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이야기 #004 - 4000개의 섬, 씨판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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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이야기 #004 - 4000개의 섬, 씨판돈.

케이토 23 4751






라오스 이야기 - 4000개의 섬, 씨판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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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뎃에서 만난 해무리- 이날 밤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졌다.
이렇게 무지개처럼 예쁜 해무리는 처음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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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메콩 강의 아침 :)



전날 저녁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방갈로로 돌아와 비자 클리어 한 이후의 북부 일정을 조정하고자
지도에 이것저것 체크를 해본다. 오기 전에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정보들로 어떤 식으로 움직여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는데 막상 오고 나서 보니 내가 방향만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든 방법이 다 나온다.
굳이 30일짜리 비자를 받지 않고 북부 일정을 마치려면 상당히 빡빡해 질 것 같지만, 들른 곳이 나랑
맞지 않으면 금방 다음 목적지로 떠나면 되는 나의 긴 여정에는 그다지 문제 될 게 없어 보이긴 하는데.

북부 일정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컨디션을 회복하고 호흡을 가다듬는 것도 중요하니 씨판돈에서의
유유자적하는 날들이 전혀 아깝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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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정과 앞으로의 일정을 정리중-



흠, 팍세에 들러서 문명생활을 좀 하고 탐콩로 갔다가 비엔티엔 들어가면 첫 번째 비자의
15일은 거의 맞겠구나...북부에서 보낼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질 것 같은데, 30일 비자를 받을까...
에잇. 모르겠다. 그냥 비엔티엔까지 여정이 더 남아있으니 그 때 생각해보자.

일정을 조정하다가 물을 사두는 것을 깜빡했다는 생각에 시계를 보니 열한시가 다 되어간다.
지금 타운까지 걸어가면 20분 걸릴텐데, 그럼 열한시 반... 문 연 상점이 있을까?
왜 이 동네는 세븐도 없는 걸까, 나는 왜 낮에 물을 사두지 않았단 말인가.
방갈로 엄마는 벌써 자는것 같던데...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하지만...



이미 몸은 밤의 길 위에 서있다.



물을 마셔야 해.
컨디션이 안 좋아도 할 건 해야지.
불편한 로컬버스 타고 하는 장거리 이동만 아니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캠핑용 후레시 하나에 의지해 구름이 잔뜩 껴 별조차도 보이지 않는 밤길을 걸어 나간다.

와, 정말 뭐라도 나올 것 같이 칠흑과 같은 어둠이 이런 말일까? 
저녁 무렵부터 강하게 불던 바람에 야자수 잎이 가지채로 떨어져 길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이거 지나가다 맞으면 여행자 보험에 해당 되는 건가?
이상한 생각도 해본다.
길을 걷는 동안 지나쳐간 많은 방갈로에서 새어나오는 낮은 불빛,
작은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인기척을 느끼며 안심한다.

이십여 분을 걸어 도착한 타운. 열한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 거의 다 문을 닫았다.
이런 거 서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인데. 밤은 열두시부터 아닌가?!
돈뎃에서의 하루는
해가 넘어감과 동시에 마무리 되나보다.
요 며칠간은 나도 늦어도 열한시에는 잠들었는데...열한시 반에 밖에 나오니 완전 다들 꿈나라다.
다행히 막 가게 정리를 시작하며 음악을 끄는 아주머니를 발견하고 냉큼 뛰어 들어가 냉장고에서
물 한병을 꺼낸다.
그리고 집에 가면서 마실 비아라오도.



이것도 주세요.



중간에 포기하기엔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에 일단 와 봤는데 목적을 달성했으니
기쁨의 축배를 들어야지.
돌아가는 길에 지구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셔보았다.

구름에 가려졌던 별들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작하고, 이 시간에 어딜 가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떼들과도
수없이 마주친다.
니들 밤에 보니까 왜 이렇게 무서운 거니. 후레시로 비추니까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다.
소들도 나를 보고 얼마나 놀랐겠나 싶지만, 아 정말.
뿔 달린 소는 무서워...
빠이에서 뿔 달린 소한테 장난 걸었다가 들이 받힐 뻔 했던 기억 때문에
뿔 달린 애들은 피하고 싶다.

낯선 사람을 봐도 꼬리 흔들며 반기는 돈뎃의 멍뭉이들, 밤이 되니 노련하게 동네를 산책하는 고양이들.
적당히 부는 바람 모두가 술친구다.



방갈로에 돌아오니 열두시.



몸이 안 좋으니 술도 금방 취한다.
맥주 한병에 기분이 좋아져 금방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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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보기만 해도 좋았던 풍경, 분홈 방갈로에서.



