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를 빙자한 주뇽이의 북경여행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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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를 빙자한 주뇽이의 북경여행기(3)

하로동선 0 2337
-청화대 교수 강의-

1월20일(화). 아침에 4시반에 잠깐 눈을 뜨고 이후 1시간마다 잠이 깼다. 잠자리는 상당히 편안하고 좋았는데도 역시 내집같지는 않은 모양이다.
아침먹고 강의시간까지 짬이 있어서 밖으로 나와 보았다. 우리 호텔의 주변은 대체로 집들도 낡고 그래서 일부에서는 재건축이 진행되고 있다. 거리에는 발걸음을 재촉하며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이고, 일부 나이드신 분들은 개를 끌고 나와서 산책하고 있다. 어느 노인은 아침부터 하늘에 대고 폭죽을 터뜨린다. 설날이 다가오는만큼 미리부터 기분을 내시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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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는 청화대 고에너지부문의 린옌리교수의 강의가 있었다. 원래는 우리가 청화대로 가서 강의를 듣는 것이었는데, 들리는 말로는 청화대에서 외부인들의 출입을 금하는 바람에 교수님을 호텔로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아침부터 김이 새는 것은 어쩔 수 없었는데 그래도 강의는 잘 들어보려고 맨 앞자리에 앉았다. 주제는 "2차전지의 재활용 기술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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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는 먼저 청화대에 관한 소개를 하고, 2차전지 재활용 기술을 설명하며, 이어 질문을 받아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얼마 안가서 곧 문제가 발생했다.
강의는 중국어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통역이 필요했는데, 통역이 관련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조금 과장하면)이제 막 중국에 와서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이다보니 제대로 되질 않았다. '아... 답답하다...' 답답해서 속은 부글부글 끓고 무엇보다 집중이 안된다. 내가 알기로는 교수초청에 든 돈은 3시간 강의에 우리돈 200만원이다. 정말 돈이 아까왔다.
청화대학에 관한 소개가 끝났을 때 참다 못한 내가 손을 번쩍 들었다.
"Excuse me. Let's take a break"
나의 갑작스런 말에 교수도 약간 당황하는 듯 하더니 "OK"한다. 그러자 장내의 학생들은 모두 나를 향해 "와-"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보낸다. '으하하하!!!' 이것 참... 녀석들도 꽤나 답답했던 모양이다.
이어진 대책회의. 일단 시답지 않은 통역은 아웃시키자는데 모두가 동의했다. "차라리 교수님께 말해서 강의는 영어로 진행합시다." 누군가의 제안이 이어지고, 그럼 통역은 어떻게 하지? 라는 물음에 "영어 잘하는 학생을 추천받아 세웁시다"라는 다소 재미있는 결론이 내려졌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여기에 와 있는 선생님들 중 아무도 영어통역이 가능한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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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친구들의 추천을 받은 사진속의 초딩 두명이 통역으로 나왔다.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 천만의 말씀...
이 꼬맹이들이 영어는 잘 하는지 몰라도 강의 내용에 대한 지식이 없다는 점을 고려했어야 했다. 여기 와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 자기가 속한 학교에선 최소한 전교5등 안에는 드는 인재들이지만 그렇다고 얘네들이 모든 걸 아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애들은 애들이라고 보는 게 맞다. 게다가 교수님도 영어에 능숙하지 못하니 영어로 하다가 막히면 중국말로 하는 등 우왕좌와하였다. 결국 통역하는 아이들에게 부족한 지식은 옆에 있는 선생님들이 부연설명하는 식으로 강의는 어렵게 진행되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서 강의는 끝났다. 알아볼 수 없는 간체자로 가득 찬 파워포인트 화면을 더 이상 안봐도 되는 시간이 왔다. 이어지는 질문시간. 이런 강의를 듣고 누가 질문을 할까 싶었는데...
갑자기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질문을 하기 위해 아이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한다. 정말 놀라운 모습이다. 어젯밤에 지도교사회의를 하며 장학사님이 걱정한 것은 질문시간에 아이들이 아무도 말을 안하면 나라 망신이니까 선생님들이라도 질문을 해서 민망함을 면하게 해달라고 했었는데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아이들이 하는 질문을 들어보면 대개는 노트에 적어서라도 직접 영어로 하였고, 그 수준도 듣고 있으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참신하고 좋은 내용들이었다. (평소에 전지에 관해 관심이 있는 나는 아이들의 질문들을 빠짐없이 메모해 두었다. 이것들은 나중에 좋은 연구주제가 될 것 같다.)
이렇게 강의는 끝났다. 물론 아이들의 질문은 시간이 없어서 다 받아주지 못했고, 질문을 하지 못한 아이들은 너무나 안타까워 하였다. 오늘의 강의를 통해 영재 아이들이 일반 아이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너무나 잘 알 수 있었다.

