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에 가면 사람을 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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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에 가면 사람을 보라 한다.

weixiao 2 2979
라오스에 가면 사람을 보라 한다. 어떠한 모습의 사람을 말하는 것일까. 언어의 불일치로 인한 소통의 어려움은, 그곳 사람들을 만나는데 더욱 어려움을 부가한다.

7박8일의 바쁜 일과 속에, 몇명의 라오스 인을 만났을까. 만약 방비엥에서 모터사이클을 빌려 파타우의 몽족 마을을 찾아가지 않았다면, 이십여명 정도의 현지인과 눈 인사만 나누었을까.

따라서 짧은 관광여행 시간에 라오스 사람들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게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라오스를 인문학적으로 이해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행의 곳곳에서 습관처럼 경제적 관점에서 라오스가 관찰되어지곤 하였다. 수도 비엔티안의 국립박물관, 엘리트 사관인 왕조역사는 부정한다 하여도, 공산주의의 민중사관조차도 읽을 수 없었던 열악한 사료들이었다. 아마 예산이 부족하기때문에 지방도시의 문화관 정도의 운영만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나의 이번 여행은 라오스의 신년과 겹쳤다. 때문에 많은 것을 더 경험 할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특히 루앙프라방 국립박물관의 행사를 모두 참여할 수 있었다. Royal Orchestra of Luang Prabang의 공연도 보았다. 그 가운데 무용수의 손사위가 일치되지 않음을 보면서, 그들이 전문적인 직업인으로 예우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1인당 국민소득 년 1300블의 최빈국의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빈곤의 굶주림은 엿 볼 수 없었다. 비슷한 어려움이 있는 인도 사람들의 눈빛에서는 작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지만, 이곳 라오스 사람들에게서는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인도인의 눈빛에서 우울함을 느끼는, 그것은 영국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일찌기 형성된 도시 빈민 아사자의 슬픔때문이 아닐까.

라오스에는 아직까지 -이기적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가들의 자본들이 더 많은 이익의 창출을 위하여 투자가 집중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 그 균형이 얼마지 않아 깨어질 것 같아서, '아직까지는'- 절대빈곤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여기에서 구체적 자료를 제시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고 싶다'라 표현하였다) 그들에게는 1년에 3모작이 가능한 뜨거운 태양이 사시사철 하늘위에 있다. 그리고 국토를 가로지르고 있는 메콩강은, 그들이 굶주려 죽는다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라오스 인은 화를 내지 않는다 한다. 고함치는 것도 볼 수없고 심지어 자신이 피해를 보아도 법률에 의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 한다. 이는 비엔티안의 한국식당의 사장님으로 부터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이야기이다. 그들은 무시간적 善因善果 惡因惡果의 불교윤리를 삶의 강령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강제적 인위의 법에 의하지 않아도, 인과의 자연율처럼, 선한 행위와 마음에는 선한 즉 행복한 결과가 주어진다. 악한 행위와 마음 씀은 불행한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이 필연적인 것이니, 굳이 인위의 규칙을 적용하며 자신들의 언어와 정서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겠다는 것이리라. 이처럼 自然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곳이 라오스이다.

어떻게 주변 문화와 다르게 내륙의 라오스만이 빈곤속에 안정 그리고 주변국의 침략과 지배 속에  평화라는, 이처럼 독특한 문화를 가질 수 있었는 가 하는 것은, 라오스에 대한 지정학적 탐구가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돌아 오는 날, 비엔티안의 'True Coffee'라는 커피샵에서 여행의 동반자인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제 라오스에 외래 자본가들의 자본이 무차별 유입되고 있다. -그 자본의 방향성이 도덕과 무관한 이익창출만이라는 잔인함때문에 '무차별'이라 하였다- 그 자본들은 라오스를 산업사회로 변화시키고, 또한 라오스의 자율권과 주권을 매도하는 부패한 공무원들(300불이 조금 넘는 월급자가 수억원대의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닌다는 공무원들)울 양산할 것이다. 도시 산업화는 빈부의 차를 심화시켜 상대적 빈곤은 더욱 커질 것이다. 이전에는 볼 수 없던 거지들이 근래에 라오스의 거리에 있게되었다. 즉 자본주의의 유입은 절대적 빈곤자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나도 적선을 청하는 라오스의 거지들을 만났었다.

산업화는 라오스를 조금 부강하게 할 것이다. 하지만 빈곤한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는, 부패와 뇌물이라는 반사회적 개념에 익숙해질 것이다. 이러한 라오스의 미래에 동의 할 것인가를 물었다.

철도도 없고 고속도로도 없어 가고 싶은 곳도 멀지 않다. 혹시 병이 들어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그 죽음을 운명으로 받아 들이지만, 그래도 평화로운 미소속에 있는 현재한 라오스를 그대로 바라 볼 것인가?

