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힌분(탐꽁로) 답사 나흘째 6월 20일
나흘째
여전히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
나는 기로에 섰다. 돌아갈 것인가, 답사를 계속할 것인가?
트렉킹 코스들에 대한 답사가 주 목적이니 여태 한 것이 없는 것이다. 변죽만 울린 여행.
그런데 내일이면 무비자 체류 기간을 연장하기 위하여 태국을 찍고 와야 한다. 오버스테이를 한다고 하여 10달러 벌금 이외에 특별한 불이익은 여태까지 주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찝찝한 것은 사실이다.
남아도 걱정인 것이 전기가 언제 들어온단 말인가? 그리고 전기가 없으니 전기 펌프가 돌지 못해 물도 끊겼다. 짠타게스트하우스의 남자 주인인 엑과 녹이 고생이다.
별명이 재미있다. 한명은 달걀이고 한명은 새이고. 누가 우선인지 모르게 하자는 건가?^*
엑은 20리터 짜리 식수를 세수와 몸을 씻으라고 가져다 주고 있다. 비싼 샤워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남아서 볼 일을 다 보고 가자. 그래서 트레킹을 하기로 작정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스마트폰의 충전이 문제였다. 여행자들을 위한 답사 목적인데 소개할 사진이 없으면 의미가 반감이 되고도 남는다.
나는 나힌으로 나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나힌과 락싸오까지 몽땅 정전이고 72시간 정전이라고 엑이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는 그냥 일단 하루에 나힌으로 가는 3번의 택시 중에 두번째인 9시 차를 올랐다. 택시라고 해봐야 1톤 픽업트럭에 양쪽에 벤취를 들여 옆으로 앉아가게 만든 것이다. 이것은 완전 마을의 페덱스이고 전용 차량이라서 마을 사람들의 대소사를 다 맡아서 처리한다. 가솔린을 주유소에서 사오는 플라스틱 통들이 택시 공간의 절반을 넘게 차지했다.
10시 반에야 겨우 나힌 도착. 나는 게스트하우스들이나 상점들에 전기를 물어도 어느 한곳 자체 발전기를 돌리는 곳도 없었다. 그런데 가게에서 면도기를 하나 사면서 물어본 게 주효했다. 주변에 턴힌분 회사에 가면 전기가 있다는 것이다.
대박이다! 그게 남턴 전기 확장 프로젝트를 하는 회사였다. 그들은 전력회사답게 자체 발전을 하는지 전기가 정말 있었다. 나는 다짜고짜 사무실에 쳐들어가서 불문곡직 스마트폰을 충전하겠다고 공손하지 않은 부탁을 했다. ㅎ. 다행히 친절했다.
나는 그들의 사무실의 화장실 앞에 있는 구멍을 찾아서 털석 주저앉아 충전을 하기 시작했다. 1시에 출발이니 2시간을 충전하면 된다. 99%까지는 충전이 되었으나 마지막 1%는 생각만큼 빨리 넘어가지 않았다. 덜 채운 1%를 아쉬워 하면서 후딱 카오삐약을 한그릇 뚝딱 해치우고 자전거포에 가서 살까말까 망설이며 자전거 가격 협상을 해보았다. 6-70만낍이다. 가격으로는 위양짠과 다를 바 없으나 질적으로 어쩐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내가 쏙사이에서 빌린 자전거는 내가 타는 자전거와 비교할 때 형편이 없었다. 중고라도 위양짠에서 사야지라고 하면서 몸에서 충동질하는 지름신을 겨우 달랬다.
다시 꽁로 마을로 돌아오니 3시가 넘었다. 나는 쏙싸이로 가서 자전거를 다시 빌리려 하였으나 이미 프랑스인턴들이 두대를 징발해버린 뒤였다. 자전거 위에 견고하게 칠판이 고정되어있다. 써글.
나는 이제 믿을 것이라고는 두 다리 밖에 없었다. 꽁로 안쪽 마을들은 시간이 늦어 불가능했으므로 그냥 나힌 방향으로 무작정 트렉킹을 나섰다. 전날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쌀라꽁로라는 간판을 보았는데 그것에 마음이 끌렸었다. 큰 길에서 1.5킬로를 들어가서 게스트하우스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가 보이게스트하우스 사장이 말하던 푸시양룽이고 쌀라꽁로 였던 것이다. 많은 석회암으로 형성된 석벽과 석림이 강건너에 있는데 꽁로 마을 가까이에서 유일하게 강을 건너지 않고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멋진 봉우리다.
가는 길에는 모내기로 한창이었다. 농사일은 여자의 일이다. 남자들은 논을 갈아 주는 것이지 모내기 같은 폼이 안나는 일은 여자들이 하고 있다. 양념이나 고명 총각으로 달랑 하나 있거나 말거나. 청일점.
여자들이 몰려있으니 대담해져서 내가 지나가면 뭐라고 놀려먹는다. 내가 그런 수작을 받아주는 것은 보통이 아니므로 댓거리를 하면서 쌀라꽁로에 갔다. 강건너의 발달된 석림과 푸씨양룽 사이에 멋지게 자리를 잡고 있다. 마이냥이라는 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서양식으로 지은 방갈로 조식 포함 18만낍, 2층으로 지은 전통 라오식 가옥 5-6만낍, 우리가 흔히 방갈로라고 부르는 형태는 3-4만낍이란다. 다 특색있고 멋지다. 나는 일일이 다 들여다 보았다. 인터넷이 필요없고, 전통식으로 한번 머물러 보겠다고 하는 여행자팀이 오면 여기로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하고 연락처를 받았다. 쌀라꽁로의 리조트 앞에는 양수리처럼 두물이 모여들었다. 하나는 탁류이고 하나는 안개가 올라오는 옥류가 섞이는 지점에 있다.
