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on's Story - 천년의 고도 루앙프라방 입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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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s Story - 천년의 고도 루앙프라방 입성기

Moon 5 3063

왕위앙에 도착해서부터 루앙프라방 떠나는 날까지 비가 계속 추적추적 내린다. 폰투어에 들렀더니 오늘 카약킹 예약이 많이 잡혔는데 이렇게 비가 오면 출발하기 힘들 거라고 한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왕위앙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앞으로의 일정들로 인해 발길을 돌려야 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만 하다. Nuan에게 우린 반드시 또 만날 거야, 인사하고 헤어졌다. 과연 또 올 수 있는 날들이 올까?


왕위앙에는 한국에서 봉사차 나온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왕래가 계속 된다면 언젠가는 나도 한 번 다시 올 날이 있겠지, 자기 암시를 걸어 본다.


예의 VIP 버스는 대학 다닐 때 타고 다니던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좌석버스다. 어제 카약킹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보헤미안은 왕위앙에서부터 동선이 똑같다. 친절녀 커플도 보이고, 동구권녀들도 보인다. 모두 가벼운 눈인사, 어제 시끄러웠던 이탈리안 아주머니는 버스 바깥에서 만났다. 그의 남친은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현재는 스페인에 머물고 있다는데 역시 반갑게 맞이해준다.


어제 너무 피곤해서 바로 잠자리에 들어서 저녁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했더니만, 자기네도 저녁 먹고 바로 골아떨어졌다며 예의 수다를 풀어 놓기 시작한다. 한국은 아주 부자나라인데, 너네 시골 분위기는 어떠냐는 갑작스런 질문에 왕위앙과 별 차이 없고 비슷하지만 좀 더 개발이 되어 있다고 답변했는데, 내내 마음 한 켠이 걸린다. 이렇게 말해서 누가 우리나라를 찾고 싶어할까. 좀 더 자세하게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좋은 사람들이 있다고 대답할 수도 있었는데... 우리나라에도 놀러 오라고 했더니만, 이탈리안 아주머니는 지금 일어를 공부하고 있어서 일본 먼저 가고 그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한국에 오고 싶단다. 가벼운 일본 인사를 던졌더니 모르는 눈치다. 외국인들은 인삿말 몇 마디만 배워도 외국어를 배운다 라고 말하는 걸 보면 우리랑은 조금 틀린 모양이다. 그러면서 동남아시아를 돌면서 한류열풍에 대해서 아주 많이 접했다며 우리를 치켜 세워 주는데 설령 입에 발린 칭찬이라도 기분은 좋다.


버스 기사말로는 5시간이면 도착할 거라고 한다, 잠시 갸우뚱... 가이드북이나 후기에는 9시간 정도 걸린다고 하던데,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새 라오스가 개발이 많이 됐나 보다 싶었다. 버스는 뱀처럼 꼬불꼬불한 산길을 위태위태하게 잘도 넘어간다. 듣기로는 2003년도에 라오스 소수민족들이 정부의 차별대우에 대항해서 국제적인 관심을 갖고자 이 길위에서 버스를 난사하여 외국인을 포함한 30여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는데, 라오스 오기 전까지도 이 점이 내내 걸렸더랬다. 유군에게는 루앙프라방 도착하면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해 줄 참이었는데, 그 지점을 지난 후에 말해 주니 별 다른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지어낸 이야기로 생각하는 듯... 버스는 몇 차례 볼 일을 보기 위하여 도로 상에 정차를 하였고, 사람들은 알아서 볼 일을 보아야 했다. 현지 여자분은 위에 두르는 옷가지를 밑에 두르고 일을 보고, 처음에 머뭇거리던 서양 여성들도 나중에는 풀숲에서 일을 처리하였다. 남자들이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여자들에게는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중간에 들르는 마을에 휴게소를 설치할 법도 한데 조금은 아쉬운 부분이다. 어차피 라오스에서는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돈을 지불해야 하니 말이다.


