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바이디 라오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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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바이디 라오스(8)

이준용 4 2983
- 라오스를 떠나며 -

1월 6일 아침 5시. 기상.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어제 사 온 샌드위치로 아침을 해결하고, 짐
을 싸서 밖으로 나와 보니 사방은 어둠 뿐. 당연히 뚝뚝은 커녕 개미 한마리도 돌아다니지
않는다.
"비엔티엔으로 가고 싶습니다"
숙소의 종업원은 어둠을 뚫고 사라지더니 어디선가 뚝뚝 한 대를 불러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비록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여기 사람들은 참 친절합니다)

아침 6시. 터미널 도착. 다른 곳은 모두 잠들어 있을 이 시각에도 이곳은 환히 불이 밝혀져
있고, 모두들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비엔티엔 행 첫차는 6시30분. 물 한병을 사
들고 버스에 오른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 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 장시간 버스타는 게 힘들
다는 점을 모르진 않을텐데, 아내는 라오스에서 해방(?)된다며 엄청 좋아한다. 드디어 버스
출발! 중간에 방비엔 조금 못 미쳐서 점심식사를 하고 계속 달려서 12시반에 방비엔, 그리
고 출발 9시간만인 오후 3시30분에 드디어 비엔티엔 도착!! (그 동안 버스타는 게 하도 단
련이 돼서, 이젠 서울-부산쯤은 우스울 것 같다) 갈 때와는 달리 운전기사가 중간에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을 짧게 가졌고, 고장 등의 변수가 없었는지라 정시 도착이 가능했다.

버스에서 내린 곳은 터미널도 아니고 그냥 허허벌판 같았다. 출발할 때 탄 곳이 아니니 당
연히 어딘지도 모르겠다. 완전히 지들 맘이군... 그러나 누구도 그런 걸 탓하진 않는다. 이제
부터 중요한 건 국경까지의 뚝뚝 협상. 함께 타고 온 서양인들과 어울려 흥정을 하는데, 영
어가 잘 안되니 아무래도 과묵해진다. 14번 버스가 5시까지 다닌다고는 하나, 기차시각을 생
각하면 그럴 시간이 없다. (국경은 10시에 문을 닫는다니 5시에서 10시까지는 뚝뚝 세상) 흥
정이 다 끝나도록 멍한 얼굴로 있으니까 그 중 젊은 서양인 하나가 그런다.
"이해했냐?"
내가 고개를 갸우뚱갸우뚱하니까 친절하게도 그 친구는 결과를 내게 다시 설명해 준다.

국경으로 향하는 뚝뚝 안에는 우리 부부와 서양인 남자 네명이 함께 탔는데, 그 중 하나는
모자 밖으로 삐죽 나온 머리가 희끗희끗하다. 마흔 다섯이면 거의 환갑이라는 배낭여행자의
세계에 웬 노인네? 근데 가지고 다니는 가방은 우리나라에선 군바리나 쓰는 따불백에 어깨
에 걸머지는 비닐가죽가방이다. 와... 배낭도 아니고 따불백을... 저기다 모든 짐을 다 때려
넣고 다니는구나... 가방이 터질 것 같다. (그렇게 봐서 그런지) 옆 사람과 얘기하는 모습도
꼭 무슨 중요한 결단을 내리듯 진지하고, 하다 못해 담배 피우는 모습도 멋있다. 존경... 존
경... 또 존경...

- 슬픔... 그리고 기쁨 -

오후 5시 좀 넘어서 농카이역 도착. 1/8일자로 미리 끊어놓은 방콕행 기차표를 당일표로 바
꾸고자 시도했으나... 당연히 표는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취소 수수료. 기차표를 취소하
면 수수료가 50%란다. 난 기차를 놓친 것도 아니고, 이틀이나 미리 말하는 것이므로 수수료
가 있어도 조금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 진짜 고민된다.