-과학관 & 자연사박물관-

점심은 [선유도]라는 한식당에서 먹었는데 왜 이렇게 불친절한지 모르겠다. 같은 동포이건만 어찌된게 중국사람들만도 못하다.
오후에는 먼저 중국과학기술관으로 갔다. 전체가 3개의 큰 건물로 되어 있고 가운데 건물의 외벽에는 강택민의 글씨가 새겨져 있어서 이곳의 위상을 실감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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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공간도 넓고 특히 단순한 전시물보다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서 좋았다. 문제는 우리에게 관람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 그리고 이런데 오면 무조건 많이 보려고 하기 보다는 하나라도 제대로 보고 가는 것이 남는 일이라는 것을 그동안의 경험으로 아는지라 난 하나에 주목했다.
이름하여 Faraday Cage. 금속으로 만든 새장안에 사람을 넣고 고전압을 걸어주는데 안에 있는 사람들은 멀쩡한 모습을 보여주는 장치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이야기해봐야 재미가 없을테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장치를 소개하고 직접 시연해주는 아가씨가 매우 미인이라는 점이다. 난 첨에 이 아가씨를 보는 순간 영화배우가 아닐까를 생각했을 정도이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사진이 없다는 점이다. 학습자료로 쓰려고 동영상으로만 찍어왔는데 전체적으로 화면이 어둡고 학습자료에서는 아가씨가 "주"가 아닌 관계로 미모를 감상할 수가 없다. 이런... 오늘같은 날을 생각했어야 했는데...

관심있는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겠지만 중국은 달탐사를 준비하고 있다. 달을 탐사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보면 아직까지는 크게 이득이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추진하는 이유는 아마 세계의 대국으로서 중국의 이미지를 심고자하는 목적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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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관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바람에 다음 견학지는 자연사박물관인데 시간이 부족했다. 게다가 퇴근시간이 가까와지니 도로는 차량이 홍수를 이룬다. 결국 자연사박물관에 도착한 시각은 4시45분. 5시에 문을 닫는다니 불과 15분의 시간만이 주어졌다. 따라서 나는 빠른 걸음으로 거의 뛰다시피하며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런...
실망도 이런 실망이 없다. 광대한 중국대륙의 곳곳에서 발굴했을 어마어마한 양의 화석들을 기대했건만 실상 눈앞에 보이는 것은 매머드 하나와 공룡 몇 점 뿐이다. 나머지들은 큰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조악한 전시품들 뿐...
애초에 미국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과 같은 엄청난 규모를 상상한 것이 잘못일까? 우리에게 주어진 10분의 관람시간도 전시물을 돌아보는데는 충분하고도 오히려 남음이 있었다. 미국이라면 이렇지는 않을텐데... 방금전에 과학관에서 느껴졌던 Force는 사라지고 중국은 다시 짱꼴라의 이미지로 각인된다. 이럴 양이었으면 아까 과학관을 제대로 보는 편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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