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하노이 (라오스 탈출기) 01 - 농키아우에서 쌈느아로 가다.
라오스 동북부 국경을 넘어 베트남 하노이로 들어가기로 결정한 것은
특별히 내가 모험을 즐기거나, 남이 가지 않은 오지만을 찾아 다니기 때문에는 아니다.
중국 운남 곤명에서 여행을 시작한 계기는
언젠가 대한항공 기내에서 기내지 모닝캄에 실린 쿤밍에서 하노이 까지의
기차여행에 대한 여행칼럼을 읽고 난 후, 그 기차여행에 너무 끌렸기 때문이다.
마일리지 사용이 이용자에 더 불리해지기전, (2005년 부터 불리해졌다.)
마지막 남은 마일리지를 다 끌어모아, 쿤밍으로 들어가서 방콕으로 나오면 되겠거니 대충 생각하고, 대한항공에서 쿤밍 인 방콕 아웃으로 부킹을 한 다음
200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는 서울을 떠나 쿤밍에 도착했다.
2005 년 4월 1일 현재,
지난해인가 에 폭우로 훼손된 무너진 중국 쪽의
철로는 아직 복구 되지 않았는지, 하노이의 여행사에서도 베트남 국경까지만
기차가 다니고, 중국에서 부터는 버스를 타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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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ng soon...
중국 운남성에서 대략 한달쯤을 보내고, 구정이 시작되기 전
중국을 빠져 나오려는 내게, 쿤밍 - 하노이 의 기차 여행 대신
매력적으로 다가 온 것은, 트래블 게릴라 게시판에서 읽은 타이타이 라는 분의
중국상선을 이용한 메콩강 여행기 였다.
그것에 매혹되어, 계획에도 없던 시상빤나로 가서
나무야 게스트 하우스에서 선영낭자와 낮에는 탁구치고 밤에는 맥주마시는
생활을 근 열흘 넘게 하다가, 중국 관루이에서 배를 타고 태국으로 넘어 온 것이다. (이 여행기는 나중에 다시 올릴 예정이다.)
그러다 보니 코스가
중국 운남 - 태국 치앙마이 - 방콕 - 캄보디아 - 베트남 남부 - 베트남 중부 - 라오스의 순서가 되어버렸다.
베트남 훼에서 라오스 사반나켓으로 들어와
사반나켓 - 비엔틴 - 방비엥 - 루앙프라방 의 순서로 여행을 한 후
라오스를 벗어나는 길은, 대다수의 여행자가 가는 것 처럼
루앙프라방 - 치앙콩 - 치앙마이 로 해서 태국으로 가거나
루앙프라방 - 루앙남타 - 보텐 - 멍라 로 해서 중국 징홍 혹은 쿤밍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라오스를 남에서 북으로 관통 한 뒤, 베트남 동쪽으로 대충 가서
하노이 쪽으로 빠져나가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호치민에 머무는 동안 대한항공에 가서 방콕 발 비행편을 하노이 발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나서 라오스 베트남 국경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웹사이트는 google.com 을 이용했고 www.lonelyplanet.com 의 게시판과
동남아를 모터사이클로 여행하는서양인들이 이용하는 웹사이트인
www.gt-rider.com 에서 주로 정보를 얻었다.
가이드북은 엘 까미노에서 나온 인사이드 베트남
랜덤 중앙에서 나온 트래블 게릴라 동남아 편
론리 플래닛 shoe string on south east asia 최신판
론리 플래닛 vietnam, laos 각각 최신판 을 참조 했다.
가이드 북에는 한결 같이 베트남과 라오스의 단 두개의 국경에 대해서만 언급되어 있었다.
가장 생생하고 유용한 정보는 역시 www.gt-rider.com 에 있었다.
지티라이더 에는 라오스 베트남 최북단의 국경이 외국인에게도 오픈 되었다는 의견과, 실제로 가보니 오픈되어 있지 않다, 라는 의견이 맞섰다.
라오스 베트남 최북단의 국경은 타이 트랑 (tay trang) 이다.
라오스 쪽 마을의 이름은 모르지만, 베트남은 디엔 비엔 푸 이다.
디엔 비엔 푸 국경을 마음에 둔 것은 지도상으로는 하노이와 가깝기도 하거니와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개인적인 이유와,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걸 매우 싫어하는 개인적인 특성 때문이다.
디엔 비엔 푸는 프랑스 식민정부의 군대와 베트남 민족해방군의 군대가 전투를 벌여, 프랑스 군 5000 여명의 사상자를 낸 격전지다. 마침내 프랑스를 베트남에서 손 떼게 만든 그 전장의 현장을 보고 싶었다.
게다가 나의 중국 비자는 작년 4월에 중국 상해에서의 일 때문에 받아놓은 1년 유효, 멀티 비자이다. 국경 까지 갔다가, 막히면,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
다시 징홍에서 나무야 게스트 하우스에서 선영낭자와 탁구를 치고 맥주를 마시고, 아마도 전 중국에서 가장 싸고 훌륭한 징홍의 1시간에 중국돈 10원 하는 안마를 하루에 두 세번 받으며 쉬다가, 징홍에서 하노이로 들어오면 되기 때문이다. 비록 좀 돌아가더라도, 그 길은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니까.
그런 생각으로 라오스 사반나켓 - 비엔틴 - 방비엥 - 루앙프라방 - 농키아우까지 여행을 했다.
루앙프라방에서 나를 농키아우로 보낸 것은, 일본어 가이드 북인 '지구를 간다' 였다. 왜 일본어 가이드북을 찾아 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고 빠른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는 일본어 가이드북을.
루앙프라방에서 일본인들이 거의 아도를 치다시피 하는
콜드리버 게스트 하우스에서 난 일본인들의 가이드 북을 뒤지기 시작했다.
난 일본어는 히라카나 가타카나도 읽을 줄 모른다. 말은 몇마디 하지만.
