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 왓 (남쪽 서편-수리야바르만 2세의 승전행차와 충성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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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왓 (남쪽 서편-수리야바르만 2세의 승전행차와 충성맹세)

虛堂 4 2164

이 글은 초보 배낭여행자의 글입니다.

개인적인 시각이고 느낌을 적은 글입니다.

 

이곳 남쪽의 서쪽편 회랑에는 수리야바르만 2세의 승전행차와 충성 맹세가 조각되어 있다.

이곳의 길이는 앙코르 왓의 부조 회랑 중 가장 길단다.

한마디로 수리야바르만 2세는 자기가 이 사원을 만들었다고 업적을 자랑하는 곳이다.

누가 뭐라나~~ 자기가 자기집 인테리어를 마음대로 하는데....

 

사실 수리야바르만 2세는 지금의 라오스, 베트남 중남부, 태국과 인도네시아 일부등 당시 동남아시아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위대한 앙코르의 왕이었음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곳이 아무리 길어도 딱 두 장면이 제일 중요하다고 佳人은 생각된다.

첫째는 이웃 국가에서 온 사신들이 충성맹세를 하는 장면이고

둘째는 가루다를 앞세운 승전행차 장면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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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원나라때 이곳에 온 주 달관의 말에 의하면.... 여기서 말은 言이지 馬가 아니다.

"왕자와 지휘관들은 코끼리에 타고 코끼리 위에서는 보검을 쥔 왕이 당당히 나타난다.

아마 이 보검은 프레아 칸에서 언급한 신성한 칼이라는 보검일지도 모른다.

주위에는 많은 주홍색 양산이 펼쳐지고 진행은 먼곳에서도 바라다 보여진다."라고 기록되어 있단다.

 

이는 수리야바르만 2세가 아니고 후대의 왕 이야기일 것이다.

주달관은 앙코르 왓이 완공된 후 100여년이 지난 후에 이곳을 왔으니까....

왜 주달관이 멀리 이곳까지 왔을까?

혹시 주달관은 이 지역을 정탐하러 온 원나라의 스파이가 아닐까? 

원래 주홍색 양산을 쓰고 다니면 멀리서도 당연히 잘 보였을 것이다.

전쟁과 역사 이야기가 94m에 이르러 전개되어 진다고 한다.

석벽부조가 있는 회랑 바깥쪽은 다시 아래 사진처럼 회랑이 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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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의 수에 따라 계급이 달라진단다. 그러니 이곳에서는 양산 숫자만 세며 보아야 하나?

왕에게 충성맹세를 하는 장면이다.

역시 더운나라라 옆에서 부채질하고 많은 수의 양산이 보인다.

양산 숫자가 15개면 바로 수리야바르만 2세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숫자를 세어봐도 14개인데 하나는 고장이 나서 A/S중이라고 인정하고 들여다 보자.

우리가 이곳에 오면 제일 먼저 아래의 부조를 무조건 보아야 한단다.

그 이유는 수리야바르만 2세가 보여주고 싶었던 첫번째 장면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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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오른쪽 앞에 앉은 사람이 충성맹세를 서약하는 서류를 떨리는 목소리로 읽고 있다.

조용히 들어본다.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참파의 獨立國(독립국)임과 참족이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

하노라.>가 아니다.

이곳에서는 이런 글을 읽었다가는 목과 몸이 서로 분리되어 귀국한다.

吾等은 玆에 我 참파가 앙코르의 속국임과(침 삼키고...) 참파인은 수리야바르만 2세의 영원한(물 마시고)

신하임을 宣言하노라.

마른 침을 삼켜가며 이렇게 써서 읽었을 것이다.

그 뒤로는 다른 나라에서도 온 사신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수리야바르만 2세는 속으로 얼마나 좋을까?

수리야바르만 2세의 앉아있는 자세를 보시라.

"으음 ~~ 바로 이맛이야~~"

혼자만 옥좌에 달랑 올라앉아 오만방자한 자세로 손가락으로 "너~"하며 가르킨다.

한 팔은 팔걸이에 걸치고 아주 건방지게 보인다.

호명당한 사신은 부들부들 떨며 최고의 존칭과 최대의 미사여구로 그 나라에서 제일 뛰어난 문장가가

쓴 충성맹세를 침을 삼켜가며 천천히 읽어 내려 간다.

 

이곳은 부조의 깊이나 조각의 모습이 별로 좋지 않다.

조금 확대시켜 다시 보자.

수리야바르만 2세의 지명에 따라 그의 오른쪽 아래에 무릅을 꿇고 앉아 충성멩세를 문서로 써서 읽고있다.

그 뒤로는 마찬가지로 오른쪽 무릅을 올리고 공손한 자세로 차례를 기다린다.

저 자세는 발이 매우 저려오는 힘든 자세인데?

