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 여행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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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 여행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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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 순서

1. 박쎄이 챰끄롱→ 도보 남문 → 바이욘→ 바푸온→ 삐미아나까스→ 왕궁터→ 쁘레아 빨리라이→ (텝 쁘라

남)→ 문둥왕 상→ 문둥왕 테라스→ 코끼리 테라스→ 주차장(반나절 코스)

2. 박쎄이 챰끄롱→ 도보 남문 → 바이욘→ 바푸온→ 삐미아나가스→ 왕궁터→ 왕궁 동문→ 문둥왕 상→ 문둥

왕 테라스→ 코끼리 테라스→ 주차장(30~50분 이상 절약 가능)

3. 코끼리 테라스/문둥왕 테라스→ 왕궁 동문→ 삐미아나까스→ 바푸온→ 바이욘→ 바푸온 앞 주차장

(최소 1~2시간 절약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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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시기(왕)

종교

관광시간

바이욘 신전

12세기말 야바르만7세

불교건축

1시간 반 이상

바푸온 신전

11세기 중반

힌두교건축

보수공사중. 외부 둘러보기에 30분 정도

피미아나까스

10~11세기초

힌두교건축

올라갔다오면 20분 정도

왕궁터

자야바르만 7세

불교건축

10분 정도

쁘레아 빨리라이

12세기초~13세기초

불교건축

숲으로 다녀오는 시간 포함 20분 정도

텝 쁘라남

9세기

불교건축

 

코끼리 테라스

자야바르만 7세

불교건축

사진 촬영등 최소 20분

문둥왕 테라스

자야바르만 7세

불교건축

사진 촬영등 최소 15분

쁘라삿 수오르 쁘랏

자야바르만 7세

불교건축

로열박스에서 사진 촬영으로 대체

가려면 차로 이동 플러스 도보

남북 끌리앙

북쪽(10세기초)남쪽(11세기초)

힌두교건축

차로 이동 또는 로열박스에서 사진촬영

승리의 문

자야바르만 7세

불교건축

타 유적지 관광을 위해 통과할 때

남문

자야바르만 7세

불교건축

통과할 때 관광, 사진 촬영등 15분 이상

기타 성문

자야바르만 7세

불교건축

잘 가지 않음

 

 

바이욘 BAYON

 

▷건축시기12세기말~13세기 초

▷건 축 왕 자야바르만 7세 (1181~1220)

▷종 교 불교

▷아트스타일 바이욘

 

개요

깊은 밀림 속에 파묻혀 있던 바이욘이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학자들은 9세기 경 야소바르만 1세가 지은 힌두교 사원으로 착각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통적인 힌두국가에서 돌연한 불교로의 국교 전환이지만 당시로는 알 길이 없었고 뚜렷하게 불교적 특징의 건축양식이 없었던 시절이라 바이욘의 건축 자체도 힌두교 양식을 취했고 1층 갤러리는 숱한 힌두교 신화로 가득했고 고고학자들이 2층을 조사할 때만 해도 대부분의 부조 설화도 힌두교였으며 간간히 섞인 관세음보살에 대해 알기까지는 시간적 갭이 있었기 때문이다. 1925년에 들어서야 2층 상인방(문 윗쪽)에서 불교의 관세음보살(Bodhisattva Avalokiteshvara)과 관련된 내용들을 인식함으로서 시대적 착오임을 알게 되고 새로운 각도로 바이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오늘에 이른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다. 바이욘 건물은 그 양식이나 설계, 구조 등이 한 시기에 일정한 계획 하에 건립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모든 학자들이 공감한다. 그리고 일부 학자들은 아마도, 원래부터 위치하던 힌두교 사원을 기반으로 하여 자야바르만 7세가 확장과 증축을 거듭했을 것으로 추측하며 실제로는 이 이론에 일치된 견해를 보인다. 또 그의 치세에 챰족과의 치열한 공방전을 거듭하는 동안 수도가 침범 당해 왕은 쁘레아칸으로 이궁(移宮)하여 지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시간적 갭을 두고 공사의 전개와 중지를 거듭하였다는 점에서도 건물 구조의 복합성을 이해할 수 있다. 또 하나, 만약 바이욘이 전체적으로 자야바르만 7세의 기획 아래 동일시기에 건립되었다면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가설로 들 수 있다. 그는 불교 신도였으나 뿌리 깊게 이어져 온 힌두교 정서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힌두교 위에 불교를 가미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시대적 배경

