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이야기 #003 - 4000개의 섬, 씨판돈.
라오스 이야기 - 4000개의 섬, 씨판돈.
리피폭포까지 자전거를 몰고 가다가 발견한 마음에 쏙 들었던 분홈 방갈로-*
방갈로 바로 앞에서는 이런 풍경이 내려다 보인다.
리버뷰의 방갈로라고는 믿을 수 없는 배스룸 포함의 구조!
타운과 가까운 돈뎃 방갈로를 떠나 새로이 옮겨 온 분홈 방갈로는 타운에서 정확히 20분 거리에 있다.
전날 밤부터 몸 상태가 나빠지기 시작해서 이동하기에 썩 좋은 날은 아니었지만,
메콩 강을 낀 씨판돈에서 강을 바라볼 수 없는 곳에 계속 머무르는 것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이사를 감행하였다.
아침부터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10분쯤 걷기 시작하니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진다.
아, 아침은 먹고 나올걸. 후회해도 소용없다. 방갈로에 도착해서 문 앞에 짐을 놓아두고
겨우 한숨을 돌릴까 하고 있는데, 다른 외국인 여행자 세 명이 자전거에 짐을 잔뜩 싣고 와서는
“여기 우리 방인데-?”
하는 것이 아닌가. 열쇠까지 보여주면서.
그럴 리가 없다고, 어제 와서 오늘 아침에 오기로 이야기 해두고 갔다고 하니 페이를 했냐고 묻는다.
아니, 안했어. 하지만 아침에 와서 여기 묵기로 약속해 두고 갔다고 하니 미안하단다.
자기네는 이미 숙박비를 지불했다고.
방갈로 주인과 이야기를 나눠보니 여주인이 시장 간 사이에 주인아저씨가 어제 오겠다고 한 얘기를
미처 전해 듣지 못해 아침에 먼저 온 그들에게 방을 내준 것이다. 몸이 회복 될 때까지 이곳에 머물면서
쉴 생각이었는데, 다른 곳을 또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앞이 막막하다.
지금은 더 움직일 기력도 없는데. 그리고 이 주위에 여기만큼 마음에 드는 곳도 없었는데, 어쩌지.
시설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마음에 드는 풍경과 배스룸 포함이 가장 큰 매력인데,
배스룸을 포기하고 풍경 하나 때문에 묵기에는 그다지 메리트가 없었다.
메콩 강을 바라보는 방갈로는 어디든 멋진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에. 타운에서 20분이나 떨어진 여기로
옮긴 건 내가 원하는 조건의 대부분을 만족시키기 때문 이었다고.
아, 나도 모르겠다.
여주인이 외국인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주인아저씨에게 한참 뭐라뭐라 하더니 탈진해서
방갈로에서 함께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 테이블 위에 쓰러져 있던 내게 며칠이나 묵을거냐 묻길래,
3~4일은 있어야 정신 차릴 것 같아 “3 nytes" 라고 했더니 아저씨에게 외국인 여행자들 요금은 그냥
환불해주고 나보고 여기 있으란다. 아무래도 그들은 하루만 머물 생각이었나 보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다행히 그들이 짐을 풀기 전에 원만하게 해결이 되었다. 그 여행자들에게는 미안하게 됐지만, 쿨하게 괜찮다고 하며 자전거를 타고 유유히 다른 곳을 향해 떠났다.
어제 몇 번이나 약속을 하고 다짐을 받았는지. 약속을 지켜주어 고맙습니다.
겨우 짐을 던져놓고 닭고기가 들어간 쌀국수를 흡입하다 시피 먹고, 약 하나 챙겨먹고
유난히 뜨거운 낮시간의 공기를 느낄 겨를도 없이 잠 속으로 다시 빠져들었다.
방갈로 내부. 쾌적해 보이는 진실 너머엔 (...)
.
.
.
일어나니 두시가 넘었다. 한참 뜨거울 시간은 이미 지났다.
해가 뜨는 방향에 있는 선라이즈 사이드는 한시만 지나도 금세 그늘이 드리워진다.
강을 가까이에 끼고 있어 방갈로 곳곳으로 스며드는 바람이 참 기분 좋은 곳이다.
뭐, 물론 목조 방갈로의 특성상 개미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메콩 강 근처를 어슬렁거리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을 찾을 수 없는 씨판돈 에서의 일상에
서서히 익숙해져간다. 튜빙이나 카약킹은 지금 몸 상태로 했다가는 병원에 입원할 기세다.
방비엥 올라가서 해야지. [...라고 해놓고 아무것도 안하고 뒹굴거리고 있는 방비엥의 날들]
근데 딱히 내가 물놀이를 좋아하지도 않고 캄보디아에서 3일간 있었던 꼬롱의 해변에서도 멍하니
파도소리만 듣고 오지 않았던가. 아니 파도소리를 들으며 맥주 한잔 들이키며 아이패드에 담아 온
로스트[미국드라마]를 봤지.
낯설게만 느껴지던 인사말도 어느덧 먼저 건넬 정도로 자연스럽게 입 밖에 낼 수 있게 되었고,
저녁마다 산책하던 길을 걸으면 늘 만나던 사람들과 만나게 되고 소리만 요란하고 전혀 속도가 나지 않는
보트마저 정겹다.
해가 선셋 사이드를 붉게 물들이기 전에, 내가 묵고 있는 분홈 방갈로 근처에 있다는
킹콩 레스토랑의 브라우니를 맛보러 갔다. 여기까지 와서 왠 놈의 브라우니인가 싶지만.
