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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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보고 싶다

짤짤 7 3008

개발이라는 이름 뒤에는 늘 빛과 그림자가 존재한다.

외부에서 자본이 유입되고 관광객들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이 원주민들의 삶의 방식이다.

기존의 생활패턴에서 벗어나 좀 더 손쉽게 돈 버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변하기 마련이다.

라오스의 작은 마을 왕위앙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왕위앙에 머무는 동안 하루에 한두 번씩은 꼭 들르던 식당이 있었다.

음료수를 마시면서 멍때리기에 그곳만큼 편한 곳도 없었다.

여행자들을 위한 시설이 몰려 있는 타운에서 불과 100여 미터 남짓 떨어진 그곳은

있는 것보다 없는 게 더 많은 로컬식당이었다.

하루는 베이컨 샌드위치를 주문했더니 아주머니가 난감을 표정을 지어보였다.

“Why?”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녀가 할 줄 아는 영어라고는 yes와 no와 ok가 전부였다.

“그럼 참치는?”

내가 메뉴판에서 참치 샌드위치를 가리키자 그것도 안 된다며 고개를 저었다.

“도대체 되는 게 뭐야? 메뉴판은 완전 장식품이구만….”

그녀는 궁시렁거리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에그와 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거라도 달라고 하자 그녀는 OK를 외치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 연하게 한 대 꼬실리려고 담배를 빼 무는데

자전거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근처 가게로 무언가를 사러 가는 게 분명했다.

얼마나 손님이 없으면 메뉴에 적힌 기본적인 재료조차 갖추고 있지 못한 것일까.

한참 후에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하품이 날 지경이었다.

이건 샌드위치가 아니라 따로국밥이었다.

반쯤 익은 계란은 터져서 노른자가 질질 흐르고,

햄은 마치 생가죽을 씹는 느낌이었다.

곁들여 나온 감자튀김은 또 어떻고.

조림을 할 때처럼 깍둑썰기 한 감자튀김을 상상해 보라!

그래도 거기까진 참을 수 있었다.

그녀의 음식솜씨가 그것밖에 안 되는 걸 어쩌랴.

내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건 계산을 할 때였다.

내가 먹은 세트메뉴의 가격이 삼만낍이어서 오만낍짜리를 냈더니

그녀는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소액권 지폐를 꺼내 한참을 헤아렸다.

그나마도 몇 천낍이 모자라는 눈치였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방인을 앞에 두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장승처럼 서있는 그녀에게서

빼앗듯이 거스름돈을 받아 들고 나는 식당을 나왔다.

이건 장사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그리고 다음날, 다시 그 식당을 찾았지만

전날 챙겨주지 못한 거스름돈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다.

나는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아무리 잔돈푼일지라도 당연히 챙겨줘야 하는 돈이거늘!

어떻게 나오나 보자는 심산으로 주스를 시켜서 한 시간 정도를 죽때렸다.

그녀에게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어제의 일 따윈 까맣게 잊은 듯했다.

내가 이놈의 집구석 다신 오나 봐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그녀가 주방에서 손짓으로 잠시만 기다리란다.

그리고는 두리안 몇 조각이 담긴 접시를 내왔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접시를 내려놓으며 수줍게 웃었다.

보름 가까운 시간 동안 내가 그 식당에서 보았던 유일한 미소였다.

그날 이후, 나는 그 앞을 지나칠 때면 습관처럼 식당 안을 기웃거리곤 했다.

한 번도 손님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식당,

딱히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예쁘지도 않은 그녀가 보고 싶다.

햇빛 아래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낸,

빨랫줄에 널린 남루한 옷가지들처럼 꾸미지 않은 미소가

차라리 서글퍼서 가슴에 남는 식당,

간판도 상호도 없는 그 식당이 문득 그립다.

7 Comments
바이크온더클라우드 2014.07.10 09:54  
다시 오세요~
탄허 2014.07.10 16:41  
ㅎㅎㅎ. 라오 여성의 주머니에 들어간 돈을 다음날 빼 내시는 분 아직 못봤어요. 제가 악착같이 따져서 받아냈다가 다시는 못보고 있습니다. 달력 사진에 넣어도 될 만한 몸매의 그녀인데...한국 사람은 주는 것과 받아야 할 것의 분별이 확실한데. 짤짤님이 기네스북에 오르실 뻔했네요.
한쑤거덩 2014.07.11 13:10  
간만에 좋은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복선을 깔아놓은듯한 다중적 의미......
님의 글을 읽고나니, 저도 누군가가 그립네요.
라오스에 두곤 온.
짤짤 2014.07.11 22:37  
9월달에 가면 꼭 알현해야 할 분이 두 분으로 늘었네요. <바이크 온 더 클라우드>에 가면 믹스커피 타주실 거고, 탄허님은 뭘 주시려나? 참고로 저는 차맛을 모른답니다. 대신 커피에 대해서는 일가견이 있죠. 탄허님께 부담을 드리려는 건 절대 아닙니다. ㅎㅎ
에말이오 2014.07.13 00:42  
9월에 가시는군요
부럽습니다.

믹스커피 제 몫까지 드세요
양보 하겠습니다~ ㅎㅎ
평화의쉼터 2014.07.15 23:30  
믹서커피는 제전문인데 .....ㅋ
hanssam 2014.11.24 16:52  
재미있네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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