어찌되었던 바이욘은 자야바르만 7세의 일대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쟈야바르만 7세는 한마디로 종교개혁가이다. 그는 정통 왕위계승자가 아니라 지방사령관으로 챰족과의 전쟁에서 혁혁한 공을 세워 그 명성으로 비어있던 왕위에 즉위했다. 따라서 바이욘의 부조에도 새겨져있듯이(1층 갤러리, w-2, 3, 4번 부조) 그의 즉위를 반대하는 무리들이 주도한 내란이 빈번했을 것이다. 오랜 전쟁은 겪었지만 그토록 골치아파하던 챰족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고 역대 최번성기를 맞아 주변 국가들로부터 엄청난 조공을 받던 그로서는 자신의 모든 업적을 한자리에 모울 건축물을 필요로 했었고 이 바이욘에 그 뜻을 새겨 넣었다. 왕국의 안정과 번영을 대외적으로 알리고 스스로를 자화자찬하기 위해, 또 신의 음덕으로 승리함을 축하하기 위해 헌납한 바이욘에 마지막으로 관세음보살로 화(化)한 자신의 이미지를 넣음으로서 오늘날 바이욘의 꼭대기에서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관광객을 맞이하는 신격화된 그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바이욘에서 본 쟈야바르만 7세의 업적

고대 크메르 왕국의 가장 골치는 챰파족이었다. "크메르의 왕들"에서 보다시피 수세기에 걸쳐 끊임없이 침범하고 퇴각하기를 반복하면서 크메르 왕조를 자극했던 챰파족을 완전히 무찌르고 크메르 최고의 번영기를 갖게된 시기. 지방 호족들의 난도 평정하고 이제 쌓이는 건 부(富)밖에 없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왕은 쉬지 않았다. 이제 그는 백성들을 위해 헌신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쪼옥 곧은 도로는 인근 국가로부터의 조공을 실어오는데도 무리가 없었고 백성들이 생산한 물건을 배분하기에도 좋았고 또 전국 곳곳에 병원을 짓고 길가는 행인을 위한 쉼터를 수 없이 만들고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백성들이 사계절 농사짓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거대한 저수지(쟈야타타카 바라이)도 건립해주었다. 그러나 이토록 국가와 백성을 위해 노력한 왕이지만 문둥병(으로 추정되는)에 걸려 사망하고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황금의 도읍지를 건설하는데 지나친 재정을 쏟아 부어 후대의 왕들이 이를 감당하지 못한 채 결국 크메르의 번영은 일순에 무너지고 만다.

 

형태

앙코르의 신전들을 보면 네 개의 탑(신화의 4대륙)의 가운데 성소탑(메루산)을 배치한 퀸큉스 구조를 취한다. 지도를 보면 바이욘은 그 자체가 메루산의 위치에 놓여있다. 즉 바이욘은 거대한 앙코르톰 도시 중앙에 선 중심 신전인 셈이다. 그 중심 신전을 자야바르만 7세는 자신의 평생 업적을 고스란히 담아 두었다. 앙코르와트가 벽돌을 하나하나 쌓아 만든데 반해 바이욘은 자연미를 쌓아올린 신전이다. 크기가 서로 다르고 형태도 다른 바위들을 하나씩, 마치 블록놀이를 하듯 20만개가 넘는 바위들을 끼워 맞춰 형상을 만들고 거기에 부조를 새기고 얼굴을 새기고 신화와 업적을 새겨 넣는 놀라운 기법을 도입했다. 이러한 기법은 앙코르의 수많은 신전 중에서도 유일하다. 거대한 신전은 멀리서 보면 하나의 뭉뚱그려진 구조물로 보이지만 가까이 가보면 숱한 바위들이 포개고 끼워 맞춰진 세계 최대의 블록이다. 유럽인도 감탄하는, 유럽의 건축전성기보다 훨씬 이전에 어떻게 이런 건물을 지을 수 있었는지 그 기술과 노력과 완성도에 감탄한다.