2005~2006 년 판, 지구를 간다, 라오스 편 지도의 최북단 국경은 아쉽게도
디엔비엔푸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난 최북단 국경의 이름을 일본친구에게
읽어 달라고 했고, 그는 그 국경의 이름이 나메오 라고 읽었다.
내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한자로 표기된, 2004년 4월, 뿐이었다.
'2004년 4월 부터 외국인에게 오픈 되었다는 거겠지'
나메오, 라는 지명 하나만으로 나의 라오스 엑소더스는 시작되었다.
먼저 경로를 표시하자면
라오스 , 루앙프라방 - 농키아우 - 비엥캄 - 비엥통 - 남느언-쌈느아-비엥싸이-나메오
베트남, 나메오 - 꾸안손 - 꺼넝 - 텡호아 - 하노이 순서이다.
쌈느아에서 1박, 꾸안손 혹은 꺼넝에서 1박 총 2박 3일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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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 월, 농키아우 - 비엥캄
08:30 기상, 아침식사
전날 루앙프라방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농키아우로 들어와 , 같은 게스트 하우스의 옆방에 묵은, 킴 과 같이 아침식사를 한다. 호주에서 태어난 중국계 호주인 인 킴은 , 중국어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한자는 전혀 읽지도 못했다. 그녀의 직업은 간호사. 광동계 중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나만큼의 타고난 방랑벽이 있는지, 여기 저기서 일을 해왔다. 간호사라는 직업과 영어원어민 이라는 조건은 그녀를 영어권 국가에서 쉽게 일을 하게 해주었다. 브리스베인 근처에서 태어나 브리스베인에서 대학을 나온 그녀는 호주에서도 다윈, 퍼스, 에어즈락 근처를 돌며 일을 해왔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런던에서 3년 일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그녀의 호주식 영어에는 런던식 발음이 묻어 나왔다. 이 여행을 마치고 나면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가서 일년간 일하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그녀. 그녀의 행선지는 폰사반. 그 곳에 가서 라오스의 유명한 들판에 널려 있는 정체불명의 돌항아리를 보고 비엔틴으로 돌아간 뒤 방콕 싱가폴 런던 더블린의 순서대로 여행을 할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나와 킴의 2박 3일 여행은 시작되었다.
09:40 농키아우 버스정류장 도착,
전날인 3월 27일, 농키아우의 버스 정류장에서 물어본,
그 누구도 농키아우 - 쌈느아 의 버스시간을 정확히 알려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라오스 인들, 혹은 베트남인 들과 커뮤니케이션 하기 어려운 점은
그들이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라, 그들은 하루를 24 시간으로 표기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침 아홉시도 09:00 이고 저녁 아홉시도 09:00 이다.
am, pm 이라는 개념은 학교는 대도시에서 그래도 공부한 사람들에게나 통한다.
그래서 고안해낸 나의 노하우는 09:00 다음에 해와 별을 표시하는 것이다.
아침 혹은 한 낮일땐 해, 저녁 밤 새벽 일땐 별.
그렇게 소통해서 알아낸 것은
쌈느아 행 버스가 저녁 10시에 농키아우를 통과한다는 것이다.
그 버스는 비엔티엔에서 루앙프라방을 통과해,
농키아우를 거쳐 쌈느아 까지 간다고 한다.
그러나 밤 열시까지 기다리기도 그렇고,
또 이날은 나의 라오스 비자가 유효한 마지막 날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체크아웃을 한 뒤,
일단 버스 정류장에 가보고,
동쪽으로 가는 아무버스나 툭툭을 타고 간 뒤, 해가 지면 대충 머물 생각이었다.
버스 정류장에는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버스만 있다.
겨우 찾아낸 것이, 동쪽으로 120킬로 쯤 떨어진 비엥캄으로 가는 트럭버스. 20000 낍을 주고 그 트럭을 타고 비엥캄으로 갔다.
비엥캄에 가면 또 다른 트럭이나, 최소한 송태우라도 있겠거니 하고.
그러나 이건 나의 착각의 시작이었다. 라오스 북동부는 내가 생각한 곳 보다 훨씬 문명의 혜택이 닿지 않은 오지 였다.
킴과 나는 비엥캄 행 트럭버스에 올라탔다.
12:00 타이어 펑크 그리고
어른 스물세명과 아이 다섯, 그리고 오십킬로 쌀포대 12개를 싣고, 트럭버스는는 산길을 달린다. 산길 어느 중턱에 트럭이 멈춘다. 과다적재로 뒷 타이어가 펑크난 것이다. 타이어 교체후 트럭은 다시 달린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데리고 탄 고산족 여인, 그녀의 딸의 손가락 끝은 찢어져서 피가 흐르고 있다. 배낭에서 밴드를 꺼내, 킴에게 건네 주며, 꼬마의 손을 감아주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한마디 농담을 던져본다. 꼬마야 넌 행운아야. 왜냐하면 넌 아주 뛰어난 간호사를 옆에 두고 있으니까. 내 농담을 들은 킴이 씨익 웃는 다. 남은 밴드를 꼬마의 엄마에게 건네 주었다. 그녀는 감사하다는 말이나 미소나 표정의 변화없이 밴드를 받아 넣는다. 그녀의 아들은 건조한 기후로 인해 입술이 갈라 터져있다. 다시 배낭에서 립그로스를 꺼내 그녀의 아들의 입술에 발라주고, 그녀에게 건네준다. 역시 아무런 표시나 미소가 없다. 아마도 외지인을 경계하기 때문이리라.
