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이야기 #010 - 예쁘게 낡은 도시, 비엔티엔.
이틀 후면 이제 라오스와도 안녕이네요 :)
어제 루앙남타 남서쪽에서 동쪽, 다시 동쪽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루프 (220km정도)를
모또를 타고 다녀왔더니 몸 상태가 말이 아니라 아직도 남타에서 쉬고 있답니다.
이 더운 나라에서 감기몸살 (...)
라오스 이야기 - 예쁘게 낡은 도시, 비엔티엔.
비엔티엔으로 오는 날 아침, 나힌마을에서 마지막으로 라오커피를 사마시다가
버스 한 대를 놓쳤다. 뭐- 비엔티엔 가는 버스 많다니까 다음거 타지 뭐.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마음의 여유. 조금 늦으면 어때, 어차피 해야 되는 거면
조금 있다 하지 뭐. 나는 여행자다.
...그래서 행복하다.
할머니네 커피숍(!)에서 마지막으로 마신 "남켕 라오커피" ㅋㅋㅋ
택시 스테이션에 앉아있으니 다들 어디 가냐고 묻는다.
“빠이 위왕짠(비엔티엔).”
그럼 조금 기다려, 곧 올거야.
30분쯤 기다렸을까? 버스가 들어온다.
같이 앉아있던 아저씨가 손짓하며 저 버스 타면 위왕짠에 간단다.
라오스를 여행하며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우리나라의 오래된 대형버스.
현대가 압도적으로 많다. 간혹 일본산 낡은 버스들도 보이지만 우리나라의 오래된 버스들이
다 어디갔나 했더니 여기에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소풍가는 날 탔던 버스의 촌스러운 커텐과
등받이 장식이 익숙하면서도 시간을 거꾸로 돌린 것 같은 기분에 낯선 느낌도 든다.
나힌마을에서 비엔티엔까지 바로 가는 버스는 7만낍.
비엔티엔-콩로를 달리는 버스. 우리나라의 오래 된 관광버스. 문열고 달리는 건 기본.
간혹 내리는 사람이 있어 중간중간 멈추긴 하지만 여행자 버스처럼 휴게소에서
30분,40분 밥먹으라멈춰주진 않는다. 여덟시 조금 넘어 출발한 버스는 생각보다 일찍,
오후 두시 무렵에 비엔티엔에 내려주었다.
남부터미널에서 뚝뚝을 잡아타고 남푸분수에서 내려 적당한 가격의 게스트 하우스에 짐을 풀고,
발코니에서 여행자들이 오가는 길을 내다보며,
“도시다...”
라고... 조용히 감동한다.
비엔티엔에서 머문 겟하우스. 남푸분수 근처에 있는 곳 치곤 가격이 적당하다. 냉장고도 있고...
뭐랄까, 딱히 시골생활이 불편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도시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이렇게 감동적인 일인지 새삼 느끼고 있자니, 나도 어지간한 서울러(Seouler)인가보다.
삐까번쩍한 카페와 외국인들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 세븐은 아니지만 일단 마트가 있고,
멀쩡한 환율과 라오커피가 아닌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기쁘다니.
오키드 호텔 옆의 로컬식당에서 맛난 까오삐약을 먹고, 트루커피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하고, 괜히 강변을 거닐어 보기도 한다.
비엔티엔에 입성하자 마자 로컬식당으로 달려가 먹은 국수퍼레이드-*
카오삐약을 시키면 기본으로 나오는 야채와 라오 누들샐러드 (땀막홍과 같은 양념! 맛있다!)
밥먹으러 제일 자주 왔다갔다 했던 골목- 한인 게스트 하우스도 있다 :)
낮에 내린 비로 한층 선명한 빛깔의 비엔티엔. 첫인상이 참 좋은 도시.
도시다!
[ 비엔티엔에서 만난 첫번째 풍경들- ]
같이 뚝뚝을 타고 왔던 아이. 어찌나 아기고양이 같던지, 이대로만 자라다오.
도시의 뚝뚝. 펩시 광고가 붙어있다. 아님 아저씨 취향일 수 도.
도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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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먹고 집(겟하우스)에 퍼져 있다가 저녁을 먹으러 다시 강변에 나가본다.
색색이 예쁜 노점들이 들어서고 낮 산책 동안 한참 준비하던 노천식당들도 문을 열었다.
라오스를 여행하며 열흘이 넘도록 생선을 못먹어 봤다. 메콩강에서 잡은 신선한 생선을
마음껏 먹을 수 있다고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어떤 식당에 가도 “노 피쉬.” 로 거절당했지.
