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가는 배낭여행기-정글트레킹
폰트래블에서 전날 정글 트레킹에 대한 예약을 했었다.
정글의 오지 마을을 둘러 보는것과 그리고 정글 산행에 대한 투어 요청이였는데
프로그램이 다양하지 않아 다소 여러가지를 물어 물어 덤벼들었더니
프로그램을 소개해준 것이다.
대게는 꽝시폭포나 빡우동굴을 둘러보는 패턴의 프로그램외에는
거의 소개를 하지 않는듯 싶다.
정글트레킹을 하고 싶다고 하니 이 프로그램을 추천해준것이다.
시내에서 약 한시간 정도를 달린듯 하다. 제법 한갓진 그런곳이다.
비는 지적대니 내리는데 사실 불편함 보다는 청량감이 더했다.
진창이라서 불편도 했지만 어차피 이동네 산길은 다 흙탕길이라 사실 맑은날이라 해도 의미은 없다.
<옥수수와 닮은 사탕수수밭>
마을에 들어서니 외국인 트레킹족들이 서너명 보인다.
가이드 말로는 한국인은 이런 트레킹에는 거의 참여 하지 않는다고 한다.
거의 웨스틴들이 차지하고 한국인은 이번이 처음이란다.
아마도 나처럼 해보고 싶은 집념에 악착같이 덤벼드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반증이겠지만
대부분 인터넷에 올려진 정보가 폭포와 동굴 투어같은 쉽고 간편한데 집중하기 떄문이라 본다.
즉 정보가 없어 그런것이다.
<마을가는길>
'낮선곳의 탐방'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잘찾아보자
알고보니 오지마을을 찾아가는 트레킹뿐만 아니라
정글 레프팅이나 카약킹을 묶어서 2박3일이나 1박2일 프로그램등 아주 다양하게 있었다.
나중에 그사실을 알곤 무릅을 쳤지만
늦은뒤였다. 하지만 당일치기 산행이지만 제법 험하디 험한길을 골라서인지
사실 스릴감은 제격이였다.
가이드에게 이르길
마을도 좋지만 이색적인 정글길을 안내해달라 부탁했더니
차량을 다른곳으로 오라고 전화를 한다.
왔던길로 오는게 아니라 다른코스로 변경시킨것이다.
출발할때 부터 이런저런 애기를 했더니
의견을 받아준것이다. 나중에 그 수고러움에 고마워 얼마간 팁을 주었다.
가이드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인데(학교인지는 모르겠음) 이른바 투잡을 하고 있는중이라 했다.
참 선량한 총각이였다.
40여분 정도를 달려 어느 마을에 도착해서 트레킹을 시작하니
마을 사람들이 정겹게 인사한다.
'싸바이디'라고 반갑게 인사하니
다들 웃으며 손짓을 한다.
참고로 라오스말로 '싸바이디'는 안녕하세요
'크롭짜이'는 고맙습니다라는 뜻이다. 이 두마디는 합장을 하면서 말하면 더 친근감있게 접근된다.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선 이정도 인사말쯤은
몇개 알고가자
난 아주 쉽게 이말들을 주고 받았다. 역시 다가가기 조금은 편했다고 말하고 싶다.
우물쭈물 하는것 보다 적극적으로 들이대보자
웃으면서 싸바이디~하면 보는 사람도 웃어주며 친근감있게 접근된다.
한국사람들 너무 무뚝뚝하거나 아님 우쭐한 감정을 가진듯 싶은데
그러지말고 조금더 친화적으로 지내보자 여행이 한층 즐거워진다.
<농사일중인 주민들>
한무리의 어린이들을 만난다.
어디를 가나 역시 천진난만한 애들이다.
저게 낚시 도구인데 개울가에서 고기잡고 돌아오는 길이라한다.
수확물이 없는걸로 봐선 헛탕친 모양이다.
미리 준비해온 볼펜을 선물하니 다들 좋아한다.
루앙프라방을 계획한건 아니였지만
혹시 고산족 마을에 방문하면 선물이 필요할것 같아서 볼펜을 한다발 준비를 했었다.
그들과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선 나름 생각한 방법이였다.
여행 계획을 짜면서 부터 생각했는데 만만한게 볼펜이였다.
부피가 작고 갯수가 많으니 말이다. 이는 아주 탁월한 효과를 발휘했다.
망태기를 머리에 두르고 다니는데 머리가 아플것 같다고 하니
나름 메는거 보다 적응되면 저게 더 쉽다고 한다.
어른들은 더 큰짐들도 머리에 두르고 다닌다.
가이드에게 저애들은 이시간에 학교 안가냐고 물었더니
지금 학교는 방학이란다. 그것도 3개월이나 한다고 한다.
나중에 학교에 가보기로 하였다.
<싸바이디~>
약탈식 농경방법중 하나가 바로 화전이다.
라오스에 오니 화전식 농경이 거의 대부분이였다.
주로 옥수수나 사탕수수 그리고 벼를 많이 심는데
벼는 우리처럼 물을 주지 않는다.
원체 비가 자주오니 물논이 아니라도 벼는 잘자라기 때문이다.
수풀을 없애고 만든 화전식 농법은
나중에 자신의 삶터를 훼손시킨다고 들었다. 이곳에 오니 화전 농업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워낙 정글이 넓어서인지 그런 개념은 이사람들에게
별의미가 없는듯 싶다. 사실 정글을 개간하지 않으면 논과밭을 구할떄가 없겠지만 말이다.
<정글을 개간해 만든 벼밭>
화전농업(火田農業)은 세계 각지의 열대림에서 근채류 재배를 위해 사용하거나
동남아시아의 산림 구릉지대에서 밭 경작에 사용하는 경작법이다.