 

구조

바이욘은 3층 구조로 이뤄진다. 일층은 8개의 고푸라 문과 16 면으로 구획된 정사각형 구조를 취하며 2층도 정사각형이나 3층은 원형탑 구조의 지성소로 구성된다. 각 층과 면은 대단히 복잡한 복도(갤러리)와 문, 별실로 이어지며 갤러리의 길이는 총 1,200m로서 11,000여점의 섬세한 부조가 조각되어 있다. 일부 지워지고 알아보기 어려운 곳도 있지만 미로 같은 복도를 거닐며 아름다운 부조를 감상하다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사원의 외곽은 54개(36개만 현존한다)의 크고 작은 탑들이 중상성소를 에워싸고 지붕에는 216개의 큰 바위 얼굴 즉, 자비의 관음보살이며 자야바르만 7세 자신의 얼굴이라 믿어지는 '앙코르의 미소'가 천년 세월 변함없이 자비로운 얼굴을 한 채 얹혀있다.

앙코르의 미소

1920년 Jennerat de Beerski란 사람이 3층 성소를 둘러 선 큰 바위 얼굴을 일컫어 "Smile of angkor"라 표현한 이래 우리는 자연스레 그들을 "앙코르의 미소라 표현한다. 외진 곳에서 문득 인기척이 느껴지는 것도 사원 곳곳에서 내려다보는 그의 시선 때문이 아닐까. 신성함만 강조하는 앙코르와트와 달리 바이욘은 인간미가 느껴지기 때문에 훨씬 정감이 가는 곳이다.

각 층 갤러리의 부조는

일층 갤러리: 인간의 영역으로 인간인 쟈야마르만 7세의 전승과 훌륭한 왕의 덕치로 평화로웠던 시절을 섬세한 부조로 남겼다.

이층 갤러리: 신들의 영역, 신들의 전쟁, 신들의 업적에 대한 부조. 건물의 대부분은 힌두교 양식이며 부조의 등장인물 또한 힌두교의 신들이지만 한마디로 신들의 업적에 견주어 자신의 업적을 승화시킨 전승기념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내부 회랑은 자야바르만 7세 사후 자야바르만 8세에 의해 일부 조각되었다.

3층 : 갤러리는 없으며 지성소 부분이다.

 

바이욘, 방향 제대로 잡기

바이욘은 넓고 그 구조는 미로처럼 복잡하다. 먼저 앙코르톰의 관광 편 설명을 참조한다. 앙코르 톰 내 제1 방문지인 바이욘 동쪽 입구에서 내려 걸어 들어가면 지도의 동쪽 입구 고푸라문을 만나게 된다. 사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8개의 고푸라문과 각 방향으로 난 테라스를 통해 바이욘을 무상출입할 수 있지만, 이 건물은 동문을 통해 들어가도록 되어 있으며(방향을 혼돈하지 않아 편리하다) 무엇보다 내외벽의 릴리프(부조)를 제대로 감상하려면, 마치 한편의 드라마처럼 차례대로 내용을 읽으려면, 역시 동문을 통해 들어가 왼편으로 방향을 잡아 시계 방향으로 뱅뱅 돌아 1층, 2층, 3층을 본 뒤 마지막에 북쪽 계단으로 내려와 북쪽 테라스 밖으로 나가면 공터를 지나 바로 바푸온 쪽을 향하면 된다. 건물을 한 바퀴 도는 것도 만만찮지만 복잡 미묘한 내부를 우왕좌왕하지 않으려면 익혀둔다. 절약 코스는 지도에 표기된 대로 화살표를 따라간다.

 

바이욘을 한 컷에 담아오기

갤러리 둘레만 무려 1,200m에 총높이 43m의 3층짜리 건물에 54개의 탑(36개만 현존)과 216개(원래의 갯수)의 얼굴을 가진 바이욘을 시행 착오없이 내 앨범에 담아두기 위한 촬영장소 힌트.

