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깍다 - 루앙프라방, 라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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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깍다 - 루앙프라방, 라오스

한쑤거덩 0 2667

 

 

 

사진이 있는 원본을 보시려면 :

 

http://blog.naver.com/laosboy/220167669493

 

 

 

                                    *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처럼

하늘을 날아가는 새는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

 

허공을 나는 새는 걸림이 없어

흔적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자유롭게 하늘을 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걸림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탐진치(貪瞋痴)가 없어 존재의 속박에 자유롭고

번뇌가 없는 자들을 불교에서는 아라한(阿羅漢)이라 칭한다.

 

나도 아라한처럼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때 마다 일어났다가 스러지며

그물에 걸리곤 했던 여러 가지 상념들

그 번뇌 때문에 나는 아라한의 삶을 살지는 못했다.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남 눈치 보지 말고, 그냥 해버렸으면

하고 싶은 데로 그냥 저질러 버렸으면 나는 아라한이 되었을까.

 

언제부터인가 머리를 기르고 싶었다.

버드나무 줄기처럼 치렁치렁한 머리를 바람에 휘날리며

아라한으로 낯선 세계를 떠돌고 싶었다.

 

한때는 레게머리를 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방콕의 여행자 거리 카오산 로드 길바닥에 주저앉아

레게머리를 땋고 있는 행복한 여행자들을 구경하며 나는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가는 그들의 무한한 자유가 너무나 부러웠다.

 

몇 년을 기르면 꽁지머리를 할 수 있을까.

이번에는 한 번 길러봐야지.

 

수많은 시도가 있었고 그 만큼의 실패가 있었다.

 

대부분의 평범한 직장인들이 그러한 것처럼

짧고 단정한 머리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머리카락이 귀를 덮기 시작하면 간질간질 한 게 

너무 거추장스러워져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간지러워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자신에 대해서는 턱없이 너그럽지만

타인에게는 바늘보다 좁은 잣대를 들이대는 

차갑고 무표정한 사람들의 서늘한 눈빛이었다.

 

붕어빵 틀 속의 붕어의 삶을 살라고 강요하는 세태 속에서

붕어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붕어가 아니라 수염을 기르고 싶은 잉어라고 항변하고 싶어도

똑같거나 최소한 비슷하지 않으면 갈고리로 폐기처분되는 붕어빵처럼

불량품으로 손가락질 받으며 소위 ‘찍’힐까 싶어

생래적인 본연의 모습을 꼭꼭 숨긴채 나는 내 가슴속의 자유를 저당 잡힌 채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처럼 이중적인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남들처럼 단정하게 남들과 똑같이,

염색은 말 할 것도 없고 머리카락 길이조차 일탈로 간주되는 폭력적인 사회

그렇게 나는 견고한 조직속의 한낱 부품으로 길들여져 메말라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대한민국에서의 삶이 너무 버거웠을까.

어느 날 머리를 삭발하고 나타났던 직장 후배가 있었고

오래지 않아 그는 멀리 지방으로 쫓겨났다.

 

반항하는 거야?

뭐 불만 있어?

 

그의 변명을 들어보기도 전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힘있는 자들은  

아가리 닥치지 못해, 그의 입에 미친 개처럼 재갈부터 물렸다.

 

개보다 더 개같은 누군가는 멍멍 짖는 개소리가 듣기 싫었을 것이다.

해바라기처럼 태양을 우러러보며

아랫사람들의 고충 따위야 간단하게 발로 짓밟아 뭉게버리는​

잔머리만 뛰어날 뿐, 옳은 것과 틀린 것과 다른 것을 구별해 내지 못하는

기득권을 가진 놈들에게 그 불쌍한 후배는 눈에 가시였을 것이다.​

 

그의 뜻있는 용기는 치기어린 돈키호테의 어설픈 무용담으로 치부되었고

마침내 그는 처자식을 두고 세 시간 거리의 소도시로 유배되었다.

조금 아주 조금 다를뿐인 그의 사고와 삶의 방식이​

술자리의 만만한 안주 거리로 처참하게 난도질 당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들의 똑같은 가치관에 쉽사리 동조할 수 없었던 나는

말간 소주잔을 입속으로 털어넣으며 숨이 턱턱 막혔다.

 

가발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그즈음의 일이었다.

중앙로 야시골목 근처에는 수많은 가발가게들을 있었다.