화전은 수도작(水稻作)이 불가능한 산간지대나 고원에서 초지(草地)를 태우고 난 뒤
그 땅에 밭곡식을 심어 거의 비료를 주지 않고 경작하는 것이다.
이 농업은 극히 원시적인 약탈경제의 한 형태로,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농경방식이다.
라오스에 오니 교과서에서 배운 그대로의 화전을 볼 수 있다.
나중에 산행을 하다 마주친 벼밭은 입이 벌어질 정도였다.
<화전>
농사일을 하고 있는 라오스 주민이다.
벼는 밭에서 키우지만 저렇게 물을 대고 키우기도 한다.
밭과 논 품종이 다른지는 모르겠다.
자포니카벼와 인디카벼 품종이 있는데
주로 우리는 물에서 키우는 인디카 품종을 선호하고
동남아에서는 길쭉하고 수분이 적은 자포니카벼를 선호한다.
한떄 안남미라고 우리에게도 많이 보급되었던 쌀이기도 하다.
가이드가 벌레 한마리를 잡더니 보여준다.
입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풀을 대어주니 그냥 싹뚝 잘라버린다.
우리네 풀무치 종류도 턱힘이 제법 쎈데
이녀석에 대하면 당할 재간이 없겠다.
정글 복장이였는데 제법 불량했다.
사실 이런길인줄 알았다면 복장을 달리 했을것이다. 긴바지도 있었고 긴팔도 있었다.
더운 나라인지라 대충 다녀올거라 생각하고
반팔 반바지에 스포츠용 센들로 준비했는데 이 복장으로 정글을 넘어가기란 쉬운게 아니였다.
각종 모기떼로 부터 헌혈을 강요당했고
온갖 풀들의 날카로운 단면때문에 생체기가 많이 나기도 했다.
팔뚝과 다리엔 거의 거미줄 같이 상처가 났는데 그래도 엉덩방아 찧는거 보다야 나았다.
미끄러워 몇번이나 넘어졌는데 엉덩방아는 정말 아팠다.
가이드는 얄팍한 운동화 하나 신고도 잘도 다니더라
모기에 많이 물려 귀국후 말라리아에 대한 약을 먹기도 했지만 그건 기우였다.
정글 트레킹이나 오지마을 방문시 해충기피제는 필수다.
나방이다. 두녀석이 정겨운 장면을 연출하고 있는데
처음에 뭔지 몰라 자세히 보니 두녀석의 사랑장면이다.
처음으로 본 전갈의 모습이다.
사막에서나 있다고 들었는데 이걸 계기로 인터넷을 뒤져보니
정글에서도 전갈이 있다는걸 알았다.
주민들은 잡아다 술을 담근다고 한다.
처음으로 본 전갈인지라 제법 신기해서 많이 쳐다봤다.
나중에 정글을 내려오다가 코브라와도 마주치기도 했었다.
그놈은 동작이 웡캉 빨라서 눈으로만 인사(?)해야만 했다.
드디어 마을에 도착했다.
고산족 마을인데 외부와는 거의 소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하지만
사실 영어가 짧아서 제대로 이해도 못했다.
젊은이들은 시내로 유학을 나가기도 하지만 결혼하면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입구에 있던 방아의 모습이다.
공동으로 사용하는 방아인데 돌리기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우리네 방앗간과 비슷한 개념이라 보면 되겠다.
고산족 마을이다.
쑥스러워 하는 마을 주민들을 보니 오히려 내가 어색할 정도다.
참 선량하고 순수한 얼굴들이다.
위로 올라가면 마을하나가 또있다.
가이드로 부터 여러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 지금은 별로 기억이 나질 않는다
대충 400명의 주민들이 위아래에 산다고 들었다.
윗마을과 아랫마을 주민의 혈통은 다르다고 했든건 같은데
마을이름은 이제 까먹어 버렸다.
혈통이 달라 결혼은 두마을이 하지 않는다고 한다.
학교는 같이 쓴다.
돼지다. 오리.닭은 말할것도 없고
염소나 소같은 가축도 그냥 방목해서 키운다.
그러니 위생적으로 좀 불결한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글속에서 살려면 딴은 자연적인 이러한
방법외에는 없을듯 싶다. 우리가 있지만 구태여 걸문을 잠궈 두지는 않는듯 하다.
멀리서 보니 애들이나 주민들도 내가 신기한가 보다.
가이드말로 웨스틴들은 가끔씩 이말을 드르는데
동양인은 거의 없다고 했다.
아마도 많이 신기해서 쳐다보는거라 한다.
사실 신기한건 나였다.
모자의 모습이다.
이곳의 아낙네는 20세도 되지 않는다.
나중에 두 여성을 보았는데 모두 18살의 엄마였다.
아담한 마을의 모습이다.
바로앞의 왼쪽에 있는 건물이 바로 구멍가게다.
콜라.담배,과자등 그래도 있을건 다 팔고 있더라
<고산족 마을 풍경>
새끼돼지가 우뚝허니 버티고 있다.
사람과 함께해서 그런지 사람을 전혀 무서워 하지 않는다.
멀리서 소녀들이 쳐다보고 있다.
손을 흔드니 웃기만 하다가 뒤돌아서선 멋적게 손을 흔들곤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그러다 다시 문앞에서 빼꼼히 쳐다보고 있었다.
저정도 나이면 고작 10살 정도 된듯한데
물을 나르고 농사일을 거드니 우리네 70년대 농촌의 풍경과 비슷하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