여기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도루 비엔티엔으로 들어가 제대로 못한 시
내관광을 마저 다하는 것. 물론 이 경우엔 다시 국경을 들락거려야 하는 불편함이 생긴다.
그래도 내가 이렇게 하자고 하니, 다시 라오스로 간다는 말에 아내는 울기 직전의 얼굴이
된다. 쯧쯧... 다른 하나는 그냥 농카이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 (이건 아내의 주장) 그러나 농
카이에 대해선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데? 어디 가서 뭘 하고 지낼 것인가... (내가 볼 때
이건 시간낭비다)

결론은 간단했다. 기차표 환불! 눈물을 머금고 내린 결정이다. 내가 '변경'이 아닌 '취소'를
말하자, 역무원조차도 나를 아주 불쌍하게 쳐다보며 "다음 주나 다음 달엔요?" 하며 바로
처리하지 않고 기다려준다. 내가 재차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자, 그도 마지못해 자판
을 두드린다. (사실 난 이런 사소한 모습에서 태국 사람들의 '정'을 느낀다. 사무적이지 않으
니 사람 냄새가 난다)

기차역에서 나와 뚝뚝타고 이번엔 버스터미널로 갔다. 뚝뚝기사가 어디 가느냐고 묻길래 처
음엔 방콕! 그랬다. 농카이 터미널은 콘송 머칫마이처럼 넓진 않았는데(당연한 얘긴가요?)
그 중 한 창구(바로 방콕티켓 끊는 곳)에 내려 준다. 몸을 먼저 내리니 가방은 아저씨가 내
련 준다. 그런데, 여기서 떠오른 생각. 어차피 파타야 갈건데 방콕에서 갈아타느니 여기서
곧바로 가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엔 "파타야!" 그랬다. 그러니까 뚝뚝 아저씨는 우리보
고 그럼 다시 타란다. '또 어디로 멀리 가나보다...' 하는데, 한 10m 더 간다. 하하!! (나 같으
면 귀찮아서라도 "그럼 저쪽으로 가봐" 하겠는데...)

파타야 행 999VIP버스는 없다. 그냥 3백몇바트하는 일반버스가 있을 뿐... 아까부터 나에 대
해 미안해하는 아내는(일찍 라오스를 떠나자고 주장해서 지금 이 고생을 하는 중) 그것도
괜찮다고 하는데...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당신이 태국버스 타는 재미를 알아?"
힘들어서 안 된다고 설명하고 결국은 방콕행을 끊었다. 차시간까지는 좀 남았으니 저녁을
해결해야지? 해서 카우팟과 팟타이를 먹었다. (카우팟은 많이 먹어봤지만, 팟타이는 처음.
근데 무슨 볶음국수가 이렇게 달지? 무슨 설탕국수도 아니고...)

저녁 8시 버스 승차. 말로만 듣던 999VIP버스다.
야호!!
대형버스인데도 좌석은 24개. 굉장히 쾌적한 공간에 담요까지 준다. 의자도 당연히 젖혀지고
앞뒤 좌석의 간격이 넓어서 다른 사람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버스 뒤엔 화장실까지... (이
름만 VIP인 라오스 버스하고는 차원이 다름)
야호!!
단순한 우리들은 기차표 날아간 슬픔은 금세 잊고 좋아서 계속 헤헤거렸다. 버스 안이라 큰
소리도 못 내고 단지 히히덕거리기만 하는데, 우리의 모습이 우스운지 통로를 사이에 두고
옆에 앉은 아저씨는 웃으면서 계속 쳐다본다. 좀 있으니까 빨간 치마 입은 예쁜 아가씨가
승객들에게 콜라, 빵, 물을 나눠준다. 이건 아침식사로 해야겠다. 짱 박아야지.. 내일 아침 5
시까지 꼬박 9시간을 달려야 하니 잠이나 자둬야겠다.

- 방콕 & 파타야 -

1월7일 새벽 5시. 정시에 방콕북부터미널 도착. 버스에서 내리니 새벽인데도 공기는 따뜻하
다. 그래! 이거야 이거...
표 끊겠다고 헤매고 있으면 매표원들이 손짓하며 우리를 불러주고, 어디서 타는지 몰라서
헤매도 다 알아서 가르쳐준다. 따라서 별 어려움 없이 6시에 파타야행 버스 승차. 똑같이 제
일 좋은 버스로 한 것 같은데 아까 만큼 좋지는 않다. 그런 버스는 장거리 밤버스에만 투입
하나?

