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자연, 그리고 힐링스테이

홈 > 여행기/사진 > 여행기
여행기

사람, 자연, 그리고 힐링스테이

민경이모 4 2316
7박 9일의 라오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차 시동을 걸었다.
오랫동안 차를  세워 두었더니 배터리가 방전되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보험 회사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한다.

여행으로  나의 생활 역시 방전된 것일까.
도무지 시동이 걸리지 않아 이틀을 그냥 보냈다.
그래서 오늘은 라오스에서 먹지 못했던 스시를 실컷 먹고 시장도 보고 여행 내내 적량 이상으로 먹어 허물어진 몸을 어찌 처리해 볼 요량으로 헬스장에도 가며 시동을 슬슬 걸기 시작했다.
그 덕에 이렇게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라오스를 추억하기 시작한다.
=======================================
힐링 스테이를 하기 위해 오전 9시에 방비엥 폰트래블에 갔다.
조금 있으니 어여쁜 아가씨 하나가 왔다.
우리 가족 세 사람과 서울서 대학 다니는 민주, 이렇게 네 사람이 이번 1박 2일 힐링 스테이 참여자들이다.
우리의 가이드 누안과 캄 아저씨를 따라 나두앙 마을로 향했다.
제일 처음 들린 곳은 마을의 초등학교.
여행 오기 전에 초등학교에 방문할 목적으로 학용품을 넉넉히 준비했다.
미술 도구가 없어 미술 수업을 하지 못한다는 말에 크레파스와 색연필, 색종이를 구입했는데 주변에서 또 모아 주어서 우리 가족이 운반 가능한 수준을 넘어 버렸다.
캐리어 두 개에 가족의 짐을 넣고 캐리어 하나에 학용품을 담아보니 3분의 1도 담지 못해 결국 캐리어 하나를 더 구입해서 넣을 수 있는 한도로 꼭꼭 채워 넣어 왔다.
누안이 교실에 들어 가 사진도 찍고 선물도 나누어 주라고 했지만 수업 중이라 얼른 선물만 선생님께 전달하고 학교를 빠져 나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수업을 방해하기가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이들의 교과서만은 잠시 보고 나왔으니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인가 보다.
캐리어 하나에 든 학용품은 면세점용 큰 비닐 백에 옮겼지만 나머지 하나는 학용품이 든 채로 드리니 선생님과 가이드가 계속 캐리어를 그냥 주는 거냐며 물으신다.
새 것이긴 하지만 카드 적립금으로 구입한 저렴한 것이라 부담 없이 드리는 것인데 여기선 귀한 물건이다 보니 받기가 미안한가보다.

사실 몇 년 전부터 우리보다 가난한 나라를 방문할 때 학교에 선물을 준비해 갔다.
내가 특별히 좋은 사람 이어서라기 보다 내가 덜 미안하고 마음 편하게 여행하기 위해서.
공정여행에 대해 알고 나서 부터 여행자의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나라를 여행하고 싶어 하지만 우리가 스쳐 가고 난 뒤에 남겨진 그 사람들이 받을 영향에 대해 생각하지 못한다.
우리 여행자들이 얼마나 많은 걸 파괴하고 삶에 혼돈을 주는 지에 대해 생각하면 여행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미안해 질 때가 많다.
그래서 내가 좀 덜 미안해 질 요량으로 이렇게 준비를 한다.

학교를 벗어나 마을로 들어와 동네 구경을 하며 누앙에게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그 중 가장 감명 깊은 것은 이 곳 사람들이다.
나두앙 마을은 90여 가구가 사는데 70%가 라오족이고 나머지가 소수 민족이란다.
두 민족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다른 날에 각 각의 명절을 지내지만 사이좋게 공생하고 있단다.
여행 오기 전 우리나라에는 왜 소수 민족이 없는가에 대해 알아보던 나에겐 참 신선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였다.
우리나라는 같은 민족끼리 서로 정복하고 정복당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소수 민족이 없다고 하지만, 남편 말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 민족의 독선이 소수 민족을 사라지게 했을 것이라는데 그 말에 크게 공감하는 바가 컸다.
고려시대에만 해도 우리 나라에 모스크가 있었고, 고려 가요 쌍화점에 만두집에 갔더니 회회아비(회교도 남자)가 손을 잡더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조선 시대를 거치며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다름을 인정하는 그들이 공존이 너무도 아름다워 여행을 마치고 난 뒤에도 그 감동이 여운으로 남는다.