관광 일정상 이른 아침에 바이욘을 첫 탐방하게 되는데 아침에 보는 바이욘은 거무튀튀한 돌의 집합체이다. 솜씨 좋은 사람들은 우중충한 윤곽도 멋들어지게 잡겠지만 일반인들은 그렇지 못하다. 전경촬영은 밝은 해가 있을 때가 가장 잘 잡히고 해 뜬 다음, 석양전의 붉은빛을 담을 때의 형태도 이색적이다. 반면 큰 바위 얼굴은 거무튀튀한 색채를 띄어 밝은 빛일 때가 훨씬 사진이 아름답다.

해서 알아두면 좋은 것. 톰에 들어서면서부터 감탄하여 촬영에 시간을 많이 뺏길 필요는 없다. 톰 관광을 마친 다음 되돌아 나올 때 햇살 가득 받은 전경을 촬영해도 되니까. 관광객의 걱정..... "놓치면 못 찍을까봐...." 그러나 코스 상 점심 귀가 시에도, 또 다른 지역 관광에도 이곳을 지나간다. 한마디로 바이욘은 동서남북 방향에 따라, 해길이, 구름이 낀 정도에 따라, 나무 한그루 탑 하나의 가림에 따라 그 느낌, 찍혀지는 모습이 완연히 다르다.

* 전경사진 : 남문 들어와 남쪽 전체 전경. 바푸온 입구 쪽에서 본 북쪽 전체 전경.

* 바이욘의 미소 : 가장 아름다운 사진, 가장 앙코르다운 사진인 "바이욘의 미소"는 2층 북쪽에서 가장 아름

다운 장면이 잡히고 3층에선 다양한 미소들의 근거리 촬영이 가능하다.

* 고푸라 : 얼굴 조각이 얹혀진 고푸라문은 바이욘보다는 "우유바다 휘젖기"의 대장관을 연출한 톰의

남문이 최적격.

 

내부 감상

건물은 3층 구조로서 1층과 2층은 정사각형으로 1층은 멋들어진 나가(Naga) 장식의 오픈 테라스를 포함한 지붕이 없는 갤러리(복도)형태로서 8개의 고푸라 문을 갖고 있다. 2층도 정사각형이나 작은 방들과 지붕 있는 공간들이 연결되어 있으며 3층은 둥근탑을 얹은 원형이다.

이 중 1층과 2층은 부조로 장식된 갤러리 형식을 취한다. 1층은 인간의 영역으로 쟈야마르만 7세의 전승과 훌륭한 왕으로서의 덕치에 힘입어 평화로웠던 시절을 남겼으며 이곳은 일반백성들의 접근과 관람도 가능했다. 2층부터는 신의 영역으로다 힌두교 설화와 관음보살화한 왕의 모습들이 남겨져 있으며 이곳은 왕과 사제들만 출입했었다. 그 신의 영역을 우리는 지금 무상출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지도와 함께 부조의 설명을 해두었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워낙 크고 또 부조가 모자이크처럼 낱장의 블록이 끼워 맞춘 형태에다 일부가 허물어지고 검은 세월의 때가 끼어 찾아다녀야하기 때문이다. 볼 수 있는 만큼 보자.

부조는 벽을 가로로 2단 또는 3단으로 나눠 마치 스케치북에 그려 넣듯이 촘촘하게, 깊게 양각으로 파내어 역사와 설화와 신화를 얘기하고 있는데, 글을 모르는 백성들에게도 그 뜻이 바르게 전달될 수 있을 듯하다. 부조는 단순히 평면 위에 새겨진 게 아니다. 알고 보면 많은 것을 얘기한다. 위쪽에 앉거나 크게 그려진 사람은 지위가 높으며 중간 단에 새겨진 것을 중심으로 아랫단의 부조는 가까운 사물, 상단의 부조는 먼 곳의 사물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제 바욘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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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층 갤러리(Outer Gallery)

결국 바욘의 부조 내용은 쟈야바르만 7세의 위업과 전승 그리고 그의 일생을 마치 파노라마처럼 스토리성 있게 표현한 것이다. 부조 내용을 알고 한 바퀴를 돌면 한편의 영화를 관람한 느낌이다.

외부 갤러리의 관람은 비교적 쉽다. 동쪽 진입구→왼편으로 돌아 남쪽→서쪽→북쪽→동쪽 갤러리로 한 바퀴 돈다. 짧게 돌고 싶으면 동쪽 진입구→남쪽에서 이층으로 올라가 2층, 3층 관람→북쪽으로 내려와 북쪽 관람 후 다음 코스로 진행.

