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다녀왔습니다] 3. 퐁살리 Phongsali
(BGM)關淑怡-忘記他 음악끄려면 ESC
과연 잠들 수 있을까 싶었던 니호아 게스트하우스의 첫날 밤은 19금의 BGM과 함께 가볍게 넘어가 주셨다. 사실 잠자는 거라면 누구보다 잘 할 자신이 있으니, 니호아의 쉣스런 담배꽁초 인테리어 정도는 우습지도 않다. 한창때는 금요일 밤에 잠들어서 일요일 저녁때 깬 적도 있다. 믿거나, 말거나. -_-;
일찍 잔 고로, 일찍 일어났다. (보통이라면 개연성 없는 두 항목이다.)
최대한 빨리 이 암울한 침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일념으로 <푸f파>에 올랐다. 하늘fa산Phou... 어디 하늘만큼 높은가 보자. 883계단의 계단은 만성운동부족증후군-게으름병-에 시달리는 젊지 않은 신체에 조금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름 꽤 상콤한 산행이었다. 산꼭대기에서 내려다 본 퐁살리의 전경은 차말로 眞景이었다. 발 아래로 뻗어나간 산맥이 끝없이 이어지고, 왼쪽 비탈에는 눈부신 햇살이, 오른쪽에는 구름바다가... 퐁살리까지 온 보람이 있었다.
산에서 내려와 호Haw족의 동네-퐁살리에는 푸노이족과 함께 중국계 호족이 많다-를 돌다 '솜'이란 것을 발견했다. 타마린드 식초에다 설탕, 간장, 고춧가루, 생강물을 넣어 만든 국물에다 소면과 쌀묵을 넣은 것인데, 냉국과 살짝 비슷한 것이 썩 입에 맞았다. 더군다나, 착하게도 가격은 단돈 500K! 퐁살리의 맛으로 기억될 듯하다.
솜-카오랭펀 | 왜 우니, 아가야. 솜 먹으러 온 아낙의 아기 |
근처에서 녹색이 먹음직한-무슨 색이든 안 먹음직하겠냐마는- 라오퐁살리를 발견했다. 1.25리터의 가격은 12,500K. 죽어도 안 깎아준다. 깍쟁이. 라오라오는 각 지방에서 만드는, 우리로 치면 소주같은 전통준데, 퐁살리에서는 특이하게 증류할 때 무신 나뭇잎을 통과시켜 술에 색을 넣는다고 한다. 여튼, 오늘 밤엔 니가 내 친구다.
니호아 게쉣하우스에서 탈출하기 위해 다른 숙소들을 알아보았다. 시내중심-이라고 하긴 좀 거슥하지만-에 무려 4층짜리 초고층 빌딩이 있었는데, 이것도 무신 호텔이라고 한다. 그 맞은편에도 3층짜리 호텔이 있었지만, 둘 다 중국인이 하는 거라고 해서 통과. 남은 것은 센살리GH와 푸f파호텔이다. 센살리도 삼돌라 정도의 가격에 비해 나름 경쟁력 있었지만, 푸f파호텔을 보고 나니, 다른 곳은 눈에도 안 들어온다. 옛날에 중국영사관으로 쓰던 건물이라는데, 살짝 수용소 분위기도 나는 것이 왠지 향수를 자극한다. 방도 어제에 비하면 깨끗하고, 카운터의 아가씨도 수더분한 것이 정감있다. 무엇보다도, 퐁살리의 제일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어서 동네를 내려다보며 구경하는 재미와 아늑한 마당에서 뒹굴거리는 맛이 쏠쏠했다. 숙소에 관해서라면, 이 호텔이 퐁살리의 거의 유일한 선택일 성 싶다.
돌담과 말, 담너머의 풍경-제주도가 아니다 | 딩굴링에 안성마춤인 마당가 의자 |
f퍼 한 그릇으로 점심을 때우고 커피 한 잔 할 만한 곳을 찾았지만 그럴 만한 데가 보이지 않았다. 그냥 호텔로 돌아와서 잠시 눈을 붙였다. 역시 자야 된다. 한 시간쯤 자고 나서 커피를 한 잔 마시니 그제야 뭔가 힘이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다.