전날 방갈로를 둘러보고 저녁을 먹고 있는데, 한무리의 캐내디언 아이들
(아무리 늙어보여도 나보다 어리다는 거 다 안다, 꼬맹이들아)이 살갑게도 어느 나라에서 왔냐부터
시작해서 이것저것 묻더니, 우리가 지금 밥을 먹고 있는 이 집은 밥도 맛있지만
-아무래도 거리가 있다 보니 타운보다 밥값은 훨씬 저렴했다- 일단 방갈로 경치도 끝내주고
대여해 주는 자전거도 진짜 좋아서 타고 다니면 다른 여행자들이 자전거 어디서 빌린거냐고
물어보기까지 한다고 앉아있는 나를 커다란 아이들 서너명이 둘러싸며 폭풍수다를 떨기 시작한다.
얘네 왜 이렇게 말이 많은거야;;;
또 자기네들끼리는 드라마 주인공 얘기 하며 누가 나오네 누가 멋있네 이러고 있고 (...)
그 들 중에 한명이 갑자기 요 옆에 있는 킹콩 레스토랑 가봤냐고 묻는다.
지나오다가 보긴 했다고 거기 뭐 좋은 거 있냐니까, “거기 브라우니 먹어봐!!!” 라며 갑자기
그 레스토랑의 브라우니에 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요는, 스웨디쉬 쉐프가 만들어주는 브라우니는 론리플래닛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고.
그러니까 꼭 먹어야 해! 란다. 워낙에 달콤한 걸 좋아하는 나도 여자인지라,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는 직접 찍은 사진까지 보여주며 꼭 가보라고 하는 통에
“알았어, 지금은 저녁 먹고 있으니까 내일 와서 꼭 먹어볼게.”
그의 말을 빌자면 “Take me to the moon." 그 정도로 맛있단다.
남자애들이...무슨 단걸 이렇게 좋아라 하냐.
킹콩레스토랑-* 어딜 가도 이렇게들 개방형이다.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아 달콤한 걸 먹으면 좀 기분이 나아질까 싶어 찾은 킹콩 레스토랑엔
시건방진 앵무새와 죽은 듯이 자는 고양이 한 마리가 있었다.
라오스 대부분이 그런지, 씨판돈이 유독 그런건지 음식 하나 시키면 30분은 기본으로 기다리게 되는데,
저녁을 먹기엔 이른 시간이라 어제 그 친구들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한 브라우니를 시켜본다.
시건방진 앵무새 -.-...
메뉴에는 초코케이크 위드 바닐라 소스라는 이름. 가격은 30,000kip으로 전혀 싸지 않았다. 전혀!
여기까지 와서 커피에 케익이라니 왠 된장질인가 싶지만 궁금한 건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니
안 먹어 볼 수도 없고. 주문과 동시에 반죽에 들어가는 소리가 아무도 없는 레스토랑에 울려 퍼진다.
또 30분은 기본으로 만들겠구나.
해가 뉘엿뉘엿 하는 강가를 바라보다가 테이블 위에 지나다니는 개미들의 숫자를 세기도 하다가 ...
수줍은 미소의 라오소녀가 따끈따끈 김이 올라오는 초코 케이크를 가져다주었다.
따끈따끈한게 포인트, 초코케이크 :)
다시봐도 너무 달고나.
단맛이 특징인 라오커피-* 다 똑같이 생긴 것 같아도 집집마다 맛이 다 다르다.
바닐라 소스를 듬뿍 끼얹은 이 초코 케이크는 생각보다는 달지 않다.
같이 시킨 커피가 더 달게 느껴질 만큼. (실제로 커피가 너무 달아서....)
한 입 먹어보니 아무래도 그 캐나다 청년들은 홈 메이드의 맛이 그리웠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브라우니, 라기에 쫀득한 식감의 씁쓸한 초코렛의 맛을 상상했던 나에게는 다소 가벼운 느낌이 드는
이 맛이 왠지 살짝 속은 기분이었지만 내가 무슨 미각 파시스트도 아니고.
오랜만에 먹는 달달하고 부드러운 맛이 어색하게 기분이 좋다.
점점 시원해지는 바람과 함께 오늘 저녁 산책은 돈콘까지 걸어가 보기로 한다.
낮에는 돈콘의 환경보존...아무튼 그런 명목으로 20,000kip을 징수하던데 어차피 저녁에는
리피폭포가 다섯시 반까지 밖에 개방을 안하니 그냥 들어가도 상관이 없는지
“레이디-” 이러면서 불러 세우지도 않는다.
저녁을 먹기 위해 돈뎃이 보이는 돈콘의 강변을 거닐다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아까 먹은 초코 케이크 때문에 속이 놀란걸까.
컨디션도 안좋은데 자꾸 걸어 다녀서 그런걸까, 이유를 모르겠다.
맛있게 먹었던 초코 케이크를 식당에서 메뉴를 시켜놓은 채 화장실로 달려가 전부 게워내고 말았다.
으아. 이건 대체 무슨 경우야.
오랜만에 제대론 된 땀막홍을 먹을 수 있게 되었건만 속앓이라니 속앓이라니 ;ㅂ;!!!!!
캄보디아에서부터 한국 떠나 온 지 2주 동안 현지 음식에 너무 잘 적응해서 오히려 살이 찔까봐
걱정이었는데 고작 케이크를 먹고 속앓이라니, 이러다가 한국 가서 물갈이 하겠지 싶다.
결국 시켜놓은 메뉴를 반도 못 먹고 땀막홍에 젓가락질 몇 번 하다가 같이 시킨 찹쌀밥은
포장해 달래서 들고 돌아왔다.
컨디션이 나쁠 수록 잘 먹어야 되는데. 아, 정말 짜증나는 마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