여기까지 온 마당에 푸씨양룽에 올라가보고 싶어졌다. 마주보고 리조트의 오른쪽으로 강변을 타고서 푸씨양룽에 접근했더니 이건 90도에 가까운 수직절벽이다. 내가 무슨 암벽을 타는 것도 아니고 신발은 슬리퍼를 끌고 나왔으니. 그래서 등산로가 혹시 있을까 하며 산을 마주하고 다시 오른쪽으로 걷다가 전통 질통을 지고서 옥수수를 따러온 누나와 동생을 만났다. 이 녀석들에게 등산로를 물으니 가르쳐준다. 사진을 찍고서 모델료를 빙자해서 정보료를 약간 지불했다. 낯선 사람에게 약간 긴장했던 것이 풀어지며 무릎까지 궆여가며 놉(합장)으로 인사를 한다.
나는 등산로를 찾았고 미심쩍어도 산에 가끼이 있는 라오 전통 가옥에 들려 아낙에게 되곱쳐 확인을 하고 산을 올랐다. 그런데 오르다가 만용임을 깨달았다. 올라가긴 해도 내려올 때 경사도와 비로 물러진 진흙에 미끌어지면 성하게 내려오기는 쉽지 않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가니 조심성이 커진다. 청바지에 랜드로바 신고서 암벽등반 따라나섰다가 암벽의 사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상태인 '오토바이'를 타서 남우세를 당하던 만용의 시절도 있었는데. 왠만한 높이는 뛰어내려도 어디 부러지지 않는 시절이기도 했고.
그런데 내려오다 보니 정작 올라왔던 등산로가 없어졌다. 애초에 등산로가 있었다기 보다는 사람이 다닌 흔적이었을 뿐이었지만. 숲을 이리저리 다니다보니 반바지만 입은 다리가 풀과 잔가지들에 쓸려서 가렵고 따갑다.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길이라고 생각되어도 가다보면 오히려 자꾸 산으로 오르게 된다. 방법이 없어서 길 찾기를 포기하고 논을 보고서 무조건 내려왔다.
하산은 성공이나 길과는 멀고 논둑길이 끝도 없이 펼쳐져있다. 사다리 타기다. 필기구로 그리면 되는 것이 아니라 .`1.5킬로의 논둑길을 내 발로 걸어서 사다리를 타서 도로에 도착해야 하는 게임. 마을로 들어왔던 길도 까마득히 보인다. 방법이 없다. 원없이 논둑길을 건넜다. 얼마나 걸었을까...
논 가운데 대나무 숲에 자리한 집에 들어가서 물어봐야 소용도 없는 길을 물어 마을 길이 어딨는지만 확인했다. 안테나가 서있는 옆이 마을로 들어오던 길이란다. 논둑길은 의미없지만 목표가 생기니 한결 길이 수월하다.
걸고 빠지고를 반복해서 마을길로 나오니 여전히 마을 사람들이 모내기를 하고 있고 화제가 말라있었던 듯 아주머니들이 나를 불러세워 자꾸 말을 건다. 나는 큰애기 하나를 잡고서 수작을 건다. 웃음이 신선하고 다 자라서 스스럼이 없다. 14살 동생은 수줍어서 내 렌즈를 마다한다. 14살이지만 어른들과 섞여서 일을 하면서 커서 그런지 다 자란 처녀같이 느껴진다.
긴장이 풀어지니 다리도 아프고, 무엇보다 풀독인지 뭔지 간지럽다. 그래도 다행이다. 계획도 없고 과 깜량도 모르고 덤빈 푸씨양룽 트렉킹이었지만 새로운 이력이었다.
내 숙소를 바로 앞에 두고도 지쳐서 그냥 쏙싸이에서 물도 마시고 당분도 섭취하고 똠까이(닭을 단순히 삶은 것)를 시키고 프랑스 인턴들과 수작을 나누었다. 그들도 오늘 탐마린(탐마린은 막캄이라고 하는 곶감 맛이 나는 과일) 동굴 탐험을 나섰다가 길을 잃고서 죽도록 고생하다 돌아온 이야기를 한다. ㅎㅎㅎ. 서로 바보짓한 것을 가지고 누가 더 바보였는가를 내기라도 하듯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쪼이랑 가기로 한 길을 미안스럽게도 혼자서 미션을 곡절끝에 마쳤다. 푸씨양룽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우기에 오르는 것이 무리일 것도 같다. 신발이 좋아야 하는데 거기까지 접근하는 동안 워킹화가 젖지 않을 방법이 있을 것 같지도 않고. 숙소로 돌아와서 비싼 샤워를 하고 누었다.
등이 푸드득 푸드득 하더니 전기가 들어온다. ㅎㅎㅎ. 고마운 일인데 약이 오른다.
그러다가 다시 또 나간다. 약이 오른 감정에 전기가 빈정이 상했나? 이번에는 다행이 이내 다시 들어와서 날 안심시킨다. 나는 배터리를 충전시키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