해가 따땃하게 내리쬐는 방 앞에서 책을 읽으며 빈둥대다 바람을 쐬러 다시 나섰다. 퐁살리의 하이라이트는 푸f파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그보다 아기자기한 골목들이 더 멋진 것 같다. 푸노이가 깔끔한 성정이라더니, 정말 그런가보다. 첨단의 물건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어딜 가나 집 안팎을 깨끗이 정돈해 놓고, 정원수로 심은 란타나도 잘 다듬어 두었다. 가끔 풍겨오는 돼지우리 냄새만 아니라면 이런 골목길은 하루 종일 걸어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시장마저도, 좌판을 입식으로 만들어 매대 위에 물건을 가지런히 쌓아 두었다. 라오스에서 제일 깨끗한 부족에 푸노이 당신들을 임명합니다~ 참, 푸f파호텔의 주인도 푸노이라고 한다.
퐁살리호텔 근처에서 오전의 솜을 다시 발견했다. 여기는 양이 좀 더 많은 대신, 값도 2,000K. 네 배로 비쌌지만 맛있는 건 보일 때 먹어줘야 하는 거다. '솜'이란 건 우리 '냉국'이란 말처럼 시큼하게 말아 먹는 음식의 총칭인듯 하고, 요놈은 특별히 '카오랭펀'이란다. 쌀로 만든 묵을 그렇게 부른다는군. 약간 퍼석한 것이 메밀묵 같은 맛이다.
솜을 파는 할매랑 수다를 떨다, 동료 T군 이야기가 나왔다. 이 촌동네 출신으로 수도까지 가서 그것도 국립대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알 것 같았다. 게다가 이 친구가 언젠가, 자기 이름은 퐁살리에서 한 명 밖에 없다고 그런 적이 있었다. 역시나, 퐁살리는 좁은 곳이었다. 솜장수 할매는 T군과 친척이었고, 내가 T군과 동료라고 하니 딸을 시켜 T군의 부모님이 사시는 집까지 안내해 준다.
가는 길에 과일을 좀 사들고 갔더니 T군의 부모님이 무척 반갑게 맞아 주신다. 차에 라오라오까지 얻어먹고, 저녁까지 먹고 가라시는 걸 사양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T군의 집은 다른 집이나 마찬가지로 무척 낡긴 했지만 먼지하나 없이 깨끗했고, 부모님도 그 표정에서부터 점잖고 깔끔한 성격이 우러나왔다. 역시, 애를 보면 부모님을 알 수 있는 거군.
호텔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었다. 오후에 카오랭펀을 먹은 데다, 시장구경하면서 이것저것 군것질을 많이 하기도 했고, T군네서도 뭔가를 좀 먹고 왔기 때문에 사실, 안 먹고 넘어가도 되는 거였지만, 여행을 나오면 끼니 거르기가 참 뭐하다. 그 동네 맛난 걸 한 번씩은 먹어보고 싶은데, 일정이 모자라는 거다. 호텔의 식당에서 되는 메뉴는 별로 없었지만 주문한 건 굉장히 맛있었다. 그리고 그 니호아GH의 음식과는 비교도 안 되게 깔끔했다. 부엌까지 깨끗해서 음식맛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저녁을 먹고, 낮에 보아두었던 꼬치구이집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맥주나 한 잔 할 생각이었다. 맥주와 삥앤-무슨 내장구이라는데 한 꼬치에 500K이다. 퐁살리에서는 500K짜리가 아직도 널리 쓰인다.-을 시켜놓고 카무족 주인아가씨랑 노닥거리며 혼자서 홀짝이고 있는데, T군에게서 전화가 온다. 내가 부모님을 찾아뵈었다는 이야기를 그새 들었다는 것이다.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은 지 10분도 채 안돼서 낯익은 얼굴들이 삥앤집으로 들어선다. 위앙짠에서 T군 친척의 결혼식 때 만난 적이 있는 T군의 친구들이었다. T군이 하달한, 나와 놀아주라는 특명을 받자와 헐레벌떡 뛰어왔단다.
'땃꽝시'는 루앙파방에 있는 유명한 폭포의 이름이다. 생뚱맞게 땃꽝시라고 불리우는-간판도 하나 없지만, 길가 경사가 심한 공터에 있다고 이런 별명이 붙은 것 같다.- 삥앤집에서 카무족 처녀, 푸노이족 청년들, 한국 아줌마의 수다는 밤이 이슥하도록 이어졌고, 새벽 한 시가 되어서야 내일 또 다시 만나자는 약조를 하고 헤어질 수 있었다. 내일은 다른 곳으로 떠날 참이었는데... 다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