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께오와 옛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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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께오와 옛 다리

虛堂 8 1822

이제 동쪽으로 내려온다.

내려와 보니 마눌님이 넋을 잃고 밀림의 경치를 감상하고 있다.

 

佳人 : "마눌님은 뭐가 보이나~~"

마눌 : "참 아늑하고 평화로운 경치야...."

佳人 : "자유를 찾았는가?"

마눌 : "마음의 평화를 찾았다..."

佳人 : "시원한가?"

 

사실 마눌님이 찾은 곳은 이곳에 유일한 중앙성소탑이 제공하는 그림자 지는 그늘이다.

그러니 시원하지....

음지는 이렇게 더위와 여행에 지친 우리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한다.

음지에서 양지를 바라보는 지혜....

그것도 여행중에 알아가는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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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려가는 길이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많지 않다.

간혹 모르고 올라오는 여행자와 우리처럼 툭툭기사의 제안을 뿌리치는 무모한 사람들만....

 

佳人 : "아가씨~  뭘 그리 쳐다 보시나?"

그녀 : &%@#$ (그 위에 뭐가 있수?)

佳人 : "올라와 보면 알거유~~ 아무것도 없수~~"

그녀 : %@$#& (안 올라 갈끼다)

결국 그녀는 올라오지 않고 그냥 지나가고 말았다.

그녀가 현명한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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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서쪽 모퉁이가 허물어 졌다.

천여년간을 숨어서 지내던 라테라이트가 부끄러운 듯 세월의 흐름에 속 보인다.

외부는 사암으로 되어 있으나 내부는 라테라이트로 쌓았다는 말인가?

가만히 부서진 모습을 쳐다보면 그들이 어떻게 사원의 돌들을 쌓았나를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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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눌님이 먼저 내려가신다.

서쪽 탑문 입구에 그늘 속에서 젊은이 한 쌍이 올라갈까 말까를 망설이며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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佳人의 발 끝에서 이 계단의 폭을 느껴 보시라.

발 끝만 걸치고 오르내려야 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발은 정말 작은가 보다. 

결국 그들도 우리처럼 나이든 사람도 오르내리는데 자존심이 있지...

올라온다.

울 마눌님 : "조심혀~~"

젊은이 : @#$%& "알겠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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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나와 툭툭을 타고 승리의 문을 통하여 앙코르 왓으로 간다.

그런데 지나치는데 눈에 띄는 버려진 이 유적...

佳人 : "툭툭 스톱"(이번에도 영어다)

툭툭 : 멀뚱 멀뚱....

佳人 : "잠시만 세워라."

툭툭 : 툴툴 거린다.

         지금까지 이곳을 지나다 툭툭 세운 사람이 없었나 보다. 

佳人 : "무조건 세우셔~~"

툭툭 : 끼이이익~~

우리가 그래도 툭툭과 완벽한 의사 소통은 고 스톱이다.

툭툭을 세울 때는 스톱이고 출발할 때는 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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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지역은 지나다 보면 숲 속으로 무수한 유적더미가 보인다.

이곳도 그 중 하나로 별로 찾는 사람도 없고 소개도 되는 곳이 아닌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툭툭 기사도 이해를 못 할 수 밖에....

여러분들은 무엇으로 보이시는가? 

돌더미 위에 큰 나무가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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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지나는 길 아래에 버려진 유적이고, 관리자도, 장사하는 사람들도 그리고 원 달라를 외치는 아이들도

없는 대부분 힐끗 쳐다보고 그냥 지나 다니는 평범한 도로 아래쪽에 있다. 

그러나 이 유적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佳人은 생각한다.

바로 강력한 제국인 앙코르의 흥망성쇠의 영욕을 함께 한 유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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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동남 아시아를 호령하던 앙코르는 무수한 사원과 바라이등 국가적인 토목공사를 하였으며 이웃

나라와 전쟁으로  많은 국가 재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재정을 충당하기 위하여 이웃 나라에 조공을 요구하고 또 지방 호족들에게도 공물을

요구하고 그 공물을 신속하고 많은 양을 한꺼번에 가져오기 위하여 지금의 태국과 연결되는 6번 도로와

베트남과 연결 도로 등 지방 정권을 감시하고 통제 하기 위하여 또 도로공사가 필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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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도로가 오히려 샴족의 침입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고속 침입로가 되긴 했지만.....