버스는 7~8시간을 달려 루앙프라방에 도착했다. 정류장에는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온 사람들이 호객행위에 분주하였는데, 다른 서양인들이나 일본인에게는 붙어서 자기 숙소 홍보에 한창인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 일행에게는 아무도 오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우리는 미리 점찍어둔 숙소도 없었는데 말이다. 살짝 빈정상한다. 일단 아는 얼굴들이 썽태우를 타고 있기에 함께 타고 시내까지 들어가기로 한다. 중간에 월드비젼 간판이 보였는데, 이렇게 평화로운 라오스 역시도 우리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임을 새삼 인식해본다. 어차피 정처없는 일정이니 일단은 여행자 거리에 내리기로 한다. 동구권녀들과 이탈리안 커플들에게 안녕을 고한다. 왠지 이 친구들은 여행 중에 또 만날 것 같다.


가이드 북에서 본 JOMA Cafe 앞에서 일단은 숙소를 정하려고 하니 삐끼들이 하나 둘씩 자기 숙소에 묵을 것을 권한다. 이상도 하지, 학교 다닐 때도 누가 공부해, 라고 하면 공부를 하고 싶다가도 하고 싶은 마음이 달아나듯, 자기네 집에서 묵자고 하면 또 싫어진다. 이 걸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샌다고 하는 모양이다. 삐끼를 보내고 나니 유군이 "형, 저 가방 없어요" 한다. 덤덤하게...


"가방 어쨌어?"


"형이 안 내리고 얘기하는 것 같아서 그냥 따라 내렸어요"


"아......"


막막하다, 이 루앙프라방에 제발 달린 썽태우가 어디로 갔는 지 알 턱도 없고, 어떤 색 차량인 지 차 번호는 뭔 지 알 길이 없으니 명동에서 김서방 찾기니 이 썽태우를 어디서 찾을꼬, 그리고 어느 양심있는 기사가 서로 얼굴도 모르는데 옷가지며 돈도 모두 들어 있는 가방을 돌려줄 것인가. 일단 찾을 수 있는 확률은 별로 높지 않아 보이기에 가득이나 놀랜 유군을 채근하지 말아야겠다 싶은 데도 잘 간수하지 그랬냐는 말을 반복하게 된다.


유군이 썽태우에 있던 사람들이 메콩 게스트하우스에 간다는 소리를 들었다기에 일단 그 곳으로 가자고 했다. 메콩 게스트에 도착해서 방금 들어온 사람 있냐고 물으니 방이 다 찼다는 얘기만 한다. 눈 앞이 캄캄하다. 발길을 돌리는데 동구권녀가 나온다. 자초지종을 얘기하니 10분쯤 전에 썽태우가 떠났다며 간 방향을 일러준다. 그럼 뭐하나 어떤 차량인지 색상도 기억 못 하는데... 근처를 배회하며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해본다. 갈아 입을 옷도 없고, 돈도 없고, 유군을 바로 한국으로 돌려 보낼 것인가, 아니면 계속 계획대로 진행할 것인가. '옷 안 갈아 입고 다니면 냄새 꽤나 날 거야.', 그러는 찰라 이탈리안 커플이 보인다. 그 커플도 우리를 보더니 뛰어 온다.


"너네 가방 찾고 있지? 우리가 기사를 코리안 가이들 내린 곳에 가서 전달해달라고 했어, 우리가 너네 만날 줄 알았으면 우리가 가방을 보관하고 있어야 했는데..."