 

E-1 (동쪽 갤러리 중앙)

지도의 동쪽 고푸라문으로 들어와 갤러리 왼편으로 돌아서 시작. 상하 3단으로 나눠 빼곡하게 부조가 새겨져 있는데 상태가 아주 좋아 눈을 즐겁게 한다. 키 높은 나무가 가득한 밀림을 배경으로 휘날리는 깃발을 앞세운 크메르군의 위풍당당한 행진. 상단에는 무장한 크메르 군인들, 하단에는 중국인이, 그리고 사기를 북돋우는 악단들도 함께 행진하고 안장 없는 말을 탄 용사도 함께 한다. 맨 위에는 코끼리를 탄 지휘관과 양산 아래에 앉아있는 자야바르만 7세가 있다. 그리고 하단에는, 행렬 끝에 보급품(식품)을 실은 이륜수레(이 수레는 현재의 캄보디아 시골 도처에서 볼 수 있다)와 화로에 불을 지펴 요리하는 여인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E-2

당시 크메르인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릴리프. 야자나무 위에 앉은 원숭이. 이층 목조건물의 식료품가게와 상점 내에는 중국인 쥔장 등 다양하고 섬세한 생활상이 새겨져 있다.

 

E-3

남동쪽 코너. 미완성 작품임, 계단 아래에는 나무 궁전과 호화로운 술잔, 그리고 90 각도로 노를 젖는 사람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각국의 군사 식별 법 사진 출처 : http://www.pbase.com/srijith/bayon

크메르 군사 - 머리에 아무 것도 쓰지 않은 짧은 머리

챰파국(챰) 군사 -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다.

중국인 군사 - 모자도 쓰고 옷차림이 다르다

S-1 (남쪽 갤러리)

남쪽은 부조상태 양호. 바이욘의 부조는 섬세함 보다는 내용에 충실한 편인데 이쪽 부조만큼은 섬세함까지 더하여 바이욘 내 릴리프 중 최상급의 상태를 자랑하여 그 내용도 알아보기도 쉽다.

본격적으로 전승 관련 릴리프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내용은 1177년 톤레삽 호수에서 발생했던 챰파족(현재의 중부 베트남)과 크메르 간의 격렬했던 해전(海戰)을 새긴 것. 화려하게 장식한 뱃머리를 가진 멋진 전투선과 함선(노 젓는 사람이 있는), 활과 창, 방패로 무장한 군인들.

아랫단에는 톤레삽 호수와 함께 톤레삽과 함께 살아가는 백성들의 가난하지만 열성적인 일상생활상으로 머리의 이를 잡아주는 여인들, 아이들과 놀고 있는 엄마, 진통을 겪으며 분만하는 여인과 그녀를 돕는 산파. 병원의 환자(쟈야바르만 7세는 백성들을 위해 병원을 많이 지었다), 야생 짐승을 향해 활을 겨누는 사냥꾼, 선상에서 게임을 즐기는 어부들, 닭싸움, 톤레삽 호수에서 일상을 영위하는 어부들, 생선 파는 아낙네.

백성들의 생활에 이어 왕실의 생활상도 묘사된다. 공주에게 청혼하기 위해 몰려든 구혼자들, 검투사들, 장기꾼들, 씨름꾼들, 야생 멧돼지의 격투 그리고 이들 장면을 떠받히는 왕의 형상은 전체적으로, 군주는 만인의 통치자인 동시에 만백성의 평안을 책임지는 자이며 군주의 역량에 따라 이런 평온한 삶의 영위가 가능하다는, 즉 치국민안, 내유외강에 주력하는 쟈야바르만 7세의 백성을 위한 통치를 단적으로 표현한 것.