이미 피폐해진 왕국은 샴족의 기침소리에 놀라 이곳을 버리고 결국 알아서 도망간다. 

특히나 가장 큰 영토를 지녔던 자야바르만 7세 때의 수많은 공사는 결정적으로 후대에 재정적 부담을 지게

만들었고 앙코르의 쇠퇴를 유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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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앙코르 제국이 강력한 국가로 성장했으며 왜 쇠락의 길을 걸었을까?

당시의 사회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농경사회다.

처음에 정한 수도인 프놈 꿀렌을 포기하고 롤루스 지역으로 옮겨온 이유도 농사를 짓기 위해서다.

그들이 이 지역에 엄청난 규모의 바라이라는 저수지를 세운 것만 봐도 명확하다.

생각해 보시라.

그 넓은 저수지를 현대식 기계를 동원해도 대규모 역사인데 순전히 인간 포크레인과 인간 불도저와

삽질로만 팠다는 사실을...

대대로 삽질만 하지 않았을까?

하나도 아니고 여러개를 만들었는데..... 

 

아래 사진에서 보듯이 이곳의 나무들은 무척 생명력이 강한것 같다,.

돌 더미 위에서도 나무가 무조건 올라타고 크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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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물은 이들의 생명줄이요.

국가의 흥망과 연결된 희망의 물줄기다. 

그래서 만든 수로와 그 위로 도로를 연결하기 위한 돌다리다.

아마도 이런 수로와 다리가 전국 곳곳에 있었을 것이다.

이 수로와 다리가 바로 앙코르를 강력한 국가로 만든 열쇠다. 

 

얼마나 멋진 수로이며 그 위로는 수많은 사람들과 마차들이 물자를 실어 날랐을까? 

물줄기를 수로를 만들어 저수지로 연결하고 그 위를 이런 멋진 돌다리를 만들어 도로를 만들었다.

바로 이 수로를 통하여 상류의 프놈 꿀렌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흘러서 이곳으로 내려갔을 것이다.

바로 앙코르 제국을 먹여 살리는 생명의 물 줄기.....

바로 이 수로가 강력한 앙코르 제국의 든든한 후원자이며 원동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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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년간에 걸쳐 자연재해가 발생했고 이 지역 수원인 프놈 꿀렌의 산사태로 수 많은 나무들이

쓸려 내려와 그들이 만들어 놓은 지금 보는 도로 밑의 수로를 막아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흘러온 흙더미는 수로의 바닥을 점차 높이게 되었고.......

물론 수해가 할퀴고 간 지역을 다시 정비를 했겠지만 재정비를 한다는게 오히려 처음에 건설하는 것 보다

더 힘이 든다.

그래서 원래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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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힌 수로는 물길을 다른 곳으로 돌리고 대부분의 농경지는 피폐해 지며 국민들은 궁민이 되어 농사를

짓던 민초들은 다른 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지며 인구수도 줄게 되었을 것이다.

민심은 흉흉해지고 민초들은 그들이 지극정성으로 모셨던 신들을 원망하고 왕에 대한 존경과 복종을

등한시하게 된다.

벌써 인터넷으로 왕에 대한 불만과 무능을 성토하는 글들이 나오고 댓글들이 수십만개나 달린다.

누군가는 이민이나 가야겠다고 불을 지피고 많은 네티즌들은 부화뇌동하기 시작한다.

 

옛날의 국력은 인구 머릿수에 따라 랭킹이 메겨졌다.  

국민을 배불리 먹여야 왕권이 튼튼하다.

그래서 민심은 천심이다.

예전의 지도자가 제일 무서워 했던 일들이 가뭄과 홍수등 자연재해다.

하늘로 부터, 또 신으로 부터 왕권을 부여받았다고 지금까지 민초들에게 믿게 했는데 신과 왕에 대한

불만은 더 이상 존경과 신뢰를 받기 어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국민배우를 동원하여 "따지지도 말고 묻지도 말고"를 외치며 민초들에게 광고를 해도 이제부터는

민초들이 따지고 묻기 시작하고 의심까지 하기 시작한다.

심지어는 왕은 신의 아들이 아니고 신들도 우리들을 버렸다는 유언비어도 난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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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수로는 그냥 돌 덩어리가 되어 남아있고 새로운 물길이 바로 저곳에 있다.