13:30 비엥캄 도착
세시간 남짓 산길을 달려온 트럭버스는 비엥캄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비엥캄 도착후 물어보니, 오늘 동쪽으로 가는 트럭이나 송태우는 단 한대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다는 얘기는 다시 백오십 킬로 정도 동쪽에 위치한, 비엥통 까지 데려다 줄테니 40불을 달라. 40불 이라는 얘기에 흥정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일단 식당을 하나 찾아, 밥과 국수, 그리고 비아라오 한병으로 대충 허기와 갈증을 해결한 뒤 판단하자. 그래서 찾아나선 식당엔 놀랍게도 여행자 옷차림이 아닌 서양인 1명이 비교적 깨끗한 옷차림의 라오스 현지인들과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이다. 그는 내가 식당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탄식조로 그의 라오스 동료들에게 영어로 속삭였다.
'참 나, 여기서도 여행자를 보게 되다니.'
그 간 여행자들에게 시달린 경험이 많아서 일까.그러나 그 속삭임은 내 귀에도 들릴만큼 컸다. 그래도 할수 없는 법. 그에게 묻는다.
'식사하는 데 미안하다, 당신 영어를 하느냐'
독일식 액센트가 느껴지는 그에게 부탁을 해서, 내가 영어를 하는 그의 동료 라오스 인에게 묻고, 그의 동료가 식당 주인에게 물은 뒤 다시 영어로 통역을 해서 알아낸 사실은, 쌈느아로 가는 버스가 새벽에 비엥캄을 지나간다는 것이다.
15:00 비엥캄은 농키아우 만큼 작은 마을이다.
걸어서 끝에서 끝까지 가는 데 5분 정도면 충분한.
마을에는 관공서겸 마을회관과, 우체국 하나, 그리고 라오스에서 본 가장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가 단 하나 있다.
게스트 하우스는 방 하나에 2불, 수준은 라오스 여행시 보게되는 소수민족의 고상가옥 과 흡사한 방의 구조다. 게스트 하우스의 여주인도 영어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해, 달, 별과 숫자의 조합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알아낸 것은, 쌈느아행 버스가 새벽 1시에 비엥캄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
몇번 히치하이킹을 시도해봤으나, 다들 30불에서 심지어는 50불을 요구한다.
그것도 동쪽으로 150킬로 떨어진 비엥통 까지 데려다주는데. 누가 라오스 인들은 순박하다고 했는가? 히치하이킹은 포기하고, 비엥캄 단 하나의 게스트 하우스의 라오스에서 묵었던 가장 허름한 방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여주인이 방값을 절대 깎아주지 않으려 하는 데다, 이 게스트 하우스는 유일한 게스트 하우스 이다. 그리고 만일 새벽 1시에 버스가 지나간다면, 방을 하나만 잡자, 라는 내 의견에 킴이 동의 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잠깐 눈을 붙일 뿐이니까.
킴과 함께 마을 끝에서 끝으로 걸어가 본다. 작은 우체국에서는 햄 수신시 같은 무전기로 교신중이다. 잡음이 많이 들리고, 감도가 별로 좋지 않다. 아마도 저 무전기가, 이 작은 마을의 외부와의 유일한 소통수단이지 않을까. 조금 더 걸어가면 나오는 나오는 동사무소겸 마을회관에서는 어른들이 앉아 한참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교재는 소 돼지 말 사과 바나나 같은 그림과 그림 옆에 글이 쓰여진, 마치 유치원생의 것 같다. 아마도 문맹 퇴치 프로그램이리라..
다시 게스트 하우스 쪽으로 걸어나와 마을 끝으로 가니, 다리가 있고, 다리 아래는 강이 흐른다. 다리는 두 협곡사이에 건설된 것으로, 다리에서 내려다 보는 강의 높이는 아찔하다. 족히 50미터 높이는 되어 보인다. 킴은 강으로 내려 가겠다고 하고, 나는 피곤해 숙소로 돌아와 구멍이 뻥뻥 뚫려있는 바나나 잎으로 만든 벽으로 뚤러 쌓인 공동화장실 겸 욕실에서 바가지 샤워를 했다. 물은 얼음처럼 차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오니, 체크인 시 보지 못했던, 젊은 라오 청년 둘이 있다. 주인집 아들과 아들의 친구다. 적으라고 내민 숙박부 노트를 살펴보니 가장 빠른 게 2000 년이다. 간격을 살펴보니, 거의 1주일에 서 너명 정도의 여행자가 하루나 이틀 정도를 묵고 가거나, 아니면 새벽에 타는 차를 타고 떠났다. 2000년 부터 숙박부로 사용한 대학노트가 아직 채 열페이지도 채워지지 않았으니. 어딜 가나 있는 일본인이 한명, 그리고 놀랍게도 한국인이 일주 전에 묵고 갔다. 여권번호를 보니 부산여권이다. 그녀의 직업란에는 아티스트 라는 단어가 쓰여져 있다.
주인집 아들은 축구를 하러 간다고 하고, 주인집 아들의 친구와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는 학교가 없는 산골에서, 이 작은 마을 비엥캄으로 유학(?) 을 와서,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영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웬만한 영어는 다 알아듣는 나이지만, 그의 발음과 어법은 정말 알아듣기 힘들다. 스펠을 써 보라고 하면 스펠마저 엉터리다. 그는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하더니, 오늘 저녁 자신의 클래스에 와서, 자신의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나는 나보다 더 영어를 잘하는 친구와 같이 여행중인데, 그녀는 지금 강가에 있으니, 그녀가 돌아오면, 그녀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녀는 미국인이냐고 그가 묻는다. 오스트레일리안 이라고 대답하지만,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라는 나라를 모르는 듯 하다. 어쨌든 그의 수업은 저녁 여섯시 반, 우체국 옆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18:20
영어교사와 대화를 마치고 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천정과 벽사이의 기둥을 타고 큰 쥐 한마리가 달려간다. 침대에 누워 있다가 깜빡 잠이 든 나를 깨운 건 강가에서 돌아온 킴이다. '조니, 아 유 인 데어' 킴에게 영어교사를 만난 얘기를 해주자, 킴은 흥미를 보인다. 시계를 보니 여섯시 이십분, 그래서 킴과 함께 그의 학교를 찾으러 우체국에 갔으나, 도저히 학교나 회관으로 보이는 건물이 없다. 아까 낮에 문맹퇴치 프로그램이 벌어지던 그 마을회관을 말하는 것일까? 마을회관 까지 가 봤으나, 불은 완전히 꺼져있다.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킴과 내 옆을 자전거 한대가 지나가더니 멈춘다. 낮의 그 영어교사다. 그에게 말한다. 우체국 옆에 갔는데 못찾아서 마을 회관까지 갔다가, 이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어디 있는 거야, 너의 강의실은? 그래서 그와 함께 간 그의 강의실은, 놀랍게도 고상가옥의 아래, 고산족들이 가축을 키우거나, 낮의 더위를 피해서 쉬는 공간이다. 거기에 30촉도 안되는 전구가 걸려있고, 서 너명의 소년들과 서너명의 소녀들이 목탁 주위에 앉아 있다. 펜과 노트를 들고. 칠판 역시 목탁의 다리를 떼어낸뒤 벽 기둥에 못 박은 것. 지우개는 천이다. 목탁 옆에는 두대의 길쌈기가 있고, 한대의 길쌈기에서는 사춘기의 소녀가 길쌈질을 하고 있다.