다시 챰족과의 전투 장면이 이어지는데 하단에는 크메르 해안에 상륙한 챰 해군, 상단에는 이들을 맞아 격전을 벌리는 크메르군. 그리고 승리와 함께 포획한 포로들, 이어 왕궁에선 전승을 축하하는 잔치가 베풀어진다. 쟈야바르만 7세는 신하들의 축하를 받으며 앉아 있고 석공은 승리의 장면을 사암에 새겨 후대에 남기고 대장장이는 벌겋게 단 쇠를 다듬고, 요리사는 불을 지펴 축하연에 쓸 음식을 만드는 등 승전 축하연 장면이 새겨져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챰족은 크메르 왕국의 건국 당시부터 침공을 거듭하여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던 나라였으나 이번의 정벌로 챰족과의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그 여세를 몰아 챰으로 쳐들어가 정복으로 종지부를 찍었으니 톤레삽 해전은 대단히 뜻 깊은 승전이었을 것이다.

 

S-2

하단의 부조만 완성되고 나머지는 미완성, 군대 행진과 궁수와 뇌포를 실은 무장코끼리와 수레 등 당시의 전투 무기들이 새겨져 있다.

 

W-1 (서쪽 갤러리).

전반적으로 미완성 부조. 하단에는 지휘관의 인솔아래 군인들이 코끼리를 타고 밀림과 산을 지나 어디론가 이동하는 장면, 중앙 옆쪽에는 호랑이의 공격을 피해 달아나는 남자의 모습이, 위쪽에는 사원 건설을 위해 사암을 갈고 깎는 기법들을 새겼다.

 

W-2 (문 뒤쪽)

내란의 위기를 새겼다. 거리를 가득 메운 남녀들이 무장을 한 채 다른 사람들을 위협하며 전투에 임할 태세를 갖추고 일련의 군인들과 코끼리떼도 이 혼란의 봉기에 가담하려는 모습,

 

W-3

곤봉을 들고 봉기를 진압하려는 군사들과 육탄전을 벌이는 민중들과의 격돌 장면,

 

W-4

봉기는 진압되고 다시 이어지는 왕의 행렬, 그러나 이제는 평온한 모습, 승전 축하를 신의 은덕으로 여기고 사원에 기도를 하러 가는 장면.

 

N-1 (북쪽 갤러리)

곡예, 줄타기, 씨름 같은 민간 레크레이션, 돼지, 코뿔소, 토끼, 사슴, 복어, 가재 등과 같은 동물들의 행렬, 그리고 한쪽 끝에는 숲속에서 명상에 몰입하는 고행자들, 강가에서 여자들이 선물을 받는 장면 즉 모든 것이 평온해진 일상의 의미.

문 옆의 부조는 다시 챰족과 크메르간의 충돌 장면,

 

N-2

이쪽 벽은 거의 붕괴되어 폐허 수준. 각 면에 크메르와 챰의 전투 신. 전투에서 밀린 크메르 군이 산위로 대피하는 장면.

 

E-4 (동쪽 갤러리, 북동쪽 코너)

크메르 군사들과 코끼리떼의 행진 장면

 

E-5

크메르과 챰과의 전투장면 연속, 갤러리의 중간 쪽으로 갈수록 전투의 클라이막스 씬들이 이어지고 격렬한 전투 끝에 크메르군이 상황을 주도하게 되면서 전투 장면은 끝을 맺는다.

2. 이층 갤러리 (Innerr Gallery)

이제 일반인의 근접이 불가했던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곳은 3층의 신성한 영역과의 중간으로 부조 또한 힌두교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의 전쟁과, 신들의 업적에 대한 내용이 지배적이다. 건물의 구조는 후대에 개축을 거듭한 탓에 회랑과 방, 계단의 높낮이가 뒤섞여 가끔씩 진행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관람방식

이층은 수많은 방과 탑,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보면 진행 방향을 잃게 된다. 이곳도 일단 동쪽에서 진입해서 왼편으로 돌아 남쪽 → 서쪽 →북쪽으로 돌아오면 3층과 연결된 가파른 계단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도록 난간을 설치한 계단을 만나게 된다.