오늘은 꼭 생선을 먹겠어! 즐비한 노천식당 중에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내가 아는 몇 안되는 음식 이름, “빠!”를 외친다.
아저씨, 내 생선 맛나게 굽고 있어요?
메콩강변 노천식당 풍경. 비가와도 사람이 가득하다. 외국인도 많고-
메뉴에는 "메콩에서 잡은 생선, 빅or스몰" 선택가능. 살이 투툼하니 맛난다! 맛난다! 빠빠빠! 생선!
그나저나 오타를 발견하는 즐거움에 메뉴도 한 컷. 드링드링. (캄보디아나 라오스에서 종종 보임)
생선은 종류가 아니라 크기로 가격이 정해지고, 배를 갈라 레몬그라스 같은 풀(?)들을 넣어
숯에 구워 풍미가 아주 독특하다. 민물고기에 대한 막연한 비린내의 추억은 잠시 내려놓은 채
정신없이 먹었다. 밥을 먹다 갑작스럽게 내린 비에, 같이 주문한 땀막홍은 잊혀지고,
비가 더 많이 오면 천막이 있는 자리로 옮겨주겠다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꿋꿋하게 빗 속에서
생선을 먹는 기쁨을 만끽했다. 땀막홍을 뒤늦게 기억해낸 주문 받은 청년의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와 괜찮다고 같이 허허 웃어버렸다. 포만감에 배를 쓸며 도시 입성을 자축하며
거리를 걷다가, 집에 돌아와 쓰러지듯 잠이 들었다.
아무리 좋아도 버스타고 대여섯시간을 이동하는 건 아무래도 피곤해...
길가의 노점에서 파는 예쁜 전등갓- 배낭여행 중이라 짐을 늘릴 수 없어 구경만 ㅠㅠ
프랑스 식민역사 때문인지 이런 유럽느낌이 나는 건물이 많은 비엔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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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로컬식당의 위-_-엄!
스탭도 엄청 많고 끊임없이 주문이 들어오는지라 재료도 엄청 신선하다-!
관광객보다 현지인이 더 많은 식당이 좋다 :) 너무너무 맛나고 가격도 싸다! (카오삐약 10,000kip!)
오늘은 다른 메뉴를 먹어보았는데...카오삐약이 맛난 집이다에 한표- 땀막홍도 맛있긴 했지만.
야채는 볶음밥을 시키면 같이 주는데, 볶음밥과 볶음국수는 만들어 놓은 것을 주는지라...
어제 카오삐약을 맛나게 먹었던 집에서 늦은 아침을 챙겨먹고,
(맛난 집이라 생각 되면 머무는 기간이 며칠이 됐건 한끼 정도는 꼭 그집에서 먹게 된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씨에 자전거를 빌렸다. 론리에 나와있는 루트대로 오늘은 나홀로 도시투어다!
지도상으로는 6번 프랑스대사관을 끼고 꺾어주어야 하는데 지나쳐서 하염없이 직진하던 1인.
친절하게 어디서 밥먹고 어디서 자전거를 빌려 뭘 보고 뭘 하면 시간이 딱딱 맞을 거라는
가이드북의 설명 따위 읽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가는 길에 이미 길을 잃어 나는
왠지 캄보디아 대사관 앞에 있다. 여긴 어디, 나는 누구. 날씨는 뭐가 이렇게 태양이 작렬 하는지.
아까까지는 비왔잖아?! 야?
전체지도가 있는 페이지를 펼치니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허허.
오는 길에 사원 몇 개는 지나쳐 왔는데 그다지 흥미가 일지 않아 아무데도 안들어 가고
나는 나름 빠뚜싸이를 향해 간다고 생각했는데.
캄보디아 대사관이라니...
모든 왓은 루앙프라방에서! 라는 마인드로 밖에서 사진만 한장 찍고 가던길 가는...
다시 자전거를 돌려 나와 같이 길을 잘못 든 것 같은 서양언니들 무리를 아닌 척 따라간다.
오오. 한참을 달리니 왠지 제대로 온 것 같은 기분! 익숙한 이 이름 란쌍 애비뉴!
애비뉴, 란 쌍! woohoo!!!
길 끝에 어제 뚝뚝타고 들어오면서 봤던 빠뚜싸이가 보인다. 빙고!
2천낍을 내고 자전거를 주차시키고, 3천낍을 내고 빠뚜싸이를 오른다.