이 마을 사람들은 4킬로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시내로 나가지 않고 평생을 마을에서 자급자족하며 보내는데 그 이유는 마을 밖에서 다른 세상을 접하는 순간 욕심이 생겨 평화로움이 깨어지기 때문이란다.
자본주의의 끝이, 그 탐욕의 끝이 어딜까 하는 두려움에 가끔 씩 소름이 끼치는 나로서는 참으로 공감이 가는 바이다.
마을에 초등학교가 있지만 중고등학교는 시내에 있어 지금의 청소년들이 자라면 이 동네도 큰 변화를 겪게 되겠지만 그들의 조상들이 남겨 준 인간의 아름다운 본질만을 변하지 않기를 간절히 빌어 본다.
이 마을의 가옥 구조는 방 하나가 다였는데 그 방 하나가 온 가족의 침실, 거실, 부엌 등의 역할을 해 왔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마을에 여행자들이 찾아 오고 가축을 내다 팔면서 마을에 수입이 생겨 한 집 씩 차례로 새 집을 짓는다고 한다.
산뜻하게 새로 지어 진 집의 규모를 보니 제법 크다.
이들도 이젠 식구 수에 맞게 방과 거실과 부엌을 가지게 된 것이다.
폰 트래블이 동네의 수익 사업에 앞장 서고 있고, 또 수익금의 일부분을 학교에 지원한다니 착한 여행사를 택한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편하게 지내면서 다른 나라에는 순수함을 요구하며 불편한 생활을 감내하길 바란다면 그 역시 이기적인 마음일 것이다.

원래 계획은 마을의 아이들과 뛰어 노는 것이었지만 아이들이 수업 중이라 마을에 노는 아이가 없어 바로 트래킹을 나섰다.
아열대 정글을 트래킹 하는 것은 평소 해 보지 못한 것이어서 참 신비롭고 즐거운 경험이다.
한참을 산 속을 걸은 후에 기대하던 짚라인을 했다.
사실 난 겁이 너무 많아 놀이 기구 중 탈 수 있는 건 회전 목마가 유일하다.
짚라인이라...간이 벌렁 거리고 호흡이 가빠진다.
울렁증으로 미쳐 버릴 것 같다.
그런데 사람이 나를 안도 시킨다.
우리의 가이드 누안은 영어도 잘 하지만 짚라인 투어 진행을 너무도 꼼꼼하고 차분하게 잘 한다.
그리고 모든 이가 떠난 우리 고향을 지키는 수더분하고 심지 깊은 당숙 어른 같은 캄 아저씨가 또 우리를 든든하게 지켜주고 있다.
사실 너무 두려워 신나는 타잔 놀이에 숲을 가르며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고 싶었지만 단 한번도 그러질 못했다.
남편과 민주 만이 제대로 타잔 놀이를 하는 것 같다. 