그와 그의 학생들의 호기심은 매우 복합적이다.
우리 둘의 국적과 우리 둘의 관계와, 그리고 킴에 대해서.
한국, 코리아, 까올리 라는 국적은 이해하지만, 동남아 인처럼 보이는 킴의 국적이 호주라는 것과, 호주 라는 나라와, 동남아 인처럼 보이는 킴이 왜 그렇게 영어를 잘 하는 지를. 클래스를 킴에게 넘기고, 비어있는 한대의 길쌈기에 걸터 앉아, 수업광경을 지켜본다. 그들의 수업은 제대로 된 교재도 없이, 그저 교사가 적고, 그것을 받아쓰고, 교사가 설명하는 방식이니, 제대로 된 수업일리가 없다. what are you do eat? 이라는 엉터리 문장 뒤에, you are so beautiful 이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그래도 배워보겠다는 열의와 가르치겠다는 열의의 이 야학은 마치 우리의 불과 멀지 않은 예전을 떠올리게 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흐뭇한 일이었다.
처음엔 수줍어 하던 학생들은 이제는 모두 킴의 주목을 각자 끌기 위해 여덟명이 여덟개의 질문을 킴에게 동시에 던진다. 킴은 최선을 다해 각자 각자에게 골고루 대답해 줄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이윽고 수업이 끝나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역시 게스트 하우스 옆의 단 하나의 식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킴에게 수업을 무척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더니, 사실은 킴은 무척 당황했다고 했다. 체계없이 교재없이 진행되는 수업 때문일까? 킴은 한 학생의 노트에 쓰여진 유 아 소 뷰티풀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거기에는 온갖 직설적인 성적표현과 성적 단어가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시골에서는 다른 오락거리가 없고, 또한 노동력이 필요하기에 결혼도 일찍하는 문화라서 그럴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늦은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킴은 잠들고 나는 책을 읽는다. 전기는 없다. 한국에서 가져온 양초를 처음 꺼내어 쓴다.
23:00 버스의 도착
주인집 아들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 버스는 비엔틴에서 출발해 루앙프라방 농키아우를 거쳐, 여기에 도착하는 것이다. 도착시간은 빠르면 밤 열시, 늦으면 새벽 한시. 새벽 한시가 넘으면 포기하고 자라고 했다. 새벽 한시가 넘어서도 버스가 오지 않으면, 그건 오는 길에 버스에 문제가 생긴 것이니까. 차소리가 날 때마다, 나와 여주인은 밖으로 나가봤다. 세번째 로 들은 차의 엔진소리는 컸다. 버스 일까? 나가봤더니 버스다. 이번의 버스는 서울외국인학교 라는 로고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킴과 서둘러 버스를 타고 나니, 좌석은 초등학생 스쿨버스 답게 3 좌석 통로 2좌석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나마 머리지지대가 없다. 이 버스를 타고 밤새 달릴 생각을 하니 벌써 앞이 캄캄하다. 그나마 위안은 버스 3좌석 짜리가 비어 킴과 내가 각각 그 끝을 차지 했다는 것. 버스에는 서양 아줌마 한명 외엔 우리 둘, 그리고 모두 라오스 현지인들로 꽉 들어찼다.
킴에게 물었다. 킴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일어나니? 난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편인데. 킴이 말했다. 난 간호사 잖아. 응급실 밤근무때면 깜빡잠들고 깨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하거든. 맞어 넌 간호사였지. 버스는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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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쌈느아행 버스
루앙프라방 : 오후 5시 ~6시 경, 버스 정차 출발
농키아우 : 오후 9시 ~10시 경, 버스 정차 출발
비엥캄: 오후 10시 ~새벽 1시, 버스 정차 출발
농키아우 - 비엥캄, 구간의 송태우는 15,000~20,000 낍 (1.5 ~2불)
거리는 130 킬로미터 정도, 소요시간은 서 너시간.
농키아우 버스 정류장에서 아침 열시 정도에 있다.
비엥캄엔 단 하나의 게스트 하우스와 식당 밖에 없다.
게스트 하우스는 2불, 식당은 저렴한 편, 식당엔 영어 메뉴가 있다.
음식은 대 여섯가지 종류. 장거리 화물기사들이 주로 먹고 가는 집이라
늦게 하고, 음식도 맛있는 편이다.
특별히 내가 모험을 즐기거나, 남이 가지 않은 오지만을 찾아 다니기 때문에는 아니다.
중국 운남 곤명에서 여행을 시작한 계기는
언젠가 대한항공 기내에서 기내지 모닝캄에 실린 쿤밍에서 하노이 까지의
기차여행에 대한 여행칼럼을 읽고 난 후, 그 기차여행에 너무 끌렸기 때문이다.