진정으로 걱정해 주는 얼굴과 위안의 말이다. 지금 이 친구들이 마치 1.4후퇴 때 헤어진 형제를 만나는 것 같다. 고맙다 말하고 다시 JOMA Cafe로 왔다. 어디 한 번 라오스의 양심을 한 번 믿어보자. 하지만, 어디에도 우리 가방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게스트 하우스 삐끼 하나가 다가와 자기네 숙소에 묵으라 한다. 우리는 지금 가방을 잃어 버려서 가방을 찾아야 한다고 했더니만 잘 안 되는 영어로 조금 전에 썽태우 기사가 왔다 갔다는 말을 한다. '아... 한 자리에 계속 지키고 있어야 했는데...' 다시 한 번 망연자실... 기다리다 포기하고 경찰서의 위치를 묻고, 뚝뚝을 잡아 타려는 순간. 우리를 태웠던 썽태우 기사가 손가락으로 우리를 가르킨다. 그리고 찾아다!!! '콥짜이'를 머리가 땅에 닿도록 인사를 하고, 유군에게 5USD를 줬다. 기사에게 고맙다고 전해주라고.


가방 안에 있는 물건들도 그대로 있고, 지퍼만 열면 바로 나오는 지갑도 그대로다. 약 1시간 동안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가방을 돌려준 썽태우 기사도 고맙고, 진정 걱정해준 동구권녀와 이탈리안 커플들 얼굴도 떠오른다. 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라오스의 추억은 충만한 긍정지수로 충분할 것 같다. 얼굴이 사색이 되었던 유군도 그제서야 제 얼굴로 돌아왔다. 서로 "이 건 기적이야, 우리 여행 앞으로 잘 될 것 같아" 위로하며 자축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야시장을 거쳐 여행자거리를 배회하였다. 근처 게스트 하우스도 하나 들여다 봤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나오고, 그래도 발걸음이 가볍다, 여행자 거리 끝에서 봉태규를 닮은 청년이 어설픈 우리말을 하길래, 이끄는 대로 칸강가의 메리 게스트 하우스2에 여장을 풀기로 했다. 팬룸 일박 5USD, 커피, 물, 바나나 FREE...


우리가 이 친구에게 한국 영화배우 닮았다고 하자, 이미 다른 한국인들도 자기를 봉태규 닮았다고 했단다. 그래서 잘 생긴 영화배우라고 하니 의기양양하다. 사실 봉태규는 개성파로 분류해야 하는 거 아닌가. ㅋㅋㅋ 여하튼 나중에 우리는 이 친구를 봉태규 대신 '보쳉'이라고 불렀다. 예전에 부르노라는 친구와 함께 우리나라를 무전여행하던 중국인... 똑같다... 보쳉...


여하튼 여행자 거리에서 오토바이로 1분 거리라며 보쳉이 먼저 유군을 실어다 나르고, 나중에 나를 보쳉이 숙소로 실어 날랐다. 오토바이로 1분 거리... 걸어서 20분 거리다... 그래도 조용하고 넓고 괜찮은 숙소인 것 같다. 샤워물이 잘 안 나오는 거 빼고는... 먼저 도착한 유군이 마당에 앉아 있는 외국인과 꽤 많은 대화를 나눴단다.


"어느 나라에서 왔대?"
"몰라요"
"이름이 뭐래?"
"몰라요"
"직업이 뭐래?"
"몰라요"
"몇 살이래?"
"몰라요"


도대체 유군의 꽤 많은 대화는 어떤 것들인 지 사뭇 궁금하다.


"설마 프리미어 리그에 대해서 말한 건 아니지?" (참고로 유군은 축구광이다)
"맞어요, 프리미어 리그 이야기 했어요"
"이영표, 박지성 물어봤어?"
"물어보려고 했는데 형이 왔어요"


