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이야기 #019 - 반짝반짝, 루앙프라방.
라오스 이야기 - 반짝반짝, 루앙프라방.
아침에 문을 열면 제일 먼저 만나는 풍경...-ㅅ-...
맨날 내 방 앞에서 자던 겟하우스 멍뭉이. 있는 내내 내가 키우듯 했다.
루앙프라방에서는 대체 뭘 해야할까?
뚝뚝 아저씨들이 권하는 빡우동굴? 꽝시폭포?
동굴은 이제 됐고 폭포에서 물놀이 하는 것도 취향에 안맞는다.
어차피 무릎도 양쪽 다 까졌고.
뭘 할까.
나는 그냥 이 곳 “루앙프라방”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좋다.
도시 이름도 라오스의 그 어느 곳의 이름보다도 예쁘게 느껴져서 일부러 발음해 보곤 한다.
방비엥에서 느낀 우울함이 이 곳에는 없다. 그저 예쁠 뿐. 예뻐서 행복하다.
오늘은 일요일의 루앙프라방.
일요일 아침의 베이글. 차도녀같은 아침식사 -ㅅ-...?
일찍 일어나 탁밧을 보려고 했는데 늦잠을 자버렸다.
늦은 아침을 먹으러 조마베이커리에 앉아 그동안 찍은 사진정리를 하고,
점심때를 훌쩍 넘겨 강변을 돌아다니다 들어간 집에서 볶음밥을 대충 먹는다.
그리고 약간의 여비를 환전하고, 밤에는 코스처럼 나이트마켓에 들러 “오늘도 여전하구나,”
하는 감상과 함께 며칠 동안 지나다니며 눈여겨보았던 베지테리안 뷔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가격은 7~8000kip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은 10,000kip. 물가가 너무 빠르게 변해가는 라오스.
그래도 저렴한 가격에 한끼식사를 해결하려는 여행자들로 북적이던. 음식맛은 솔직히 추천하기는...
밥을 먹고 라오스를 기억할 만한 ‘무언가’를 사려고 나이트마켓을 돌아다녔지만,
역시 뭔가 살만한 물건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냥 여기서 보고 예뻐 보이는 걸로 충분하달까.
딱히 할 일이 없어 다음 목적지인 무앙응오이느아로 내일 떠날까, 했지만-
왠지 모르게 이 곳에는 계속해서 목적 없이 머물고 싶은 기분이 든다.
오랜만에 만끽하는 도시에서의 생활이 그저 좋은 걸까. 결국 하루를 더 있기로 한다.
근데...내일은 뭘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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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23일 월요일.
루앙프라방에는 나이트마켓 말고도 타운에서 조금 벗어나면 이런 데이마켓도 열린다.
여느 시장과 다름없는 익숙한 풍경 :)
야채나 과일이 열대작물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시골에 흔한 우리네 시장과 다를바 없다.
늦은 오후에 타운을 살짝 벗어나 있는 딸랏 포시(포시 시장)에 다녀왔다.
샤워를 마치고 아무 생각없이 집어든 아이폰으로 달력을 확인하니 어느새 서울을 떠난지 한달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더 오래된 것 같은데 이제 고작 한달이라니.
아직 두달은 넘게 남았는데. 딱히 엄마가 보고 싶어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지도 않고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잘 지내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너무 대견하다.
하긴. 이 나이쯤 되면 여행도 노련하게 해주어야지.
여행 한달.
오늘은 무사여행 기념으로 어제 가려다 문닫아서 못 간 빅트리 카페에 가서 한국음식을 먹자.
동남아시아 음식 중에 심하게 가리는 음식이 거의 없는 편이라 음식 때문에 힘든 적은 없었는데,
라오스 시골을 여행하면 먹을 만한 식당이 없어서 조금 애매하긴 하다.
도시에서야 그나마 선택폭이라도 넓으니 다행이지만 또 시골 들어가야 하니까 기력도 보충할 겸...
우리나라 반찬문화가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한끼.
오랜만에 먹는 한국음식이란...밥 한그릇 다 못먹는 나를 바닥까지 긁어먹게 하는 정도 (...)
지금보다 좀 더 어렸을 때는 여행 중에 한국음식을 찾아 먹거나 하진 않았는데,
한국인에게 있어 밥심이란 이런거구나.
안남미와 카우니여우(찹쌀밥)로는 채울 수 없는 그런 거 있다.
만족스러운 저녁을 챙겨먹고 집에 돌아와 떠날 준비를 한다.
오랜만에 먹는 한국음식- 빅트리카페. 밥을 먹는 도중에 비가 내렸다.
빅트리카페의 "빅트리" ... 날씨 덕분에 이런 팀버튼 영화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 되었다-;;;
살짝 아쉬움을 남겨두어야 나중에 다시 찾았을 때,
이 곳에 대해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루앙프라방은 아쉽게 떠나는게 좋을 것 같다.
친한 친구들끼리 와서 예쁜 집을 얻어 하루 종일 수다를 떨고 예쁜 가게에 앉아
맛있는 과일 쉐이크를 마시면서 몇날 며칠 시간가는 줄 모르도록 있고 싶은 그런 동네다.
몇 안남은 미혼 친구들이 모두 떠나기 전에 언능 꼬셔서 또 와야지. 왜들 시집을 일찍 가서는...
여튼 내일 아침은 꼬오오옥- 일찍 일어나서 탁밧을 봐야겠다고 굳세게 다짐하며,
알람은 다섯시부터 10분 간격으로 맞춰 두었다. 꼭 일어난다.
다른데서는 못 봐도 루앙프라방에서는 꼭 보고 가리라!
루앙프라방 강변을 걸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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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아침,
나는 꼭두새벽 (내 기준으로)부터 목욕재계를 하고 집 앞으로 나갔다.
가는 길에 시주를 하라며 자꾸 바나나와 카우니여우를 권하는 아줌마들 때문에 잠이 확 깬다.
으응? 간밤에 망쿳(망고스틴)을 사두려고 했는데, 술 마시고 신나서 또 까먹은거 있지.
내가 상상했던 탁밧의 풍경은 해가 어렴풋이 고개를 드러냈을 때 햇살 같은 색감의 법복을 입은
승려들의 조용하고도 경건한...아무튼 한폭의 그림이랄까, 뭐 그런 느낌이었는데.
아이폰으로 흐릿한 한장의 사진을 남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던 아침.
여기저기서 플래쉬를 터뜨려대는 개념 미탑재한 관광객들 덕분에 아침잠을 반납하고 나온 나는
도무지 내가 저 분들 앞에서 뭘 하는지 알수가 없어져서 들고 있던 카메라를 조용히 집어넣고,
집에 돌아와 어제 싸둔 짐을 싸들고, 썽태우를 타고, 북부 터미널로 향한다.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왓씨앙통 가서 볼걸. 뭐 괜찮아.
아쉬워야 다음에 또 올 수 있는 루앙프라방이니까.
예쁘니까.
마음에 남은 별하나 같은, 루앙프라방을- 그렇게 떠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