짚라인을 마치고 유이 폭포에서 쉬고 있는 동안 누안과 캄 아저씨는 점심을 준비했다. 
이스라엘에서 왔다는 세 남녀는 민망한 정도의 수영복 차림으로 물놀이를 하건만 우리는 발만 담그고 쉴 뿐이다.
점심 준비가 끝나 원두막으로 올라가니 볶음밥과 바비큐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볶음밥도 맛있지만 바비큐 꼬지는 맛이 환상적이다.
배 부르게 먹고 나서 우리는 시냇물 소리를 자장가 삼아 모두 달콤한 낮잠에 빠져 들었다.
한 참을 자고 나니 누안이 새로 올 두 사람이 짚라인을 할 건데 한번 더 해 볼 생각이 없냐고 한다.
남편은 당연히 신나하며 좋다고 했지만 딸과 나는 그저 쉬고 싶고 또 그 힘들고 무서운 걸 한다는 생각에 원두막에 남고 싶었다.
그런데 어찌하다 보니 따라 나서게 되었다.
새로 합류한 사람들은 파주에서 온 임선생, 정선생 부부다.
여섯 명이 또 짚라인을 하게 되었는데 나 보다 더 겁이 많은 정선생  때문에 오히려 내 겁이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요령이 생긴 것인지 드디어, 드디어 숲을 날며 경치를 즐기는 수준이 되었다.
어찌 여유도 생겨 영화 아바타의 한 장면 같은 풍경에 감동도 하게 된다.
해병대 출신 임선생은 조교를 해도 될 정도로 능숙하게 잘도 한다.

짚라인을 끝내고 우리의 숙소로 왔다.
연못 위에 그림처럼 소박하고 예쁘게 지어진 숙소와 닭, 개, 고양이, 칠면조, 거위 등이 평화롭게 공생하는 풍경을 보니 힐링 스테이 하길 정말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힐링 스테이 숙소 바로 옆 집이 캄 아저씨 집이었는데 모두 아저씨가 키우는 가축이라 했으니 캄 아저씨는 정말 부자다.
두 번의 짚라인으로 지친 우리에게 약초 사우나를 권하셨는데,나 태어나 그리 땀을 많이 내긴 처음이었으니 약초 향이 깊이 깊이 내 몸 세포 속으로 스며 드는 기분을 느끼며 힐링 스테이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몇 번을 들락 달락 하며 약초 사우나의 매력 푹 빠졌는데 그래서인지 하루 동안의 피로가 싸악 날아 가 버린 기분이었다.

동네 구경을 하며 아이들과 노닥거리려 했지만 어느새 어둠이 내려 낚싯대를 드리우고 저녁 식사를 기다렸다.
캄 아저씨의 사모님이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우리는 물고기 하나 낚지 못했는데 민주는 제법 큰 물고기를 낚았다.
사모님이 준비한 라오스식 전통 가정식과 바비큐, 그리고 라오 맥주로 즐겁고 행복한 식사 시간이 되었다.
사모님의 음식 솜씨도 엄청 났지만 한국에서 공수해 온 쌈장과 마늘을 바비큐 한 돼지고기와 아싹 아싹한 쌈에 싸 먹는 맛은 과히 환상적이었다.
폰 사장님과 누안과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맥주 파티를 했다.
그 전날 손을 심하게 다쳐 방비엥의 병원 응급실로 가서 치료를 받아야 했던 남편은 술을 마실 수 없었고 나머지 여자들 모두 술을 잘 못 하는 사람들만 모인 관계로 어쩔 수 없이 임 선생이 술 상무 역할을 했다.
원래 힐링 스테이 1박 2일에 하루 숙박을 연장 해 2박 3일로 머물 예정이었으나 남편의 부상이 심해 병원이 있는 시내 숙소로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남은 하루를 취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아쉬웠다.
폰 사장님은 영어도 잘 하시고 참 잘 생긴 분이었는데 착한 여행업을 통해 마을에 도움을 주는 분이라 생각하니 더 멋져 보였다.
그리고 누안은 뭐라 말 할 수 없는 깊은 정이 든 사람이다.
나이는 30대 초반으로 나 보다 한참 어린 사람인데 얼마나 총명하고 꼼꼼하고 책임감 있게 일을 잘 하는지 무조건적인 믿음이 갔다.
그래서 폰 사장님과 같이 9년을 계속 일을 하고 있는 가 보다.
내일 또 짚라인 투어를 진행하기 위해 술을 적당히 마시고 두 분은 자리를 뜨고 우리 여섯명은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세 사람 모두 정말 예의바르고 사려 깊고 따뜻한 사람들이라 그 대화의 즐거움에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몰랐다.
그리고 고양이 두마리.
난 평생 우리 나라에서 나를 째려 보는 고양이만 봐서 그런지 고양이를 보면 약간 무섭다.
근데 캄 아저씨의 고양이들은 나한테 와서 비비고 안기고 애교 부리며 예뻐해 달라고 한다.
그 눈이 마치 슈렉의 장화 신은 고양이 같다.
무뚝뚝한 남편도 고양이의 매력에 빠져 버린 것 같다.
나 태어나고 나를 좋아하는 고양이는 처음이다.
그래서 감격해 버렸다.
우리 방까지 따라 들어 오고 스콜이 쏟아져 젖은 양산을 말리려고 펼쳐 놓으니 아예 두 녀석이 자기 아지트로 삼아 그 안에서 지낸다.
으이구, 이 귀여운 녀석들.ㅋㅋ
이 동네는 사람들이 순하니 짐승들도 순한지 그 많은 개가 한 마리도 짖지 않는다. 

