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다녀왔습니다] 7. 넝키아우 Nongkhiaw
(BGM) EMF - 둘이 함께라면 음악끄려면 ESC
어젯밤 열 시도 안 돼서 잠이 들었다. 퍼붓는 빗소리에 한 번 깬 거 말고는 아주 잘 잔 듯하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직(지금은 저녁 7시) 안 졸린 걸 보면.
오늘은 하루 종일 기다리는 날이다. 아침먹고 므앙응어이느아 나루에서, 그리고 넝키아우에서. 원래는 므앙응어이느아에서 아침 일찍 나올 작정이었지만, 마침 투표일이라 배가 안 다닌다는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나루터에서 계속 기다렸더니, 다행히 10시에 출발하는 배가 있길래 넝키아우까지는 내려올 수 있었다. 므앙응어이느아에서 넝키아우까지 걸리는 시간은 한 시간 남짓. 가뿐하다.
므앙응어이느아에서 넝키아우까지의 뱃길 |
하지만, 넝키아우에서는 아직도 기다리는 중이다. 루앙파방을 출발해서 위앙텅까지 가는 차가 오후 1시쯤 넝키아우를 지난다길래, 2시 넘어서까지 기다렸는데도 결국 오지 않았다. 투표 때문에 전국적으로 다니는 차가 없을 거란다.
그래서 같이 차를 기다리던 서양사람들과 썽태우를 빌려 위앙텅까지 갈까 했는데, 이마저도 불발로 그쳤다. 1인당 12$ 부르는 것을 8$까지 깎아놨구만, 알뜰하신 서양분들은 그마저도 비싸서 못 가겠다는 것이다. 하긴 루앙파방에서 쌈느아까지 가는 버스가 9$이니, 그 반 정도 가는 거리에 8$이면 비싸긴 비싸다. 그래도 오늘은 투표일이라 차가 없다는디... 추가로 들어갈 방값이며 밥값을 생각하면, 어차피 갈 건데 차비를 조금 더 들이더라도 일정을 하루 아끼는 게 낫지 않나?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지.
서양친구들은 일찌감치 포기했는지, 버스정류장에는 기다리는 사람이 나와 L이라는 이름의 몽족 아저씨 둘밖에 남지 않았다. L 아저씨는 위앙짠에서 경찰로 일한다는데, 휴가로 고향에 가는 길이란다. 목적지는 여기서 위앙텅까지의 중간쯤에 있는 위앙캄. 몽족 특유의 뾰족한 얼굴에 약간 지적인 인상이 더해지니 천상 경찰 같다. 이래저래 이번 여행에는 경찰을 제법 만나게 되는군. 뭐, 이런 상황에서 경찰 덕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별로 좋을 건 없다. 지나가는 차가 있어야 히치하이킹이라도 시도해 볼텐데, 차는 커녕 다니는 사람조차 드물다. 라오 사람들, 휴일을 너무 잘 지켜 주시는 거 아냐?
여차저차해서 루앙파방과 위앙짠의 북부터미널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조사해 본 결과, 루앙파방을 거쳐 쌈느아까지 가는 버스는 위앙짠에서 아침 7시에 정상적으로 출발했지만, 오후 4시 현재 루앙파방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5시에 다시 루앙파방에 전화를 걸었는데, 벌써 퇴근해버렸는지 전화를 받지 않는다. 중간에 별 사고가 없다면 쌈느아행 버스는 넝키아우에 저녁 9시에서 10시 정도에 도착할 것이다. 믿느냐, 마느냐...
L 아저씨가 같이 기다려 주겠다고 하길래, 나도 그냥 맘 편하게 믿어보자 싶어졌다. 시간도 때울 겸, 배낭을 다리 근처의 식당에다 맡겨 두고 강에 내려가 목욕을 했다. 므앙삼판에서 한 번 시작하고 나니 해질녘의 강변 목욕이 은근 재미있다. 외국 여행객들에게 익숙한 이 동네 꼬마들은 므앙삼판에서처럼 대놓고 나를 구경하지 않는다. 그냥 흘끔흘끔 훔쳐 볼 뿐이다.
하루종일 차를 기다렸던 버스정류장 앞의 식당 겸 게스트하우스. 셍다오찟따웡Sengdao Chittavong이란 거창한 이름이다. |
식당에서 저녁을 시켜 먹고 L 아저씨와 맥주를 한 잔 하다, 동네에서 위앙캄으로 차를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길래 하루종일 같이 기다린 아저씨와 헤어지게 되었다. 잘 가시오, 동지. 나도 곧 갈 수 있길 천지신명께 빌어 주시오.
퐁살리에서 초장에 너무 뽕을 뽑고 놀아서인지, 어제 오늘 좋은 경치가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여행의 클라이막스는 지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수도에서의 편안한 생활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걸까... 빨리 문명세계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도 또 한편으로는 이 적막한 시골을 좀 더 즐기고 싶기도 하고... 기분이 널을 뛴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되지 않기에 소심한 나로선 앞의 선택에 좀 더 마음이 끌리지만, 그래도 기왕 나선 길, 계획했던 쌈느아까진 가 보고 싶다. 제발 오늘 쌈느아행 버스를 탈 수 있기를.
맹마오떼의 습격. 우기가 시작될 무렵, 날개미들이 한 번씩 미친듯이 몰려오곤 한다. 올지 말지 모르는 버스 때문에 그러잖아도 심란한데, 요 조그만 놈들이 기름을 붓는다. 확 다 먹어버릴까보다. (맹마오를 볶으면 맥주 안주로 나쁘지 않다.) |
넝키아우는 어제 머물렀던 므앙응어이느아와 별반 다를 건 없어 보인다. 전기가 24시간 들어오고, 차가 다니고, 다리가 있고, 컴퓨터가 두 대 있는 것 말고는. 아까 오전에 나루에서 버스정류장 쪽으로 오는 길에, 문구점 한 구석에 컴퓨터 두 대가 있는 게 보였다. 꽤 최신기종인데도 바이러스 때문에 버벅거리고 있는 걸, 마침 외장 하드에 들어 있던 백신으로 치료해 주고 공짜로 컴퓨터를 좀 쓸 수 있었다. 거의 차 가던 카메라 메모리를 비울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경치도 여기가 낫다, 저기가 낫다 할 게 아니지 싶다. 어디나 경치는 좋다. 음식도 비슷하고. 전기도 안 들어오는 깡촌에 틀어박혀서 뒹굴어 보고 싶은 사람은 므앙응어이느아를, 그래도 전기 정도는 들어와 주는 게 감사한 사람은 넝키아우를 선택하면 될 듯하다.
저기 저 산 너머로 조금만-한 12시간 정도만- 가면 쌈느안데... |
오른쪽에 조그맣게 보이는 배는 므앙응어이느아 쪽으로 가고 있다. 건기 끝이라 강물은 아직 그다지 높지 않다. |
오른쪽의 저 게스트하우스들은 상태가 무척 좋아보였는데, 아직 공사중이었다. 연말의 성수기가 되면 열지도 모르겠다. |
넝키아우의 뱃나루. 위로는 므앙응어이느아까지(성수기에는 므앙쿠아나 핫사까지도), 아래로는 루앙파방까지 가는 배들을 탈 수 있다. |
나루터 근처의 마을. |
산 이름이 '여자산'이라는데, 가만 보면 여자가 가슴에 손을 얹고 누워 있는 듯도 하다. |
그런데 이 버스, 정말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