 보트 승선료가 거의 두 배나 올랐다. 충분히 이해하고 감내해야 하는 시기이다. 나 같은 달러 소지자는 감내할 폭이 거의 없다. 오히려 전에 비해 환차익을 보고 있으니 세배여도 이해할 수 있다.
보트에 오토바이를 실어 반나까상을 떠나 돈뎃으로 간다.
코로나 이전 만큼은 아니지만 많은 여행객들로 붐빈다.
여행객이 없던 틈을 타서 돈뎃과 돈콘의 길중에서 일부가 곱게 포장이 되었다. 리피폭포 가는 길도 포장이 되어서 쉽고 쾌적하게 오갈 수 있다.
머지않아서 리피폭포 운영권을 가진 중국 회사가 일대를 수상공원으로 개발한다고 한다. 더욱 쾌적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돈뎃 포구로 되돌아와서 돈솜으로 가는 보트에 오토바이를 싣는다.
4천개의 섬 중에서 크기로 따지자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데도 불구하고 돈솜은 5년 전의 모습 그대로 농사일로 바쁜 농부와 흙먼지 위에서 자유롭게 노는 아이들과 망고 나무 그늘 밑에서 수다에 빠진 아낙네뿐이다. 섬을 관통하는 좁은 흙길도
그대로이며 섬 전체에 깔려있는 지긋한 안정감도 그대로이다.
돈솜 선착장에서 보트를 타고 돈콩으로 돌아온다. 그러니 아침에 돈콩을 떠나 컨파팽 폭포, 돈뎃, 돈콘, 돈솜을 하룻만에 둘러보고 늦은 오후에 돌아온 것이다.
이제 메콩의 서안으로 건너야 한다. 그러자면 돈콩에서 50km 떨어진 타포 선착장으로 가서 강건너의 븐켄으로 가는 보트를 타면 된다.
븐캔에서 수쿠마까지 자갈길과 먼지길이 반복하는 40여 km,
라오스 남부 저지대의 그곳 어디쯤에는 3일 동안 가마 속을 태워 숯을 만들어 한 자루에 우리 돈 800원에 파는 검은 노동이 있다.
보잘것없는 선물에도 고마워하는 진심이 있고 낯선 이를 반기는 웃음이 있다. 떠날 때는 어떠한 감정도 남겨서는 안 된다.
나는 단지 흔히 있는 선한 사람을 만났고 흔히 있는 위대한 노동에 경외심을 가진 것뿐이다.
비로소 수쿠마의 읍내에 들어서면서 포장된 도로가 나온다. 그러나 탓삼팡을 가자면 포장도로에서 벗어나 상하 굴곡이 심한 먼지길을 지나야 한다.
제국이 잊히기 전에 잊혔던 제국의 유산은 점점 허물어져 간다. 몇 년 전의 사진과 비교해 보니 우측의 탑은 거의 반파되어있다. 무너져가는 육체적 고통보다 잊혀가는 심리적인 자괴가 더욱 잔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리고 나를 대비해 본다.
돈탈랏을 거치고 짬파삭을 거치고 다시 빡세로 돌아오는 길 위에서 수시로 나를 대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