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이야기 #006 - 커피적인 평화, 팍세 그리고 팍송.
2011년 5월 20일.
불편한 마음으로 방비엥을 떠나 일곱 시간 가까이 꾸불꾸불한 산길을 달려 도착한 루앙프라방.
도착한 저녁에 잠깐 들른 나이트 마켓은 치앙마이의 우왈라이 토요시장과 안타까울 만큼
비교가 되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뭐가 이렇게 볼게 없을까. 예쁘다더니.
실망감에 술이나 마시고 자야겠단 생각에 드링크샵을 찾아봤으나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폭우에
가던 길을 돌아와 집 앞에서 어묵 튀김 12,000kip 어치와 비어라오를 사들고 들어왔다.
그리고 여행의 일정을 기록해 놓는 노트를 펼쳐 그동안의 여정을 돌아본다.
어느새 4주째다. 라오스에서만 20일 가까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캄보디아를 넘어 씨판돈에서 처음 라오스를 만나며 받은 첫인상이 쉽게 바뀌지가 않는다.
방비엥을 떠날 때 마음이 무거웠던 이유는...아무래도...
내가 원한 건 샤넬 핸드백이었는데 정작 손에 들고 있는 건 루이비통이랄까.
좋다는 건 알지만 정작 들여다보면 내가 원하는 디테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래도, 라오스를 떠나고서야 어떤 느낌이었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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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이야기 - 커피적인 평화. 팍세 그리고 팍송.
함께 타고 간 닭...같이 가던 프랑스 꼬마아이가 이 풍경이 너무 신기한지 계속 쳐다보더라는.
나도 신기한데 그 아이는 얼마나 신기했을까 싶다.
팍치스러운 야채더미. 이정도는 양반이라고 한다.
반나까상에서 팍세까지, 썽태우 안팎의 풍경들 ... 낯설다.
살인적인 섬 물가를 자랑했던 씨판돈을 떠나 팍세에 오니 큰 은행도 보이고,
환율도 8000kip이 넘는다. 그리고 대형마트와 쾌적해 보이는 웨스턴 스타일의 카페와 로컬식당,
시장까지 있다. 살겠다...
많지 않은 나라들을 여행하면서 절절하게 느낀 것이 있다면 나는 시골체질이 아니라는 것.
그렇다고 너무 뻑적지근한 대도시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적당한 소도시.
나는 변두리 번화가 체질인지도.
팍세 터미널에서 뚝뚝을 타니 란캄호텔 앞에서 내려주었다.
도시다 도시.
이왕 란캄호텔앞에서 내려준거, 매니아까지 형성 되어 있다는 란캄국수 먹어보기-*
오랜만에 먹게되는 인간적인 야채들 ㅠㅠ 캄보디아 이후로 첨인것 같아.
팍세에 오니 정말 살 것 같다. 생각보다 날이 덥지 않은 건지, 내가 더위에 익숙해 진건지-
적당한 가격대의 팬룸을 잡아 간단하게 여장을 풀어놓고, 동네구경을 해본다.
씨판돈과는 다른 느낌의 건물들과 다양한 나라의 음식을 파는 가게들...
무려 음식을 골라 먹을 수 있다는 사실마저 기쁘다. 저녁은 시장에서 2만낍에 닭구이와 땀막홍,
까우니여우(찹쌀밥)을 시켜놓고 정신없이 먹었다. 외국아이가 땀막홍, 까우니여우 하면서
주문하니 신기한지 주위에서 사람들이 자꾸 쳐다본다. 의외로 동양인 여행자가 없었던
라오스 남부를 여행하면서, 그 정도 시선쯤이야 아무렇지도 않다.
가끔 시선에 내가 뚫어질 것 같다는 생각도 하긴 했지만.
다오홍 시장의 꼬치구이 가게 :) 아줌마- 땀막홍 맵게 맵게~
이게 너무 먹고 싶었던거지, 시장표 땀막홍!
이 모든 메뉴가 20,000kip 이라는 것! 시장 최고! 팍세 최고!
만족스러운 저녁을 먹고, 비어라오 드래프트를 파는 가게를 발견해서 신나서 맥주도 한잔 하고,
도시에 온 기분은 마음껏 만끽 하고, 방향선택이 고장난 선풍기를 켜놓고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
팍세에서 보낸 첫 날. 도시에 왔다는 그 기분 하나로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내일은...모또를 빌려 팍송에 가야지. 뭐 늦게 일어나서 귀찮으면 안가는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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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하우스에 붙어있던 팍세 시내 지도-* 대도시는 아니지만 있을 거 다 있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라오스에서는 일곱시만 되면 눈이 떠진다.
회사 다닐때 출근 시간이 늦은 편이라 늘 아홉시에 일어나던 습관이 아직도 몸에 붙어 있는지.
2시간이라는 시차를 생각하면 전혀 이른 시간이 아닌데 왠지 시간을 번 듯한 뿌듯함을 느껴본다.
일찍 일어나면 팍송에 가려고 했으니...가야겠다.
겟하우스 근처에 있는 투어 인포에서 팍송 지도를 얻어 가려고 했지만, 없다고.
팍송 근처의 리조트 브로셔를 쥐어주며 “아무튼 여기 가는 길에 있어.” 라는 말 하나 믿고
무작정 빌려 온 모또를 타고 떠나본다.
팍세를 조금 벗어나니 그냥 한적한 시골마을이다. 길에 있던 가게에서 물 사면서.
이런 길을 계속해서 달려주어야한다.
