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유랑기 - 9.빡세-사완나캣-뇨말랏-타씨-폰사완 2023.3.22~3.30.
라오스 3월의 대기는 뜨거운 것은 차치하고 매우 뿌옇다, 매캐하다. 무겁다.
맑고 향긋하고 가벼운 공기를 마시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대게 1월 부터 시작해서 5월까지 이어지는 화전의 연무 때문이다.
올해의 연무는 유난히 짙고 넓고 깊다.
40도에 이르는 끈적한 빡세의 더위를 피해 씨엥쿠앙으로 올라간다.
매해 더위를 피해 찾아가는 일종의 피서지인 셈이다.
연무는 여기에서나 거기에서나 피할 수 없을 것을 각오한다.
동부와 북부의 산간 화전지역에서 꽤 먼 빡세나 사완나캣에서도 올해는 연무가 스며들었다.
더위와 함께 연무까지 피해 다녀야 할 사정이다.
몇일은 머물던 사완나캣이지만 피해야 할 것에 쫓겨서 하룻밤만 머문다.
캄무안으로 올라오면서 연무는 더욱 진해지고 기온은 더욱 올라간다.
연무와 폭염을 피하려 타파랑에 들른다.
코로나가 오기 직전에 타파랑은 인공적으로 꾸며졌다.
제법 그럴싸한 음식이 있고 객실이 있다. 그보다 연무가 스미지 못한 청량한 공기가 있고 폭염을 달랠 천연 수영장이 있다.
타파랑에서 북쪽으로 1.5킬로미터 떨어진 반톡 마을에는 현지인들만 찾는 천연 수영장이 있다.
그럴싸한 시설은 없지만 같은 공기, 같은 물이 연무와 폭염을 씻겨준다.
사면의 석회봉우리가 연무를 막아주며, 그 봉우리 사이에서 흐르는 시원한 석회수가 기온을 떨어뜨린다.
천체의 운행에 의한 이 맘 때의 더위는 자연스러운 질서이지만, 인간의 탐욕에 의한 이 맘때의 연무는 자연에 반하는 짓거리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타켁루프의 경관에서부터 사람들의 건강까지 불명한 것이 많아진다.
선명한 것은 불명한 세상에서 맞는 죽음과 그 죽음을 보내는 어미의 애타는 울음뿐이다.
어느 누구도 불명한 연무에 의해 생긴 슬픔에 책임을 지진 않는다.
다행스럽게 타켁루프의 남쪽 끄트머리에 비구름이 찾아온다.
굵은 빗줄기가 한 참 동안을 불명한 대지에 꽂힌다.
연무가 씻겨나간 자리에 운무가 들어선다.
며칠간이라도 캄무안주의 뇨말랏지역은 선명한 것이 다시 생겨날 것이다.
빗줄기가 훑고 간 나까이 고원의 남튼 호변도 선명한 것이 잠시라도 돌아오고 있다.
처참한 주검마저 선명하게 보이고 있다.
좀 더 도시화되어진 타랑도 보인다.
락사오의 푸타웡 봉우리 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파까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한다.
비가 없는 볼리캄싸이주의 산은 아직 불타고 있고 연무는 아직 쌓이고 있다.
연무는 거의 경작지 확보를 위한 고의적인 방화에 의해 피어오른다.
우기 직전인 지금 방화를 해야만 남은 재가 빗물을 타고 땅으로 스며들어 땅의 힘이 강해진다.
해마다 화전이 있었고 연무가 있었지만 올해에는 더욱 심한 이유가 있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라오스 킵의 가치는 폭락했고 물가는 폭등했다.
봉급생활자의 급여는 거의 제자리였고 농민의 실질 소득은 줄어들었다.
카사바는 타피오카 전분과 인공조미료를 만드는데 많이 쓰이는 뿌리 식물이다.
4개월 만에 수확하며 곳곳의 매입상을 통해서 태국과 중국, 베트남으로 수출한다.
물 빠짐이 좋은 경사지의 땅이면 혼자서도 잘 자라고 뿌리 식물답게 수확량도 많으며 매입상이 많아서 현금화가 쉽다.
경작할 땅만 많으면 소득은 보장된다. 농민이든 아니든 욕심이 생기고 불을 지른다. 연무는 짙고도 넓게 라오스를 덮는다.
욕망이 피어오르는 사이에 숲은 사라지고 숲을 이루던 다양한 동식물은 죽고 대기는 오염되며 사람은 앓는다.
산사태가 발생하고 강은 범람하고 도로는 유실되며 마을은 휩쓸려간다.
보이고 맡아지고 들리고 예측할 수 있으니 정부의 관련자도 무지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능하지 않다면 벌을 줄 수 있는 법을 만들고 설득할 수 있는 계몽을 하고 대책을 세웠을 것이다.
이마저도 통하지 않을 정도로 무력하다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제발 공존과 공영을 위해 라오스 정부는 깊이 고민하고 빨리 행동해 주길 바란다.
왠지 모를 울분을 느끼며 타씨에서 밤을 보내고 씨엥쿠앙주로 진입한다.
욕망이 불타고 욕망이 파괴하고 욕망이 피어오르는 것은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몽족 아이들을 만나 잠시 동안 위안을 받지만
아직도 눈이 맵고 코가 막히고 목이 따끔거린다.
3박 4일 동안 빡세에서 사완나캣과 나까이 고원과 락사오와 타씨를 거쳐 씨엥쿠앙의 폰사완까지 850km의 길에서 쌓인
뿌옇고 매캐하고 무거운 연무를 털어내려 애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