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이야기 #015 - 방비엥,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라오스 이야기 - 방비엥,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West Vang Vieng Loop, 떠나보아요 :)
포장도로따위 기대하지 말자. 기대를 안하면 편해지는 나라, 라오스.
산과 들...그리고 가끔 함정스러운 동굴이 있는 곳.
계속해서 서쪽으로 달린다.
비가와서 질퍽거리는 길에 마을 사람들이 자갈을 깔다가 인사를 건넨다.
“싸바이디-!”
지나는 길에 동굴이라는 표지판이 굉장히 많다. 지도가 있으면서도 워낙 함정이 많아 확신이 서지
않는 지경에 이르다 보니까 방향만 정하고 내가 맞게 가는지 계속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서
간다. 영어? 안 통한다. [사실 영어가 안통해도 괜히 기쁘긴 하다. 사는데 지장없으면 안해도 된다
고 몸소 증명해주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나라가 있다고!] 내가 길 물어볼 때 유일하게 쓰는 라오어.
“빠이 어디어디.” 그럼 친절하게 손짓으로 오른쪽, 왼쪽, 혹은 다시 돌아가야 돼, 라고 말해 준다.
손짓발짓 브라보.
“곱짜이-!”
어느새 Thank you 보다 더 입에 붙은 이 인사말이 너무나 좋다.
모또를 타고 한참을 달리다보면 제대로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는 길이 아닌 것 같다는
기분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실제로 이 루프가 그러했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이런 상태를 몇 번이나 경험해야 하는지 모른다.
여길 지금 오토바이를 타고 건너라고?;;; 강인데?!
흑흑흑...걷기도 벅찬 길을 오토바이로 달려야 하다니 ㅠㅠ
길은 며칠 동안 내린 비로 엉망이 되어있었고, 론리 플래닛의 친절한 안내에 “모터바이크나 마운틴
바이크”를 빌리라고 되어있었는데, 아무래도 마운틴바이크를 빌렸어야 했나보다. 이건 모또로
달릴 길이 아니잖아! 진흙길과 소똥 지뢰밭은 둘째 치고 심지어 물웅덩이를 지나가야 하는 상황도
있는데! 엔진이 꺼질까 노심초사 물 위를 건너가고, 말도 안되는 모또를 데리고 바퀴가 터질 것 같
다는 걱정을 하며 오프로드를 달린다. 다음에 다시 오게 되거나 혹은 비슷한 길을 달릴 예정이
생긴다면, 죽어도 4륜구동을 빌려오리라. 굳세게 다짐한다. 왠지 방비엥 타운에서 4륜구동을 타던
웨스턴 오빠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는데 그게 다 이유가 있었던 거였어...
(말은 이렇게 해도 현지인들은 내가 빌린 모또보다 더 오래된 아이들로도 잘 달린다는 그 길.)
오른쪽? 왼쪽?
얼마나 달렸을까? 이정표 하나가 보인다.
Ban Phon Say.
헐.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딱 중간 왔다. 돌아가도 지금껏 달린 그 길이니, 차라리 앞서 어떤 길이
있을지 모르는 어쩌면 조금 나아질 거라는 희망이라도 있는 길을 달리는게 낫다. 마을입구에 들어
서니 그 흔한 게스트하우스 하나 없고, 길 오른쪽 내리막길로 사람들이 우루루- 내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여행자들이 왠만해서는 오지 않을 것 같은 이 동네에 영어로 뭐라뭐라 써있는데 눈에
하나도 안들어온다. 물 흐르는 소리가 꽤 크게 나는데,
궁금하다..뭐지?
마치 전에 와본 적이 있는 사람마냥 침착하게 길을 따라 내려가니, 정말-감탄이 절로 나오는
풍경과 만날 수 있었다. 풍경에 감탄하는 동안 꽤 많은 사람들이 이 시냇가(?)을 지나간다.
걸어서 가기도 하고, 자전거, 모또, 심지어 트럭도. 건너편에 마을이 있나?