아아 다들 뭔가 손에 손잡고 데이트 느낌 폴폴 풍기면서 나들이 나와있는 가운데
(일요일이었다-_-) 나홀로 빠뚜싸이라니 미칠 것 같은 운치가 온 몸을 감싼다.
하하하. 괜찮아. 외롭지 않아.
일요일 미워...
바보가 높은 곳을 좋아한다던데, 난 높은데만 올라오면 왜 이렇게 좋은지,
혼자 있다는 사실은 어느새 까맣게 잊은 채 셀카도 찍고, 최정상에 올라 비엔티엔 거리를
내려다 본다. 얼마 전까지 있었던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이다.
같은 동남아 국가들이라곤 해도 방콕이 다르고 프놈펜이 다르고 비엔티엔이 또 다르다.
어제 오후에 도착해 도시 전체가 예쁘게 낡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정말 그렇다.
예쁘게 낡았다는 느낌은- 뭐랄까, 내가 좋아하는 표현 중에 하나인데, 고풍스러운 가운데
손질이 잘 되어있는 느낌이랄까. 아무튼 너무 후져서 눈살 찌푸려질 정도가 아닌,
엄마가 처녀적에 애지중지 아끼던 가방을 물려받은 기분이랄까.
[ 비엔티엔의 랜드마크, 빠뚜싸이에서- ]
천장 장식이 무척 예쁜 빠뚜싸이 :)
올라가는 길에 느닷없이 기념품상점이 있다. 으응?
아...나 나선형 계단 울렁증 있는데...(내려가다가 잘 넘어짐)
장난감도시처럼 보이는 예쁜 비엔티엔.
반대쪽엔 빠뚜싸이 공원이 미니어처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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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뚜싸이 공원. 관광객도 관광객인데 라오사람들도 엄청 많다-*
외국인 여자애 혼자 라는 옵션이 "시선집중"의 포인트.
비엔티엔을 원없이 내려다 보고, 다시 자전거를 몰고 남은 추천 루트를 패스한 채, 집으로.
이 날씨에 자전거를 더 탔다가는 내가 타서 없어지겠지 싶다.
자전거 끌고 빠뚜싸이 정문에서 도로 가운데로 나오다 보니 보도로 못넘어 가고 가운데 서있었다...
콜라 하나를 사마시고, 샤워를 하고 햇살이 약해질 무렵까지 에어컨 시원하게 틀어놓고
내일 비자클리어 할 사항들을 점검해보기도 하고, 책도 좀 읽는다.
저녁 무렵에 빌린 자전거를 가져다주니,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겟하우스 아가씨가
내 여권을 돌려주며, 서툰 우리나라 말로 “언제까지 있어요?” 한다. 으음?
“8월까지 있어요. 3 months."
“아. 8월...8월이면? 우와. 부자사람이예요?”
“부..부자사람? nono, Just tourist. I'm not rich. 부자 아니예요."
부자사람이 아니어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나라에서 왔나봐요, 나는.
아무튼. 연습하고 있다는 아이유노래, 나중에 들을 수 있으면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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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돌려주고 비엔티엔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이니 맛난거 먹자!
해서 라오스식 샤부샤부를 먹기로 했다. 어제 갔던 노천식당에 갈까, 아니면 차이나타운(?)에
있다는 가게에 갈까 고민하다가, 매일매일 새로운 경험을 위해 차이나타운의 Vieng Sawan이라는
가게에 가봤다. 주위에 한국식당도 있고 대형마트도 있고, 신쭘이라는 라오스식 샤부샤부와
남느엉(베트남 바비큐 포크 미트볼)을 시켜서 도시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에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신나게 먹었다.
뭐 먹을지 확신이 안서면 스탭이 많거나, 손님이 많은 집으로.
여기에 라오맥주 한병까지. 이 모든게 66,000kip (한화 8,500원 정도)
밥먹고 나오니 가게 옆쪽으로는 포장손님으로 가득하다. 스프링롤이 맛난듯- 다음에 먹어봐야지.
무슨 여행이 먹는게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 같아. 괜찮아, 먹는것이 남는 것!
못먹고 한국가서 생각나면 눈물날지도 몰라-
밥먹고 마트 들러서 남은 일정에 필요한 물품들을 조금 사고, 또 짐을 싸고...
그렇게 비엔티엔과 이별할 준비를 하고...
내일은 아침에 비자클리어 하고 돌아와서, 방비엥으로 떠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