자다가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잠을 깼다.
비오는 새벽의 조용한 마을 풍경이 눈에 들어 왔다.
여행 오기 전 보수동 헌책 방에서 내 눈에 띄어 가져온 법정 스님의 ‘오두막 편지’를 들고 마을이 보이는 흔들 의자에 앉았다.
10여년 전 읽은 책인데 여기서 읽으니 더 가슴이 와 닿는다.

아침을 먹고 커피 한잔을 마시고 나니 누안이 왔다.
모두 짐을 챙겨 누안이 운전하는 차에 올랐다.
캄 아저씨와의 작별도 아쉬웠지만 귀여운 고양이 녀석들과의 이별도 무척이나 아쉽다.
폰트래블에 가니 많은 사람들이 튜빙과 캬야킹을 하기 위해 모였다.
한참을 차를 달려 튜빙을 하기 위한 동굴에 왔다.
동굴 튜빙은 그저 그랬지만 캬야킹은 정말로 좋았다.
소계림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방비엥의 산수를 감상하며 강물에 몸을 맡긴 채 떠 내려가는 평화로운 시간은 한국에서는 맛 볼 수 없는 행복한 경험이었다.
내가 한 폭의 산수화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전생에 내가 나라를 구했나.
어찌 살아서 이리도 좋은 신선 놀음을 즐긴단 말인가!

한참을 떠 내려 오다 잠시 쉬기 위해 휴게소에 도착해 음료수를 마시며 평화로운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수십 명의 서양 여행자들이 도착하더니 술에 취해 엄청나게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광란의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몇 명은 무엇에  취했는지 거의 광인 수준이었는데 내 마음 속의 평화가 분노로 바뀌는 시간이기도 했다.

분명 여기 저기에 라오스에서는 몸을 보여주는 것을 예의에 어긋나게 생각하므로 여행자들은 수영복 차림이나 지나친 노출을 삼가 해 달라고 주의 사항을, 그것도 친절하게 영어와 그림으로까지 적어 놓았건만 그들은 그것을 무시하고 온 몸을 드러낸 채 광란의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다행이 그날 수많은 한국 여행자들은 수영복위에 겉옷을 얌전히 걸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이 없었다.
라오스가 그들의 식민지 국가였기 때문일까?
아무튼 그들의 무례함과 안하무인격인 행동은 내 마음의 평화로움을 깨는 동시에 여행자로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더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
결국 우리는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다시 튜빙을 시작하며 나와 파트너가 된 마산에서 온 40대 초반의 이선생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선생은 아직 미혼으로 3년 가까이 세상을 자유롭게 여행한 분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분에게선 여행이 준 여유와 자유, 따뜻함이 느껴진다.
한국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전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라오스를 왔다는데 지금껏 가 본 나라 중 라오스가 제일 맘이 편하기 때문이란다.
10여년 전에 한 달 간 라오스를 여행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보다 여행자 거리도 두 배 이상 커졌고 게스트 하우스도 많이 늘었지만 사람들의 심성은 크게 변하지 않아 다행이란 말에 나 역시 깊은 안도감이 느껴졌다.
아무리 방자한 서양 여행자들이 미쳐 날 뛰어도 쉽게 변하지 않는 깊은 그들의 심성에 존경심 마저 생겼다.