 

긴 생머리 가발을 사서 고무줄로 뒷머리를 질끈 묶고

보란 듯이 마음껏 거리를 활보하고 싶다는 마음들을 꾹꾹 눌러 놓았다가

 

마침내 여행을 떠나 자유로운 영혼으로 낯선 거리에 서면

꼭꼭 숨겨두었던 주머니 속의 날카로운 송곳들이

가슴을 뚫고 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술이나 한 잔 해요.

 

지난 초여름,

진만이는 삭발을 하고 나타나 나를 놀라게 했다.

 

와우! 삭발을!

왜?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그런 질문을 하면서 나는

나 또한 기성세대의 편협한 가치에 길들여져 있구나.

남들보다 조금은 더 리버럴하다고 생각해왔던 내 자의식들이

무늬만 리버럴했었구나 무참하게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보며

나는 한 번 더 깜짝 놀랐었다.

 

이유따윈 없어요. 그냥 머리를 밀고 싶었던 것 뿐이예요.

그런데, 형님. 머리를 싹 밀고 났더니 여자들이 그렇게 유혹을 하네요.

 

무지개를 쫓듯 도달할 수 없는 오르가즘에 용을 쓰다가

제풀에 지쳐 숨을 헐떡거리며 박카스 아줌마의 배위에서 떨어져 나오는

늙은 사내의 덥수룩한 흰머리와는 달리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30대 후반인 녀석의 빡빡머리는 남자인 내가 보기에도 참 섹시했다.

 

아주 오래 전,

신천 동로(東路) 건설로 지금은 없어져 버린

칠성시장 근처의 신천변 둔치에서 농구를 하며

NBA 선수들 드리블을 흉내내곤하던 소년

중학생 진만이 처음 만났던 그때도

녀석은 밤톨 같은 까까머리를 하고 있었다.

 

날씨도 점점 더워지고 해서 그냥 한 번 밀어봤어요.

녀석은 심드렁하게 내뱉었지만 나는 부럽다 못해 질투가 솟구쳐 올랐다.

 

아파트 주민들이 관리사무소에 중이 한 명 나타났다고들 해요.

그 시선들이 신경쓰이거나 부담스럽지는 않고?

나는 여전히 우물속의 개구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쓸데없는 헛된 질문들을 했다.

왜요? 남들에게 피해주는 것도 아닌데?

머리 깍고 싶다면서요. 형님도 한 번 밀어보세요.

얼마나 시원하고 좋은데요.​

남들 눈치보지 말고 형님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아요.

 

녀석의 젊음과 그 주관과 용기와 결단이 나는 참 많이도 부러웠다.

아마도 나는 결정 장애가 있는 것 같다.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할 중요한 기로에 섰을 때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뒤로 미루기만 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이 쏜살같이 흘러가버린 다음에 가서

그때 그랬어야 했다고 두 갈래 길 중 가지 못했던 길을 아쉬워하며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그런 아주 중증 결정 장애가.

 

나이가 들수록 세월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지만

머리가 자라는 속도는 나이에 반비례한다.

 

2011년, 일 년 동안 휴직을 하고 이 세상을 떠돌때도

나는 어서 빨리 꽁지머리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도무지 머리가 자라나지 않았던 탓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수염을 깍지 않는 것 뿐이었다.

 

몇 년을 기르면 그렇게 돼요?

초등학교 3학년 조카아이 준범이와 함께 했던 히말라야 

그 설산을 이고 있는 네팔 포카라의 한인 게스트하우스 '놀이터'에서 만났던

젊은 청년의 치렁치렁한 긴머리가 나는 또 얼마나 부러웠던가.

그리고 또 언제부터인가 나는 머리를 깍고 싶었다.

​미얀마에 갔던 것도 그래서였다.

​지독한 감기 몸살로 단기출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다시 라오스 루앙프라방으로 되돌아 온 나는​

사원의 스님들이 한 달 마다 한 번 씩

면도칼로 파랗게 머리를 밀고 있는 것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그럴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솟아올라

뜨거운 그 무엇들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턱밑으로 떨어지곤 했다.

 

그래서 였을까.

긴 여행에서 돌아왔다가 다시 찾아들곤 했던 루앙프라방에서

지난 여름의 어느 날 나는 마침내 머리를 깍았다.

   

우리나라의 6,70년대를 연상케하는

허름하지만 정겨운 이발소에서 나는 말 그대로 머리를 깍았다.

그리고 깍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이 십여 년 전,

머물지 못하고 스쳐지나가는 인연으로 잠시 만나졌던 그녀

​결혼할 뻔 했으나 시절인연이 닿지 않았던 탓에

그만 놓쳐버렸던 그녀에게

 

벚꽃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던 지난 봄

있지...... 나는 머리를 깍고 싶어......

