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이야기 #002 - 4000개의 섬, 씨판돈.
라오스 이야기 - 4000개의 섬, 씨판돈.
방갈로에서 보이던 메콩 강의 아침 풍경-
리피폭포에 가기로 한 날은 여섯시도 안된 시간에 눈이 떠졌다.
멍하니 넷북을 켜서 그동안의 사진을 정리하고 집을 나선 시간은 일곱시 반.
새로 옮긴 방갈로 바로 옆에 있는 곳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지도하나 없이 강가를 따라 쭉 달려가니
아침이 시작 된 지 얼마 안 된 메콩 강의 바람은 참 시원하기도 하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낯선 풍경이 좋아 몇 번이나 자전거에서 내렸는지, 30분이면 갈 리피폭포까지
한 시간에 걸쳐 도착했다. 돈뎃과 리피폭포가 있는 돈콘을 연결하는 다리 위에서는
등교하는 아이들과 아침인사를 나누면서.
돈뎃에서는 흔한 풍경.
학교가는 아이들 :) 안녕-?
.
.
.
포리너 2만낍...꺄...
돈콘 입구까지 달려가니, 허술해 보이는 관리 사무소에서 누군가 나와 나에게 돈콘의 환경유지를 위한
외국인 징수요금 20,000kip을 달라고 한다. 뭐, 이런거 없었다던데 여행자들이 많이 오긴 오나보다-
하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집을 너무 일찍 나선 탓인지 리피폭포까지 가는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해가 뜨거워지기 전에 일정을 마치고 집에서 책 읽고 쉴 생각을 하고 일찍 나온거라 어쩔 수 없다.
왼쪽으로 가면 돌고래를 볼 수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리피폭포가 있다. 이번엔 오른쪽!
입구까지 도착하니 자전거는 못 들어간다고 1,000kip내고 맡겨 놓고 들어가란다.
이건 또 뭔가 싶지만 새로 생긴 룰이 그렇다고 하니 튼튼한 두 다리 믿고 들어가야지 뭐 어쩔 수 있나.
노점들은 아직 문을 열기도 전이고 폭포를 보러 온 사람이라고는 나 혼자 뿐이다.
입구에서부터 들려오는 물소리가 그 규모를 짐작케 한다.
리피폭포 들어가는 입구.
영업은 오후 다섯시 반까지-*
자전거를 맡아주던 아이가 나보고 라오어로 뭐라뭐라 하는데 내가 한마디도 못 알아 듣고
인자한 미소만 날리고 있으니 “Speak LAO?" 하며 묻는다. 못해 못해. 싸바이디, 콥짜이, 땀막홍-
그게 다인걸. 어쩔 수 없이 만국공용의 아름다운 미소만 주고받으며 폭포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이것이 리피폭포-
건기인 탓인지 물의 양이 아주 협소하다. 이건 내가 사진으로 봐왔던 폭포가 아닌데...
그래도 폭포 본연의 물 색깔을 볼 수 있다는 사실 하나에 감사하며. 한시간정도 폭포 주위를 거닐며
사진도 찍고 하는데, 자전거 맡아주던 아이가 안 되는 영어로 했던 말 중에 하나가 “You swim?"
이었는데 대체 어디서 수영을 하라는 걸까, 싶을 정도로 물이 더러워서 깜짝 놀랐다.
비누거품? 기름? 정체가 뭐지...
어디서 이런 게 유입이 되는지 거품이 폭포 물이 잠깐 고이는 곳에 띠를 이루고 있고,
종아리가 따끔거려서 뒤를 돌아보니 무슨 모기가 벌떼처럼 내 뒤를 따르고 있다.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한 20마리가 무슨 잔치라도 벌이는 모양새로 따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모기떼는 뭐야- 그리고 이 물위에 둥둥 떠있는 이건 또 뭐야???
모래사장이 있는 곳 까지 가는 숲길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 하며. 돈콘의 환경보존을 위해 20,000kip을
받는다더니 어디를 어떻게 보존하고 있다는 거야, 이놈들.아름다운 자연경관과 메콩의 순수함을 간직한
씨판돈 이라며. 오염물질이나 떠다니는 폭포를 감상하기 위해 20,000kip이라는 거금을 냈다는 사실이
그렇게 실망스러울 수 없었다. [비어라오가 두병이라고 두병!!!]
