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이야기 #001 - 4000개의 섬, 씨판돈.
지금은 방비엔에 머물고 있습니다. 내일 루앙프라방으로 떠날 예정인데...
남부에서 너무 잦은 이동에 지쳐 푹 쉬면서 돈뎃에서 썼던 여행기를 올려 봅니다 :)
라오스 이야기 - 4000개의 섬, 씨판돈.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연결하는 국경. 육로국경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 낯설다.
캄보디아에서 열두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라오스 최남단에 있는 국경을 넘어 도착한 씨판돈.
4000개의 섬이라는 뜻으로 라오스 남부 메콩 강가에 모여 있는 섬들을 부르는 말이라고 한다.
이 곳에서 내가 머물고 있는 이 돈 뎃이라는 섬은 규모면에서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많은 여행자들이
유입되어 마을 어귀에는 타운이 형성되어 있을 정도로 꽤 번화한 모습도 볼 수 있다.
벌써 돈뎃에서 네 번의 밤을 보내고 이 곳에서 네 번째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그 사이에 방갈로는 두 번이나 옮겼다. 이렇게 오래 머무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몸 상태가 장시간 이동을 하기엔 너무 좋지 않아서 회복 될 때 까지만 더 머무르기로 했다.
긴 여행을 계획하면서 컨디션이 나빠지면 그 곳이 어디든 몸이 좋아질 때까지 머무르기로 했는데,
라오스 여행이 시작되자마자 첫인상이 썩 좋지 않았던 이곳에서 일주일 가까이 시간을 보내게 될 거라고
누가 알았을까.
씨판돈의 첫인상이 좋지 않았던 건, 어쩌면 내 기대감 때문이었을 런지도 모른다.
캄보디아에서 너무 구걸과 호객에 시달리다 시피해서 [내 이름이 원달라, 캄보디아 인사말이
“헬로 레이디, 뚝뚝?” 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래도 아직 순수함을 느낄 수 있고,
라오스의 그런 모습이 좋아 이 곳을 여행한다는 여행자들의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와서 인지
나는 기대를 했다. 내가 원치 않는 모습은 보지 않게 될 거라는. 이 얼마나 이기적인 생각인지.
반나까상 들어가는 표지판. 여기에 내려준다...어쩌라고?;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라오스 남부도시인 팍세까지 가는 국제버스를 타면 중간에 씨판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반나까상이라는 곳에 내려 주는데, 그 곳에서 보트를 타고 10분 남짓 들어가면
돈뎃 선착장에 도착한다. 팍세까지 가는 버스에서 반나까상에 내린 인원은 총 아홉 명.
반나까상 3km라는 이정표 앞에서 정신이 멍해진다.
선착장까지 버스로 가는거 아니었나? 걸어야 하나? 왜 뚝뚝 같은 건 안 보이는 거지?
하고 있는데 유러피안 언니오빠들이 우리와 같이 버스에서 내린 소르야버스 직원에게 이것저것
묻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픽업버스 한 대가 도착했다.
픽업버스는 우리를 선착장에 내려주었고, 보트를 타야하니 1인당 3달러씩 내란다.
이건 또 무슨 소리지? 우리 아홉 명은 모두 국적이 달랐지만 다들 론리플래닛 최신판을 들고 있었다.
내 옆에 앉았던 캐나다 언니는 버스에서 내내 밑줄까지 그어가며 씨판돈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고 있었다.
반나까상에서 돈뎃 들어가는 보트는 2달러.
즉 15,000kip 정도면 보트를 탈 수 있어야 하는데 3달씩 내라니? 국경 넘을 때 15일 무비자인 나에게
4달러씩이나 해먹었으면 됐지 [명목상으로는 캄보디아 국경, 라오스 국경, 그리고 일괄처리 해주는
자기네들 커미션fee란다. 이것저것 따지기도 피곤해서 tea money나 해라 하며 쿨하게 줘버렸다.
좀 아깝긴 아깝지만...] 뭘 또 달라는 거야. 하고 있는데 내 옆자리에 앉았던 론리플래닛 열독하던
캐나다 언니 한명이 짜증이 뻗쳤는지 영어로 뭐라뭐라뭐라뭐라-2달러라던데 무슨 소리야!- 하니,
그럼 선착장에 가서 직접 얘기하고 보트를 타라고 우리를 보트 있는 곳까지 데리고 갔는데...