수리야바르만 2세의 앉은 자세는 지하철에서 가끔 보이는 바로 그런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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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중요한 첫번째 장면을 보았다.

그 아랫단에는 각 지역의 진상품들이 궤에 실려 운반되고 있다.

궤를 나르는 사람들 앞과 뒷편을 보면(사진 중앙 왼쪽과 오른쪽) 모자를 썼다,

원래 크메르 사람들은 대체로 머리를 뒤로 단정히 빗어 모두 넘긴 형태로 표현하는데 모자를 쓰고 있다.

이는 다른나라에서 조공품을 가지고 온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불을 담은 성스러운 궤를 운반하는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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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에 승리를 하고 의기양양하게 돌아오는 모습인 듯 하다.

왼손에 방패를 들고 어깨에 창을 걸친 장수의 모습으로 양산 숫자가 10개 정도나 되니 그래도 최고위직

장군일 것이다.

佳人이 물어 본다. "전투는 어땠수?"

장군 : "완전히 쓸어버리고 오는 중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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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코끼리를 타고 일어서서 들어오는 장수가 어깨에 칼을 올려놓고 거만을 떨고 있다.

그는 늘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生卽必死  死卽必生....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요,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면 살 것이다"  

"자네는 후방 지원부대였지?"

원래 전투에 참전도 하지 못한 녀석들의 무용담이 더 그럴듯 하다.

佳人처럼 내용도 모르고 글을 쓰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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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네모난 구멍은 왕실의 보물을 보관하였다고 한다.

혹시 아직 파내지 않고 남아 있는거라도?

다음에 이곳에 가시는 분들은 보물찾기라도 하셔야 할 것 같다.

왼손에 방패를 들고 오른손에는 지휘봉을 든 장수는 "고향~ 앞으로~~"를 외치고 있다.

사실 그런 말 하지 않아도 귀국할 때는 모두 알아서 잘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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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은 왕은 아닌 듯 하다.

양산 숫자가 별로.... 

그 밑으로는 기병과 보병이 일사불란하게 전진한다.

크메르 군사도 짐승머리 모양의 투구를 쓰거나 방패를 든 모습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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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의 양산... 

수리야바르만 2세인듯 하다.

앞에 세명이 양산을 들고 먼저 가고 있다.

전투에 대승을 거두고 보무도 당당하게 귀국길에 오른 병사들이다.

佳人 : "앙코르 병사들의 피해는 어떻수?"

수리야바르만 2세 : "부상자도 단 한 명도 없었다우~~"

원래 전투에서 승리하면 전과는 부풀려지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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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틀림없이 수리야바르만 2세다.

제일 많은 15개의 양산.

앞에는 1호차 운전수가 앉아 조심스럽게 코끼리를 몰고 있다.

수리야바르만 2세는 양산이 많다.

원래 집에서 양산장사 하다가 폐업이라도 했나? 

 

아래 사진에 수리야바르만 2세가 탄 코끼리 코 앞에 기다란 막대기가 보이시는가?

그 위에는 가루다가 있고 가루다 위에는 비쉬누가 타고 있어 수리야바르만 2세의 승전을 앞장서서

축하하고 있는것 처럼 보여준다.

 

하긴 자기집에 인테리어를 자기 취향대로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넘 심한것 아닌가?

비쉬누가 수리야바르만 2세의 호송대 앞에서 길을 인도하는 칸보이란 말인가? 

이 사진 한 장으로 이 장황한 석벽부조는 모두 본거나 진배없다.

이것 보여줄려고 만들었으니까....

 

사실 이 당시의 전투에서 공중부양하는 비쉬누의 자가용인 가루다 한 마리만 있으면 전쟁은 이긴거나

진배없다.

이 놈은 날아 다니는 화염방사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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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루다를 탄 비쉬누의 굴욕적인 장면만 크게 확대해서 다시 보자.

크기도 코끼리 코 보다도 작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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佳人이 보기에는 막대기 위에 올라탄 광대가 재롱부리는 듯 느껴진다.

비쉬누야 사실 부끄럽게 생각하고 이 사진의 유츨을 막고 싶겠지만 우리끼리 블로그에서만 보는데... 뭐~

사실 당시에 왕들은 모두 자신들이 마치 신이나 된 듯한 증상에 시달렸으리라....

자야바르만 2세도 아버지를 관세음보살로 형상화 했고 바이욘 사원에는 부처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로

슬쩍 바꿔치기도 했으니...

그런데 이런 심한 증상을 가진 왕들의 시기에 오히려 역설적으로 앙코르는 최대의 호황기를 누렸다.

그러나 분명한 과학적인 사실은 이들 모두 이 세상을 하직할 때 마지막 크게 들이 마신 숨 조차도 다

내 뱉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이승에서 들이 마신 숨 조차도 모두 내뱉지 못하고 저승으로 가는게 인간이다.

그대... 한 웅큼도 되지 않는 작은 손으로 무엇을 잡으려고 했는가?