열두시가 되기 전까지 폭포를 보며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지만 혼자서 누릴 부귀영화가 여기에는 없는 듯
하여 아홉시 반 정도에 발걸음을 돌렸다. 내가 나가는 시간에 노점들은 문을 열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여행자들도 하나둘씩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나와 아침인사를 나누던 어떤 여행자가 “Good?" 이라 묻기에
”Uhmmm." 하고 웃어버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한눈팔지 않고 달리면 타운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해서 자전거에서 엉덩이 한번
안떼고 달린 결과 30분 만에 돌아올 수 있었다. 종아리 근육 파열될 정도로 달린 것 같아.
이런 식으로 여행하고 돌아간다면 트라이애슬론 나가도 되겠다.
리피폭포 입구에서 좀 더 안쪽으로 걸어들어가면,
갑자기 사막이 펼쳐진다.
사막에 핀 꽃- 그래, 나쁘지 않았어. 근데...속이 상하잖아.
슬슬 뜨거워지는 공기를 가르며 돌아오는 동안, 왠지 모르게 터진 눈물은 아무래도 내가 너무 늦게
이곳을 찾은건 아닐까, 하는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더 늦기 전에 와서 그나마 다행일까 하는
안심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눈앞의 이익을 위해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것들이 점점 망가져 가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방법 밖에 없는 1회용 여행자인 내가...
조금은 부끄러웠던 산책이었다.
.
.
.
해가 너무 뜨거워지는 열한시 무렵부터 오후시간 내내 해먹에 누워 책을 읽고,
망고 쉐이크를 마시러 타운에 있는 레스토랑에 잠깐 들르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짧은 내 소식을 전해보기도 하며 해가 선셋 빌리지로 넘어가는 시간을 기다린다.
학교 끝나고 해가 쨍쨍한 메콩 강에서 깨벗고 뛰어노는 아이들 :) 좋을 때다~
그나저나 방비엔에 와있는 지금까지 아직도 보내지 못한 이 편지는...;
해가 많이 넘어간 다섯시 무렵의 선라이즈 사이드는 걷기에 무척 좋은 공기를 가진다.
자전거를 두고 돈뎃 타운에서 4km 정도 떨어진 돈콘과 연결되는 다리까지 걷기로 했다.
자전거로는 리피폭포까지 30분이면 가는데. 걸어서는 다리까지만 한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리다.
선셋 사이드 처럼 멋진 노을은 없지만 조용히 저녁을 맞는 선라이즈 사이드가 참 좋았다.
자전거로 쌩쌩 지나친 풍경들을 조금 천천히 만나니 타운 가까이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다정함이
느껴지는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눈이 마주치면 “싸바이디-” 하며
까르르 함께 웃어주는 그들을 만난다.
너무나 여행자 같이 걷고 있는 내게 하이파이브를 청하는 아이도 있다.
산책 중에 만난 목욕중인 소님들-
진짜 시원해 보인다...카메라 의식까지...
집에 데리고 가고 싶을 만큼 예뻤던 오드아이 고양이.
저녁을 짓는 밥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들고 강가에는 하루의 더위와 모래먼지를 씻어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첫날 느낀 실망감과 리피폭포에서 돌아오는 길에 느낀 안타까움이 조금씩 그들의 인사와
미소에 조금씩 누그러드는 기분에 든다.
다행이다.
생각했던 것 보다는 너무 늦지 않게 찾은 것 같아서, 정말 다행이다.
나의 라오스 일정은 이제 시작되었을 뿐인데.
첫인상으로 판단하기에는 짧은 발걸음으로는 놓칠 수 밖에 없는,
너무 많은 아름다운 순간들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내 안의 정의로 마음을 닫아버리기엔 너무 이르다.
조금 더 느끼고 알아가자고 그들의 인사에 약간은 어색한 나의 “싸바이디-”를 건네본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해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고, 현재 묵고 있는 방갈로 보다 조금 더
마음에 드는 풍경을 가진 방갈로를 발견했다. 메콩 강을 내려다 볼 수 있으며, 방갈로 바로 옆에는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앞이 탁 트여있어 바람이 잘 들어오고,
방갈로지만 배스룸이 포함 되어있는, 딱 내가 찾던 곳을 찾았다.
저녁도 먹을 겸 해서 방을 보여 달라고 하니 꽤 널찍한 실내와 짐을 넣어둘 수 있는 선반과 테이블까지
있다. 방갈로 여주인에게 지금 묵고 있는 곳이 있어 바로 들어오긴 힘드니 내일 아침에 짐 가지고
옮겨 오겠다고, 아무에게도 방을 내주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 며칠 동안 먹고 싶다 노래노래를 한
땀막홍[쏨땀;파파야샐러드]을 먹고 별빛 말고는 아무런 빛이 없는 그 길을 걸어 이틀 동안 우리 집이었던
쾌적한 돈뎃 방갈로에서의 마지막 밤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