 

e-1 (동쪽 갤러리, 두 개의 탑 사이), 산과 숲 속에서 수도 중인 수행자들과 동물들,

e-2 (작은 방) 왕궁에서 수도승과 함께 있는 왕, 야생동물 수렵과 전원 풍경, 그리고 압사라.

e-3 (왼편) 군대 행진, 챰족과 크메르족이 뒤섞인, 특이한 장면, 아래쪽에는 일상생활

e-4 (남동쪽 코너) 코끼리 등에 탄 지휘관의 지휘아래 위풍당당하게 행진하는 군대

s-1 (남쪽 갤러리) 대행진과 일상생활. 일상생활의 내용은, 야자나무 위에 올라가 야자를 따는 남자, 가루다와 메루산 아래의 거대한 물고기와 가루다 그리고 수행자와 동물들의 모습(이 장면은 심하게 훼손되어 부조의 내용을 해석하는데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s-2 (작은 방) 아마도 사자로 추정되는 동물과 고관 또는 왕으로 추정되는 인물과의 격투, 왼편에는 코끼리 뒷발을 잡고 있는 사냥꾼 또는 왕의 병사. 자주 등장하는 3인일조의 압사라. 천상의 여인으로 신계(神界)에 거주한다. 앙코르 내에는 수천 명의 천녀가 등장하지만 단 하나도 모양이나 얼굴이 동일하지 않다.

 

s-3 (두 개의 탑 사이) 왼편: 군사행진, 그리고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쭈욱 왕자와 그의 군대와의 전투씬이, 궁전과 궁중악단들, 하단: 어부가 배위에서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는 모습을 바라보는 공주, 춤추는 압사라,

 

s-4 (두 개의 탑사이), 오른편에서 부터: 상태 좋지 않음, 연꽃 위에 선 쉬바신, 삼지창을 든 쉬바신, 위쪽: 악단의 음악에 맞춰 춤추는 압사라

 

s-5 (작은 방), 아래쪽 오른편: 일상 생활상, 위쪽: 팔 4개를 가진 비쉬누 신이 삼지창을 든 쉬바 신을 향해 하강하는 장면,

 

s-6 야생동물로 가득한 산과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는 남자의 모습, 연꽃 위에서 춤추는 압사라 사이로 걸어가는 공주.

위쪽: 신도들과 수행자들에게 둘러싸인 쉬바 신과 그의 천상의 궁전, 연못가의 동물들, 호랑이에게 쫒기고 있는 수행자와 쉬바 신 앞에 엎드려 공불 드리는 수행자들.

가운데: 팔 4개를 가진 비쉬누 신이 신도들과 압사라에게 둘러싸인 모습.

 

w-1 (서쪽 갤러리) 가루다(새)를 탄 팔 4개 달린 비쉬누 신에게 진압 당한 악마군단

 

w-2 (작은 방), 악단의 연주에 맞춰 춤추는 압사라들이 있는 궁중, 위쪽; 무희들과 전투씬

 

w-3 (두 개의 탑 사이) 오른편: 비쉬누 신과 사원 건설 장면(석공이 돌을 갈고 쪼개고 인부들이 끌어와 쌓는 장면)이 오버랩되어 있다. 이어 선상에서 장기를 두는 두 남자, 닭싸움. 왼편부터 쉬바 신이 자신의 천상궁전에서 비쉬누 신과 함께 있는 모습, 동굴에서 명상하는 수도승, 연꽃 사이를 수영하는 장면, 부리로 물고기를 낚아챈 새.

 

w-4 (서쪽 갤러리, 중앙 뒤편), 늠름한 말이 끄는 전차에 탄 두 명의 지휘관과 기마병의 행진,

 

w-5 (작은 방), 어린 공주에게 옷을 입히는 시녀들, 담소 장면,

 

w-6 복잡한 인도 신화 중에서도 가장 기본인, 꼭 알아야할 '젖의 바다 휘젖기" 장면, 바수키(뱀). 생명의 원천인 젖의 바다를 휘젖기 위해 악마와 동맹을 맺은 신들. 92명의 악마는 바수키(뱀) 머리 쪽에, 88명의 신들은 바수키의 꼬리 쪽에, 그리고 신들을 도우는 하누만(원숭이)도 보인다. 내용은 영생불로의 감로주를 얻기 위해 바수키를 만다라 산에 묶어 젖의 바다를 휘젓지만 바수키가 만다라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빠지자 비쉬누 신이 거북이로 변해 바수키를 등으로 받혀준다. 이렇게 합심하여 천년동안 젖의 바다를 휘저어 영생의 약을 얻는 내용이다. 그 과정에서 짓이겨지는 물고기들, 영생불로의 감로수를 담을 그릇, 달의 신과 해의 신의 심볼인 원반을 비롯 악마와 신들의 감로주 차지를 위한 전쟁을 진압하는 비쉬누 신(가루다 위에 탄)의 모습 등. 사족을 달자면, 악마 라후와 언약을 어기고 몰래 영생의 약을 마시는 것을 고자질한 해와 달의 신은 후에 끊임없이 보복을 당하면서 일식과 월식을 거듭하고 있다. ^^