강을 따라 평화롭게 흘러 온 우리의 시간도 또 강과 함께 흘러 가리라.
내가 본 라오스는 어쩌면 잠시 머문 여행자의 단편에 불과 하므로 많은 부분 나의 착각 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여행자들은 자기가 기억 하고 싶은 대로 기억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라오스를 아름답고 평화롭게 기억하고 싶다.

우리 가족은 수년 내에 다시 라오스를 찾을 것이다.
태안의 어촌 마을에서 농부 차림으로 손수 학교  숲을 가꾸던 시꺼먼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아름다운 장소에서 아름다운 생각이 싹 튼다.”

그래서 라오스 사람들이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운 심성을 가진 것이리라.
다시 찾을 그 날까지 우리의 폰사장님과 김소장님, 누앙과 캄 아저씨가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그리하여 또 다시 고마운 인연 맺기를...
곱짜이 라이, 곱짜이 라이 라이!
지금쯤 치앙마이 트래킹을 하고 있을 예쁜 민주, 그리고 사랑스럽고 예쁜 신혼 부부 임선생과 정선생도 못 잊을 거예요.
그대들이 있어 우리 가족의 라오스 여행이 더 행복했다오.
=======================================================
일단 7박 9일 자유 일정 중 1박 2일의 힐링 스테이 투어 후기만 올립니다.
나머지 여행기는 쓰게 될 지 모르겠어요.
글 쓰는 게 너무 많은 시간을 잡아 먹는 노동이라.^^
 
4 Comments
브로이 2013.02.27 21:33  
""누안이 교실에 들어 가 사진도 찍고 선물도 나누어 주라고 했지만 수업 중이라 얼른선물만  선생님께 전달하고 학교를 빠져 나왔다""==>완전 감동입니다^^글 읽는 내내 마음이 포근해지네요 감사합니다^^좋은하루 되세요^^
민경이모 2013.02.27 23:24  
그리 말씀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어느 나라를 여행해도 넘쳐 나는 우리나라 여행객들을 보며 이제 우리도 여행자의 자세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때가 된게 아닌가 싶어 주제넘는 글을 적어보았습니다.
브로이님의 격려에 소심한 사람, 부끄러움이 사라지고 용기가 납니다.
해피줌마 2013.03.12 16:45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걸 보고도 다른느낌 다른생각이 글들로 옮겨지니  글이 참으로 아름다울때가 있지요.  민경이모님에 글을 보면서 아름다운 라오스가 그려지고 빨리 가고 싶어지네요
마음이 정화되는듯 한 글 감사합니다.  제가 어렸을때 우리마을에 미군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왔던때가 생각났어요 그 인상이 어찌가 강했던지 손자를 본 제게 그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어요.  사람들이 조금만 더 다른 사람들을 생각 해주는  마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네요.^^~
민경이모 2013.03.13 22:03  
해피줌마님!
따뜻하고 고마운 말씀에 힘이 납니다.
우리 세대처럼 격변의 세상을 산 사람들이 있을까요?
우리는 어린시절 농경사회를 겪었고, 청년기에 산업화를, 그리고 장년기에 정보화 사회를 살고 있는, 세상에서 그 유례를 찾기 힘든 특별한 세대들이지요.
라오스 여행이 가슴에 남는건 우리의 옛모습을, 어린 시절 학급에서 보았던 착하고 순하던 단발머리 친구의 수십년전 모습을 만나기 때문일거예요.
자연이 수려하지만 위압적이지 않고 소박하고 편안한 곳이었기에 마음이 쉬어갈 수 있었어요.
라오스 여행 가시면 행복하실거예요.
지구별에 이처럼 어여쁜 나라가 있다는 거 정말 멋지지 않나요?^^
포토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