그대... 한 자도 되지 않는 작은 가슴으로 무엇을 품으려고 했는가?

우리 모두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나그네라네....

그대 이제야 아시겠는가?

 

이웃 나라에서 상납하러 조공품을 들고 온다.

궤짝을 들고 오는 무리들의 머리 모습과 복장이 다르다.

조공을 제때 가져오지 않으면 불바다를 만들 수도 있다.

사진 가운데  아래에 있는 궤짝 밑의 사내는 정체가 뭘까?

불러서 한번 물어 볼까요?

그냥 가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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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장군의 모습이다,

코끼리 운전수가 제멋대로 몰고 있고 양산의 숫자가 영~~

그런데 이 녀석이 수리야바르만 2세보다 더 폼 잡고 있다.

원래 그릇이 되지도 않은 자들이 자신의 능력 이상의 자리에 앉게 되면 이상한 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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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사들의 머리 모양으로는 주변 국가에 지원군을 받아 출정하는 모습인 듯 하다.

말 위의 지휘자는 양산 숫자로 보아 연대장급 정도는 되겠다.

탁본을 많이 떠 까맣게 되었다.

차라리 이렇게 변한게 오히려 佳人같은 초보에게는 사진 찍기가 수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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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파병나온 병사들이다.

당시에는 크메르가 태국보다 힘이 훨씬 강력하여 군대를 보내라고 하면 보내야 했다.

 

옷 차림에서 주름치마를 입고 있는게 크메르 군사와 차이가 난다.

창을 들고 있는 자세와 높낮이등 또한 군기가 들지 않은 오합지졸의 당나라 군사 같다.

석공은 크메르와 다른 나라와의 차별화를 이렇게도 표현을 했다. 

뒤에 따르는 크메르 병사의 질서있는 행진과 다르게 표현을 했다.

오잉~ 이런 것도 비하인데?

"가운데 너 말이야~ 창을 뒤로 눞이고 뒤돌아보는 녀석..너 때문에 태국 파병군 모두가 욕을 먹는게야~~" 

발의 행군모습도 한 번 보시라....

뒤에 따르는 크메르 군은 보폭도 일정하고 움직임 또한 질서가 있어 보이는데 파병군은 오와 열 그리고

보폭 또한 엉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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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공..... 그대는 무엇을 어필하려 하셨는가?

그대도 佳人처럼 좁은 시야의 소유자였던가?

그러나 佳人은 그대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네.....

딱딱한 역사의 이야기를 이렇게 재치있게 비틀어 보여 주며 佳人에게 살짝 미소짓게 만드는 작업이

더운 이곳을 둘러보는 佳人에게는 시원한 청량제가 아니던가?

석공... 그대가 어필하려는 것은 보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다네.....

세상에는 원본이 있고 패러디도 있고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있어 그렇게 어울렁 더울렁 살아가는게

아니겠는가?

굳이 원본만 고집한다면 佳人은 이곳에 오지도 않았다네.....

 

내일은 무서운 지옥계를 보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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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佳人

사진도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 기록은 승자의 기록이다. 마지막 승리한 자 만이 돌에다 기록을 남긴다.

                         자기집 인테리어도 자기 취향대로 할 수 있다. 누가 뭐라나...

                         그래도 비쉬누는 슬프다.

4 Comments
홀로남 2009.02.08 16:23  
언제인지는 기억이 안나지만 1층만 구경을 하는데 4시간이 걸린적이 있습니다.
달랑 안내책 한권을 들고 나름대로 찾아보면서 다니니까 시간 가는지도 모르겠더라구요.
虛堂 2009.02.08 23:32  
그곳은 정말 시간 가는지 모를겁니다.
부조 하나 하나를 들여다 보고 있노라면 정말 재미있더군요.

그런데 저는 시간이.....
만약 다음에 다시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시 한 번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싶습니다.
저는 책자도 없이 그냥 지도 한 장만 들고 마음으로만 느끼고 왔습니다.
이곳 외에 주로 여행기를 참고하면서 각 유적에 대한 공부를 조금 했습니다.
뢰글란 2009.02.09 19:00  
깊고 광활한 숲에 발을 들이긴들여야 겠고 문턱만 넘고 돌아 나오기엔 유혹은 너무나 클것이고...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생각만으로도 이토록 단순하지 않음은...
허당님의 "씀"으로인해 내 발길에대한 오감은 더 자극이 될것입니다.
虛堂 2009.02.09 23:41  
발을 들이 밀어도 또 들이밀지 않아도....
언젠가는 한 번은 치루샤야 할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석공의 눈으로 느낀 이야기를 통하여 천년의 여행을 감행하시지요.
오감에 하나를 더해 육감을 느끼실 수 있으실겁니다.
그들이 전하고져 했던 이야기들을 뢰글란님의 마음으로 받이드리길 원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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