 

w-7 (북서쪽 코너) 군대의 행진

 

n-1 왕궁 장면: 전체적인 내용을 보건데 아마도 쉬바 신의 거처(왕궁)인 듯하다. 하며 시종들이(신도들이) 공물을 드리기 위해 늘어선 장면, 산속 장면: 코끼리, 멧돼지 등의 야생동물이 가득한 산(히말라야의 카일라사 산)

 

n-2 (작은 방), 10개의 팔을 가진 쉬바가 춤을 추는 위쪽에는 압사라들도 함께 춤추고, 오른쪽에는 비쉬누와 왼쪽에는 얼굴이 4개인 브라흐마 신, 아래쪽에 가네샤(코끼리)와 라후 신이 함께 한다.

벽쪽: 힌두교의 3신 : 비쉬누 신과 브라흐마 신 사이에 앉아 있는 쉬바 신

 

n-3 (두 개의 탑 사이) 오른편: 쉬바 신이 자신을 따르는 수행자들, 여신도들 그리고 자신이 즐겨 타고 다니는 황소 난디(Nandi)와 함께 있고, 맞은편: 산속에서 명상에 잠긴 수행자의 모습 이어 쉬바 신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히말라야 산에 사는 아름다운 처녀 파르바티. 산 정상에서 명상 중인 쉬바 신에게 반해 유혹하지만 꿈쩍도 않자 사랑의 신 까마(kama)가 그녀를 위해 사랑의 화살을 쉬바 신의 가슴에 명중 시키려는 순간의 장면이다.

사족을 달자면 까마는 수행을 방해한 벌로 타 죽지만 파르바티와 결혼 시킨 공을 인정받아 후에 생명을 되찾는다.

 

n-4 (두 개의 탑 사이), 황소 난디에 탄 쉬바 신의 허벅지에 앉아 있는 아내 파르바티 여신, 왕궁, 머리가 여럿 달린 뱀, 아래쪽: 춤추는 압사라. 그리고 아르주나(Arjuna)가 신으로부터 인간으로서 지켜야할 궁극적인 가치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 '마하바라타(聖典)'의 장면. 문 왼편에도 '마하바라타'의 내용이 등장하는데 신으로부터 권능과 용맹을 부여 받은 라바나가 교만에 빠져 감히 쉬바 신이 거주하는 카일라사 산을 뒤흔들어 노여움을 사게 되는 장면, 두 개의 궁중 장면과 공물 드리는 시종들.

 

n-5 위쪽: 명상에 잠긴 수행자들,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축복을 내리는 쉬바 신과 그 위를 춤추는 압사라. 위쪽: 친히 군대을 이끌고 행진하는 왕과 악단, 코끼리, 말, 그리고 가마를 타고 뒤 따르는 공주, 황소가 이끄는 수레, 행렬의 내용을 보건데 아마 축복 받는 자는 왕이 아닐까 추정된다. 그리고 바욘의 이야기는 서서히 끝을 향해 치닫는다. 나머지 동쪽 회랑의 장면들은 자야바르만 7세의 죽음을 그리며 앤딩한다.

 

E-5 (동쪽 갤러리, 북동쪽 코너) 왕의 행렬을 묘사. 악단과 보병, 기마병, 전차를 동반한 군대의 행렬, 옥좌, 코끼리에 탄 왕....

 

E-6 (문 지나) 전투에 출정하기 전 쉬바 신의 발 아래 꿇어앉아 축복을 기원하고

 

E-7 (작은 방) 두 개의 큰 배가 물고기떼에 둘러쌓여 있고 그 위를 춤

1 Comments
행복한대장 2010.10.04 23:28  
정말 대단하네요..ㅎㅎ 감사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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