돈뎃에서 네 번째 아침을 맞이했고, 오늘은 몸 상태가 절정임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방갈로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사방팔방에 있는 문이라는 문은 다 열어두고 씨판돈에서의
기억들을 정리한다.

아직 씨판돈[돈뎃]에 머물고 있지만 이곳의 하루는 어느새 일상과 같이 흐르기 시작했고,
오늘과 그리고 떠나게 될 날까지도 큰 변화 없이 조용히 마무리가 될 것 같기에 며칠간의 감상들에
이야기를 붙여보았다. 딱히 별일 없었던 것 같은 며칠 동안의 이야기를 이렇게나 길게 쓰게 되리라고는.
내가 이곳에 길게 머물게 된 것 만큼이나 놀랍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더 길게 머물게 될 수도 있겠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만나는 일은
긴 여행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만은 분명하다.
여행에서 내가 예상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봐야 내가 생각해 둔 루트로 옮겨다는 것 정도. 
-그나마 그 것도 예상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나머지 이야기는 내가 그 곳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아직 거쳐 온 곳보다 거쳐 가야 할 곳이 더 많은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머물러 있는 순간마저 설렌다.



내가 여행 중이구나, 아침마다 낯선 천장을 보며 일어나는 순간순간 감사한다.



씨판돈에서의 날들은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짓고 팍세로 떠나게 될 내일 아침까지
조용히 일상에
녹아 있어야겠다. 45리터의 배낭에 짐들을 쑤셔 넣고, 제 시간에 오지 않는 버스를
노심초사 기다리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미소로 대화하며...
언제가 되어야 다시 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캄보디아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기에 충분했던 돈뎃.



아직까지 반딧불이를 볼 수 있는 이 곳 씨판돈.
나의 첫 번째 라오스의 기억을 안겨준 이 곳에서의 날들을 조용히 마무리 지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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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뎃 선착장 근처의 낮풍경. 물놀이와 태닝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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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라이즈 사이드에서 매일 같이 지나다녔던 골목길. 강변쪽엔 방갈로, 건너편엔 상점들.





23 Comments
팥들어슈 2011.05.23 18:02  
여행 다닐때 언제부턴가 지명이나 업소 이름을 안외우게 되서 ( 못외우는? 귀찮은?ㅋ)

다른 사람 여행기를 봐도 최소 3번이상 안간데는 긴가민가 하더군요 -_- 글에 나오는

돈뎃은 확실히 안간데 같네요.

근데 라오에서는 메콩강옆에서 라오비어마시며 쏟아지는 별들을 보며 누워있었다면

어디든 다 간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요? ㅋㅋ
케이토 2011.05.24 08:31  

그것은 바로 메콩의 기적? ㅎㅎㅎ
씨판돈에서 만난 메콩강이 다르고, 루앙프라방에서 만난 메콩강이 또 새롭지만-
메콩강이라는 정서는 "라오스" 그 자체인것 같아요 :)
돈뎃은...뭐 어디든 그렇겠지만 호불호가 정확히 나뉘는 곳 중에 하나라,
누군가가 묻는다면 꼭 가보라고 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

필리핀 2011.05.28 08:47  
몸 아플 때는 한국 음식이 최고인데...
특히 라면...
향수병을 달래는 데도 좋구요...
암튼 첫번째 향수병은 언제쯤 맞으실려나??? ^^;;;
케이토 2011.05.30 14:40  
향수병은 괜찮은데 ㅠㅠ... 태국 쏨땀 먹고 싶어요, 땀막홍은 뭔가 부실해요 ㅠㅠㅠㅠ
RAHA라하 2011.06.02 02:57  
우와 칠흑같은 밤길을 홀로!
대단한테요 케이토님 짝짝짝