마일리지 사용이 이용자에 더 불리해지기전, (2005년 부터 불리해졌다.)
마지막 남은 마일리지를 다 끌어모아, 쿤밍으로 들어가서 방콕으로 나오면 되겠거니 대충 생각하고, 대한항공에서 쿤밍 인 방콕 아웃으로 부킹을 한 다음
200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는 서울을 떠나 쿤밍에 도착했다.
2005 년 4월 1일 현재,
지난해인가 에 폭우로 훼손된 무너진 중국 쪽의
철로는 아직 복구 되지 않았는지, 하노이의 여행사에서도 베트남 국경까지만
기차가 다니고, 중국에서 부터는 버스를 타야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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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운남성에서 대략 한달쯤을 보내고, 구정이 시작되기 전
중국을 빠져 나오려는 내게, 쿤밍 - 하노이 의 기차 여행 대신
매력적으로 다가 온 것은, 트래블 게릴라 게시판에서 읽은 타이타이 라는 분의
중국상선을 이용한 메콩강 여행기 였다.
그것에 매혹되어, 계획에도 없던 시상빤나로 가서
나무야 게스트 하우스에서 선영낭자와 낮에는 탁구치고 밤에는 맥주마시는
생활을 근 열흘 넘게 하다가, 중국 관루이에서 배를 타고 태국으로 넘어 온 것이다. (이 여행기는 나중에 다시 올릴 예정이다.)
그러다 보니 코스가
중국 운남 - 태국 치앙마이 - 방콕 - 캄보디아 - 베트남 남부 - 베트남 중부 - 라오스의 순서가 되어버렸다.
베트남 훼에서 라오스 사반나켓으로 들어와
사반나켓 - 비엔틴 - 방비엥 - 루앙프라방 의 순서로 여행을 한 후
라오스를 벗어나는 길은, 대다수의 여행자가 가는 것 처럼
루앙프라방 - 치앙콩 - 치앙마이 로 해서 태국으로 가거나
루앙프라방 - 루앙남타 - 보텐 - 멍라 로 해서 중국 징홍 혹은 쿤밍으로 가는 길이다.
나는 라오스를 남에서 북으로 관통 한 뒤, 베트남 동쪽으로 대충 가서
하노이 쪽으로 빠져나가면 되겠거니 생각하고
호치민에 머무는 동안 대한항공에 가서 방콕 발 비행편을 하노이 발로 변경하였다.
그리고 나서 라오스 베트남 국경에 대한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웹사이트는 google.com 을 이용했고 www.lonelyplanet.com 의 게시판과
동남아를 모터사이클로 여행하는서양인들이 이용하는 웹사이트인
www.gt-rider.com 에서 주로 정보를 얻었다.
가이드북은 엘 까미노에서 나온 인사이드 베트남
랜덤 중앙에서 나온 트래블 게릴라 동남아 편
론리 플래닛 shoe string on south east asia 최신판
론리 플래닛 vietnam, laos 각각 최신판 을 참조 했다.
가이드 북에는 한결 같이 베트남과 라오스의 단 두개의 국경에 대해서만 언급되어 있었다.
가장 생생하고 유용한 정보는 역시 www.gt-rider.com 에 있었다.
지티라이더 에는 라오스 베트남 최북단의 국경이 외국인에게도 오픈 되었다는 의견과, 실제로 가보니 오픈되어 있지 않다, 라는 의견이 맞섰다.
라오스 베트남 최북단의 국경은 타이 트랑 (tay trang) 이다.
라오스 쪽 마을의 이름은 모르지만, 베트남은 디엔 비엔 푸 이다.
디엔 비엔 푸 국경을 마음에 둔 것은 지도상으로는 하노이와 가깝기도 하거니와 전쟁사에 관심이 많은 개인적인 이유와,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걸 매우 싫어하는 개인적인 특성 때문이다.
디엔 비엔 푸는 프랑스 식민정부의 군대와 베트남 민족해방군의 군대가 전투를 벌여, 프랑스 군 5000 여명의 사상자를 낸 격전지다. 마침내 프랑스를 베트남에서 손 떼게 만든 그 전장의 현장을 보고 싶었다.
게다가 나의 중국 비자는 작년 4월에 중국 상해에서의 일 때문에 받아놓은 1년 유효, 멀티 비자이다. 국경 까지 갔다가, 막히면, 다시 중국으로 들어가
다시 징홍에서 나무야 게스트 하우스에서 선영낭자와 탁구를 치고 맥주를 마시고, 아마도 전 중국에서 가장 싸고 훌륭한 징홍의 1시간에 중국돈 10원 하는 안마를 하루에 두 세번 받으며 쉬다가, 징홍에서 하노이로 들어오면 되기 때문이다. 비록 좀 돌아가더라도, 그 길은 내가 가보지 않은 길이니까.
그런 생각으로 라오스 사반나켓 - 비엔틴 - 방비엥 - 루앙프라방 - 농키아우까지 여행을 했다.
루앙프라방에서 나를 농키아우로 보낸 것은, 일본어 가이드 북인 '지구를 간다' 였다. 왜 일본어 가이드북을 찾아 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고 빠른 업데이트가 이루어지는 일본어 가이드북을.
루앙프라방에서 일본인들이 거의 아도를 치다시피 하는
콜드리버 게스트 하우스에서 난 일본인들의 가이드 북을 뒤지기 시작했다.
난 일본어는 히라카나 가타카나도 읽을 줄 모른다. 말은 몇마디 하지만.
2005~2006 년 판, 지구를 간다, 라오스 편 지도의 최북단 국경은 아쉽게도
디엔비엔푸가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난 최북단 국경의 이름을 일본친구에게
읽어 달라고 했고, 그는 그 국경의 이름이 나메오 라고 읽었다.