이곳이 바로 앙코르 제국이 쇠퇴하고 사라지는 원인 중에 하나가 되는 현장이 아닐까?

민초들이 지금까지 모셔왔던 정신적인 지주인 신들을 원망하고 하늘같이 떠받들던 왕을 불신하고....

사실 앙코르 제국에서는 신앙이 국가를 유지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었는데 신을 원망하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그 정권은 끝장난거나 진배없다.

 

지금까지 전국적으로 벌려 놓은 공사로 재정은 압박 받고....

수많은 사원들과 유적들은 유지 보수하는데만 돈이 엄청 들어간다.

우리나라 곳곳에 세워 놓은 공항들 처럼 이용객을 없고 관리하고 보수 유지하는데만....

그러면 이제 정권은 볼장 다 본거다.

민심은 이미 그들의 신들과 왕들에 대한 신뢰를 접어버린지 오래다.

그러니 샴족의 콧김에도 전투 한 번 변변히 못해보고 야반도주 하듯이 이곳을 버리고 가지 않았겠는가? 

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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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중 다닌 길이다.

롤루스 그룹은 멀리 떨어져 빼 버렸다.

왜?

佳人 마음이니까....

이제 점심 먹고 이곳 여행의 백미라는 앙코르 왓으로 간다.

그곳에는 또 어떤 일들이 佳人에게 놀라움과 즐거움을 줄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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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헛소리로 하루를 보냈다.

뭐 사실 전부가 쓸데없는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맞아~ 여행기란 자신만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기록이니까....

큰 사진은 개인 블로그로 : http://blog.daum.net/nhk2375

 

 

글쓴이 : 佳人

사진도 : 佳人 

오늘의 佳人 생각 : 개혁은 혁명보다 더 어렵다.

                         수해로 인한 뒷처리는 처음 수로를 만들때 보다 더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든다.

                         중국 문명의 탯줄인 황하의 물줄기도 지금까지 여러차례 바뀌었다.

                         그때마다 중국에서는 새로운 문명이 생겨났다.

                         황하를 다스리는 자가 중국을 다스린다. 

8 Comments
홀로남 2009.02.03 01:27  
길가에 방치되었거나 몰라서 지나치는 유적지가 너무나 많더라구요.
虛堂 2009.02.03 10:09  
이런 곳은 보수를 하여야 하지 않을까요?
비록 유적의 규모는 작으나 많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유적이니까요....
홀로남 2009.02.03 11:57  
완전 복구하려면 향후 100년은 걸린다고 하더라구요.
虛堂 2009.02.03 13:45  
100년이라 함은 다시 처음에 복구한 유적이 무너질 시기인데.....
어렵겠군요....
뢰글란 2009.02.03 19:06  
허당선생님. 먼저 올리신 글 너무 잘 읽고 있습니다.
불혹의 고개를 막 올라선 저로선 선생님의 기행글을 통해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프놈펜과시엡립에서의 각각 열흘씩을 보냈는데도 앙코르제국관련 유적을 하나도 접근하지 못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구석구석 누비면서도 애써 외면했던 그들의 과거 ....
시엡립을가서 앙코르 유적을 보지않았다 ? 역사관련유적에 무엇보다도 관심이 많은 그것도 역사고고학도가!
올해는 그 역사의 흔적을 쫓아 문턱을 넘을 생각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걸음걸음의 흔적 적으나마 지속적으로 던져 주시길 바랍니다.
虛堂 2009.02.03 23:30  
시엠립에 열흘을 계시면서 유적을 전혀 보시지 않으셨다면 무슨 다른 일이 계셨던 모양입니다.
더군다나 역사고고학도이셨는데....

저는 그냥 평범한 배낭여행객이었습니다.
올해는 좋은 계획을 세우셔서 제대로 보시기를 기원합니다.
글을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참새하루 2009.02.05 09:13  
지나가는 우스개 한마디속에 숨어있는
허당님의 연륜의 해학과 지혜를 느낍니다
앙코르왕국의 패망원인을 자연재해에서 유추해보는것도
의미가 있군요
虛堂 2009.02.05 11:22  
그냥 제 나름대로 생각하며 다녔습니다.
배낭여행자의 특권이며 동시에 무식한 결론입니다.
자연재해와 연관하여 민초들의 신뢰가 국가의 존망을 흔들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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