몸이 얼른 나아진 여행기를 읽어야 겠습니다
이거 원 왠 오지랖인지 걱정이 되는군요 ㅠㅠ
케이토 2011.06.02 17:05  
씨판돈에선 너무 감상적이죠? 요즘에도 틈틈이 쓰고 있는데,
일정이 계속 될수록 저도 많이 변하는 걸 느껴요,
씨판돈에서 있던 시간이 벌써 한달전이네요. 시간 참....
dandelion 2011.08.29 13:37  
해무리 사진 너무 멋져요~  메콩강의 아침도요...
케이토 2011.08.30 13:41  
가끔 그리운 날들...이 되어버렸네요, 제게는 :)
열혈쵸코 2011.10.05 23:33  
실망을 하더라도 메콩강에서 유유자적하고 싶습니다.
몸이 아파서 힘드셨겠지만, 그래도 좋은 시간 보내신 것 같아요.
물과 맥주를 위해 어두운 밤길을 걸으셨군요.
저라면 야식을 위해 어두운 밤길을 걸었을 것 같습니다. ㅋㅋ
케이토 2011.10.11 04:13  
아마 씨판돈이 마지막 여정이었다면 저는 라오스라는 나라를
이렇게까지 아름다운 기억으로 간직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감히 해봅니다...
그냥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요 ^^...그래도 방갈로에서의 날들은 참 좋았어요....
공심채 2011.10.06 23:22  
해무리가 마치 콤러이 같아 보인다는... ^^;
케이토 2011.10.11 04:13  
오홋 그러고보니 11월이면 치앙마이 무척 멋지겠는걸요 ^^*
soop 2011.10.07 10:42  
이달 말에 시판돈으로 들어갑니다.
케이토님 여행기가 여러가지로 많이 도움이 되는군요....
케이토 2011.10.11 04:14  
남쪽에서 북쪽루트로 떠나시나요? ^^ 팍세에서 란캄국수도 꼭 드셔보세용-*
soop 2011.10.12 18:36  
저는 짧은 휴가덕분에 10일짜리로 팍세.시판돈에만 있다가 올계획입니다.
케이토님의 말대로 란캄국수 꼭 맛 보겠읍니다.
11월초에 팬룸 괜찮을까요?  그리고 온수도 꼭 필요할까요?
케이토 2011.10.16 17:42  
제가 겨울에는 동남아 여행을 해보지 않아서 ㅠㅠ...
근데 계절에 상관없이 온수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더운나라라도 아침저녁 샤워할때 찬물로 하면 감기들어용...
팬룸은 한여름에도 괜찮긴 했지만 온수는 필수라고 생각해요 ㅇㅅㅇ)/
덧니공주 2011.10.16 11:34  
저는 태국에서 만난 강아지보다 소가 차라리 나은듯,개들때문에 택시타고 집에갔던 기억이
근데,밤에보는 동물이 무섭긴해요.나이트사파리에서 죽을뻔했던 공포가 엄습하네욤.ㅎㅎ
케이토 2011.10.16 17:43  
태국은 강아지들이 밤만 되면 미치는거 같아요. 특히 빠이;;;
달리는 오토바이로 달려드는데 얘들이 뭘 잘못먹었나 했다니까요;;; 무서워요 ㅠㅠ
나이트 사파리 ㅋㅋㅋ 가보진 않았는데 기회가 되면 맘을 단디먹고 가야할듯;;;;
shtersia 2012.02.09 13:10  
잔잔한 님의글 읽으며 왠지 모를 짠한 마음이 듭니다.
변화지 않았으면 하는것에 대한 그리움...
여행에서 느끼는 여유로움과 한가로움과 아쉬움이
느껴집니다.
행복한 맘으로 여행기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케이토 2012.04.21 01:33  
부족한 여행기에 조금이라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면, 제가 오히려 고맙습니다.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저 조차도 아련한 시간들이네요 이제는....:)
타노시미 2012.03.18 12:24  
글을 읽기만 하다가 이렇게 한 자 남기고 싶어지네요..

다음주에 방콕으로 들어가는데, 라오스는 4월중순부터 시작하게 됩니다.
이번에 라오스남부에 갈 계획은 없지만, 님의 글을 읽고 있으니 라오스 일정을 더 늘리고 싶은 기분이 듭니다.
저의 여행의 취지(? ㅋㅋ)에도 잘 맞을 것 같기도 하고..
어쨋든 아직 가본적이 없는 라오스 여행에 대하여 눈높이를 정하는데, 님의 글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언제나 건강한 여행이 되시길....
케이토 2012.04.21 01:35  
흔적 남겨주셨는데 댓글이 너무 늦은건 아닌가 싶어요-
지금쯤 라오스를 여행하고 계시겠네요. 어떤 감상으로 마주하고 계실지 무척 궁금하네요.
타노시미님도 언제나 건강한 여행이 되시길! 닉네임처럼, 즐거운 여행이 더 좋을지도! :D
타노시미 2012.04.23 20:47  
늦은 댓글에도 대응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이 베트남 여행 마지막날입니다. 지금 라오까이인데 밤기차타고 하노이 들어가면, 내일오후 비행기로 비엔티옌으로 날아가서 2주간의 라오스여행을 시작합니다. 케이토님의 여행기가 많이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즐겁게 여행하도록 할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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