다시 두시간을 더 달려야 한다. 창 밖으로 보이는 낯익은 방콕의 모습... 조금 더 가니 시내
를 벗어나서 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슬며시... 또 잠이다...

마침내!!! 아침 8시에 꿈에 그리던 파타야에 도착했다. 어제 새벽6시 반에 루앙프라방에서
버스를 탔으니 꼬박 25시간30분이 걸렸다. 으하하!!!

사족:
1) 비엔티엔-루앙프라방 구간은 길이 하도 꼬불꼬불해서 제한속도가 30km/h입니다. 그 이
상은 속도를 내고 싶어도 못 내죠. 따라서 시간은 많이 걸리지만 거리는 서울-부산보다
도 짧을 것 같습니다.
2) 방콕의 모 한국인업소에 기차표 예매를 부탁했더니, 여행자의 일정이 변경되는 경우가
많고, 그 경우 여행자들이 취소수수료를 내지 않으려 해서 어려운 점이 많다고 하시더군
요. 그 말을 들을 때는 좀 서운했었는데, 제가 막상 당하고 보니 이해가 가더군요. 가슴
아픕니다...
3) 부디 여러분들께서는 기차표 예매 때 신중하시기 바랍니다. 제 꼴을 한번 보세요.
4) 태국돈에 대해 느껴지는 '감'이랄까? 1,000바트면 우리 돈으로는 3만원인데, 10만원정도로
느껴집디다. 비슷한 이유로 태국의 물가는 (장소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한국의 1/3 같
더군요.
5) 999VIP버스의 나쁜 점 하나. 비행기처럼 담배를 못 피우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목이
불편하더군요. 저는 물병에 수건을 둘둘 말아 베개로 사용했는데, 역시 불편... 미리 베개
를 준비하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6) 밤에 버스 안에서 화장실 가다 보니까 그 도우미 아가씨는 화장실 맞은 편 좁은 공간에
서 쭈그리고 자더군요. 고단한 일상입니다.
7) 오늘 사진은 라오스의 마지막 편. 루앙프라방 박물관 민속공연을 홍보하러 나온 악대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트럭을 타고 다니더군요...
4 Comments
주니애비 2003.01.29 12:53  
  여행기 7회, 8회차에 아무도 리플달지 않으셔서 힘을
잃으실까봐 잘 읽고있다는 리플을 답니다.
리플 달지않아도 열심히 눈팅중이니 염려마시고 계속해서 올려주시기 바랍니다. 홧팅!!!
참고로 이준용님 성함을 꺼꾸로 읽으면 제 아들넘 이름이 됩니다.. ㅎㅎㅎ 용준이... 넘 썰렁한가?? -.-;;
이준용 2003.01.29 16:19  
  아이구.. 제게 힘을 실어주시니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요. 하하!! 아드님 이름이 용준이요? 하하!! 좋은 이름입니다. (물론 아부 하하!!)
히스테리박 2003.01.29 17:30  
  저두요!! 업무시간 짬짬히 님에 글 보러 온답니다..
언제 가게 될런지는 몰라두..
라오스 정말 가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여행기를 더 챙겨보게 되네요..
파타야편도 기대하고 있으니 얼른 올려주세요..^^&
백언니 2003.02.11 12:58  
  오오오~ㅅ!!!
결국 왕위엔에는 못가셨군요...
애석해라!!
저도 한달 반 전에 열흘정도 일정으로 라오스를 여행하고 왔거든요.
그중 왕위엔에서의 일정이 가장 기억에 남았었는데 왕위엔을 못가셨다니...
강가의 커티지에서 남송과 멋진 산의 풍경을 바라보며
감탄하던 일, 폰투어의 카약킹, 무엇보다도 현지 사람들의 때묻지 않은 미소와 여유로움이 최고였지요.
다시 한번 가고 싶은 곳입니다....흑흑....그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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