팍세에서 팍송까지 동쪽으로 40여 km. 40km/h 로 1시간을 달려야 하는구나.
가는 길에 있는 볼라벤 고원과 몇 군데의 폭포가 볼만하다고 하니 일단 달리는거다.
그나저나 볼라벤은 내가 어제 커피 마시면서 차도녀 놀이 하던 카페 이름이잖아?
나중에 알고보니 팍송은 라오스의 커피산지로 유명한 곳이라고.
나름 3년간 바리스타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커피농장 투어 이런거 해줘야 하지 않을까,
약 3초 정도 고민하다가, 투어는 무슨. 하고 만다. 내 여행은 대부분 이런식이다.
팍송까지 가는 길에 몇 개의 폭포가 있다는데, 내가 발견한 곳이라고는 탓팬(TadFane) 한군데 뿐.
그나마도 이정표가 너무 낯설어서 -무려 탓팬 워터폴 리조트라고 써있다- 그냥 지나쳐 가다가,
이 쯤 되면 나와야 할 것 같은 기분에 길 가던 라오 아주머니에게 길을 물어본다.
“아, 저 익스큐즈미...”
모또를 세우자마자 영어 못하신다고, 손사래를 치신다.
“빠이 탓팬.” -탓팬 폭포에 가고 싶어요..라는 의미-
나도 라오어 못하니까..의미만 통하면 됐지 뭘.
내 발음이 너무 수상한지 몇 번을 듣고 나서야 알아들으시고는 오던 길 반대 방향을
가리키시며 저-어기에 있단다. 이런. 지나쳐왔잖아. 아까 리조트라고 써있던 거긴가보다.
다시 돌아서 이정표 기준으로 조금 들어가니 매표소가 나온다. 여기까지 왔는데, 돈내야 된다고
안들어가기도 뭐하고. 그래 내가 낸 입장료가 학교를 짓는데 쓰인다잖아. 쿨하게 내자.
5,000kip을 내고 들어간 폭포를 멀리서 감상하고, 스스로를 괜찮다 위로하며 다시
팍송을 향해 달린다.
리조트...?
리...리조트구나...
이것이 탓팬.
괜히 줌을 땡겨본다. 근데...실물이 조금 더 낫다에 한표.
팍송을 향해 가는 동안, 서늘한 볼라벤 고원의 공기를 온몸으로 받으며 “춥다,”소리를 연발한다.
라오스에 와서 춥다는 소리를 하게 될 줄이야. 실제로 볼라벤 고원의 평균 기온은 25도 안팎이라고.
엄청나게 쾌적한 기온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지만,
다음에 오게 된다면 라이더 자켓은 둘째치고 바람막이라도 입고 나와야 겠다. 감기 걸리겠어...
팍송에 도착해 맛나 보이는 닭고기 국수를 너무 맛있게 먹고 (진짜 맛있었다)
내 라오스 여행 바이블이 되어버린 론리 플래닛에 나와있는 네덜란드 할아부지의 직접 로스팅한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커피가게를 찾아간다.
아주 찾기 쉽다. 저 와이파이 표시만 찾으면 되니까.
“안녕, 일본사람이니?”
라오스에서 유난히 일본사람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아뇨, 한국사람이예요.”
“그럼 너 저 글씨는 못읽겠구나.”
오이시이 고-히- 라고 써있는 메뉴판을 가리키시며...
“일본어 읽을 줄 알아요.”
“오 쿨한데. 혹시 비엔티엔에서 일하고 있니?”
“아뇨, 그냥 투어리스트예요.”
몇마디 대화가 오간 뒤에 더치 할아버지가 여기서는 코피루왁(사향고양이 응가커피)이 싸다고
트라이 해보라며 권했지만, 라오커피에 질린 입맛이 놀랄까 그냥 평범한 커피 한잔을 내려
달라 말한다.
낯익은 모카포트. 손이 타서 예쁘게 낡은 느낌이 참 좋다.
더치 할아버지표 "평화로운 커피" 오랜만에 마시는 향긋한 커피였다 :)
편안한 분위기, 강렬한 햇살, 서늘한 바람의 묘한 조화 속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고-
이 주변을 좀 더 돌아볼까 하고 마을에서 좀 더 서쪽으로 달리다가 이러다간 베트남까지
달리겠지 싶어 방향을 돌려 집으로 돌아온다.
돌아오는 길의 바람은 여전히 차가워 감기가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고,
점심의 닭고기 국수는 양이 부족했는지 급 허기에 과일 노점에서 파인애플 한 통을 사서 먹는다.
어머 이거 많아서 어떻게 먹어...라고 해놓고 한통 다 먹었다. 가격은 10,000kip.
길에서 발견한 과일가게. 두리안이랑 파인애플을 파는데...파인애플이 ㅠㅠㅠ
통조림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달달한 맛에 백번은 감동하고, 수상한 모양새로 모또에 타고
있는 내가 신기한지 일단 손부터 흔들고 보는 사람들과 인사도 하며, 그렇게 다시 팍세로 돌아왔다.
팍송까지의 짧디 짧은 라이딩.
한잔의 커피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잊지 못할 바람을 선사해 준 그 시간은
라오스 남쪽의 가장 행복한 기억.
또 언제 달려서 집에 가냐고.
그래도 너무 좋았던 백만달러를 주고도 못사는 풍경과 바람...그리고 커피적인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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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_이런 모양새로 모또탑승...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p.s2_ 커피적인 평화, 라는 표현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에 나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