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이야기 #016 - 방비엥,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라오스 이야기 - 방비엥,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기름이 똑 떨어진 모또를 끌고 걷고 있으니 길가에 있는 식당 주인 할아부지가 노련한 영어로,
“What happened?"
라고 묻는다. 응? 영어? 지금 영어하신 건가요?
“얘 안움직여요.”
“아마 기름이 바닥난 거 같으네.”
“그렇겠죠?”
그 와중에 나는 또 사진을 찍었구나 (...)
하니 대문 안쪽에 세워둔 모또로 성큼성큼 가시더니 500ml 페트병에 기름을 담아주신다.
오. 구사일생.
“어머, 감사합니다!”
사실... 500ml 치고는 쫌 비싸긴 했지만, 그래도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인지라 전혀 아깝지 않다.
루프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쏭강 위를 건너는 다리 위에서.
할아부지 덕분에 모또에 기름도 넣고, 마을로 돌아와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오랜만에 버켓
칵테일을 마셨다. 기분이 적당히 좋은 것이...내일 하루 푹 쉬고 모레는 루앙프라방으로 떠나자.
방비엥은, 이걸로 충분해.
방비엥의 서쪽루프를 마치고 온 다음날, 드라마틱하게 하루 종일 비가 왔고, 집에서 꼼짝도 안하다가
밥 먹으러 잠깐 나가 마을을 돌아보고 여러 많은 생각이 스쳤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 일정부터는 좀 더 나아지겠지.
그런 기대감이 없다면 이런 마음이 지속 될 여행이 너무 고달프다.
북부 여정을 시작하고 혹시라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면 so cool하게 태국으로 돌아가자.
모든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나면 그만이다.
그들이 나를 1회용으로 보듯, 나도 이 나라를 그렇게 마주하면 그만이다. 슬프게도.
루프를 마치고 돌아온 이틀 후의 아침,
겟하우스에서 마지막으로 아침식사를 먹으며 매일매일 달랐던 풍경을 바라본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자세히 보려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아름답다 느껴지는 방비엥.
안녕. 잘 있어.
그리고 아마도 너란 마을은 이번이 마지막이 되겠지.
방비엥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곳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액티비티나 풍경에 높은 점수를 준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내게는 그런 액티비티가 별 의미가 없는 일들이었고, 풍경이 아름답다는 것은
나 역시도 동감이지만, 그리고 충분히 감탄하지만 그것뿐이다.
그저 많은 이유와 타성에 의해 깊이 없는 감동을 할 뿐이다. “와, 굉장하다.” That's it.
메인 스트릿을 가득 채우고 있는 웨스턴의 취향에 적절히 맞춰진 정체불명의 메뉴가 가득한
레스토랑, 심슨이니 프렌즈 같은 미국방송이 아침부터 무한루프로 떠들어대고, 그 앞에 눈이
풀려 앉아있는 서양아이들이 너무나 보기 안쓰러웠던 동네.
서쪽루프를 도는 동안도 풍경에 녹아있기 참 힘들었던 여러 이유 중에 하나가,
방비엥에 근접 할수록 여행자들에게 “낍”을 요구하며 인사하는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싸바이디-“
“싸바이디-”
“낍, 낍.”
나는 무슨 소리 하나 했다.
그리고 감동받을 타이밍에 항상 요구하는 통행료 10,000kip. 제 감동의 대가입니까?
통행료를 지불함으로 대체 뭐가 달라지는 걸까? 깨끗해지나? 내가 이 곳을 여행하기 더 편해지나?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저 외국인 여행자인 나는 로컬이 아니기 때문에 지불해야 하는
부당한 요금처럼만 느껴진다.
감동에 젖어들 무렵에 누군가 내 감각을 잘라놓듯 끼어드는 그 순간들이 너무 싫고 힘에 부친다.
비록 몸은 편히 쉬었지만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 게스트하우스 밖으로 나가는 일 조차도 꺼려지던...
방비엥을 떠나며.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었기에 평소 같으면 로컬버스를 탔을텐데, 예전에 있었다던 마을 길가의
버스정류장이 없다는 얘길 듣고 겟하우스에서 VIP버스 티켓을 예약해 버렸다.
떠나는 순간까지도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음을 몇 번이나 느끼게 해주었던 VIP버스에 몸을 싣고
방비엥에서 루앙프라방을 향해 가며, 나아질 거라는 아주 작은 기대를 놓지 않으려고...
애써 뒤는 돌아보지 않는다.
루앙프라방으로 향하는 여행자들로 가득 차 묵직해진 움직임의 VIP버스 옆으로 로컬버스 한 대가
쌩,
하고 지나간다.
아, 저기에 타고 있었어야 했는데, 나는 지금 뭐하고 있는거지?
나아지겠지. 나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던 시간과는 이제 안녕.
루앙프라방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