왠지 믿고 싶지 않다... 왕위앙에서 동구권녀와 한 시간을 대화했다는데 어느 나라에서 온 지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고...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돼지갈비가 맛있다는 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보니 '홍콩 레스토랑' 이라는 극장식 부페 식당이 있는데 그냥 봐도 꽤나 럭셔리 하다. 가격이나 물어보자며 물어보니 7USD란다, 정말 7USD 맞냐고 재차 확인하고 들어 갔는데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넓은 홀에 단체 손님 열댓명 빼고 우리 둘이 전부다. 종업원수가 손님보다 많은 것 같다(공연자들 빼고). 정말 훌륭한 음식들이 상다리가 부러질 만큼 나오고, 공연은 동남아시아 어디를 가도 접할 수 있는 인도신화를 바탕으로 한 공연이었지만 나름 재미있었다. 가장 이쁜 무희와 사진도 찍고... 유군은 아예 무대 위로 올라가 덩실덩실 춤도 같이 췄다. 조금 전까지만해도 가방 잃어버렸던 놈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는다. 그 동안 이종 사촌이면 꽤 가까운 사이임에도 왕래가 그리 많지는 않았는데, 이 번 여행을 통해 항상 밝은 유군이 참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건, 녀석과 나와의 여성 취향이 일치하지 않아 싸울 일이 없다는 점인 것 같다. ㅋㅋㅋㅋ


홍콩 레스토랑을 나와 길을 따라 오르니 처음 도착했던 지점의 야시장이 나온다. 해가 완전히 진 야시장은 또 다른 이국적인 향기를 맘껏 뿜어내고 있었다. 대부분 우리가 마지막 여행의 종착지가 될 짜뚜짝 시장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이라고 해서 살 마음은 없었지만 꽤나 눈을 사로잡는 물건들이 많았다. 우리는 수시로 '우리는 기적을 경험했어'를 외쳐댔다. 야호~!


여행자 거리에서 태국 치앙마이행 항공편을 예약했다. 1인당 100USD를 예산으로 잡았는데, 내일 있을 빡우 동굴까지 깍고 깍아서 172USD에 끊었다. 그런데, 아뿔사 항공편을 월요일 것을 끊었어야 했는데 어쩌다 보니 화요일 걸 예약한 것이었다. 부랴부랴 취소하려고 하니 취소하면 벌금 일인당 15UDS를 내야 한단다. 이런 죽을~!!! 그런데 결정적으로 원래 월요일은 비행편(치앙마이행; 화,금, 일)이 없었다. 한국에서 인터넷으로 확인한 스케쥴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왕위앙에 하루 더 있다 올 걸...



참으로 특별히 뭘 한 건 없는 것 같은데 꽤나 긴 하루를 보낸 것 같다. 루앙프라방의 첫날 밤... 안 씻고 그냥 잤다... ^^*





5 Comments
vixay 2006.09.13 00:48  
  역시 유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군요. ㅎㅎ
가방 찾아서 너무 다행입니다. 다시 잃어버리거나...
그러진 않았기를.
fusion12 2006.09.14 02:28  
  라오스를 사랑하게 된 동기중 한가지가 라오인들의 친절함과 따뜻한 마음씨 입니다.
자전거를 빌려 타고 다녔는데....
그곳 시장에서 구입한 물건들을 바구니에 넣어두고 다녀도 분실한적 없습니다.
게스트하우스의 컴퓨터 책상에 과일봉투를 놓고 깜빡잊고 외출후 3시간이 지났어도 그대로 있더군요.
라오인들의 순수한 마음씨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문씨이종사촌 2006.09.14 23:14  
  안녕하세요. 유군입니다. 사촌형이 제가 태사랑의 스타가 되었다고 해서 설레임을 가지고 들어와봤는데 아직 스타가 되기엔 멀었군요. 참 지금 생각해보면 모두 사실이지만 이렇게 글로 보니 허구 같기도 하고..ㅋ 아무튼 정말 즐거운 여행이었습니다. 벌써 여행한지 3주가 지났건만 아직도 생생하네요.ㅋ
빨갱이꽃 2007.11.30 13:45  
  앗 유군이다! ㅎㅎㅎㅎ 어떤 분인지 사진좀 봤으면 궁금해요~ ㅎㅎㅎ 너무 재밌어요~
meiyu 2008.07.03 12:09  
  라오스는 위험한 곳이란 인식만 있었는데 '태린'님과 '문'님의 글 읽으며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사진이 정말 아름답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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