지도를 펼쳐보니 아무래도 Ban Nampe 가는 길인가보다.
느닷없이 나타난 멋진 풍경-
옆에 놓여있는 다리는 인테리어?;;; 아무도 이용하지 않는다.
다들 그냥 물위로 슝슝 지나간다.
깨벗고 노는 아이들. :-) 어디가니?
물이 너무 맑아 지금의 방비엥을 감싸고 흐르는 황토색 쏭강의 일부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다.
말도 안되는 길이라고 불평이 목까지 올라왔다가 이 풍경을 보니 다시 쏙 들어간다. 미안..?
한참을 넋놓고 있다가 다시 모또를 몰고 고고싱-*
폰사이 마을을 지나가니 집 앞에 나와있는 아이들이 너나할것 없이 손을 흔들어 준다.
“싸바이디-!”
안녕- 그리고 안녕히. 그림같은 풍경에서 동화같은 인사를 건네주던 사람들.
.
.
.
늘 느끼는 거지만 꿈을 꾸고 있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시간은 마치 빛의 속도와도 같다.
서쪽루프를 돌다보면 총 세 번의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그 세 번 다 10,000kip 씩이다.
이유는? 외국인이니까. 고맙습니다...나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어서.
(앞으로 이런 일들에 대해서는 정체성 확신의 시기라 부를 예정이다 -_-)
폰사이 마을을 거쳐 첫 번째로 지나는 다리에서는 앞서 모또를 몰고가던 라오아이와
인사를 했다. 그 아이가 다리 앞에 도착하고 (그 다리라는 것이 참...판자 떼기 두 개-;;)
뒤이어 외국인인 내가 도착하자 눈치를 보며 그 아이에게 돈을 내는 척을 하라고 시키는 거다.
님? 그러지 않아도 낼건데?!!! 곳곳에 있는 함정도 억울한데?!
어이가 없으면서도 황당하기도 하고. 마냥 웃기기도 하고. 근데, 우리나라도 이런가?
얼마 전에 북유럽부터 대부분의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찍고, 우리나라 동해안 루프를 다녀간
오스트레일리안 친구인 Holly는 나한테 우리나라는 그런 거 없이 다 똑같다고 했는데...ㅜ_ㅜ...
비빔밥 맛있다고 영국에서 돌솥 어디서 사냐고 나한테 물어봤는데 ㅠ_ㅠ...(갑자기 폭풍상념)
무튼, 난 쿨(?)한 여자니까. 낸다 내.
그리고 몇십분 간은 또 황홀경 같은 풍경에 젖어 있다가 마지막 한 곳의 다리에 도착한다.
또 10,000kip. 방비엥에 오는 날부터 10,000kip은 뭔가 악몽 같은 금액이다.
이...내방 책상 위에서나 구를 돈이 자꾸 쌓이니 원데이 원비어라오가 하나씩 멀어진달까.
근데 지갑을 여니까, 이렇게 많은 통행료를 내야될 거라는 생각을 못해서 돈을 넉넉하게 안들고
왔는데;; 왠지 가다가 기름도 넣어야 될 것 같은데...
-이 모또는 연료 계기판이 고장났다 -.-....아아...-
지갑에 잔돈이 9,000kip 밖에 없...다. 나 설마 집에 못가는건 아니겠지? 안보내 줄건 아니겠지?!
“아줌마... 나 돈 없어요, 카오판, 카오판(9,000). 이게 다야.”
아줌마가 웃으면서 그럼 그거라도 내라길래, 기름값만 남겨놓고 순식간에 무일푼이 되었다. 허허.
방비엥의 서쪽 루프를 마칠 무렵, 모또의 연료도 바닥이 나버렸다. 험한 길을 달렸더니 이 아이가
평소보다 먹는 양이 많았나 보다. 모또로 달리면 10분쯤? 15분쯤이면 도착할 방비엥 타운이 갑자기
한없이 멀어져간다.
어렴풋이 무지개.
집(게스트하우스)에 가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