 

내 속내를 털어 놓았던 순간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제각기 다른 짝을 만나 결혼을 했고

이후로도 가끔씩 잊을만하면 안부 전화를 주고받곤 했었다.

 

애가 몇 학년이야? 이젠 많이 컸지?

그럼요, 지금 큰애가 고등학교 3학년이야.

 

벌써?  아이고, 참말로..... 그 애가 내 앤데......

그러게? 그러니까 그때 나를 잡지 그랬어요?

 

그녀는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었다.

 

실없는 내 농담을 내치지 않고 기꺼이 받아주는 그녀가 나는 좋았다.

 

이십대 후반의 선남선녀가 처음 마주쳤을 때

그녀는 과외를 하며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틈틈히 보험일을 하고 있었고

뒤늦게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아 아이들에게 얼마간 국어를 가르쳤다.

그러다가 뜻한 바가 있어 훈장질을 그만두고 보험왕을 꿈꾸고 있는 그녀는

수 십 년 째 C읍 근처에 있는 자그마한 절에 열심히 다니고 있다.

 

나는 그녀에게 가발 이야기를 했다.

 

혹시 고객 중에 가발 파는 사람 있어?

가발은 왜요?

 

머리를 삭발하려고......

삭발을 하고는 회사에 다닐 수 없으니까......

출근할 때 쓸...... 가발 하나 샀으면 해서......

 

오라버니, 미쳤구나!

왜 그런 생각을 해? 오라버니 답지 않게?

 

언제나 내 생각을 존중해 주던 그녀는

이번에는 대뜸 미쳤냐고 반문을 했다.

 

나답지 않은 게 뭔데? 왜에?

 

다소 섭섭한 감정을 애써 숨기며 내가 말꼬리를 올리자 그녀는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다그쳤다.

 

그게 아니고......

사실은 말이야...... 스님이 되고 싶어서.....

 

나는 출가와 승복에 대해서 불교에 대해서

그리고 또 지난한 내 삶에 대한 넋두리를 두서없이 늘어놓았다.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그녀는

 

제가 다니는 절에 같이 가 볼래요?

스님께서 참 용하신데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고요.

 

근데, 스님은 아무나 되는 게 아닌데......

전생에 인연이 있어야 한다던데......

 

말끝을 흐리다가

아무튼 만나서 이야기해요, 하며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지 않았다.

만나지 않아도 좋을 정도로 그녀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기껏 정해 놓았던 약속을 뒤로 미루었던 것은 그래서였다.

 

그녀 또한 내 여동생들과 똑 같은 이야기를 할 것이 뻔했으니까.

아니, 어쩌면 그것은 내 생각뿐일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 보지는 않았으니까.

아무튼 그랬다.

오빠다...... 별일없지......?

응, 오빠는?

 

나도 별일이야 없지......

근데......저기...... 저기 말이야......

오빠는 직장 때려 치우고 스님이 되고 싶은데......

 

 

여동생들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다 들어보지도 않고

다들 내가 틀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마치 무슨 흉악한 범죄라도 계획하고 있는 파렴치한 사람 대하듯 하며

내가 스님이 되는 것에 대해 한사코 만류했다.

 

오빠, 나는 반댈세......

법정스님이나 성철스님처럼 큰 깨달음을 얻지도 못 할 거잖아?

 

그런데 갑자기 왜......? 

회사에 뭐 힘든 일 있어......?

 

이 세상에는 교통사고처럼 예기치 않게

어느 순간 갑자기 일어나는 일도 가끔은 있지만

 

화산이 폭발하여 용암이 분출하는 것처럼

비등점에 도달하면 물이 끓어 오르는 것처럼

 

오래오래 참으며 쌓여져 왔던 것들이 임계점에 다다르면

더 이상은 버틸 수 없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밖으로 표출되는 경우도 왕왕 있는 법이다.

 

마음이라고 해서 다를 바 없다.

 

그래, 알았다......

다음에 통화하자......

전화를 아니했으면 좋았을 걸

속내를 내비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사방을 분간할 수 없는 

검은 화산재에 뒤덮힌 것 같은 막막한 마음을 안고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무엇엔가 쫓긴듯이 나는 루앙프라방으로 훌쩍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머리를 깍았던 것이다.

 

​나는 머리를 깍았다.

루앙프라방, 라오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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