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다녀왔습니다] 8. 넝키아우⇒루앙파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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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다녀왔습니다] 8. 넝키아우⇒루앙파방

vixay 2 3077

(BGM) Delispice - Still Falls the Rain 음악끄려면 ESC

결국 밤을 꼬박 새고 말았다. 젠장할. 위앙짠에서는 제대로 출발했다는 버스가 대체 어디로 샌 것이여. 버뮤다가 라오스에 있단 소리는 못 들어 봤는데...
엊그제 퐁살리에 있을 때, 위앙짠에서 퐁살리로 가던 버스가 루앙파방 근처의 절벽에서 떨어져서 18명인가가 죽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설마 며칠 사이에 그런 끔찍한 일이 또 일어난 건 아니겠지?

버스는 9시가 되고 10시가 되도록 도착하지 않았다. 동네의 가게들은 이미 다 문을 닫았고, 외국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비아라오를 한 잔씩 걸치고 있는 버스정류장 근처의 식당 두어 군데도 곧 닫을 채비를 하는 중이었다. 하루종일 들락거리며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짐도 맡기며 개겼던, 정류장 바로 앞의 셍다오찟다웡 게스트하우스에 물어보니 방갈로가 딱 한 채 남아 있단다. 어쩌나... 지금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주인장은 가끔 버스가 12시 넘어서 오기도 한단다. 그러니 일단 기다리는 데까지 기다려보고, 정 안 오면 문을 두드리라는 말씀. 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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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정류장. 아직 장사를 시작하지 않은 왼쪽의 노점이 밤새 버스를 기다린 곳이다.

11시가 다 되었는데도 버스는커녕 쥐새끼도 한 마리 안 지나간다. 쭈그리고 앉아 있는 짓도 이제 지겹다. 자러갈까 말까를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8시쯤 나와서 같이 버스를 기다리던 코쟁이 한 놈이 벌떡 일어나더니 내가 찍어놓은 방갈로에 쏙 들어가버리는 게 아닌가. 이런 황당할 데가. 자다 깬 주인장은 나를 가리키며 녀석에게 뭐라 말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예약을 해 놓은 것도 아니고...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발빠른 놈이 임자지 뭐. 그래도 니 참 의리없다. 세 시간이나 같이 기다리면서 안면 튼 사이에 우째 말도 한 마디 안하고 하나 남은 방에 니 혼자 쏙 자러 갈 수 있노. 에이, 자다가 확 옴이나 옮아라.

다른 게스트하우스를 뒤져보면 빈 방이 있었을 테지만, 왠지 오기가 생겨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올 때까지 기다린다! 사방이 쥐죽은 듯한 고요한 밤에, 자는 사람 깨워가며 방을 구하러 다니기도 좀 거슥했다. 안되면 날도 따순데 밖에서 좀 자면 어때.

결과는, 판-단-미-스. 초저녁에나 좀 날아다니고 마는 걸로 알았던 모기들은 밤새 집요하게 앵앵거리며 주위를 맴돌았고, 밤새도록 모기향 연기를 쐬고 있자니 사람이 죽을 지경이다. 한밤중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양철지붕을 사정없이 때려 귀를 마비시키는 걸로 모자라, 새고 튀고 흘러서 온몸을 적셨다. 게다가 새까만 어둠 속으로, 저만치서부터 쏴아아아아아아-하는 빗소리가 다가오는 게 어찌나 무섭던지. 배낭을 껴안고 부실한 우돔싸이제 우산 밑에 웅숭그리고 앉아 덜덜 떨며 모기향으로 인간훈제를 만들고 있는 장면을 울아부지가 봤더라면... 아, 민망해라. '미친자슥, 비싼 밥묵고 할 짓이 없어서 청승떨로 댕기나' 했을 거다. 아부지~

평소에는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던 닭들의 아침을 알리는 합창이 무슨 아름다운 성가처럼 들렸다. 첫닭이 운 시간은 3시 40분. 한 시간 간격으로 울어대는 닭들과, 닭이 한 번 울 때마다 두 명씩 짝을 지어 나와 강으로 개구리를 잡으러 가는 동네 청년들이라도 없었더라면, 동틀 때까지의 몇 시간이 정말 괴로웠을 것이다. 닭이 울고, 청년들이 나오고, 나를 발견하고, 허걱! 플래쉬를 비추고, 내가 인사하고, 청년들 지나가고, 플래쉬 불빛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 쳐다보고, 조금 졸고, 또 닭이 울고, 청년들이 나오고... 이런 사이클을 몇 번 되풀이하는 동안 아침이 밝아왔다. 닭들, 젊은이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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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가워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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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할아버지, 저처럼 미련하게 기다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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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이 살짝 가린 아침산이 멋져보이지만 어젯밤에 저 산을 넘어오는 빗소리는 공포, 그 자체였다.

아침이 돼서라도 쌈느아 쪽으로 가는 버스가 있기만 하다면 타고 갈 작정이었지만, 8시 30분에 루앙파방으로 가는 한 대를 제외하고는 넝키아우에서 출발하는 이렇다할 버스가 없단다. 저녁까지 차를 또 기다리는 건 아무래도 바보짓인 것 같아서, 쌈느아는 일단 포기. 씨앙쾅 쪽으로 둘러서 올라가든지... 일단 루앙파방에 가서 생각하자.

씻지도 먹지도 못한 채, 촉촉한 훈제돼지 꼴을 하고 버스에 올랐다. 차가 출발하기도 전에 잠이 들었는데, 깨보니 루앙파방에 거의 도착하는 중이다. 오늘은 그냥 쉬자는 생각에, 마사지도 받고, 근사하게 저녁도 먹고, 뽀송한 이불이 있는 깨끗한 숙소를 구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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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가는 뚬뚬쎙Toum Toum Cheng 2 GH. 1박에 10$로 좀 가격이 센 편이지만 방이 네 개 밖에 안 돼서-그중 두 개는 별채에- 조용하고, 집 전체를 혼자 다 쓸 수 있는 확률이 크다. 유명한 왓씨앙텅 근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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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한 끼에 먹은 것들. 여지껏 든 밥값보다 이 한 끼 값이 더 비쌌지 싶다. 27$ 정도? 프랑스 요리로 유명한 렐레fle Elephant이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반왓센Ban Vat Sene보다 음식은 조금 별로엿던 듯.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고 생각했지만, 그것도 잠시. 저녁먹고 돌아다니다 내일 빡우동굴 구경가려고 투어를 예약해버렸다. 머, 이렇게 멋대로 정할 수 있는 게 혼자 다니는 묘미 아니겠어.

...변명은 그럴싸한데?
2 Comments
파랑까마귀 2006.11.19 09:27  
  가끔 대책없이 느낌대로 마음내키는대로 발길을 돌릴때가 무지 좋을 때가 있죠~^^ 오늘도 여행기 잘 읽고 갑니다~ㅎㅎ
vixay 2006.11.20 12:28  
  늘 일착으로 댓글달아주시는 쎈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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