돈뎃으로 들어가는 보트를 탈 수 있는 선착장, 여섯시가 조금 넘어 보트에 타려는 사람은 우리 뿐이었다.
라오스 오자마자 처음 목격한 현장이 담합이라니.
회사 다니면서 담합하지 말라고 세시간짜리 교육까지 받았는데 이건 레알 담합의 현장.
“니들 3달러에 해준다 할 때 안했지? 맛 좀 봐라.” 하는 심정이었을까, 그분들. 갑자기 4달러란다.
멀쩡히 보트 옆에 있는 표지판에 혼자가면 30,000kip, 3인 이상일 경우 15,000kip이라고 써있는데.
우리가 라오어를 못 읽어도 숫자는 읽을 줄 아는데 4달러를 달라니. 도착한 시간이 늦어 우리가
들어가면 나올 사람이 없어 자기들 손해 나니까 왕복요금을 내라고 버틴다.
버스회사 직원은 그러니까 자기가 3달러에 해준다고 할 때 하지 그랬냐고 앉아있고.
이 아저씨들이...장시간 이동에 다들 피곤했지만 이건 뭔가 부당하다는 생각은 다 똑같았다.
너나 할 거 없이 4달러는 말도 안된다고 따지기 시작했고 행동력 좋은 유러피안 아이 한명은
다른 보트와 협상하기 위해 좀 거리가 떨어진 곳에 있는 보트에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돌아와서는
“저기도 4달러래. 이건 뭐...” 그 자리에 있던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나에게 저 표지판을 쟤네한테 좀
읽어달라고 하던데, -_-;;; 내가 라오어 할 줄 알게 생겼나? 리피폭포 가서도 왜 라오어 못하냐고
라오 아이가 날 다그치질 않나. 나한테 왜그래;
숫자만 읽을 줄 알아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요금표 -ㅅ-...
버스에서 내려 서로 말 한마디 안했던 아홉 명이 한마음이 되어 우린 4달러 내고 저기 절대 못 간다고
20분을 버텼다. 그리고 여행자 일행이었던 금발의 여자아이가 버스 직원 손에 2달러를 고이 접어
쥐어주면서 “이 이상은 못줘.” 라고 말하니 그들도 긴 실랑이에 지쳤는지,
"OK, 2달러."
20분에 걸친 협상 끝에 드디어 보트에 올라 탈 수 있었다.
해가 거의 떨어져 가는 메콩 강을 가로지르며 씁쓸한 기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1,2달러 더 내야하는 돈이 문제가 아니라...그 들이 우리를 돈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것.
그 걸 오자마자 느껴야만 했다는 그 사실이.
돈뎃에 도착한 첫날 하루 머물렀던 방갈로-
리버뷰라 좋았지만- 배스룸 공동사용에 그나마도 멀찍이 떨어져 있다.
돈뎃에 들어와 몇 군데의 숙소들을 돌아 본 뒤 타운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방갈로를 잡아 4달러를 내고
하루를 보냈다. 긴 여행을 하면서 숙박에 관한 일들은 타협할 수 있는데 까지는 해보자, 라는 마인드였지만
도무지 샤워와 화장실이 떨어져 있는 방갈로에서는 타협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을 여기저기를 쑤시고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으러 다녔다. 아, 근데 정말 항상 똑같구나.
마음에 드는 곳은 언제나 예산을 초과한다는 사실이.
뷰가 마음에 들면 방갈로가 오늘내일 하고 있고 (쓰러질 것 같다는 의미다) 시설이 마음에 들면
강을 바라볼 수 없고 심지어 비싸다. 적당히 타협한 끝에 비싸긴 했지만 배스룸 포함에 함께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강변을 바라 볼 수 있는 곳에서 3일을 보내기로 했고. 장시간 이동에 지친 몸을 쉬기 위해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적당히 타운과 강가를 거닐며 하루를 보냈다.
둘째날 새로이 옮겨 간 돈뎃 방갈로- 리조트풍에 시설이 깔끔했지만 리버뷰는 아니고 조금 비싼편.
이 작은 섬에 마을 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많다.
많은 여행자들이 찾아오기 전에는 대체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을 만큼 이 곳의 주인이
바뀐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여행을 하며 늘 느끼는 거지만 나도 여행 중인 주제에 여행하고 있는 곳이
여행자들에 의해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아주 이기적이고 헛된 바람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