내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한자로 표기된, 2004년 4월, 뿐이었다.
'2004년 4월 부터 외국인에게 오픈 되었다는 거겠지'
나메오, 라는 지명 하나만으로 나의 라오스 엑소더스는 시작되었다.
먼저 경로를 표시하자면
라오스 , 루앙프라방 - 농키아우 - 비엥캄 - 비엥통 - 남느언-쌈느아-비엥싸이-나메오
베트남, 나메오 - 꾸안손 - 꺼넝 - 텡호아 - 하노이 순서이다.
쌈느아에서 1박, 꾸안손 혹은 꺼넝에서 1박 총 2박 3일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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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 월, 농키아우 - 비엥캄
08:30 기상, 아침식사
전날 루앙프라방에서 같은 버스를 타고, 농키아우로 들어와 , 같은 게스트 하우스의 옆방에 묵은, 킴 과 같이 아침식사를 한다. 호주에서 태어난 중국계 호주인 인 킴은 , 중국어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한자는 전혀 읽지도 못했다. 그녀의 직업은 간호사. 광동계 중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나만큼의 타고난 방랑벽이 있는지, 여기 저기서 일을 해왔다. 간호사라는 직업과 영어원어민 이라는 조건은 그녀를 영어권 국가에서 쉽게 일을 하게 해주었다. 브리스베인 근처에서 태어나 브리스베인에서 대학을 나온 그녀는 호주에서도 다윈, 퍼스, 에어즈락 근처를 돌며 일을 해왔고,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런던에서 3년 일했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그녀의 호주식 영어에는 런던식 발음이 묻어 나왔다. 이 여행을 마치고 나면 아일랜드 더블린으로 가서 일년간 일하기로 예정되어 있다는 그녀. 그녀의 행선지는 폰사반. 그 곳에 가서 라오스의 유명한 들판에 널려 있는 정체불명의 돌항아리를 보고 비엔틴으로 돌아간 뒤 방콕 싱가폴 런던 더블린의 순서대로 여행을 할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나와 킴의 2박 3일 여행은 시작되었다.
09:40 농키아우 버스정류장 도착,
전날인 3월 27일, 농키아우의 버스 정류장에서 물어본,
그 누구도 농키아우 - 쌈느아 의 버스시간을 정확히 알려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라오스 인들, 혹은 베트남인 들과 커뮤니케이션 하기 어려운 점은
그들이 영어를 못해서가 아니라, 그들은 하루를 24 시간으로 표기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침 아홉시도 09:00 이고 저녁 아홉시도 09:00 이다.
am, pm 이라는 개념은 학교는 대도시에서 그래도 공부한 사람들에게나 통한다.
그래서 고안해낸 나의 노하우는 09:00 다음에 해와 별을 표시하는 것이다.
아침 혹은 한 낮일땐 해, 저녁 밤 새벽 일땐 별.
그렇게 소통해서 알아낸 것은
쌈느아 행 버스가 저녁 10시에 농키아우를 통과한다는 것이다.
그 버스는 비엔티엔에서 루앙프라방을 통과해,
농키아우를 거쳐 쌈느아 까지 간다고 한다.
그러나 밤 열시까지 기다리기도 그렇고,
또 이날은 나의 라오스 비자가 유효한 마지막 날이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체크아웃을 한 뒤,
일단 버스 정류장에 가보고,
동쪽으로 가는 아무버스나 툭툭을 타고 간 뒤, 해가 지면 대충 머물 생각이었다.
버스 정류장에는 루앙프라방으로 가는 버스만 있다.
겨우 찾아낸 것이, 동쪽으로 120킬로 쯤 떨어진 비엥캄으로 가는 트럭버스. 20000 낍을 주고 그 트럭을 타고 비엥캄으로 갔다.
비엥캄에 가면 또 다른 트럭이나, 최소한 송태우라도 있겠거니 하고.
그러나 이건 나의 착각의 시작이었다. 라오스 북동부는 내가 생각한 곳 보다 훨씬 문명의 혜택이 닿지 않은 오지 였다.
킴과 나는 비엥캄 행 트럭버스에 올라탔다.
12:00 타이어 펑크 그리고
어른 스물세명과 아이 다섯, 그리고 오십킬로 쌀포대 12개를 싣고, 트럭버스는는 산길을 달린다. 산길 어느 중턱에 트럭이 멈춘다. 과다적재로 뒷 타이어가 펑크난 것이다. 타이어 교체후 트럭은 다시 달린다.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데리고 탄 고산족 여인, 그녀의 딸의 손가락 끝은 찢어져서 피가 흐르고 있다. 배낭에서 밴드를 꺼내, 킴에게 건네 주며, 꼬마의 손을 감아주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한마디 농담을 던져본다. 꼬마야 넌 행운아야. 왜냐하면 넌 아주 뛰어난 간호사를 옆에 두고 있으니까. 내 농담을 들은 킴이 씨익 웃는 다. 남은 밴드를 꼬마의 엄마에게 건네 주었다. 그녀는 감사하다는 말이나 미소나 표정의 변화없이 밴드를 받아 넣는다. 그녀의 아들은 건조한 기후로 인해 입술이 갈라 터져있다. 다시 배낭에서 립그로스를 꺼내 그녀의 아들의 입술에 발라주고, 그녀에게 건네준다. 역시 아무런 표시나 미소가 없다. 아마도 외지인을 경계하기 때문이리라.
13:30 비엥캄 도착
세시간 남짓 산길을 달려온 트럭버스는 비엥캄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비엥캄 도착후 물어보니, 오늘 동쪽으로 가는 트럭이나 송태우는 단 한대도 없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다는 얘기는 다시 백오십 킬로 정도 동쪽에 위치한, 비엥통 까지 데려다 줄테니 40불을 달라. 40불 이라는 얘기에 흥정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일단 식당을 하나 찾아, 밥과 국수, 그리고 비아라오 한병으로 대충 허기와 갈증을 해결한 뒤 판단하자. 그래서 찾아나선 식당엔 놀랍게도 여행자 옷차림이 아닌 서양인 1명이 비교적 깨끗한 옷차림의 라오스 현지인들과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다. 마치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이다. 그는 내가 식당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탄식조로 그의 라오스 동료들에게 영어로 속삭였다.