나의 아내는 라오스의 산업화를 선택하겠다 하였다. 역사는 변화 발전하는 것으로, 부정의 시기도 빠르게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이 아나로그시대를 뛰어넘어 디지탈의 시대로 빠르게 진입하여 현재의 한국을 만들었다. 이처럼 라오스도 변환의 시기에 혁명적 전환을 라오스의 인민들은 만들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나, 자유롭게 자기를 구현하고, 평등하게 죽어가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떠한 의견을 가지는 가 하는 반문이 있었다. 나도 라오스의 변화에 동의한다. 삶의 질에는 커다란 변화가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그 형식에 변화의 필요성이 요청된다. 예를 들면 응급의 상황에 도움이 될만한 거리에 병원과 소방시설과 같은 것이 있을 정도의 국가가 부유해지면 좋겠다. 건강한 생존은 인간의 권리이자 의무이다. 비엔티안 루앙프라방 등 주요도시에서도 의원정도의 병원만이 눈에 띠었었다. 

그러나 -다수를 위한다는 미명의 이기적- 쾌락을 증대하기 위하여, 타인의 권리와 많은 생명을 희생시키기도 하는 황금제일주의적 산업화는 피해야 할 것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하여 그들의 소중한 행복을 도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인간의 삶에 황금은 필요조건이다. 건강한 생존울 위하여 황금은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생존하는 것이 삶의 목적은 아니다. 호흡하고 생식하기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생활의 편의를 위하여, 세탁기와 자동차를 갖기위하여 '나'의 행복함을 포기할 필요가 있을까.

역사의 궤적을 반드시 준수할 필요는 없다. 다만 참고할 뿐이다. 자유 시장경제가 화폐의 량을 증폭시켰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통화량의 증대가 곧 행복의 성취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도 명확하다. 

라오스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변화를 기대한다면 무리일까?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획득하는 싸움터로서의 역사 기록을 멈추자. 목적이나 권리가 아닌 수단으로서 자유와 평등을 이용하여 인간의 행복을 성취하는 그러한 혁신을 희망한다. 현재한 '행복'을 그대로 유지한 채로, 생활의 부족함이 채워지는 '라오스'를 기대한다.


* 이것도 라오스를 느끼는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요. 1달러면 우리돈 천원. 1000원이면 그 쓸모가 크지 않다. 그 1달러를 라오스인의 수고에 고마움으로 표시해보자. 그들의 반응은 우리가 기대하였던 것보다 훨씬 크다. 어쩌면 1달러도 팁으로는 큰 돈이다. 그 반절만 해도 ...  물건을 비싸게 구입하여 물가를 올리자는 것은 아니다. 감사의 표시 팁을 이야기 하였다.

혹시 현지인의 마을을 갈 일이 있으면 선물을 준비하면 좋겠다. 나는 볼펜 머리끈 쵸코파이를 준비하였다. 오랜 시간 이동하였는데도 학교를 볼 수 없었던 오지 마을의 어린이들이다. 그들의 밝은 웃음과 쑥스러워 함에서 나도 많은 행복함을 전염받을 수 있었다.
2 Comments
고은솔 2014.04.26 02:11  
의미있는 라오스 여행을 하고 오셨네요
순수한 사람들 ..
뽀얀 먼지 풀풀 유년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라오스..
저도 겨울에 보름간 즐거운 여행을 하고 왔답니다.

비포장길 1시간이 넘는 오지 방비엥의 산속 몽족마을을 찾아가
세수비누와 과자를 사고 가지고간 옷들을 마을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왔는데 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이 너무 이뻤어요
라라마틴 2014.06.16 14:04  
라오스에는 자본주의 물결이 최대한 늦게 유입되고 유입이 되더라도 서서히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아직 라오스를 책으로만 배운...)
사람을 보라(=인문학^^) 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팁이라.. 좀 위험한 행위 아닐까요?
전형적인 유럽식 물질주의적 문화인데...
책에서 보는 라오인들의 친절과 겸손 배려 등은 돈을 바라고 하는 행동이 아닌
그들의 관념, 습관,전통, 사상 등 다양한 집한체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문화일진데..
거기에 팁이라뇨...
전 진심으로 반대입니다.
고마움의 표시는 그들이 하는 것처럼 친절하게 그들의 삶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행위들이 아닐까요...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여행에서 정당한? 비용을 지불하며 지내면 되지 않을까요
라오인을 실제로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으로서
너무 모르고 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인도를 경험해 본 사람으로서 라오스는 다를 것이다는 제 집착이 조금 담긴 댓글이었습니다~~
좋은 견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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