'참 나, 여기서도 여행자를 보게 되다니.'
그 간 여행자들에게 시달린 경험이 많아서 일까.그러나 그 속삭임은 내 귀에도 들릴만큼 컸다. 그래도 할수 없는 법. 그에게 묻는다.
'식사하는 데 미안하다, 당신 영어를 하느냐'
독일식 액센트가 느껴지는 그에게 부탁을 해서, 내가 영어를 하는 그의 동료 라오스 인에게 묻고, 그의 동료가 식당 주인에게 물은 뒤 다시 영어로 통역을 해서 알아낸 사실은, 쌈느아로 가는 버스가 새벽에 비엥캄을 지나간다는 것이다.
15:00 비엥캄은 농키아우 만큼 작은 마을이다.
걸어서 끝에서 끝까지 가는 데 5분 정도면 충분한.
마을에는 관공서겸 마을회관과, 우체국 하나, 그리고 라오스에서 본 가장 허름한 게스트 하우스가 단 하나 있다.
게스트 하우스는 방 하나에 2불, 수준은 라오스 여행시 보게되는 소수민족의 고상가옥 과 흡사한 방의 구조다. 게스트 하우스의 여주인도 영어는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해, 달, 별과 숫자의 조합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알아낸 것은, 쌈느아행 버스가 새벽 1시에 비엥캄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
몇번 히치하이킹을 시도해봤으나, 다들 30불에서 심지어는 50불을 요구한다.
그것도 동쪽으로 150킬로 떨어진 비엥통 까지 데려다주는데. 누가 라오스 인들은 순박하다고 했는가? 히치하이킹은 포기하고, 비엥캄 단 하나의 게스트 하우스의 라오스에서 묵었던 가장 허름한 방에 배낭을 내려놓았다.
여주인이 방값을 절대 깎아주지 않으려 하는 데다, 이 게스트 하우스는 유일한 게스트 하우스 이다. 그리고 만일 새벽 1시에 버스가 지나간다면, 방을 하나만 잡자, 라는 내 의견에 킴이 동의 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잠깐 눈을 붙일 뿐이니까.
킴과 함께 마을 끝에서 끝으로 걸어가 본다. 작은 우체국에서는 햄 수신시 같은 무전기로 교신중이다. 잡음이 많이 들리고, 감도가 별로 좋지 않다. 아마도 저 무전기가, 이 작은 마을의 외부와의 유일한 소통수단이지 않을까. 조금 더 걸어가면 나오는 나오는 동사무소겸 마을회관에서는 어른들이 앉아 한참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교재는 소 돼지 말 사과 바나나 같은 그림과 그림 옆에 글이 쓰여진, 마치 유치원생의 것 같다. 아마도 문맹 퇴치 프로그램이리라..
다시 게스트 하우스 쪽으로 걸어나와 마을 끝으로 가니, 다리가 있고, 다리 아래는 강이 흐른다. 다리는 두 협곡사이에 건설된 것으로, 다리에서 내려다 보는 강의 높이는 아찔하다. 족히 50미터 높이는 되어 보인다. 킴은 강으로 내려 가겠다고 하고, 나는 피곤해 숙소로 돌아와 구멍이 뻥뻥 뚫려있는 바나나 잎으로 만든 벽으로 뚤러 쌓인 공동화장실 겸 욕실에서 바가지 샤워를 했다. 물은 얼음처럼 차다. 그리고 방으로 돌아오니, 체크인 시 보지 못했던, 젊은 라오 청년 둘이 있다. 주인집 아들과 아들의 친구다. 적으라고 내민 숙박부 노트를 살펴보니 가장 빠른 게 2000 년이다. 간격을 살펴보니, 거의 1주일에 서 너명 정도의 여행자가 하루나 이틀 정도를 묵고 가거나, 아니면 새벽에 타는 차를 타고 떠났다. 2000년 부터 숙박부로 사용한 대학노트가 아직 채 열페이지도 채워지지 않았으니. 어딜 가나 있는 일본인이 한명, 그리고 놀랍게도 한국인이 일주 전에 묵고 갔다. 여권번호를 보니 부산여권이다. 그녀의 직업란에는 아티스트 라는 단어가 쓰여져 있다.
주인집 아들은 축구를 하러 간다고 하고, 주인집 아들의 친구와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는 학교가 없는 산골에서, 이 작은 마을 비엥캄으로 유학(?) 을 와서,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영어를 가르친다고 한다. 웬만한 영어는 다 알아듣는 나이지만, 그의 발음과 어법은 정말 알아듣기 힘들다. 스펠을 써 보라고 하면 스펠마저 엉터리다. 그는 내가 영어를 잘한다고 하더니, 오늘 저녁 자신의 클래스에 와서, 자신의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쳐 달라고 한다. 나는 나보다 더 영어를 잘하는 친구와 같이 여행중인데, 그녀는 지금 강가에 있으니, 그녀가 돌아오면, 그녀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다. 그녀는 미국인이냐고 그가 묻는다. 오스트레일리안 이라고 대답하지만,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라는 나라를 모르는 듯 하다. 어쨌든 그의 수업은 저녁 여섯시 반, 우체국 옆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18:20
영어교사와 대화를 마치고 방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천정과 벽사이의 기둥을 타고 큰 쥐 한마리가 달려간다. 침대에 누워 있다가 깜빡 잠이 든 나를 깨운 건 강가에서 돌아온 킴이다. '조니, 아 유 인 데어' 킴에게 영어교사를 만난 얘기를 해주자, 킴은 흥미를 보인다. 시계를 보니 여섯시 이십분, 그래서 킴과 함께 그의 학교를 찾으러 우체국에 갔으나, 도저히 학교나 회관으로 보이는 건물이 없다. 아까 낮에 문맹퇴치 프로그램이 벌어지던 그 마을회관을 말하는 것일까? 마을회관 까지 가 봤으나, 불은 완전히 꺼져있다. 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오는 킴과 내 옆을 자전거 한대가 지나가더니 멈춘다. 낮의 그 영어교사다. 그에게 말한다. 우체국 옆에 갔는데 못찾아서 마을 회관까지 갔다가, 이제 숙소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어디 있는 거야, 너의 강의실은? 그래서 그와 함께 간 그의 강의실은, 놀랍게도 고상가옥의 아래, 고산족들이 가축을 키우거나, 낮의 더위를 피해서 쉬는 공간이다. 거기에 30촉도 안되는 전구가 걸려있고, 서 너명의 소년들과 서너명의 소녀들이 목탁 주위에 앉아 있다. 펜과 노트를 들고. 칠판 역시 목탁의 다리를 떼어낸뒤 벽 기둥에 못 박은 것. 지우개는 천이다. 목탁 옆에는 두대의 길쌈기가 있고, 한대의 길쌈기에서는 사춘기의 소녀가 길쌈질을 하고 있다.
그와 그의 학생들의 호기심은 매우 복합적이다.
우리 둘의 국적과 우리 둘의 관계와, 그리고 킴에 대해서.
한국, 코리아, 까올리 라는 국적은 이해하지만, 동남아 인처럼 보이는 킴의 국적이 호주라는 것과, 호주 라는 나라와, 동남아 인처럼 보이는 킴이 왜 그렇게 영어를 잘 하는 지를. 클래스를 킴에게 넘기고, 비어있는 한대의 길쌈기에 걸터 앉아, 수업광경을 지켜본다. 그들의 수업은 제대로 된 교재도 없이, 그저 교사가 적고, 그것을 받아쓰고, 교사가 설명하는 방식이니, 제대로 된 수업일리가 없다. what are you do eat? 이라는 엉터리 문장 뒤에, you are so beautiful 이라는 문장이 이어진다. 그래도 배워보겠다는 열의와 가르치겠다는 열의의 이 야학은 마치 우리의 불과 멀지 않은 예전을 떠올리게 하고, 그 광경을 지켜보는 것은 매우 흐뭇한 일이었다.
처음엔 수줍어 하던 학생들은 이제는 모두 킴의 주목을 각자 끌기 위해 여덟명이 여덟개의 질문을 킴에게 동시에 던진다. 킴은 최선을 다해 각자 각자에게 골고루 대답해 줄려고 노력하는 게 보인다.
이윽고 수업이 끝나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역시 게스트 하우스 옆의 단 하나의 식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킴에게 수업을 무척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고 했더니, 사실은 킴은 무척 당황했다고 했다. 체계없이 교재없이 진행되는 수업 때문일까? 킴은 한 학생의 노트에 쓰여진 유 아 소 뷰티풀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았다. 거기에는 온갖 직설적인 성적표현과 성적 단어가 쓰여져 있었다고 한다. 이런 시골에서는 다른 오락거리가 없고, 또한 노동력이 필요하기에 결혼도 일찍하는 문화라서 그럴 것이라고 설명해줬다. 늦은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킴은 잠들고 나는 책을 읽는다. 전기는 없다. 한국에서 가져온 양초를 처음 꺼내어 쓴다.
23:00 버스의 도착
주인집 아들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 버스는 비엔틴에서 출발해 루앙프라방 농키아우를 거쳐, 여기에 도착하는 것이다. 도착시간은 빠르면 밤 열시, 늦으면 새벽 한시. 새벽 한시가 넘으면 포기하고 자라고 했다. 새벽 한시가 넘어서도 버스가 오지 않으면, 그건 오는 길에 버스에 문제가 생긴 것이니까. 차소리가 날 때마다, 나와 여주인은 밖으로 나가봤다. 세번째 로 들은 차의 엔진소리는 컸다. 버스 일까? 나가봤더니 버스다. 이번의 버스는 서울외국인학교 라는 로고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킴과 서둘러 버스를 타고 나니, 좌석은 초등학생 스쿨버스 답게 3 좌석 통로 2좌석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나마 머리지지대가 없다. 이 버스를 타고 밤새 달릴 생각을 하니 벌써 앞이 캄캄하다. 그나마 위안은 버스 3좌석 짜리가 비어 킴과 내가 각각 그 끝을 차지 했다는 것. 버스에는 서양 아줌마 한명 외엔 우리 둘, 그리고 모두 라오스 현지인들로 꽉 들어찼다.
킴에게 물었다. 킴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일어나니? 난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르는 편인데. 킴이 말했다. 난 간호사 잖아. 응급실 밤근무때면 깜빡잠들고 깨어나기를 수없이 반복해야 하거든. 맞어 넌 간호사였지. 버스는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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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쌈느아행 버스
루앙프라방 : 오후 5시 ~6시 경, 버스 정차 출발
농키아우 : 오후 9시 ~10시 경, 버스 정차 출발
비엥캄: 오후 10시 ~새벽 1시, 버스 정차 출발
농키아우 - 비엥캄, 구간의 송태우는 15,000~20,000 낍 (1.5 ~2불)
거리는 130 킬로미터 정도, 소요시간은 서 너시간.
농키아우 버스 정류장에서 아침 열시 정도에 있다.
비엥캄엔 단 하나의 게스트 하우스와 식당 밖에 없다.
게스트 하우스는 2불, 식당은 저렴한 편, 식당엔 영어 메뉴가 있다.
음식은 대 여섯가지 종류. 장거리 화물기사들이 주로 먹고 가는 집이라
늦게 하고, 음식도 맛있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